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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의 남북정상회담은 오래 남을만한 기억이다. 북의 지도자는 바지통을 펄럭이며 옥류관의 평양냉면과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왔고 나는 당장 오늘은 유명짜한 평양냉면집에 가지는 못해도 올해 안에 친구들과 개성 시내 정도는...

작년에 작은 아이는 담임교사와의 불화로 매우 힘들어했다. 아이는 이혼은 무책임한 일이라거나 공부를 잘 해야 왕따가 되지 않는다는 등의 담임교사의 말과 편애를 견딜 수 없어했다.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번번이 ...

첫째가 돌을 갓 지난 어느 날, 나는 개나리색 공단 치마를 만들다 말고 동네 마실을 나갔다. 골목을 지나는데 어느 집 들창에서 누군가 얼굴을 내밀고는 ‘그 치마 언제 만들어 줄 거에요?’라 물었다. 거의 만들어 간다...

그해 봄은 해가 좋아도 바람이 칼처럼 불었으며 여름이어도 춥고 비가 왔다.
4년 전 그날은 평소와 달리 출근준비를 하던 남편이 끄지 않고 나갔는지 아침부터 TV가 켜져 있었다. 하릴없이 흘러나오는 TV 소리를 ...

어디서부터 말해야 할 지 막막한 일들이 있다. 그래서 생각나는 일부터 주워섬긴다.
열두 살 때 동네 놀이터에서 달고나를 팔던 할아버지는 나의 엉덩이를 만졌다. 꼴같잖은 동방예의지국의 어린이었던 나는 어른이 이리...

가끔 물건에도 영혼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감정의 극단에 임신테스트기가 있고, 외로움의 가장 높고 먼 곳에 보이저 1호가 있고 우리 집엔 우직함의 강자, 음식물 처리기가 있다.
나는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

얼마 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비용역비 상승으로 입주민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경비원의 휴게시간을 변경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란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나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하는 것이 더 부담...

“어머, 여기 웬일이야?”
“단팥빵 하나 먹고 싶어서 왔지.”
10년 전쯤 여차저차 들린 신라호텔의 빵집에서 두 할머니가 반갑게 인사하는 것을 보았다. 두 분 다 옷도 얼굴도 고왔다. 서른 한 살이었던 나...

언니에게서 또 배웠지, 시금치볶음
사십 년을 살아 언니 둘을 얻었다.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다.
나는 큰 딸이고 육촌 이내의 친척을 싹 다 훑어도 언니가 없다. 그래서 항상 언니가 고팠다. 언니가 있으면...

때 아닌 애호박 대란에 며칠 전까지 좋아하던 배우를 지웠다. 그가 배우로 쓰는 이름이 유아인인 탓에 소셜 미디어는 ‘유아’인이라며 그를 비웃는 글들로 넘쳐났다.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기에 나는 ‘유아 같은’,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