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꼭 ‘스승’이 아니어도 괜찮아
    [밥하는 노동의 기록] 직장인과 노동자로서의 스승
        2018년 05월 19일 05:13 오후

    Print Friendly

    작년에 작은 아이는 담임교사와의 불화로 매우 힘들어했다. 아이는 이혼은 무책임한 일이라거나 공부를 잘 해야 왕따가 되지 않는다는 등의 담임교사의 말과 편애를 견딜 수 없어했다. 선생님이 그런 말을 할 때마다 번번이 손을 들고 일어나 반박했으나 교실 안에서 열 살이 좀 넘은 학생과 교사와의 힘겨루기는 간단히 종료되기 마련이다.

    나도 그런 선생님들을 많이 만났다. 다만 그 때는 그것이 잘못되었다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다. 교장 밑에 교감 있고 교감 밑에 교사 있고 교사 밑에 학생 있는 학교에서 때리면 맞아주고 벌 세우면 벌 서주고 시키는 대로 생각하고 말하는 것만큼 편하고 안전한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 학교는 교사도 학생도 게으른 공간이 되었다.

    내가 공교육을 받을 때는 지금과 조금은 다른 세상이었으니 교사의 말이나 생각이야 인권감수성이 떨어질 수는 있다 해도 아홉 살 학생을 체벌하기 위해 귀를 잡고 들어올린다거나 한 명의 잘못에 연대책임을 물어 반 전체를 책상 위에 무릎 꿇려 삼십 분 내내 손을 들게 하고 수업의 나머지 십 분을 각각 허벅지 세 대씩 내려치는 데 썼던 그 선생은 도대체 왜 그랬을까.

    교통사고 후유증이 심하다며 하루 종일 자습시키고 자기는 잠만 잤던 5학년 때 담임은 믿을만한 소문에 의하면 교감 승진 탈락 후 무력감에 그랬다 쳐도 자습시키고 신문 사이에 선데이 서울을 끼워 보던 6학년 담임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반 친구 중 하나가 그걸 만화로 그려 돌려보다 걸리자 우리가 다 보는 앞에서 걔를 흠씬 두들겨 팼다. 부끄러움을 모르는 인간이었다.

    그 이후로도 숙직실에서 자주 음주를 즐기다 결국 고주망태가 되어 중앙현관 지붕 위에 올라가 빗자루를 들고 소리를 지르며 춤을 췄던 교사, 수업 중에 화장실을 가고 싶다는 학생을 학습의지가 없다며 다그쳐 열다섯 나이에 친구들 앞에서 교과서를 찢으며 울게 만들었던 교사, 면담을 빌미로 손을 조물거리고 허벅지를 만지작거리던 교사 등등을 만났다. 고3 담임은 이름은 하나라도 별명은 여러 개였는데 그 중 하나는 돈 먹는 하마였다.

    자기 수업에 열심이고 편견 없이 내 말을 들어주셨던 몇 분의 선생님이 계셨다. 12년을 공교육 안에서 학생으로 살면서 고작 다섯 분도 안 되지만 그분들이 안 계셨다면 세상에서 제일 못믿을 집단이 교사라 생각하며 살았을 것이다. 스승의 날이 되면 그런 선생님들의 책상은 선물로 넘쳐났다. 사실 책상을 선물로 뒤덮는 건 선생님께 보내는 고마움보다 그렇지 않은 선생님들에 대한 복수의 의미가 더 컸다. 그들의 눈이 선물이 쌓여있는 자리와 인사치레 선물 몇 개가 있는 자신의 자리를 오갈 때의 짜릿함을 즐기기 위해 그 날만큼은 교무실을 자주 들락거렸다. 그 정도가 학생들이 할 수 있는 경고의 최고치였다.

    큰 아이는 다행히 선생님 운이 좋다. 나는 그것이 참 부럽다. 아이가 집 밖에서 가장 오래, 자주 만나는 성인이 믿을만한 사람이라는 것은 참으로 다행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스쿨 미투가 터져 나오고 아직도 성적을 잣대로 교사가 교실을 횡으로 종으로 가르는 일은 왕왕 일어나고 종종 체벌 뉴스를 접한다. 공교육 안에서만 자라 공교육 기관에 두 아이를 보내는 엄마가 된 나는 그저 매년 3월 2일에 아이가 좋은 교사를 만나기만을 기도한다. 그저 운에 맡길 뿐이다.

    ‘선생님 운’이라는 것이 크게 잘못된 말임을 안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교사도 결국 인사고과와 업무평가에서 벗어날 수 없는 직장인이며 노동자라는 사실을 인정했으면 한다. 가르치는 일의 고단함과 보람은 여타의 노동과 다를 바 없다. 스승이라 상찬하며 과하게 기대하기보다 교사의 평범한 하루하루의 노동을 믿겠다.

    스승이 없다고 교육이 사라지는 것도, 교실이 무너지는 것도 아니다. 스승이라는 말로 학생들에게 존경을 강요하고 애써 권위를 세우려는 눈꼴 신 교사가 있는가 하면 사명감에 허덕이고 자존감에 상처를 입는 교사도 있다. 이제 스승의 날엔 ‘스승의 그림자도 밟지 않는다’는 말보다 ‘훈장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속담이 더 어울린다.

    여느 날과 다름없는 스승의 날의 아침밥. 숙주볶음, 어묵국, 현미밥.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