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궁전빌라 경비 할아버지
    그의 점심식사, 비빔국수
    [밥하는 노동의 기록] 어떤 안내문
        2018년 01월 27일 12:5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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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경비용역비 상승으로 입주민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경비원의 휴게시간을 변경하오니 참고하시기 바란다’는 안내문이 붙었다. 나의 부담을 조금이나마 덜어드리고자 하는 것이 더 부담스럽다.

    나는 내가 사는 아파트의 경비원 숫자도 모르니 그 분들의 이름이나 얼굴을 알 수도 없다. 마주치면 인사하고 가끔 과일이나 부침개를 가져다 드리는 것이 나와 그 분들과 교류의 전부다. 작년 여름, 내 실수로 경비원 두 분이 큰 수고를 해주셔서 음료수를 사다 드리며 몇 마디 나눈 것이 제일 긴 대화였다.

    경비원과 입주민은 대부분 좋지 않은 상황에서 안면을 트고 통성명을 하고 몇 마디 말이라도 나눈다. 우리는 그렇게 서로 너무 가까워지는 상황을 경계하며 지내고 있다. 가끔 동네 노인들이 경비실 안에 앉아 있는 것을 보는데, 경비 아저씨의 표정을 보면 그건 대화가 아니라 일방적인 잔소리임이 분명하다. 경비원과 입주민은아무리 오래 같이 지낸다고 해도 크게 가까워질 일이 없어야 좋은 사이라는 것이 나의 오랜 믿음이다.

    줄곧 단독주택에 살다가 열 한 살에 이사 온 동네엔 ‘빌라’가 많았다. 지금이야 그런 형태의 주거시설을 빌라라 부르는 것이 좀 우스운 일이라 생각하지만, 그 땐 그것이 당연히 빌라였다.빌라가 연립주택과 다른 점은 ‘경비원’이 있다는 것이었다. 동네엔 방 네 개에 화장실이 세 개라는 함흥빌라가 있었지만, 우리 어린이들은 거긴 경비 아저씨가 없으니 빌라가 아니라 쳤다. 경비원이 많을수록 좋은 빌라였다. 삼익빌라가 그랬고 현대 빌리지가 그랬다. 군청색 제복을 입고 빌라 이름을 노란색 실로 기계자수 놓은 모자를 쓴 아저씨들이 많을수록 살기 좋고 비싼 집이었다.

    내가 살던 빌라는 그 때도 우스운 이름이라 생각했던 ‘궁전빌라’였고 경비 아저씨는 두 분이었다. 그 중 한 분은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입주민의 아이를 쥐어패고는 그만두셨다. 맞은 아이는 동네에 유명짜한 말썽꾸러기 스카리(아마도 Scott의 애칭)였는데, 빌라 차의 타이어 바람을 모조리 빼놓았기 때문에 맞았다.

    그 분은스카리의 귀를 약 15미터 정도 잡아 끌고 와 어린이들 다수가 보는 앞에서 일벌백계의 의지를 담은 발길질을 선사한 후 ‘아마도’ 해고 당했고, 그 후 내가 사는 빌라의 경비 아저씨는 줄곧 나머지 한 분이었다. 경비라 하면 대단한 위험에 대비하여 살필 것 같았지만, 사실 그들의 실제적인 위협은 밤중에 칼이나 방망이를 옆에 차고 들어오는 도둑이 아니라 자신이 근무하는 빌라 입주민의 차에 바람을 빼고 초인종만 누른 뒤 도망가거나 야구공으로 창을 깨는 동네 아이들이며 주변이 지저분하다거나 시끄럽다고 경비원을 다그치는 입주민이었다.

    그래서 경비원들은 경비업무시간의 대부분을 위험을 살피고 대비하는 일보다는 일터를 닦고 쓸고 치우고 다듬거나 입주민의 요구를 수행하는 데 썼다. 경비원의 업무를 1년쯤 관찰하면서 이것을 매우 기이하게 느꼈지만, 사전적 의미와 실제의 쓰임이 다른 일은 많았고 경비와 경비원도 그런 것 중에 하나겠거니 결론지었다.

    열 한 살에 이사와 스물 일곱에 결혼하며 집을 떠나기까지, 그리고 떠나고 나서도 친정의 경비 할아버지는 계속 그 분이었다. 16년간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매일 그 분을 뵈었다. 그저 얼굴만 알 뿐인 그 분께 내가 해드릴 수 있는 것은 밖에서 되도록 얌전히 굴어 귀찮은 일을 만들어 드리지 않는 것과 깍듯하게 인사하는 것뿐이었다.

    딱 한 번, 원하시는 일을 해드린 적이 있다. 디지털 카메라를 처음 장만하고 얼마 되지 않아 집 앞의 나무가 예뻐 찍고 있는데 경비 할아버지께서 당신이 경비실에 앉아있는 것을 찍어달라 부탁하셨다. 경비실 안이 좁고 어두워 간신히 두 장을 건졌으나 그것조차 어영부영하다 드리지 못하고 집을 떠났다. 신접살림을 차린 집은 친정과 가까웠지만 시간이 맞지 않아 그 후로 그 분을 뵐 일은 거의 없었다.

    그 분의 마지막 소식은 이러하다. 10년 넘게 집값이 오르지 않던 친정 동네에도 재건축 바람이 살살 불었고 규모가 웬만한 건설사와 구체적인 협상이 오가자 경비 할아버지는 반장 아주머니에게 자신의 퇴직금으로 오백만원을 요구하셨다고 했다. 반장 아주머니는 그 오백만원을 재건축 건설사에 떠넘겼다. 모든 재건축이 그러하듯 협상은 일이 될 듯 말 듯 진행됐고 각 세대가 분담하면 사십만원이 조금 넘는 퇴직금 오백만원은 기약없는 돈이 되었다.

    그런 중에도 경비 할아버지는 계속 출근하셨다. 팔십이 넘으신 그 분은 이제 대문을 잠그는 일에만 집착하셨다. 이미 할 수 있는 일이 그것밖에 없을 연세였다. 어머니는 ‘이제는 그 할아버지가 빌라 간장이며 된장 장독을 다 퍼먹는다’고 하셨다. 하긴 오랫동안 그 분의 점심밥은 간장에 비빈 국수였다.

    그 해 겨울, 빌라 지하에서 길고양이가 아이를 낳다 죽었다. 가장 깊숙하고 외진 곳에서 일어난 일이라 한참을 찾은 뒤에야 그것이 시체가 썩는 냄새임을 알았다. 뒷수습은 경비 할아버지의 몫이었는데, 그 분은 어미 고양이의 시체를 치운 뒤 앓아 누우셨고 며칠의 결근 끝에 그 분의 가족은 부음을 전했다. 그렇게 퇴직금 오백만원은 사라졌다.

    ‘입주민의 부담을 덜어드리고자 경비인력의 휴게시간을 연장한다’는 안내문 앞에서 나의 오랜 믿음을 되돌아본다. 나와 그 분들 사이의 적절한 사이는 유지되어야 하지만, 그 사이를 채우는 것은 방관이나 무시, 꼼수가 아닌 예의와 존중이어야 한다. 관리소장과 입주민대표회의는 나의 동의도 없이 내가 정해놓은 적절한 거리를 침해했다. 나는 단 한 번도 그 분들의 인건비가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들이 무시한 것은 경비원과 입주민 둘 다이다.

    간장비빔국수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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