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바보'라는 설탕장식
[밥하는 노동의 기록] 딸의 의미는?
    2018년 05월 02일 09: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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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가 돌을 갓 지난 어느 날, 나는 개나리색 공단 치마를 만들다 말고 동네 마실을 나갔다. 골목을 지나는데 어느 집 들창에서 누군가 얼굴을 내밀고는 ‘그 치마 언제 만들어 줄 거에요?’라 물었다. 거의 만들어 간다 답하고 집에 와 치마를 들여다보니 꽤 마음에 들어 그 집에 주지 말고 내가 가져야겠다 마음먹었다. 깨어보니 꿈이었다. 태몽인가 했는데 정말태몽이었다.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할 무렵 큰애 낮잠을 재우면서 살짝 졸려 눈을 감으려는 순간 머리를 양 갈래로 묶고 꽃무늬 바지를 입은 여자아이가 방문을 열고 뛰어 들어왔다. 나는 황급히 일어나 돌다리도 두들겨보고 가자는 심정으로 그 아이의 샅을 만지는 순간 잠에서 깼다. 어떤 날은 의사가 내게 명단을 하나 보여주면서 ‘보세요. 여기 산모님들 다 딸인데 산모님만 아들이야.’ 하는 꿈을 꾸기도 했다. 어렴풋이 딸이었으면 했지만 마냥 이런 꿈을 꾸니 기분이 이상했다.

아들이 하나 있으니 딸도 있어야 한다는 마음인가 싶어 남편에게 꿈 이야기를 하자 자식이 무슨 물건도 아닌데 이게 있으니 저것도 있으면 좋겠다는 건 옳지 않다며 펄쩍 뛰었다(그러나 그는 둘째가 딸이라는 사실을 알리자 ‘부정 탈지 모르니 조용하자’ 해놓고는 온 동네방네 ‘부정 탈지 몰라 살짝 알리는데 둘째는 딸’이라고 소문을 내고 다녔다).

내가 내 살림을 꾸릴 때쯤 딸 둘이면 금메달, 아들 둘이면 목메달이라거나 딸 둔 엄마는 비행기에서 죽고 아들 둔 엄마는 싱크대 앞에서 죽는다는 말이 심심찮게 나오기 시작했다. 아들만 있는 집은 베이비시터 구하기가 하늘의 별따기라 했다. 둘째를 낳자 사람들은 그래도 아들-딸 조합이니 동메달은 땄다며 축하했다.

나는 그 말이 참 이상했다. 어차피 아들 하나 딸 하나는 같은데 굳이 딸-아들 조합을 아들-딸 조합보다 윗자리에 두는 것은 ‘큰 딸은 살림밑천’의 변주와 다를 바 없어서였다. 살림이 어려워졌을 때 팔려가는 처지에서 그나마 남동생만 돌보면 되는 처지로 바뀌었으니 고마워하란 말일까.

딸바보라는 새로운 말도 마찬가지였다. 그 동안의 ‘아들 바라기’가 얼마나 참혹한 결과를 가져왔는지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 대체재가 고작 딸바보라니. 나 하나 살기도 어려운 세상에 ‘말과 행동이 느리고 부산스러워 한 자리에 앉아있지 못해 교육기관 적응이 어렵고 손이 많이 가며 사춘기가 지나면 힘으로도 제압할 수 없고 본능을 주체하지 못해 각종 사건사고에 연루되기 십상이며 짝 지워 내보내려면 집을 사줘야 하니 부담이 많은데다 돌봄노동에 익숙하지 못해 내 노후를 즐겁게 해줄 수 없는’ 남자아이보다는 ‘애교 많고 말 잘 듣고 돈 적게 드는’ 여자아이가 자식으로 더 적합하다는 속내를 이렇게 드러내도 좋은가 싶었다.

게다가 ‘딸바보 아빠’가 칭찬의 수사로 쓰이기 시작하자 나는 하늘에 대고 침이라도 뱉고 싶었다. 맨 박스와 여성혐오를 ‘딸바보’라는 설탕장식을 입혀서라도 유지하고자 하는 그 가열찬 의지에 존경이라도 보내야 하나 심각하게 고민했다.

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내게 ‘딸이 있어 얼마나 다행이니’라 말씀하신다. 어머니는 내게 한 번도 그런 말을 한 적이 없었다. 그 말을 처음 내뱉은 시기가 아들을 장가보낼 때쯤이었다는 것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누군가의 딸과 며느리 사이에서 폭탄처럼 돌려지고 있는 돌봄과 가사노동이라면 딸인 내가 안고 터지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지만, 그렇다고 감정노동까지 수행할 자신은 그 때도 지금도 없다.

‘딸은 크면 엄마의 친구가 된다’는 말은 그래서 싫다. 돌봄에 가사에 감정노동까지 떠안은 딸들은 가정 밖으로 나갈 수가 없다. 딸을 낳았다고 축하 받는 정도로 세상이 많이 변했다 하는 이들은 이것을 절대 자신의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들이 원하는 것은 품 안의 귀엽고 상냥한 딸이지 가정 밖의 기운찬 여성이 아니다.

나에게도 딸이 있다. 열 두 해 전 봄에 태어난 내 딸은 작년부터 나보다 키도, 발도 더 크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크게 믿지 않지만 둘이 같이 아이스크림이라도 먹고 돌아오는 길, 볕은 적당하고 소매를 걷어 올려 드러낸 팔뚝에 바람이 스쳐갈 때 손톱 끝까지 싱그러운 나의 딸이 쉼 없이 지절대는 것을 보면 이런 아이를 곁에 두고 사는 것이 참으로 좋은 일이라 웃음이 절로 난다. 이 즐거움이 나와 나의 딸에게 독이 되지 않도록 경계한다. 누군가의 딸을 넘어 더 멀리 가기를, 더 높이 날기를. 아니, 멀리 가지 않아도 높이 날지 않아도 좋으니 그저 너 하나로 살기를. 엄마는 저만큼 비켜서 바라볼게.

딸의 열 두 번째 생일밥상. 파김치, 샐러리 볶음, 숙주무침, 미역국, 현미밥.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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