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쩌자고 또 다시 4월
    [밥하는 노동의 기록] 그날의 기억
        2018년 04월 16일 09:4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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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해 봄은 해가 좋아도 바람이 칼처럼 불었으며 여름이어도 춥고 비가 왔다.

    4년 전 그날은 평소와 달리 출근준비를 하던 남편이 끄지 않고 나갔는지 아침부터 TV가 켜져 있었다. 하릴없이 흘러나오는 TV 소리를 매우 싫어하는지라 바로 바로 끄는데 그 날은 큰 배가 빠졌다는 소식이 있어 그냥 두었다. 다림질을 하는데 전원 구조 자막이 떴다. 다행이다 싶어 그제서야 TV를 끄고 설거지를 마저 하고 장을 봐왔다. 매일 하는 일을 끝내놓고 잠시 앉았을 때니 오후 2시쯤 되었나보다. 꼭 이 시간이 되면 살짝 졸려 애들 올 때까지 잠깐 눈을 붙이려고 누워 소셜미디어를 들여다 보는데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다시 TV를 켰다. 그 다음 일은 모두가 아는 바다.

    국가는 늘 그러했듯 이 일을 개개인의 선의에 기대어 수습하려 했으나 여의치 않자 또한 그래왔듯 사람들의 악의를 자극시켜 덮으려 했다. 그 중 가장 악질적인 것이 갈라치기였다. 생존자와 피해자 사이를 이간질하고 선량한 유가족과 돈만 바라는 뻔뻔한 유가족으로 나누어 진상규명의 요구를 묵살했다. 그리하여 생존자는 몸을 숨겨 얼굴을 가렸고 유가족은 빨갱이라 손가락질 받았다. 그래서 희생자들은 ‘그저 착하기만 해서 가만히 있으라는 말만 듣다가 죽은 불쌍한 우리 아이들’이 되었다.

    “걔네는 담배 피러 나갔다가 산 거라며?”, “그 사람은 이혼하고 양육비도 제 때 안 줬다던데.” 유민이 아버님 김영오 씨의 단식이 한 달을 넘어가고 있었을 때였다. 아직 시신 수습도 다 끝나지 않았을 그 때쯤 만난 고등학교 동창은 세월호 이야기를 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그 말이 아파 한참을 앓았다. 담배 좀 피면 어때 살았으면 죽은 것보다 다행이지, 돈을 달라는 것도 아니고 딸이 왜 죽었는지 알려달라 저렇게 밥을 굶고 있는데 덮어놓고 욕하기 전에 양육비 못 준 사연 정도는 알아봐야 하지 않니? 이런 말들을 하고 싶었으나 먼저 맥이 탁 풀려 황급히 자리를 마무리했다.

    한겨레신문이 연재했던 세월호 단원고 희생자의 캐리커쳐와 소개 때문에 또 아팠다. 살아서는 막연했을지도 모를 그들의 꿈과 미래에 대한 설계는 죽어서야 산 자들에게 왔다. 손 한 번 간 적 없는, 가족들을 사랑했던, 엄마 일을 잘 돕던, 든든한… 이름 앞에 붙은 수사를 손가락으로 짚다가 먼저 죽은 자식을 그리워하는 단장의 슬픔 한편으로 순수한 피해자라는 강박이 읽혀 마음이 부서졌다.

    부모 속 한 번 안 썩인 사람도, 나쁜 짓 한 번 안 한 사람도 없다. 살아서 무엇이었든 그 날 그 바다에서 국가의 나태함으로 인해 죽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피해자의 무고함은 사건 해결의 전제조건이 아니다.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재발 방지 대책을 세워야 하는 이유는 죽은 이들이 ‘착하고 꿈 많은 우리 아이들’이기 전에 국가가 죽인 시민이기 때문이다.

    끝으로 살아 돌아왔다는 죄스러움으로 가끔은 삶이 더 무거울 생존자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축복을 빈다. 당신들이 살아 돌아와 정말 다행이다.

    그래도 봄이니까 머위잎무침, 달래장과 김, 쑥국, 메조를 섞은 흰밥.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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