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우린 항상 조개를 줍는다
[밥하는 노동의 기록]바지락 된장국
    2018년 03월 28일 09:40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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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서부터 말해야 할 지 막막한 일들이 있다. 그래서 생각나는 일부터 주워섬긴다.

열두 살 때 동네 놀이터에서 달고나를 팔던 할아버지는 나의 엉덩이를 만졌다. 꼴같잖은 동방예의지국의 어린이었던 나는 어른이 이리 오라 하면 갈 수밖에 없었다.

열일곱 살 때 다녔던 학원의 화장실은 남녀공용이었는데, 용변을 보던 중 밖에서 부원장이 ‘거 참 시원하게 잘 싼다’고 했다. 난쟁이 똥자루만하게 생긴 사람이 혓바닥만 길었다. 화장실 얘기를 하니 스물두 살 때의 일이 생각난다. 학교 앞 지하 술집의 화장실은 1층에 있었는데 용변을 보던 중 걸쇠가 들어 올려져 문이 열렸다. 문 밖에는 10대 중반으로 보이는 남성이 스위스 군용칼을 들고 서 있었다. 더블 코트를 입고 모자와 안경을 썼다. 그는 부들부들 떨면서 나에게 움직이지 말라고 했다. 일어나서 꺼지라며 욕을 몇 마디 하자 도망갔다. 아마 어려서 그랬겠지. 칼을 보면서도 욕을 했던 나도, 칼을 들고도 욕하니 도망갔던 걔도.

남녀공학에 합반에 짝인 중학교를 다니면서 브래지어 끈을 잡아당기고 ‘생리 중이냐?’를 안부로 묻는 남자애들에 질려 여고로 배정받았을 때, 이제 좀 편하게 학교 다니나 싶었으나 바바리맨과 남교사는 피할 길이 없었다. 버스를 타고 다녀 남부순환도로 휑한 임광아파트-신동아아파트 구간의 바바리맨은 딱 한 번밖에 만나지 않았지만, 학교 뒷산에 출몰하는 바바리맨은 종종 보았다.

산 중턱에 지어 주소도 ‘산 82번지’인 학교의 뒷산은 매우 황량했는데 올라가며 그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런 궁금증이 잠시 스쳐갔으나 남교사들의 자잘한 성추행에 짜증내기에도 정신이 없었다. A선생은 불러놓고 자꾸 학생의 교복조끼의 단추를 제 손으로 풀었다 채웠으며 B선생은 힘내자며 손을 조몰락거리는 것으로 유명했다. 더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뻔히 보면서도 아무 말 하지 않는 옆 자리 교사들이었다.

지하철을 타고 통학하던 대학 시절, 나는 3호선에서 4호선으로 갈아타고 다녔는데 출근시간과 겹치면 동대문운동장-동대문 구간에선 영락없었다. 학교 안에 3호선과 연결되는 마을버스의 정류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때까지 나는 그 ‘원치 않는 접촉’을 몇 번이나 견뎌야 했다. 그 후로는 지하철에서 앉지 않는 것만으로도 살을 뺄 수 있다는 말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무조건 앉아야 그나마 안전했다. 안전이란 추행이 없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내 몸을 만지는 자가 왼쪽 오른쪽 둘 중에 하나임을 알 수 있다는 뜻이다. 고작 이것을 안전이라 생각했다. 대중교통에서의 추행 중 가장 더러웠던 경험은 스물여덟 살 때였다. 비 오던 만원 마을 버스 안, 엉덩이와 옆구리를 거쳐 배까지 더듬던 손의 주인을 애써 찾아내어 또 욕을 했다. 첫째가 뱃속에서 팔 개월을 헤아릴 때였다.

상황이 이쯤 되면 농활 뒤풀이가 끝난 아침 8시, 모두가 술이 머리 꼭대기까지 취해 강원대 호수 앞에 널브러져 있을 때 술 좀 깨라며 더듬다 내가 자리를 옮기자 따라와 ‘내가 만지는 게 싫어?’ 물어보고 싫다 하니 미안하다 했던 그 놈이 정상으로 보일 정도다.

지금 당장 주변의 여성 한 사람에게 ‘혹시 성폭력 피해 경험이 있냐’ 물으면 한 번도 없다 답할 사람이 어디 있을까. 없다 한다면 질문자를 신뢰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 허락도 없이 나를 만졌던 그들은 왜 그랬을까, 왜 성폭력을 저지르는 것일까 오래도록 생각했다. **계 내 성폭력 해시태그가 시작될 때쯤부터는 더 열심히 따져 생각했다. 결론은 ‘그냥 하고 싶으니까 했고, 할 수 있으니까 했다’였다. 하고 싶고, 할 수 있으니까 하는 일은 보통 합법의 범위 안에 존재하지만 참 안타깝게도 성폭력은 불법이다. 그래서 세상은 성폭력의 범위를 최소화함으로써 간단히 해결책을 찾았다. 여성 성폭력 가해자에겐 가차없는 검경과 법원은 남성 성폭력 가해자에게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엄격히 적용하며 열심을 다하여 사법서비스를 제공하고 사회는 가해자의 미래를 걱정하며 그를 감싸 안는다. 피해자는 성별과 상관없이 법과 공동체에서 방출된다. 그래서 그들은 폭로를 택한다.

폭로 후 가해자의 대응은 주변의 지지를 받으며 나날이 정교하고 단단해지지만, 피해자의 언어는 매번 의심과 공격을 받는다. 아니, 의심과 공격까지 갈 것도 없이 허공에 부서지는 말이 되는 일은 얼마나 많던가. 너만 참으면 다 아무 일 없는 건데, 우리 조직이 지금 문을 닫네 마네 하는데, 회사가 어려운데 괜한 분란을, 네가 예민해서, 당장의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참 쓸데없는 소리를 하는구나. 세상은 피해자들의 말을 ‘조개를 줍는다’며 무시하고 비웃었다. 그래서 나 또한 입을 다물었다. 참 부끄럽게도 등교하며 지하철에서 성추행 당하고 기분이 더러웠으면서도 점심밥 먹으면서는 시침 뚝 떼고 여성을 대상화하는 발언에 함께 웃으며 동조하고 한편으로는 나서 주도하기도 했던 나는 피해자 이전에 가해자 연대의 일원이었다.

혹자는 지금의 MeToo를 억눌렸던 목소리가 지금에야 터져 나온다고 하지만, 나는 오랫동안 흩어져있던 피해자들이 끈질기게 서로의 목소리를 놓지 않았기에 여기까지 왔다 믿는다. 친구 강은주의 말마따나 ‘유사 이래 가장 강고한 권력에 도전하는 일’은 참으로 힘겨워서 이것이 음모이며 공작이네, 이제 와서 말하는 저의가 의심스럽네, MeToo의 본질이 훼손되네 하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오고 여기저기 MeToo 감별사들이 나타난다. 그들의 역습이 부질없기 바란다.

내 주제에 이 운동의 비관을 말하자니 오만하고, 낙관을 말하자니 염치없다. 당장 지지하며 오래 지속되길 바랄 뿐이다. 내년에 딸아이가 배정받게 될 중학교의 졸업생이 교사로부터 성폭력 피해가 있었다 폭로했다. 피해자의 용기에 감사한다. 그 학교 재학생과 졸업생이 이리저리 뛰며 사건을 알리며 교육청과 학교를 압박하고 있다. 이것을 조개 줍는다 하려면 민주주의와 시민사회를 먼저 부정해야 할 것이다. 모든 MeToo는 가장 오래되어 공고한 권력에 도전하는 중이다.

해일이 오고 가도 사람들은 바닷가에 나가 조개를 줍는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조개를 줍는다. 해일을 막을 방파제도 조개를 주워 먹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이 쌓는다. 뒷짐 지고 저만치 물러 앉아 해일이 온다, 남 얘기 하듯 하는 사람들이 돌 하나라도 들어 쌓는 꼴을 이제껏 본 적이 없다.

소간볶음, 채소, 바지락 된장국, 흑미밥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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