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곱게 늙고 싶어요, 떡국
    [밥하는 노동의 기록] 어떤 기억들
        2018년 01월 15일 01:08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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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 여기 웬일이야?”

    “단팥빵 하나 먹고 싶어서 왔지.”

    10년 전쯤 여차저차 들린 신라호텔의 빵집에서 두 할머니가 반갑게 인사하는 것을 보았다. 두 분 다 옷도 얼굴도 고왔다. 서른 한 살이었던 나는 그제야 곱게 늙고 싶다는 열망의 구체를 눈앞에서 보았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곱게 늙고 싶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작은 마당, 처마를 길고 날아갈 듯 뺀 집에 살고 싶었다. 내가 아이를 낳고 그 아이들이 자라 또 아이를 낳아 그 어린 것들이 잔돌이 깔린 마당을 뛰어오며 나를 부를 때 윤기 나는 마루를 잰 걸음으로 가로질러 맞으러 가고 싶었다.

    여름이라면 어린 것들에게는 무슨무슨 에이드를, 그들을 데리고 온 부모에게는 보리수단을, 겨울이라면 핫초코와 저민 생강을 띄운 차를 내주고 싶었다. 그 때는 팔각반에 주전부리를 맵시 있게 담아 곁들여주고 끼니 때가 되면 찬이 많지 않더라도 시절에 맞는 음식을 소반에 차려 앞에 하나씩 대접하고 싶었다. 쓰레기를 버리러 나가는 길에 지나가는 동네아이를 만나면 불러 세워 호두를 곶감에 꼭꼭 말아 편편히 썬 것을 얇은 종이에 싸서 들려 보내리라, 가끔 지나다니는 개를 위해 남은 밥에 물 만 그릇이라도 하나 문 밖에 내놓으리라 다짐했다.

    이런 것들이 참으로 힘든 일이라는 것을 좀 더 나이 먹고서 알았다. 어머니는 항상 ‘인생 뭐 있니. 먹고 싶은 것 먹고 읽고 싶은 책 읽으면 되지’라 하셨지만, 어머니는 모르셨다. 밥과 책 사이는 멀고도 멀었다.

    단팥빵 하나가 먹고 싶어 신라호텔에 온 그 할머니들은 벼락같이 뛴 대출이자에 돈까스가 먹고 싶다는 자식에게 이천칠백원짜리 그것을 못 사준 적이 있을까, 언젠가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다음날 오후에 사직서는 잊어주세요 달려갈까 한 적이 있을까, 무항생제 달걀과 그냥 달걀 사이의 천이백원에 고민하다 그냥 달걀을 사 들고 온 적이 있을까, 사진이 많아 비싼 책을 장바구니에 담아놓고 오매 가매 들여다 보다 다섯 달 뒤에 삭제해 본 적이 있을까, 오밤중에 일어나 앉아 이제까지의 내 선택을 자책하다가 옆에 누워 자는 아이들의 잔잔한 들숨 날숨 소리에 너희가 이미 여기에 있으니 후회도 온당치 않다는 죄스러움으로 느닷없이 울어 본 적이 있을까, 그 날 나는 이런 것들이 궁금했다. 그런 일들을 겪지 않아야 그들처럼 고운 할머니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오랫동안 곱게, 늙다는 두 단어를 잘게 쪼개어 생각했다. 그러다 퍼뜩 곱게 늙고 싶다고 처음 생각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아들이 없어 딸집에 사는 것이 평생의 수치였던 외할머니는 나와 남동생을 대놓고 차별하는 것에서 생의 의미를 찾는 분이었다. 가진 것이 많지 않았던 할머니가 행할 수 있는 차별은 기실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나 대한제국 말기에 안동에서 태어나 두 번의 전쟁과 한 번의 피난생활, 그악스러운 시집살이를 겪고 사업에 크게 실패한 남편을 대신해 앉아 밥 먹을 시간도 돈도 없이 억척스레 살면서도 딸을 원하는 대학에 보낸 것을 자랑으로 삼는 어른의 행실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소소하며 집요해서 차별의 직접피해자인 내가 보기에도 안쓰러웠다.

    딸과 사위의 눈치를 보며 이렇게까지 해서 할머니가 얻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궁금했으나 어린 머리로는 그 심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다만 나는 할머니가 되면 저러지 말아야겠다는 다짐만 둘 뿐이었고 일단 돈이 많고 고생스럽지만 않으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때로부터 시간이 많이 흘렀다. 나는 지금에 와서는 곱게 늙는다는 것이 단팥빵 하나라도 신라호텔에서만 사먹는 것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이 한참 힘들 때는 이러다 늙어 폐지를 주워 목숨을 이어나가는 것이 아닐까 싶은 살림을 꾸렸던 자의 궁색한 자기위안임을 안다. 그러나 늙는 데 아주 쓸모없지는 않을 듯싶다. 약한 자에게 휘두르는 폭력의 달콤함은 단팥빵에 비할 바 아님을 알며 나이 먹는다면, 내가 늙었을 때 에이드와 보리수단을 내주진 못하더라도 황백을 갈라 부친 지단을 단정하게 올린 떡국 한 그릇을 함께 먹을 젊은 사람들이 혹여 곁에 있다면, 그리고 마주 앉은 그들이 나를 곱게 늙었다 여겨준다면 그것을 나이 먹은 보람으로 삼겠다.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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