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호박은 죄가 없지
[밥하는 노동의 기록] 애호박찜
    2017년 12월 11일 10: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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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 아닌 애호박 대란에 며칠 전까지 좋아하던 배우를 지웠다. 그가 배우로 쓰는 이름이 유아인인 탓에 소셜 미디어는 ‘유아’인이라며 그를 비웃는 글들로 넘쳐났다. 아이 둘을 키우는 엄마이기에 나는 ‘유아 같은’, ‘어린애 같은’이라는 말이 매양 불편했다.

보통 걸음마를 시작으로 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의 나이의 인간을 유아라고 부른다. 이 시기에 인간은 세상을 배우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낸다. 그 과정에서 떼를 쓰고 시끄럽게 굴고 실수를 연발하며 자기를 다듬어간다. 그것이 유아기다. 신체가 성숙한 인간이 보기엔 거슬리고 귀찮겠지만 우리 모두 그런 과정을 거쳐 어른이라 불리는 것이다.

물론 다 큰 사람들에겐 불편하기 짝이 없다. 그저 장을 보러 왔는데 옆에서 울며 소리 지르고 때로는 바닥에 누워 뒹굴고 가끔은 구토까지 한다면 거슬리지 않을 수 없다. 조용히 차 한 잔 마시러 왔는데 뒷자리에 앉은 어린 사람이 컵을 깨고 과자를 부셔 바닥에 쏟아내고 똥까지 싼다면 비위가 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그들을 욕받이로 쓸 권리는 누구에게도 없다. 당신들이 생각하는 유아는 눈을 깜빡이다 웃거나 오렌지를 먹고 얼굴을 찌푸리는 정도의 반응을 보이거나 엉뚱한 말로 웃음을 주는 존재라서 울고 토하고 똥싸고 열나고 칭얼대는 유아는 다 맘충 탓인가 본데 그렇지 않다. 유아는 원래 그럴 수밖에 없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인 존재를 자기가 누군가를 욕하고 싶을 때 가져다 쓰면 안 된다. 유아인의 혐오를 ‘유아’인이라며 비웃는 사람들 또한 다른 혐오를 생산하고 있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자신보다 약한 존재를 찾아내고 그 존재를 비아냥의 도구로 쓴다. 유구한 시간 동안 개와 여성이 그 도구로 존재했고 별별 비인간과 소수자들이 점차 추가되었다. 마음에 안 들면 개새끼라고 하면 그만이고 무슨 무슨 년이라고 하면 끝이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들었을 때 ‘미쳤네’ 혹은 ‘저능아냐?’하면 다들 알아듣는다. 나도 그런 말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내뱉고 찰떡같이 알아들으며 살아왔다. 편했다. 그래서 치졸했다.

우리 딸이 제일 싫어하는 말은 ‘초딩 같다’는 말이다. ‘이런 초딩도 있고 저런 초딩도 있는 거지 자기 맘에 안 든다고 왜 가만히 있는 초등학생을 갖다 붙이냐고.’ 그래서 나도 반성한다. ‘미친’ 혹은 ‘개 같은’이라는 말을 내뱉기보다 자신이 왜 화가 나는지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욕도 못하냐, 볼 멘 소리를 앞세우기 전에 내 화를 표현하기 위해 가져다 쓰는 말들에 상처받을 존재를 먼저 생각한다. 좀 더 불편하게 살아야겠다. 살다 보면 이것이 더 편한 방법이 될 것이다.

유아인이 말하기를 집안 어른들은 자신의 바로 손위 누나를 남동생을 가지라는 의미로 ‘방울’이라는 이름을 주었다 했다. 그는 이를 일컬어 ‘예쁘고도 슬픈 이름’이라고 했는데, 그 방울의 의미가 불알임을 아는 그가 그 이름을 예쁘다 하는 이유를 보아 그의 생각이 어떠한지 미루어 짐작하겠다. 어떤 이들은 단어 그 너머의 의미를 부러 지우거나 앞세워 이미 존재하는 이에게 모욕을 준다. 요새 내게는 애호박이 그렇다. 그래서 애호박찜, 오이, 육개장과 현미밥.

필자소개
독자. 밥하면서 십대 아이 둘을 키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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