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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독광부 50년사 - 검정밥' 연재를 39회로 마친다. 연재를 허락해주신 이정의 선생과 파독광부 50년(2013년이 50년이었다.) 연재를 기획하고 소개해주신 최정규 선생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린다. <편집...
코리나는 대학교를 졸업하고 부목사 자리가 날 때까지 2-3년 기다려야 했기 때문에 그 동안 우리 시(市)에 있는 직업양성 및 사회문화협회의 공보담당자로서 삼년을 채우기로 했다. 우리 집에서 찻길로 약 20분 떨어진 ...
* 파독광부 50년사는 2013년에 마감되었어야 했지만 해를 넘기고 말았다. 앞으로 2회 더 게재하여 파동광부 50년사 이정의 선생의 '검정밥'을 마무리할 예정이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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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에는 일면에 크게 1994년 중국인의 평균 월수입이 1227원(환화 약 12만 5천원)에 달하고 월 생활비는 1020원으로 평균 월 200원을 저축할 수 있다고 자랑스럽게 발표했다.
북경의 노장격인 대학교수...
고향생각과 향수에서 해방된 나는 이제 세상을 둘러볼 수 있었다. 지금까지는 시간만 있으면 고향으로 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그 시간과 경비로 세계 각국을 보고 싶었다. 그래서 아내와 의논해서 격년마다 나 혼자 여행을 떠...
두어 달 후에 독일 친구에게서 또 연락이 왔다.
한국의 LG회사와 제휴가 되었기 때문에, 이번에는 자기가 직접 한국으로 갈 예정이니 나더러 좀 수행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나는 방학이라 또 쾌히 응낙하고 그와 함...
하루는 뮌헨에 사는 베를린 공대 동기생인 독일 친구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는 박사학위를 획득한 후 광산에서 일을 시작했는데 일이 마음에 들지 않다하고 자립해서 돌을 부수는 파쇄기를 생산 판매하다가 독일 통일 후에 사...
통일은 세계에서 몇째 간다는 부자국가인 독일에게도 재정적인 어려움을 초래했다. 국가재정은 물론 일반국민에게도 예전 동독지방 부흥을 위한 공동분담금이 지어지고, 국가의 재정적 원조를 받으면서 경영하던 기업체에게는 어려...
하루는 내가 조금 일찍 퇴근해서 집에 오니 아내가 오늘 저녁에 장모님의 손님이 온다고 했다. 물론 장모님이 우리 집으로 이사 오시고 난 후에 교회에서 사귄 친구들이 자주 장모님께 놀러 왔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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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9년 11월 9일 초저녁. 한 사오십명 되는 독일인들과 함께 나는 우리 동네에 있는 조그만 비석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있었다. 이 비석이 서 있는 자리에 1938년 11월 9일까지 유대인들의 예배당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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