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타향살이 40년
    [파독광부 50년사] 검정밥 연재를 마치며
        2014년 02월 25일 02:2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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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파독광부 50년사 – 검정밥’ 연재를 39회로 마친다. 연재를 허락해주신 이정의 선생과 파독광부 50년(2013년이 50년이었다.) 연재를 기획하고 소개해주신 최정규 선생에게도 감사 인사를 드린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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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홍석 군이 지중해에 있는 스페인의 마요르카섬에 큰 저택을 지어 그곳으로 이사 간 후에는 나는 매년 한더위가 지나고 좀 서늘한 초가을에 그의 집에 가서 보름 정도 휴가를 지내고 온다. 비록 초가을이라 하지만 그 섬에는 25도를 넘는 여름이었고 낮에는 생각날 때마다 정원에 있는 수영장에 뛰어들어 몸을 식혔다.

    2003년 9월에 그를 방문했을 때 하루는 헤엄을 하는 중에 갑자기 가슴과 팔꿈치가 찌르는 듯 아팠다. 그 후로는 약 50미터 이상 헤엄을 칠 때마다 가슴과 팔꿈치가 아프기 시작했다.

    독일로 돌아온 후 곧 심장전문의를 찾아갔다. 150와트까지 하중을 올렸으나 전자심장기록기(EKG)에는 아무런 이상이 없었다. 다시 초음파 진단을 했으나 거기에도 심장에 비정상적인 것을 발견할 수 없었다.

    의사는 계속 운동을 하는 사람에게는 모세혈관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져 막힌 혈관을 대신하기 때문에 심장기록기에 나타나지 않는 예가 가끔 있다고 하며 그러나 모든 증세가 틀림없이 심장에서 오는 것이 분명하니 아무래도 엔지오그래피(angiographie) 진단을 해야 될 것 같다며 열흘 후에 우리 도시의 종합병원 심장과에서 진단하기로 날짜를 결정했다.

    사타구니에서 심장까지 동맥혈관에 가늘고 긴 호스를 넣고 콘트라스트 가스를 뿜어서 관상동맥을 진단한다는 병원에서 보낸 책자를 읽으니 은근히 두려웠다.

    그래서 드레스덴(Dresden) 대학병원 심장과 원장으로 근무하는 박재운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독일에서 앤지오그래피 진단에 관하여 일가를 이루는 명의다.

    박 교수는 진단결과 혈관이 좁아졌을 경우 금속관(Stent)으로 그 자리를 넓히는데 그곳에 함께 약을 넣어야 금속관이 설치된 자리가 다시 막히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약이 비싸기 때문에 일반환자에게 넣지 않을 것이다 하며 자기가 약을 준비하고 있을 테니 그곳으로 와서 진찰을 받으라고 했다.

    그래서 나는 아내와 함께 박 교수가 있는 병원으로 갔다. 드레스덴 근방은 작센의 스위스라고 불리는 경치가 아름답기로 유명한 곳이다. 사흘간 병원에 입원해서 진단을 받고 난 후에는 약 일주 동안 경치 좋은 곳에서 아내와 함께 휴가를 보내기로 계획했다.

    진찰실에 실려 가니 박 교수가 직접 앤지오그래피 진찰을 했다. 약 반 시간 후에 진찰을 마쳤다. 다 했느냐고 물었더니 박 교수는 심장마비에 걸리지 않으려면 심장수술을 해야 된다고 대답했다.

    그 순간 나는 눈앞이 아찔해짐을 느꼈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리고 그렇게 위험한 경지냐고 물었다. 박 교수는 관상동맥의 두 줄기가 거의 완전히 막혀서 스텐트 금속관을 넣을 수 없다고 했다.

    어리둥절 그를 쳐다보고만 있는 나에게 박 교수는 심장마비에 걸리기 전에 수술을 하면 안심하고 살 수 있으니까 드레스덴 대학병원 심장센터에서 수술하면 자기가 주선하겠다고 했다.

    그는 또한 심장수술은 누가 수술하는가가 중요하다고 했다. 심장센터 원장은 수천 번 심장수술을 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에게 맡기는 것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그가 하자는 대로 드레스덴에서 수술하기로 했다. 박 교수의 주선으로 원장이 직접 수술을 했다.

    심장 관상동맥의 막힌 자리의 양쪽에 또 하나의 핏줄을 나란히 붙여서 다리(By Pass)를 만들었다. 그리하여 피가 새로 생긴 혈관을 통해서 흐르게 했다. 핏줄 두 개를 붙였는데 하나는 심장대동맥에 붙어 있는 동맥을 썼고 다른 것은 오른 다리 종아리에서 정맥혈관을 뽑아서 달았다.

    원장은 수술이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었다고 하면서 수술시에 심장을 정지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심장 호흡기에 연결되어 심장이 정지된 상태로 수술한 사람에 비해서 건강회복이 훨씬 빠를 것이라고 설명했다. 병원에서 일주일 동안 치료한 후 요양소에 가서 삼 주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처럼 나의 삶을 연장시켜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 이제는 아픈 곳 없이 매일 한 시간 정도 빠른 걸음으로 산책을 하고 기공과 태극권 운동도 매일 한 시간 반씩 게을리 하지 않고 지낸다.

    날씨가 좋으면 나는 손녀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우리 집 뒤에 있는 공원으로 놀러간다. 잔디밭에 피어 있는 작은 하얀 꽃을 꺾어 손가락 사이에 끼워 넣는 손녀를 보면서 나는 옛날 딸을 태운 유아차를 밀며 보리밭 사이를 걸을 때와 마찬가지로 생각에 잠긴다.

    그러나 오늘의 내 생각에는 그때처럼 가슴을 찌르던 고향생각과 그 향수에 견디지 못하여 몸부림치던 눈물의 자리가 없다. 이제는 눈물과 아픔이 없이 감사와 즐거움으로 흘러간 내 삶을 돌이켜 본다.

    나는 내가 감당하기 어려웠던 시련을 받았다고 여긴다. 오매불망 그리던 내 고향에서 어머님을 모시지 못하고, 친구들과 함께 아기자기한 이야기로 밤을 새우지 못하고, 정다운 얼굴과 땅을 떠나서 이국 타향에서 평생을 살면서 그리움에 몸부림치며 수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던 것이 나에겐 큰 시련이었고, 맑은 하늘 아래에서 시원한 공기를 마시지 못하고 땅속 천길 아래에서 더위와 먼지 속에서 시달리는 직장을 가져야 했던 것이 또한 큰 시련이었다.

    그러나 나는 그러한 시련 속에서도 지나온 발자국마다 하느님의 사랑과 은혜가 소복하게 담겨있는 것을 본다. 그렇게도 길고 어렵고 외로움과 고난의 길처럼 여겼던 육십여 평생이 눈 깜짝할 순간밖에 되지 않는다.

    타향살이

    그러한 순간 순간을 돌이켜 보며 나는 이 세상에 아무 것도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난 것뿐만 아니라 앞으로 오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이 없어졌다. 지나온 모든 것이 내 나름대로 어떠한 것이라고 생각되더라도, 그것은 어릴 때 뛰며 놀던 논가의 조그만 웅덩이밖에 지나지 않는다.

    다만 그 속에 중요하다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그때 그 웅덩이 속에서 놀 때 가졌던 즐거움이다. 이 즐거움 속의 웅덩이는 대양(大洋)처럼 넓은 것이었다. 그래서 가진 것과 이룬 것의 크고 작음과 많고 적음이 문제되는 것이 아니고, 그 삶 속에 들어 있는 나의 삶이 얼마나 나의 것이냐가 문제다.

    논가에 고인 작은 웅덩이 속이라도 그 속에서 뛰며 즐길 수 있는 어린 마음을 내가 가질 때 거기에 즐거움과 행복이 있으며, 내가 내 삶 속에서 즐거워하는 눈과 마음을 가지고 내가 들어 있는 그 삶을 즐거움의 마당으로 만들 때에 비록 그 삶이 자그마한 웅덩이라도 나에게는 큰 호수요 바다가 된다.

    순간 순간 이어지는 내 삶의 그 토막토막마다 내가 그 속에서 있다는 인식과 그 순간이 내가 살고 있는 내 것이라고 느낄 때, 나는 그 삶 속에 있고 그 삶은 나와 함께 있는 것이 된다. 나는 그 삶을 살아가는 것이 되고 그 삶은 나의 삶이 된다.

    나는 하루에도 몇 번이나 하느님 앞에 꿇어 엎드린다. 늙어 갈수록 내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는 눈을 뜨게 하시는 하느님께 감사한다. 나는 다만 이 감사하는 눈으로 매일 다시 시작되는 이 새로운 출발점에 서서 앞을 내다보고 있다. 그 앞이 얼마나 먼 지 알 수 없지만, 지나온 것을 돌이켜 보면서 감사와 만족으로 앞을 내다볼 수 있다는 자체가 한 생(生)을 지나고 어느 나이에 이른 어른이 된 것 같다.

    오늘이 있도록 묵묵히 나와 함께 궂은 날, 맑은 날, 한결같이 사랑과 인내로 걸어온 아내도 이제는 여기저기에 주름살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큰 다툼 없이 살아왔다. 우리라고 다른 사람과 다를 리가 없다. 성격이 완전히 반대 방향인 우리가 오늘까지 함께 행복하게 살아왔다는 사실은 기적과 같다. 반극(反極)은 서로 당긴다는 원칙에 의한 것일까?

    아내는 나에게서 가정과 직장과 아이에게 시달리는 자기가 의지하고 쉴 수 있는 기둥과 방향을 제시하는 삶의 나침판을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아내에게 이러한 역할이 되어주기에 앞서 향수에 시달리면서 내 자신이 오히려 아내로부터 더 위로 받기를 원했다. 나는 실제로 나만 생각하는 어린아이와 같았다. 지난 근 40년 동안 어린아이와 같았던 나를 어른이 되어 이끌어 오면서 살림을 맡았던 아내가 나에게는 성인처럼 보인다.

    그러한 아내를 보면서, 이제는 저도 어른이 되어 새끼를 가진 딸을 보면서, 귀엽게 커 가는 손녀를 보면서 지난날을 정리해보았다.

    내 인생은 다른 사람보다 두드러지게 표가 나는 삶이 아니다. 죽음의 고비를 무릅쓰고 사선을 넘은 것도 아니고, 악인의 손아귀에 잡혔다가 극적인 탈출을 한 것도 아니고, 어떤 뚜렷한 업적을 남기지도 못했다.

    모든 인간과 마찬가지로 조그마한 언덕과 얕은 강과 좁은 계곡을 지나면서 살아온, 보잘것없는 내 삶이 무엇이 잘났다고 한 권의 책이 될 수 있으랴만, 지나온 길이 넓었든 좁았든, 그 길은 다만 내가 걸어 온 길이요, 나 혼자만이 알고 나 혼자만이 이야기할 수 있는 길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넋두리 겸 지나온 길을 더듬어 보았다.

    나와 함께 계신 하느님께 내가 이러한 삶을 영위할 수 있었다는 은혜에 감사드리며 하느님과 함께 맞을 수 있는 앞날을 기쁨으로 기대하고 있다. 그 날들이 얼마나 길 것인지에 대한 생각 없이 …

    나는 또 이 순간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의 고백을 내 것으로 만든다.

    “내 삶이 더 이상 행복하고 지혜롭고 좋을 수 있었다고 상상할 수 없다.” [-끝-]

    필자소개
    파독광부 50년사 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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