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조 농성장 점거 단식하는 '회장님'
        2007년 09월 19일 04:2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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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기 회사 직원 128명을 고소해 경찰수사를 받게 만든 ‘회장님’이 이번에는 노동조합의 농성장을 점거해 단식농성을 벌이는 해괴한 일이 벌어졌다.

    18일 오전 9시 부산 기장군 S&T대우(구 대우정밀) 본사 앞에는 430여명의 조합원들이 금속노조 중앙교섭 참가 약속 이행을 촉구하며 행진을 하고 있었다. 이 때 조합원들 앞에 나타난 S&T 그룹 최평규 회장은 행진을 가로막았다.

       
     ▲ 18일 오전 10시 최평규 회장이 행진하는 조합원들을 가로막고 있는 모습.
     

    그는 노조의 이동스피커에 앉아 "직장폐쇄 기간에 들어와서 집회하는 건 불법"이라며 "내놓을 것 다 내놓았으니 결정하라"고 말했다.

    금속노조 S&T대우지회(지회장 문철상)는 불상사가 생기는 것을 막기 위해 조합원들과 함께 농성장인 식당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는 조합원들을 따라 식당으로 들어왔다. 사장과 상무 등 회사 관리자들이 따라오자 그는 "다들 들어가라"며 혼자 농성장에 앉았다.

    그는 지회 간부들의 잠자리인 스티로폼 위에 앉아 있었다. 지회 간부들은 ‘회장님’을 쫓아낼 수 없어 할 수 없이 조합원들을 모두 식당 밖으로 나가게 했다. 최평규 회장과 문철상 지회장만 농성장에 남았고, 자연스레 대화를 하게 됐다.

    문철상 지회장은 중앙교섭 참가 약속을 이행하라고 요구했으나 최 회장은 이를 거부했다. 최 회장은 파업을 풀고 교섭을 하자고 주장했고, 지회는 파업 중이라도 교섭을 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결국 대화는 아무 성과없이 끝났다.

    식당 4곳 쇠사슬로 봉쇄하다

    문철상 지회장은 식당을 나와 30여명의 쟁의대책위원들과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바로 그 때 최 회장은 관리자들에게 지시를 내려 식당 출입문 4곳을 쇠사슬로 봉쇄하도록 했다. 관리자들은 유리문 손잡이 4곳을 쇠사슬로 묶어 자물쇠로 잠궜다.

    노무팀에서는 곧바로 회사 간부들에게 ‘회장님이 단식농성에 돌입하셨다’는 내용의 문자메세지를 날렸고 팀장들을 중심으로 식당 주변으로 모여들었다. 그는 식당 안에서 혼자 앉았다 누웠다를 반복했다.

    밤 10시 경 노조 간부들은 이 상태로 그냥 둘 수 없다고 판단해 쇠사슬을 끊고 문철상 지회장을 식당 안으로 들여보냈다. 두 번째 대화가 시작됐지만 최 회장은 중앙교섭 참가 약속을 지키라는 요구를 또 다시 거절했다.

    다시 문철상 지회장은 농성장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이번에는 회사 관리자들이 끊을 수 없는 거대한 쇠사슬로 최평규 회장을 다시 ‘감금’했다. 노조 간부들은 그래도 계속 대화를 해보자고 판단하고 쇠사슬을 풀고 문철상 지회장을 식당 안으로 보냈다. 그러나 세 번째 대화도 아무 소용이 없었고 지회장은 다시 밖으로 나왔다. 새벽 3시 경이었다.

    회장님한테 농성장 빼앗기다

       
      ▲ S&T그룹 최평규 회장이 18일 오후 S&T대우(구 대우정밀) 조합원들이 농성을 벌이고 있는 식당에 들어와 노조 간부들의 만류를 뿌리치고 농성을 하고 있다.(사진=금속노조)
     

    그동안 지회는 직장폐쇄로 인해 회사가 식사 제공을 중단하자 쌀과 부식 등을 준비해 스스로 식사를 해결해왔다. 그러나 최 회장의 점거로 식당을 빼앗겨 농성을 계속 해나갈 수 없게 됐다.

    ‘회장님’한테 농성장이자 잠자리이고, 조합원들 집결장소이자 식사장소인 식당을 빼앗긴 노동자들은 황당했다. 19일 지회는 출근한 조합원들과 전날의 상황을 공유하고 다시 퇴근시켰다.

    회사는 곧바로 언론에 ‘S&T 최평규 회장 ‘노사갈등 해결’ 농성’이라는 보도자료를 뿌렸고, 경제신문들을 비롯해 언론들이 앞다퉈 이를 기사화했다.

    S&T대우지회 김동복 조사통계부장은 "조합원들이, 자기 재산 지키려고 단식 농성하는 사람 첨 본다느니, 명분도 없는 단식을 하고 있느니 하며 황당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최 회장은 조합원 앞에서 "불법이야 나가"라며 막말과 욕설도 가리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그는 "지난 7월 20일 집회 때도 회장이 나와 몸으로 조합원들을 가로막았는데 불상사가 생기지 않도록 조합원들이 최 회장을 피해 집회에 참가했었다"며 "조합원들이 최 회장에게 막말을 할까봐 지회 간부들이 걱정을 할 정도"라고 말했다.

    부산 시민사회단체 "최회장은 약속 이행하라"

    금속노조 대우정밀지회는 중앙교섭 참가약속 이행과 임금인상, 현안문제 해결을 촉구하며 지난 8월 30일부터 파업을 벌이고 있다. 회사는 9월 3일 전면적인 직장폐쇄를 단행했고, 128명의 조합원과 지부 간부 등 160명을 고소해 전원에게 출두요구서가 발부되기도 했다.

    한편, 가톨릭노동상담소 등 37개 부산지역 시민사회단체는 19일 오전 S&T대우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S&T대우는 노조와의 약속을 이행하고, 노조 탄압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이들은 "단체협약에 보장된 조합원 총회 시간을 이용한 집회에 대해 이러한 탄압을 저지르는 것은 ‘합법적인 행동에 대한 불법적인 탄압’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며 "S&T대우는 즉각 노동조합과 약속한 중앙교섭과 지부집단교섭에 성실히 나서라"고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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