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남자 정치인의 엘리트주의
    [시선] 검사 출신 두 정치인은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2021년 09월 09일 10: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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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대선 국면’이다. 많은 이의 관심은 내년에 있을 대통령 선거로 향하고 있다. 미래를 향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현재를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그래서 나는 먼저 지난 4년 반을 생각했다. 지난 4년 반을 서술하는 것은 힘든 일이고, 이 글의 주제도 아니다. 간략하게 정리하자.

    지난 4년 반을 어떻게 묘사할 수 있을까. 기이하게도 자꾸 미국 영화 제목이 떠올랐다. <Dark Knight Rises> 말이다. 지난 4년 반은 내게는 이렇게 요약된다. 아파트값 상승하다(rise). 카카오 일어서다(rise). 대통령 잠수하다. 코로나 확산하다. 이재용 가석방되고 민주노총 위원장 구속되다.

    정권을 교체해야 한다는 생각도 높아지고 있다(rise). 물론, 정권의 교체는 현실적으로 민정당을 계승한 정당이 집권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것을 막아야 한다는 생각도 널리 퍼져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이 있다. 사람들이 잘 지적하지 않거나 인지하고 있지 못하고 있는데, 문재인은 노무현에 이어 두 번째 ‘법조인’ 출신의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다음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커 보이는 세 사람도 법조인 출신 정치인들이다. 검사를 ‘사칭’했었다는 변호사 출신의 행정가/정치인 이재명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이야기할 것이고, 오늘은 검사 출신 정치인 두 사람에 관한 얘기를 할 것이다.

    검사 출신 대통령은 어떨까. 사실 한국 역사를 조금이라도 아는 이라면 먼저 두려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공안검사’들은 참으로 두려운 이들이었다. 그런데, 나는 조금은 다른 관점에서 접근하고자 한다. ‘엘리트주의’ 말이다.

    윤석열을 나는 이미 비판한 바 있다. (관련 칼럼 링크) 그래서 그에 관해 길게 얘기하지 않으려 하는데, 이것만은 얘기하고 싶다. 그는 어제(2021. 9. 8) ‘고발 사주’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열었는데, 거기서 이런 발언을 했다고 한다.

    “번번이 이런 식의 공작과 선동으로 선거를 치르려고 해서 되겠나 하는 한심스러운 생각이 든다. 정치공작을 하려면 잘 준비해서 제대로 좀 하라” (관련 기사 링크)

    이 문제를 처음으로 공론화했던 것은 뉴스버스인데, 언론이 제기한 문제를 그는 공작과 선동이라고 주장했다. 물론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게 주장하려면 근거를 대야 하지 않을까? 근거를 대는 대신에 그는 이런 식으로 말했다.

    그는 “문제를 제기하려면 국민들이 다 아는 메이저 언론을 통해서, 국민들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사람을 통해서 제기했으면 좋겠다”며 “자신이 있으면 뉴스버스 같은 데 줘서 달라붙을 게 아니라 독자가 많은 언론에서 시작하는 게 맞지 않나.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언론에 던져놓지 말고 자신 있으면 KBS 같은 데서 시작하든지”라고 했다. (레디앙 기사 링크)

    그는 “메이저 언론”과 “국민들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사람”을 이어서 말했는데, “국민들 누가 봐도 믿을 수 있는 신뢰성 있는 사람”은 세상에 존재하지 않으며, ‘메이저 언론’은 사실 신뢰와는 더욱 거리가 멀다. 그가 생각하는 메이저 언론이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그가 KBS를 언급한 것으로 미루어보아 아마도 공중파 방송사는 포함될 것이고, 발행 부수나 인터넷판 조회수 등을 고려하면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이 포함될 것이다. 그런데 공중파 방송사와 위의 신문사들은 많은 이들에게 ‘신뢰’를 주지 못하고 있다. 참 재미있는 주장을 하는 사람이다.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언론에 던져놓지 말고 자신 있으면 KBS 같은 데서 시작하든지”라는 말은 참으로 충격적이다. 먼저, 그는 전혀 입증하지 않으면서 뉴스버스의 기사가 음모, 공작, 선동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음모나 공작이나 선동하면 떠오르는 대표적 매체는 오히려 ‘메이저 언론’ 아닐까? 우리는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정권을 거치면서 주류 언론들이 했던 많은 그런 사례들을 알고 있다. 소규모의 인터넷 기반 언론들이 그러했던 사례들은 알려진 사례가 거의 없다.

    그러므로 그의 주장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음모나 공작이라면, 그것도 그가 의심하는 현 정부/ 더불어민주당의 음모나 공작이라면, 공중파 3사나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혹은 JTBC나 한겨레 등에게 접근하지 않았을까? “국민들이 잘 알지 못하는” 언론에 던져놓았을까?

    그는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강하게’ 나간 것으로 보이는데, 그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소규모의 인터넷 기반의 언론을 폄훼하는 발언을 했다. 무언가를 보도하는 데 있어 독자 수가 무엇이 중요한가? 인지도가 무엇이 중요한가? 진실인지 아닌지가 중요한 것이고, 그 외의 것은 본질적이지 않다. 서울법대를 졸업하고 사시에 합격했으며 검사가 되었고 검찰총장까지 되었고 대통령을 꿈꾸는 이는 작은 언론사를 ‘개무시’하고 있다.

    그는 아마도 “잘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 소위 서민들도 그렇게 여기지 않을까? 그는 ‘잘 알려진’ 사람들만을 위한 국정 운영을 하지 않을까? 그는 엘리트주의자로 의심되는데, 다음을 더하면 아주 끔찍한 그림이 그려진다. 그는 노동자들은 주에 120시간을 일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기후 위기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다. 노동자가 주 120시간을 일하고 탄소가 세상의 중심이 된다면, 그것은 사람들과 세상 모두의 죽음을 의미하지 않겠는가.

    다행인지 아닌지 그의 지지율은 떨어지고 있다. 그 이면에는 또 하나의 검사 출신 정치인 홍준표의 부상도 존재한다. 오늘은 ‘rise’가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홍준표가 상승한다.

    그는 며칠 전에 이런 주장을 펼쳤다.

    “국회를 양원제로 하고 상원 50명, 하원 150명, 비례대표는 폐지하겠다.” (관련 기사 링크)

    왜 300이 아니라 200일까? 먼저, 그는 국회의원은 밥값도 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그들에게 세비를 지급하는 것은 국가의 돈을 낭비하는 것이라는 널리 퍼진 생각에 교묘하게 올라타고 있다. 자신도 그 국회의원에 포함되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는 ‘정치 감각’이 있으며, 이런 주장이 어떤 이에게는 먹힐 수 있음을 아는 것이다.

    두 번째로, 200이라는 숫자는 오랜 기간 사법고시 합격자의 수였다. 합격자 수가 300으로, 500으로, 마침내는 천 명까지 늘게 되었을 때, 상당수의 200명 시대의 법조인들은 매우 개탄했었다고 한다. 200은 그에게 의미 있는 숫자일 수 있다. 200명의 엘리트의 시대 말이다.

    하지만 그의 주장은 참으로 시대에 뒤처진 것이고, ‘선진국’과는 거리가 먼 것이다. 한국 사회의 보수적 ‘엘리트’들 중 다수는 참으로 시야가 좁다. 시야가 좁은 이들에게 선진국은 미국 하나밖에 없다. 미국은 상하원제를 도입하고 있으며, 국민 1,000명 당 국회의원 수가 OECD 국가 중 가장 낮다.

    국가 의원 수 의회 형태 선거제도 국민 10만명 당 의원수
    아이슬란드 63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18.58
    룩셈부르크 60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9.74
    에스토니아 101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7.62
    슬로베니아 130 양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6.25
    아일랜드 218 양원제 *단기이양식 비례제 4.46
    핀란드 200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3.62
    스웨덴 349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3.48
    노르웨이 169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3.14
    덴마크 179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3.1
    스위스 246 양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2.86
    그리스 300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2.86
    슬로바키아 150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2.75
    오스트리아 244 양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2.72
    체코 281 양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2.63
    뉴질랜드 120 단원제 혼합형 2.51
    포르투갈 230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2.25
    영국 1449 양원제 지역구 2.15
    헝가리 199 단원제 혼합형 2.05
    벨기에 210 양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1.82
    이탈리아 945 양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1.56
    폴란드 560 양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1.48
    프랑스 925 양원제 지역구 1.42
    이스라엘 120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1.41
    네덜란드 225 양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1.32
    스페인 616 양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1.32
    캐나다 443 양원제 지역구 1.18
    칠레 205 양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1.08
    호주 227 양원제 지역구 0.9
    독일 667 양원제 혼합형 0.8
    터키 600 단원제 정당명부 비례제 0.72
    한국 300 단원제 혼합형 0.58
    일본 713 양원제 혼합형 0.56
    멕시코 628 양원제 혼합형(지역구+비례대표) 0.49
    미국 535 양원제 지역구 0.16

    표: OECD 국가 2019년 기준 국민 10만 명 당 국회의원 수 (출처 링크)

    한국은 아래서 네 번째인데, 그의 주장이 관철되면 꼴찌에서 2등이 될 것이다. 미국, 한국, 멕시코, 일본. 이 네 나라가 선진국을 대표하는가? 복지 국가인가? 표의 위쪽을 보라. 에스토니아와 슬로베니아를 제외하면, 국회의원 수가 많은 나라 10위권의 국가들은 모두 1인당 국민소득도 높고 복지 수준도 높은 국가들이다.

    예를 들면 1위인 아이슬란드의 2019년 일인당 국민소득은 72,659달러로 OECD 국가 중 2위이고, 2위 룩셈부르크는 73,849달러로 1위이다.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스위스 모두 의원 수 10위 안에 들었는데, 이 나라들은 널리 알려진 국가들이니 더 언급하지 않겠다.

    홍준표는 게다가 상하원제의 역사적 맥락을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다.

    “상원은 귀족원(House of Lords)으로 불린다. 의원들은 선거를 통해 선출되지 않으며, 세습 의원들과 국가에 대한 봉사를 인정받아 임명된 의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출처 링크)

    영국의 상원의원은 귀족원 의원이라 불리며, 선출되는 것이 아니다. 영국에서의 상하원의 형성은 귀족과 평민 간의 투쟁의 결과물이었을 뿐이다. 영국에서 생겨난 것인 상하원이 한국에 도입될 이유는 전혀 없다.

    미국식 상원은 조금 다르다. 미국의 상하원 제도는 미국이 합중국-정확히는 합주국-인 것에 그 기원이 있다. 상원은 주별로 두 명을 뽑고 하원은 인구 비례로 뽑는 것이다. 이는 건국 초기에 있었던, 인구가 적은 주들과 많은 주들 간의 다툼의 타협의 결과였다.

    미국의 국회의원 수가 다른 ‘선진국’에 비해 매우 적은 이유를 설명한다. 미국은 대개는 ‘국가’로 번역되고 미국과 관련해서는 ‘주’로 번역되는 state들의 연합 국가이다. the United States of America. 다시 말해 미국에는 연방 전체의 국방이나 외교 등을 다루는 연방정부가 있고, 주민들의 삶과 밀착된 일들을 다루는 주 정부가 있다. 주 정부의 권한과 책임이 매우 크기 때문에, 주 의원들이 한국의 국회의원들과 유사한 권한을 가지고 있다. 미국의 국회의원 수가 적은 것에는 이러한 배경이 있다.

    홍준표가 이런 사실들을 아는지 모르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그가 그렇지 않아도 OECD 평균보다 훨씬 적은 비율의 국회의원 수를 낮추자고 주장하고 있다는 점이다. 더 적은 수의 국회의원은 더 낮은 빈도의 의원과 서민들의 만남을 의미할 것이다. 더 낮은 빈도의 노동자들과의 접촉을 의미할 것이다.

    그의 주장의 위험성은 이 지점에서 폭발한다. “비례제도를 없앨 것이다.” 대단하다. 위의 표를 다시 보기 바란다. OECD 국가 34국 중 22개 국가가 정당명부비례제를 택하고 있다. 역시 비례대표를 뽑는 단기이양식 비례제(관련 글 링크)를 채택한 아일랜드를 포함하면 비례제만으로 의원을 선출하는 나라는 23개 국가이다. 23개 국가에 지역구 의원은 아예 없는 것이다. 오로지 지역구만이 있는 나라들은 영국, 캐나다, 호주, 미국, 프랑스이다. 영국과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국가 셋, 그리고 프랑스만 그러하다.

    흔히 ‘복지국가’로 이야기되는 나라들 대부분은 정당명부비례제를 채택하고 있거나 지역구-비례대표 혼합형이다. 그의 주장은 역사적으로 정치적으로 매우 ‘후진적’인 것이다.

    이번에는 더 중요한 것, 그의 본심을 추정해보자. 비례제를 없애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당장 지금 그런 조치가 시행되면, 아마도 국회의원 200명은 두 개 정당 197명에 소수 정당 3명 정도로 재편될 것이다. 그런데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은 2021년 기준으로 말하면 정치경제적으로 별 차별성이 없다. 둘 다 친 대기업 정당일 뿐이다. 노동자와 자영업자를 대변할 이는 세 명이고 대기업을 대변할 이는 197명인 세상. 이것이 홍준표의 본심 아닐까.

    변호사 출신 대통령은 “사람이 먼저다.”라고 말한 후 ‘잠수를’ 탔고, 그 ‘사람’이 이재용이나 김범수 등만을 지칭한다는 것은 명확해졌다. 다음 대통령은 입이 상당히 거친 변호사 출신이 될 수도 있고, 엘리트주의자로 의심되는 검사 출신이 될 수도 있다.

    제3의 길이 존재한다. 다음 대선에서는 분명히 법조인 출신이 또다시 대통령이 될 것으로 보이지만, 제3의 길을 걷고자 하는 이들이 늘어난다면, 6년 후에는, 혹은 10년이나 11년 후에는 지금과는 다른 구도가 형성될 수도 있다. 로버트 프로스트는 말했다. “사람들이 잘 택하지 않았던 길을 나는 택했고, 그것이 모든 차이를 만들었다.”(주1)

    한국 사회는 공화 민주 양당이 수백 년 동안 번갈아 ‘해먹은’ 미국의 길로 갈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전자를 원하는 이들은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이다. 그들을 따라야 하는가?

    “가지 않은 길(road not taken)”을 걷는 것이 어떠한가.

    <주석>

    주1.

    Two roads diverged in a wood, and I—
    I took the one less traveled by,
    And that has made all the difference.

    어느 숲에서 두 길이 갈라졌고, 나는,
    나는 사람들이 덜 여행했던 길을 택했고,
    그것이 모든 차이를 만들었다. (관련 출처 링크)

    필자소개
    레디앙 기획위원. 도서출판 벽너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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