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준석 비판-③
    이십대 남성들 고통의 근원은 무엇?
    21세기의 시대에 약육강식, 승자독식을 찬양하다니
        2021년 07월 08일 10:11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이준석 비판-2 “상계동 반지하 이준석, 개천에서 용이 되었다고?”

    이 사회의 불공정의 근원은 무엇인가

    한국 사회는 공정한 사회인가?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은 우스운 일일 수도 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을 대다수는 알고 있다. 그래서 중요한 문제는, 어떻게 잘못되었는지를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할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다.

    불공정한 한국 사회에서 특히 많은 고통을 느끼는 이들이 있다. 이십대 젊은이들이다. 그런데 이들 중 일부 남성들은, 자신들의 분노를 동년배 여성들에게 투사하고 있다. 그것을 조장하는 이들도 있다.

    생각해 보자. 무엇이 가장 불공정한가? 이재용이라는 사람이 있다. 그는 서울대 동양사학과에 입학했고, 졸업하지 않고 와세다 대학으로 유학을 다녀왔다.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갑자기 허리 디스크가 생겨 군이 면제되었다. 군이 면제된 그는 만 23세라는 어린 나이에 삼성이란 대기업에 입사했고(1991년), 젊은 나이에 임원이 되었다. 그리고 40대 초반(2012)에 삼성전자라는, 한국에서 가장 돋보이는 회사의 부회장이 되었다. 그는 아버지가 입원하자 40대 중반에 실질적인 삼성 그룹의 ‘총수’가 되었다. 나중에 그는 뇌물과 횡령 등의 죄를 지어 감옥에 가게 되었고, 그가 감옥에 있는 동안 삼성전자는 전혀 타격을 받지 않았다. 오히려 주가가 대폭 상승하기도 했다.

    어떤 이는 말할지 모른다. 그는 실력과 노력으로 서울대에 갔고, 와세다 대학에 유학을 갔고, 삼성전자에 입사했고,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에 삼성전자 부회장이 되었다. 허리 디스크로 군 면제되고, 나중에 허리 디스크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몸으로 사회생활을 한 것도 그의 능력이다. 그리고 그는 마침내 자신의 능력으로 삼성 그룹의 총수가 되었다. 정말 그런가?

    한국 사회의 불공정은 부의 세습, 특히 기업들과 부동산의 세습에 가장 큰 근원이 있다. 이것을 해결하지 않는다면, 이 사회는 언제나 불공정할 것이다. 생각해 보라. 삼성이라는 이름을 가진 기업들뿐이 아니다. 신세계이마트 그룹도, CJ그룹도 모두 이병철이라는 사람의 자손들이 좌지우지하고 있다.

    여기에 현대와 기아 등의 이름을 지닌 수많은 기업을 소유하고 있는 정주영의 자손들을 더해 보자. 여기에 자식을 노태우 대통령의 딸과 결혼시켜 당시 최고의 알짜 공기업 한국이동통신을 ‘날로 먹고’ 나중에 그것을 SK텔레콤으로 개명했었던, 최종현의 자손들을 더해 보자. 여기에 친일 지주들의 자손들을 더해 보자. 박정희 시대에 강남 개발 정보를 미리 얻어 현재의 서초구와 강남구의 땅들을 매입했던 중앙정보부 요원들의 자손들을 생각해 보자. 미리 개발 정보를 얻었던 관료들의 자손들을 생각해 보자.(1) 그 기원이 조선 시대로 올라가는 거대한 땅의 소유주들이 있었음을 생각해 보자.

    이런 것들이 불공정의 근원이다. 그런데 왜 분노에 찬 이십대 남성 일부는 분노를 사실은 같은 고통을 겪고 있는, 혹은 더 큰 고통을 겪고 있는 동년배 여성들에게 표출하는가? 왜 어떤 정치인들은 그것을 부추기는가?

    이준석의 생각은 그 자체가 헌법 정신에 반하는 것이다.

    일부 정치인의 악선동이 통하는 데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이십대 여성들이 이 사회를 불공정하게 만든 근원은 아니다. 페미니스트들이 이 사회의 불공정과 불평등을 만든 것은 아니다. 여성가족부가 악의 근원은 아니다. 이를 논하기 위해, 나는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헌법부터 인용하고자 한다.

    대한민국 헌법

    [시행 1988. 2. 25.] [헌법 제10호, 1987. 10. 29., 전부 개정]

    제34조 ①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
    ②국가는 사회보장ㆍ사회복지의 증진에 노력할 의무를 진다.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④국가는 노인과 청소년의 복지향상을 위한 정책을 실시할 의무를 진다.
    ⑤신체장애자 및 질병ㆍ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국가의 보호를 받는다.
    ⑥국가는 재해를 예방하고 그 위험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

    잘 읽기 바란다. 제34조에 여자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남자에 대한 언급은 없다. 노인과 청소년에 대한 언급은 있으나, 20대~50대에 대한 언급은 없다. “신체장애자 및 질병ㆍ노령 기타의 사유로 생활능력이 없는 국민”을 언급하고 있으나, 그렇지 않은 이들에 대한 언급은 없다.

    어떤 이들은 이를 보고 말할지도 모른다. “아니, 여자의 복지와 권익만? 그럼 남자는?” 어떤 이들은 이 헌법을 읽고 “대한민국은 장애가 없고, 노인이나 청소년이 아닌, 청/ 장년 남자들이 차별받는 나라이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런가?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가?

    반대이다. 우리 사회에서 힘이 없는 자들은 여자였고, 청소년이었고, 장애인이었다. 20~50대의 비장애인 남성들보다, 그들이 훨씬 고통스럽게 살았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민정당이 다수였던 국회조차도 헌법에 그러한 조항들을 넣었던 것이었다.

    이 헌법은 1987년 10월에 제정되었다. 그때는 전두환 정권 말기였고, 이 헌법은 6월 항쟁의 성과였다. 당시 입법 주체인 국회의원의 다수는 민정당 소속이었다. 공고한 주체는 누구였는가?

    헌법 제129조 제1항의 규정에 의하여 국회 재적의원 과반수의 발의로 제안된 헌법개정안을 국무회의의 심의를 거쳐 헌법 제130조의 규정에 따라 이에 공고한다.

    대통령 전두환(대구공고, 육사)
    국무총리 김정렬(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 육사)
    국무위원 경제기획원장관 정인용(경기고, 서울대 법학과)
    국무위원 외무부장관 최광수(경기고, 서울대 행정학과)
    국무위원 내무부장관 이상희(성주농고, 고려대 법학과)
    국무위원 재무부장관 사공일(경북고, 서울대 경제학과)
    국무위원 법무부장관 정해창(경북고, 서울대 법학과)
    국무위원 국방부장관 정호용(경북고, 육사)
    국무위원 문교부장관 서명원(서울대 심리학과)
    국무위원 체육부장관 조상호(조선대 정치학과, 서울대 행정학 석사)
    국무위원 농림수산부장관 김주호(마산 창신고, 육사 중퇴, 서울대 농과대)
    국무위원 상공부장관 나웅배(대전고, 서울대 경제학과)
    국무위원 동력자원부장관 최창락(서울 중앙고, 서울대 정치학과)
    국무위원 건설부장관 이규효(진주사범, 서울대 행정학과)
    국무위원 보건사회부장관 이해원(경복고, 서울대 법학과)
    국무위원 노동부장관 이헌기(인천고, 고려대 경제학과)
    국무위원 교통부장관 차규헌(육사)
    국무위원 체신부장관 오명(경기고, 육사, 서울대 전자공학과)
    국무위원 문화공보부장관 이웅희(중앙고, 서울대 공과대)
    국무위원 총무처장관 장기오(서울공고, 육사)
    국무위원 과학기술처장관 박긍식(서울대 화학과)
    국무위원 국토통일원장관 허문도(부산고, 서울대 농학과)
    국무위원 정무장관(제1) 이종률(전주고, 서울대 정치학과)

    기가 막힌 명단이다. 어쩜 이렇게 자기들끼리 다 해먹을 수 있을까. 위를 보면 대통령, 국무총리, 장관들의 대다수가 육사와 서울대 출신임을 알 수 있다. 예외로는 고려대 2명, 조선대 한 명이 있을 뿐이다. 조선대 출신인 조상호는 서울대 행정학 석사이니, 서울대 출신으로 분류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장 많이 등장하는 고등학교는 경북고이고, 그다음이 경기고, 그다음이 중앙고이다. 출신지별로 볼 때 영남권이 가장 많고(8), 전남/ 전북 출신은 각각 한 명씩에 불과하다. 충남 출신은 둘, 인천 출신은 한 명이다. 충북, 강원, 제주는 아예 없다.

    요컨대 위 명단에는 영남 출신이 가장 많으며, 서울과 경기(1950~1970년대에 경기도의 ‘동네 신동’들은 경기, 서울, 경복, 중앙 등의 서울 종로구 소재 고교로 진학하곤 했다) 출신이 그 뒤를 잇는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군인들이 주도하고 서울대와 고려대 출신 관료들이 뒤를 받치는, 1961년부터 1992년까지 이어졌던 군사 정권들의 전형적인 ‘라인업’이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것이 있다. 무엇인가? 그렇다. 여성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꼴통, 군부독재, TK, 영혼 없는 서울대 출신 관료들 등 부정적인 이미지만 떠오르게 하는 이 명단 속의 정치인과 관료들도 이 헌법을 승인했던 것이었다. 이준석의 아버지가 다녔던 경북고등학교 선배들 다수도 이 헌법을 부정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이준석은 전두환 시대의 육사 출신 정치인들이나 서울대 출신의 ‘영혼 없는’ 관료들보다도 못한 정치의식을 가지고 있다. 그가 그의 견해를 말하는 것은 그의 자유이다. 그러나 이제 그는 종편의 패널이 아니라 거대 정당의 대표이다. 거대 정당의 대표가 된 그는 계속해서 자신의 헌법에 반하는, 여성과 관련한 생각들을 유지하고 내뱉을 것인가? “③국가는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을 위하여 노력하여야 한다.”는 헌법 조항에 근거한 조직,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를 계속 공격할 것인가? 눈여겨 지켜볼 일이다.

    헌법에 ‘여자의 복지와 권익의 향상’만 언급하고 남성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은 것은, 여성들의 복지와 권익이 남성들보다 더 좋지 않은 상황이었음을 민정당과 전두환 정권마저도 인정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상황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동의하지 않는다면, 헌법에서 그 조항을 삭제하자고, 그것을 위해 개헌을 추진하자고 주장하라. 그는 할 수 있을까?

    지배자들의 전략 중 하나가
    바로 “나누어 지배하라(Divide and Conquer)”이다

    지배자들은 약자끼리 서로 대립하게 만들어 이익을 얻는다. 이것이 서양에서라면 그 기원이 고대 로마까지 올라가는, “나누어 지배하라.”이다.

    사회 속에서 소수에 속하거나 상대적으로 약한 위치에 있는 이들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 이것이 헌법과 법률에 반영되었던 것, 이것은 억압당하는 이들의 수천 년간의 투쟁의 결과였다. 지배자들은 조금씩 조금씩 양보하며, 억압받는 자들끼리 대립하게 만드는 새로운 지배 방법을 도입하기도 했다. 이제 이준석 등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을 보는 이들이 제대로 보지 못하고 있는 나라, 미국을 중심으로 그것을 살펴보자.

    미국의 링컨은, 흑인 노예제를 철폐했다. 이는 사실 공업 노동자들의 수를 늘리려는 북부 자본가들의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긴 했지만, 어쨌든 이는 진보였다. 하지만 그 해방된 노예들에게는 오랫동안 사실상 참정권이 없었다. 그들은 백인들과 같은 교통수단을 이용할 수 없었고, 같은 편의 시설에 갈 수 없었고, 심지어 같은 교회도 다니지 못했다. 무수히 많은 이들이 린치를 당했고, 살해되었다. 1960년대가 되어서야 이러한 차별들이 조금씩 사라지기 시작하고, 1965년이 되어서야 완전한 참정권을 얻을 수 있었다.

    https://ko.wikipedia.org/wiki/아프리카계_미국인의_역사

    https://namu.wiki/w/미국%20흑인%20민권%20운동

    20세기 말에 미국 사회는 겉으로는 완전히 평등한 사회가 되었다.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미녀라고 불리던 백인 배우 브룩 쉴즈와 마이클 잭슨이 한때 사귀었을 정도로 말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마이클 잭슨은 역사상 단일 앨범으로 가장 많은 판매를 기록한 <Thriller> 음반을 발매했던 거부였다. 잭슨 정도의 노래 실력과 춤 실력, 그에서 기인한 부를 가진 이들은 극소수였을 것이다. 세상일은 연결되어 있기 마련이고, 인종 문제는 언제나 부의 문제와 연관되어 있다. 일부 흑인들은 음악인으로, 운동선수로 스타가 되고 많은 돈을 벌기도 했지만, 그들은 말 그대로 ‘빙산의 일각’이었을 뿐이었다. 다수는 가난했고, 일자리를 구하는 것도 상대적으로 힘들었다.

    분노한 젊은 흑인 남성들은 조직폭력단을 만들기도 했고, 마약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기도 했다. 그들이 신분 상승을 이룰 수단은 제한되었고, 그 가장 대표적인 길은 스포츠와 음악을 통한 것과 조직폭력배가 되는 것이었다. 1980년대에 젊은 흑인 청년들 사이에서 랩 혹은 힙합이라는 음악 장르가 생겨나는데, 놀라운 일은, 조직폭력배와 음악인을 겸하는 이들도 생겨났다는 점이었다. 그들은 갱스터 래퍼라고 불렸다.

    이 ‘갱스터 래퍼’ 중 일부는 그런 이미지를 판매전략으로 삼은 것일 뿐이었지만, 일부는 정말로 폭력단의 일원이었다. 그들은 백인 경찰들이 폭력을 먼저 가했으니 자신들의 폭력은 정당하다고 주장했다. 우스운 것은, 그들이 백인 지배자들과 경찰에 총을 쏘는 경우보다는, 같은 흑인들에게 총을 쏘는 일이 훨씬 더 흔했다는 점이었다. 미국의 고위 정치인들이나 거대 자본가들이 흑인 총에 맞아서 죽었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가?

    흑인 남성들은 서로 싸웠다. 서로 ‘디스’전을 벌이며 랩으로 싸웠고, 총을 쏘며 싸웠다. 예를 들어 1990년대에 가장 ‘핫’했던 래퍼 중 하나는 라이벌 조직에 의하여 총격을 당해 죽었다. 그 자세한 내용은 링크의 글을 참조할 수 있다.

    미국에서의 인종 문제는 심각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것에 저항한다는 래퍼들은 끊임없이 여성을 비하하고 공격하곤 했다는 것이다. 링크의 기사와 인용된 도서를 참조할 수 있다.

    자, 생각해 보자. 미국 사회에서 가장 약자는 누구인가? 소수 인종의 여성들이다. 1969년 미국의 여성운동가 웨더즈와 메리 앤은 말했다. “모든 여성은 억압으로 인해 고통받습니다. 백인 여성도 마찬가지입니다. 특히 가난한 백인 여성이라면요. 인도, 멕시코, 푸에르토리코, 동양 및 흑인 여성은 특히 앞서 말한 삼중의 억압(여성, 소수 인종, 가난)으로 인해 특별히 고통받습니다.”(관련 글 링크)

    그런데, 인종 차별과 국가의 억압/ 폭력에 저항한다던 래퍼들은 이상하게도 가장 약자인 소수 인종 여성들을 공격한다. 인종차별에 반대한다면서 한국인들을 비하한다. <Fuck the police>와 같은 저항적인(자기들 생각으로는) 노래들을 작사했던 유명한 래퍼 아이스 큐브는, 나중에 <Black Korea>라는 노래에서 한국계 미국인들을 비난하고 비하했다.(관련 동영상 링크)

    불공정에 저항한다면서, 백인 지배자들에게는 찍소리도 하지 못하고 말단 백인 경찰들에게 쌍욕을 퍼붓고, 같은 피부의 여성들을 bitch(암캐, 걸레), slut(암캐, 화냥년), hoe(whore 창녀)라고 부르고, 같이 불공정을 당하는 한국계 미국인들을 비하한다. 이것이 아이스 큐브 등 갱스터 래퍼들의 대체적인 수준이었다.(2) 아이스 큐브는 나중에 주류 사회로 편입되어, 영화배우로도 유명해졌다. 그는 자신이 여전히 투사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는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저항을 한 일이 없었다. 자극적인 가사로 음반을 팔았을 뿐이다.

    사실 불공정을 해결할 의사가 전혀 없었던 이, 아이스 큐브의 자극적인 가사들은 통했고, 한국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불공정을 해결할 의사가 전혀 없는, 경북고와 서울대를 나온-이는 한국 사회에서 매우 상징적인 말이다-아버지를 둔 이의 선동도 꽤 통하고 있다. 나는 그와 이십대 남성들이 헤어지기를 바란다. 이십대 여성들은 이십대 남성의 적이 아니다. 그들의 고통의 근원이 아니다. 한국 사회의 불공정의 기원이 아니다.

    그 근원은, 앞에서 말한 것처럼 생산수단과 부동산이 세습되는 것에 있다. 우리는 북한을 비난하곤 한다. 그 비난, 혹은 비판의 핵심에 3대 세습이 있다. 김정은은 30대에 북한의 지도자가 되었다. 나이는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어린 나이에 로마군을 이끌고 한니발에 맞서 풍전등화의 국가를 구했던 스키피오는 25세에 로마군 총사령관이 되었다.

    나이가 문제가 아니다. 김정은은 어떻게 그 나이에 그 국가의 소위 지도자가 되었는가? 김일성의 손자였고, 김정일의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설명은 불가능하다. 이재용은 어떻게 한국에서 가장 큰 기업의 주인이 되었는가? 마찬가지로, 이병철의 손자이고 이건희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준석이 이재용 등 소위 재벌 n세들을 비판했다는 말을 들은 일이 없다. 근본적인 것을 그는 건드린 적이 없다.

    이 세상에서 가장 ‘찌질한’ 남자들은 누구인가? 여러 부류가 있겠으나, 그 중엔 이런 사람들도 포함된다. 사회에서 받은 차별과 억압에서 기인한 분노를 자기보다 더 약한 이들에게 푸는 이들. 아내를, 여자친구를 때리는 이들이다. 직장 상사에게 모욕을 당한 날 술에 잔뜩 취해 아내를 때리는 남자들. 한국 사회뿐 아니라 다른 사회에서도 빈번히 일어나는 일이다.

    사회에서 받은 차별과 억압을 동년배 여성들을 비난하는 것으로 풀고자 하는 것은, 어찌 보면 아내와 여자친구를 때리는 남성들, 백인 지배계급과 맞서 싸운다면서 흑인 여성들과 동양인들을 비하하는 미국의 일부 갱스터 래퍼들의 수준이라고 말할 수 있다.(3) 그들 모두는 잘못된 대상을 공격하는 것이고, 이는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옳지 않은 일이다.

    글을 쓰다 보니 그런 자들의 여성가족부 공격이 진행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하, 우울하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선일보를 인용하고자 한다. 나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조선일보의 어느 글에 공감할 수 있었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위해 5:5로 성비를 맞추던 비례대표 공천을 7:3이나 8:2로 맞추자”고 한 건 놀랍게도, 이준석 대표였다. 2012년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으로 활약하며 쓴 ‘어린 놈이 정치를?’이란 책에서 그랬다. (중략)

    그로부터 7년 뒤, 중견 정치인이 된 이준석이 쓴 책 ‘공정한 경쟁’은 결이 사뭇 다르다. “여성 비례대표 50% 할당제는 실패했다”고 단언하는 그는, “여가부는 이익 집단”이 됐고, “극단적 여성주의자들은 태극기 부대와 비슷하다. 나치와도 다르지 않다”고 비난한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할당제에도 반대한다. 대신 “능력 있는 소수가 세상을 바꾼다”는 엘리트주의를 설파한다. 그사이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분명한 한 가지는, 낙선을 거듭해온 0선(選) 정치인이 ‘블루오션’을 발견했다는 것이다. 바로 ‘이대남의 분노’다.

    (중략)

    세계적 기업들이 다양성을 최고 가치로 여기고 필사적으로 준수하려는 건, 여성과 유색인종을 동정해서가 아니다. 백인·남성·엘리트들만 있어서는 조직의 창의가 말살되고, 기업의 지속가능한 성장에 치명적 손해를 입기 때문이다. 반대로 성적과 능력으로 줄을 세우겠다는 이준석의 ‘공정한 경쟁’은 20% 엘리트들에게만 해당한다. 경기장에 진입할 수조차 없는 나머지 80%는 외면한 ‘그들만의 리그’다. 2030 여성들은 그래서 국민의힘을 ‘보이콧’했다. ‘나는 국대다’ 토론 배틀에 지원한 564명 중 여성은 63명뿐이었다. (글 링크)

    내가 오늘 이 글에서 ‘터뜨리고자’ 준비했던 부분을 조선일보가 선점했다. 바로 “여성의 정치 참여를 위해 5:5로 성비를 맞추던 비례대표 공천을 7:3이나 8:2로 맞추자.”라고 이준석이 2012년에 주장했었다는 부분이다. 7과 8이 여성이고, 3과 2가 남성이다. 할당제를 비판하는 이의 그 옛 발언은 현재의 발언들과는 정면으로 배치된다. 그는 초심을 잃었거나, 기회주의자이다.

    3회에 걸쳐 진행되었던 이준석 비판을 이번 회로 끝내려고 한다. 1회에서 나는 그의 교육관의 허황함을 짚었고, 2회에서 그의 “상계동 반지하에서 난 용”이라는 서사가 스스로 편집한 영웅담에 불과함을 이야기했다. 내가 그를 자세히 다룬 것은, “내가 정치인이 된 이유는 ‘해 먹기’ 위해서입니다.”라는 의도를 부인하지 않는 이명박류와 달리, 그는 신념과 사상을 앞세우기 때문이다. 그의 신념과 사상은 인류 역사의 모든 정치적/ 문화적 진보를 부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을 부정당한 이들이 넘쳐나는 이 사회에서 그는 ‘약육강식’이 정당하다고 외친다. 사회와 자연계를 구분하지 못하며 ‘승자 독식’이 정당하다고 주장한다.(4) 다른 글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물개 수컷 한 마리가 수십 수백 마리의 암컷을 독점하는 물개들의 무리에서, 밀려난 수컷들은 펭귄을 성폭행하며 자신의 스트레스를 풀고 있다. 이런 사회를 꿈꾸는가?(5)

    궁예를 처단하고, 견훤의 후백제를 무찌르고, 신라마저 굴복시켜 고려를 세운, 승자였던 왕건은 6명의 황후를 두었고, 23명의 후궁을 두었다. 이는 정치적인 이유로 그랬을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지만(호족 세력 회유 등), 현대의 민주주의를 믿는 이들이 받아들이기는 힘든 일이다. 이런 것이 승자독식이다. 그리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이는, 민주주의와 자유와 평등을 입에 담을 자격이 없다. 자신도 쑥스러운지, 혹은 부끄러운지, 그는 평등이라는 말을 쓰지 않는다. 공정이라는 말을 쓴다.

    그의 생각을 총정리해 보자. 공정은 능력 있는 이가 성공하는 것이다. 그리고 능력 있는 이는 ‘승자 독식’의 권리를 누릴 수 있다. 약육강식은 나쁜 것이 아니며 사회라는 ‘정글’의 법칙일 뿐이다.

    험한 일을 당해본 일이 없어서 그런지,(6) 참으로 순수하게 헛소리를 하고 있다. ‘왕따’와 학교 폭력 문제가 심각한 이 나라에서 이 무슨 망발인가? 힘이 세면 같은 반 학생 때리고 돈을 뺐고, 몸에 칼을 대도 되는가? 그게 약육강식 아닌가?

    박정희는 남의 소유물을, 예를 들어 경주 최씨들이 세웠던 두 대학을 이병철의 도움을 얻어 강탈했고(영남대),(7) 전두환은 자신에게 밉보인 국제그룹을 순식간에 ‘분해’시켰다.(8) 박정희와 전두환의 시대에 수많은 야당 인사들과 노동자들과 학생들이 고문을 당했고, 성고문을 당했고, 성폭행을 당했다. 약육강식이니 승자독식이니 하는 말 함부로 내뱉지 말라. 당신은 야만의 시대로 시계를 되돌리려는 것인가?

    경북고 서울대 출신의 아버지와 교사였던 어머니가 부여했던 교육의 기회가, 그에게 다른 이들보다 유리한 출발점을 주었음을 모르거나 부인하는 그는, 참으로 위험한 생각을 하고 있고, 그 생각을 설파하고 있다.

    <주석>

    1. 영화 <강남 1970>이 그 당시를 다룬 영화이다.

    2. Public Enemy 등의 좀 더 나은 음악인들이 존재함을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백인 헤비메탈 그룹과 협연을 함으로써 흑백의 젊은이들이 함께 모여 신나게 놀며 인종차별을 비판하는 장을 만들기도 했다. https://www.youtube.com/watch?v=1d2ABH64-Dw 이 동영상을 보면 흑인, 히스패닉, 백인 관중들이 모두 보이며, 여성과 남성 관객 모두가 등장한다. 그들 모두가 흑인 차별을 비난하는 가사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노는 광경은 흔히 볼 수 있는 일은 아니었다.

    3. 이준석은 공정한 경쟁 미니인터뷰에서 청년들에게 주고 싶은 선물이 뭐냐는 질문에 “래디컬 페미니즘에 시달리지 않는 세상”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청년들은 편의점 체인이나 쿠팡 같은 거대 자본에 의해 불공정을 겪고 있는데 말이다. 그런데 ‘래디컬 페미니즘’이라 불리는 사상을 가진 이들이 주로 공격한 대상은, 일베와, 젊은 여성들을 성적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아저씨’들이었다. 이준석은 일베와는 공감할 수 있고, 온갖 차별에 노출된 젊은 여성들과는 그럴 수 없는, 희한한 공감 능력을 지닌 것으로 보인다.

    4. https://m.khan.co.kr/politics/assembly/article/202106191841021#c2b

    5. https://www.khan.co.kr/world/tidbits/article/201411191601491

    6. 그는 대체복무를 했고, 군 경험이 없다. 부당한 얼차려나 모욕감을 주는 구타 등을 당한 경험이 없는 것이다. 위계질서에 근거한 폭력이 어떠한지를 그가 알 리 없을 것이다.

    7. http://www.poweroftruth.net/m/mainView.php?uid=1438&table=byple_news

    8. https://ko.wikipedia.org/wiki/국제그룹

    필자소개
    레디앙 기획위원. 도서출판 벽너머 대표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