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상계동 반지하 이준석,
    개천에서 용이 되었다고?
    [이준석 비판-2] 1%의 할당제 비판
        2021년 06월 24일 12:33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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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준석 비판① “교육으로 공정 사회를 만들겠다고?”

    사람들은 타인들이 자신의 좋은 측면만을 보기를 원하는 경향이 강하고, 정치인들은 더욱 그러할 것이다. 정치인 이준석은 자신이 타인에게 어떻게 비칠지를 매우 신경 쓰는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어떻게 비추어지기를 원하는가? 그것은 자신이 자신만의 힘으로 성공한, 능력 있는 사람이라는 이미지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장치들이 필요한데, 그 장치의 하나가 상계동 출신임을 내세우는 것이다.(1) 그는 지금 상계동에 거주하고 있고, 어린 시절에도 분명히 상계동에 살았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그가 자신의 이야기를 매우 선별적으로 대중들에게 전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선별적 메시지 던지기 때문에 상당수의 ‘대중’들은 그가 상계동의 반지하 주택에서 서울과학고에 가고, 이어 하버드에까지 입성한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그의 주장의 문제점을 살펴보자. 그는 상계동 반지하에서 살았다고 한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런데, 그의 아버지는 경북고등학교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했고(2), 그 당시 대우그룹의 한 계열사에 다니고 있었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아버지의 직장인 대우상사가 서울역 인근에 자리해 4호선으로 출퇴근할 수 있는 가장 싼 곳이 당시 4호선 종점인 상계동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라고 한다.

    사실 그 말도 꼭 맞는 말은 아니다. 당시에는 상계동보다 쌍문역이나 수유역 근처에 더 값이 싼 다세대 주택들이 많이 있었다. 사실 지금도 그러하다. 나도 1990년과 1991년에 걸쳐 쌍문역 근처의 반지하에서 두어 달 동안 산 적이 있었다. 엄청나게 ‘싼’ 집이었다. 들어는 보았는가? 보증금 백에 월세 5만 원?

    게다가, 서울역 지하철역은 1, 4호선 환승역이었고, 1호선 인근의 많은 지역도 고려 대상일 수 있었다. 온수역(30분)이 상계역(34분)보다 더 통근시간이 짧았었을 것을 고려하면, 그의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 것이다. 가리봉역(나중의 가산디지털단지역)이나 구로역 근처가 더 쌀 수도 있었다는 얘기이다.

    상계역이 좋은 점이 하나 있기는 했다. 당시에는 당고개역이 없었고, 그래서 상계역은 출발점이었으니, 언제나 앉아서 출근할 수 있다는 장점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 또한 큰 의미 없을 수 있는데, 대우그룹은 서울 거의 전역에서 출발하는 통근버스를 운영했었다. 그의 아버지는 어디에 살든 앉아서, 편안하게, 자면서 혹은 졸면서 출근할 수 있었다. 뭐 이건 그리 중요한 것은 아니니 넘어가자.

    소위 TK의 상징 중 하나인 경북고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며, “대우상사(정확한 명칭은 주식회사 대우 무역부문)”를 다녔고, 나중에는 증권사 임원이 되었던 이와 반지하 ‘빌라’. 게다가 유승민과 김부겸과 친구라는 이와 반지하 주택. 사람들을 의아하게 만드는 조합이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에 한 살 아이를 가진 사회 초년생이 반지하에 거주한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고, 그것이 그들이 ‘하층민’이었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이준석 자신도 그 당시 자기 집안은 ‘중산층’은 되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상계동의 반지하 주택 거주가 그의 어린 시절의 ‘가난’이나 ‘고난’을 의미하는 것은 분명 아니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여러 차례 언급했고, 일부 보수 언론들도 그것을 부각한다.

    두 번째로, 일반적으로 반지하 주택에 사는 이들은 외국에 파견되는 경험을 겪지 못한다. 그는 곧 상계동의 아파트(한신 아파트) 주민이 되었고, 10대 초반에는 해외발령된 부친을 따라 해외(싱가포르, 인도네시아)에서 살고 공부하는 경험을 얻었다. 이것이 그가 나중에 하버드 대학에 갈 수 있었던 동력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외국 대학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어학 실력이 필요하고, 그것을 위해 가장 좋은 것은 초등학교 시절에 해외 학교에 다니는 것이다. 싱가포르는 영어의 천국이며, 인도네시아에서도 영어로 배우는 학교에 다녔을 것이다.

    당연히 외국 경험이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의 영어 실력은 차이가 난다. 이준석은 자신이 ‘개천에서 용 난’ 사례로 비치길 원하고 있지만, 진실은 이렇다. 그의 부친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다. 그의 아버지는 해외 발령되었고, 아들은 해외에서, 그것도 싱가포르와 인도네시아에서 공부할 수 있었다.

    세 번째로, 그는 한국으로 돌아와 상계동에서 서울과학고 준비를 한 것이 아니다. 그는 목동에서 살았고, 목동의 월촌중학교에 다녔다. 그는 자신이 목동에서 살면서 과학고 입시 준비를 한 것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물론 언급한 적은 있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아버지가 쌍용투자증권(현 신한금융투자)으로 이직하셨는데 여의도에 사옥이 있었어요. 여의도는 당시 상계동에서 출퇴근이 어려워 목동에 전세로 들어간 거예요.”(3) 참 눈물겹게 자신이 목동 같은 ‘잘 사는 동네’로 가게 된 이유를 설명한다.

    왜, 목동 살면 안 되는 건가? 그렇다. 목동 살아서 안 되는 이유는 전혀 없다. 이준석이 목동 거주 사실을 상계동 거주 사실보다 덜 노출하고, 그런 식으로 이유를 붙여 설명하는 이유는, 목동이라는 동네가, 과학고 입시를 준비하는 데 있어서 큰 의미를 지닐 수 있음을 그가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00년~2004년 무렵에 과학고를 가려면 반드시 학원에 다녀야 했다.” 이 말은 오류이다. 아주 드물게 학원 다니지 않고 과학고에 간 학생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드문 경우를 강조하는 것은 침소봉대이다. 정확한 데이터는 없지만, 서울과학고에 입학하는 학생 중 아무리 높게 잡아도 학원 경험을 하지 않은 학생들은 10%가 되지 않는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나는 강동/ 송파구에서 1990년대 중순부터 2010년까지 과학고/ 외고 입시에 있어 장학학원과 더불어 가장 유명했던, 청산학원에 재직했었다. 과학고 입시와 서울대 자연계열 입시에 있어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했던 대치동 미래탐구 학원에서도 일했었다. 목동의 과학고 입시와 관련해 가장 유명했던 학원 중 하나인 하이스트에도 들락거렸다. 중계동의 학림학원에도 한 달 정도 상주했었다. 중계동에서 과학고 및 영재학교 입시의 ‘강자’ 중 하나인 알로곤 학원 원장은 내 친구여서, 그 학원의 사정도 잘 알고 있다.

    나는 경험에만 근거해서 말해도 이 정도는 이야기할 수 있다. 2014년 서울대 의예과에 수시 일반전형을 통해 입학했던 학생의 80% 이상이 대치동 미래탐구 학원에서 서울대 면접 전형 대비 강의를 들었다. 이것은 사실, 그러니까 요즘 많이 쓰는 용어를 쓰면 ‘팩트’이다. 같은 해에 정시로 서울대 의예과에 입학했던 학생 중 단 두 명을 제외한 학생이 미래탐구에서 면접 준비를 했다. 나는 지금 특정학원을 광고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고에 갔던 90% 이상의 학생들이 학원에 다녔다는 주장을, 과고보다 더 가기 힘든 서울대 의예과라는 소재를 통해 뒷받침하려는 것이다.

    또, 2001년 서울과학고에 입학한 학생들 120명 중, 대치동에 있던 미래탐구 학원과 토피아 학원 출신 합격생만 모아도 80명이 넘었었다. 학생들은 한 학원만 다닌 것도 아니었다. 미래탐구의 명단에 있는 학생은 토피아 명단에 있기도 했고, 미래영재학원의 명단에 있기도 했다. 120명을 뽑는데, 학원들의 발표를 모으면, 수백 명이 넘었다. 그 아이들이 1, 2학년 때 다녔던 학원들이 발표한 명단까지 모으면, 천 명이 훌쩍 넘었었다.

    여기에 중계동 지역과 송파/ 강동, 목동 지역까지 합치면 120명 중 110명 이상의 학원에 다녔던 서울과고 합격생들을 파악할 수 있었다. 학원 경험이 없는 학생이 10%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비유를 쓰면 거의 공리나 다름없었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학원을 광고하려는 것이 아니다.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말하는 것뿐이다. 또,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은 진실이 아님을 말하려는 것이다.

    이준석이 고등학교에 진학했던 2000년대 초반에 서울과학고에 입학했던 학생들은 대부분 학원에서 입시를 준비했다. 서울과학고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강남, 서초구 학생들은 대개 대치동에 있는 학원들에 다녔다. 반포 지역에 있는 학원에 다니던 학생들도 있기는 했지만, 대치동과는 비교할 수 없었다.

    강남 서초 다음으로 과학고 입시 준비를 치열하게 했던 지역은, 양천구 목동, 노원구 중계동/ 상계동, 송파구 오륜동(올림픽 아파트)/ 방이동, 강동구 둔촌동/ 명일동 등이었다.(4)

    사람들이 잘 모르는 진실을 말하면 이렇다. ‘의외로’, 노원구의 과학고 진학률이 높았다는 것이다. 이준석은 정말 웃기는 짓을 벌이고 있다. 그는 자신이 목동 거주 당시 과학고에 간 것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애쓰지만, 상계동에 살아도 과학고 가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그런데 그게 ‘개천에서 용 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1990년대 후반기의 상계동과 중계동은 1987년 이전의 ‘판자촌’이 아니었다. 서울시에서 가장 많은 아파트가 밀집한 지역 중 하나이다. 그리고 전에도 언급했듯, 중계동의 은행 사거리는 대치동 못지않은 학원 밀집 지역이다. 학원이 많다는 것은 경쟁도 치열하다는 것이고, 경쟁이 치열하면 교습법에 대한 고민 수준도 높아진다.

    정리하면 이렇다. 그는 목동에서 과학고 입시를 준비했고, 서울과학고에 입학했다. 상계동 반지하에 거주하던 중학생이 서울과학고에 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당시에는 한국 최고의 무역상사로 평가받던 회사(“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 “세계 경영”)에 다니던 아버지를 두고 있었고, 아버지 덕에 이년 정도 해외에서 공부했고, 그 후 목동에서 살며 과학고 입시를 준비했고, 서울과학고에 합격했다.

    그의 아버지는 증권사로 직장을 옮긴다. 그들 가족이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대우그룹은 휘청거리고 있었으므로, 그래야 했을 것이다. 이준석이 중1이었을 때는 1998년이었고, 알다시피 1997년에 한국경제는 외환위기를 맞이했었다.

    그런데 그는 같은 당에 있는 많은 이들처럼 동문서답을 하곤 한다. 그는 경향신문 기자의 질문을 스르르 빗겨나가 피했다.

    – 2019년 펴낸 대담집 <공정한 경쟁>에서 월촌중 시절에 대해 “서로 비슷한 환경이라 위화감 같은 것이 없었다. 오직 공부로 서열이 매겨졌다. 완벽하게 공정한 경쟁이었다”고 회상했어요. 이 대표는 지금도 가장 강조하는 가치가 ‘공정’이에요. 그런데 고학력 아버지를 둔 덕분에 초등학생 때 해외에서 영어를 익히고 목동 수준의 교육환경을 누렸으면서 과연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저희 때는 입시가 내신경쟁이었기 때문에 나름 공정했어요. 예를 들어 월촌중의 한 학년 700명 중 1등을 한 학생은 전체의 0.14%에 해당하거든요. 다른 학교에서 1등 하면 같은 내신등급을 받아요. 당시 과학고도 내신 반영이 많이 됐어요. 그렇게 따지면 학교 단위의 경쟁이기 때문에 비슷비슷했죠. 또한 부모의 경제력으로 계급수저를 따지자면 저는 금수저가 아니에요. 계층 사다리를 올라온 경우죠.”

    https://www.khan.co.kr/politics/assembly/article/202106161448001#csidxeeac256d560d260af7ca55e45afd5cf (원문보기)

    동문서답이다. 그는 “고학력 아버지를 둔 덕분에 초등학생 때 해외에서 영어를 익히고 목동 수준의 교육환경을 누렸으면서 과연 공정한 경쟁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라는 질문의 핵심이 무엇인지 몰랐던가, 아니면 회피한 것이다. 게다가 그는 당시의 서울과학고 입시에 대해 거짓말을 하고 있거나, 기억력이 매우 부족하다.

    그는 서울과고를 2003년에 조기 졸업했으므로 2001년에 입학했을 것인데, 2000년 5월에 서울시교육청은 이런 발표를 했었다.

    “각종 경시대회 입상자와 외국어 능력 특기자에게 2001학년도 서울 시내 과학고와 외국어고 등 특수목적고의 입학 문이 더 넓어졌다.

    서울시교육청이 11일 발표한 특수목적고 입시요강에 따르면 서울. 한성 등 2개 과학고는 특별전형에서 수학 과학경시대회와 한국정보올림피아드 입상자를 52명 이내(서울)와 44명 이내(한성)에서 뽑기로 했다.

    지난해에는 각종 경시대회 입상자 중 서울과학고는 42명, 한성과학고가 40명을 선발했었다.

    그러나 학교장추천 입학은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올해도 20명 이내로 제한했다.”(5)

    출처: 한국경제 인터넷신문(https://www.hankyung.com)

    “당시 과학고도 내신 반영이 많이 됐어요.”라고 그는 말했다. 말을 좀 정확히 하기 바란다. 당신은 “당시 과학고 입시에도 내신 반영이 많이 됐어요.”라고 말했어야 했다. 그런데, 이준석이 말한 내신 반영이 많이 되는 전형은 ‘학교장추천 전형’으로 총 20인을 뽑았고, 수학 과학경시대회와 한국정보올림피아드 입상자를 52명 이내로 뽑았다.

    “일반전형은 후기 일반계 고교와 같이 중학교 성적을 반영하고 이밖에 ▲교과 성적 가중치 ▲면접. 구술 시험 ▲경시대회 가산점 등을 전형자료로 활용, 선발할 계획이다.”(6)

    출처 : 전북일보 인터넷신문(http://www.jjan.kr)

    정리하자면, 서울과고에 2001학년도에 입학할 방법은 세 가지였다.

    1) 일반전형: 내신성적을 반영하지만, 면접 구술 시험(수학, 과학)을 보아야 했고, 경시대회 가산점도 있었다. 이 인원이 48~50명.

    2) 특별전형: 수학 과학경시대회와 한국정보올림피아드 입상자를 52명 이내로 선발.

    3) 학교장추천 전형: 내신성적 위주로 선발하는데, 인원수는 가장 적은 20명.

    이준석은, 120명 중 20명에 불과한 이들에게만 적용되었던 일을 전체로 몰아갔다. 이 발언은 둘 중 하나로 해석할 수 있다. 거짓말. 혹은,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만 선별적으로 작용하는 편리한 기억력의 발휘.

    이준석은 자신이 한때 살았었고, 지금도 거주하는 자신의 지역구에 대해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얘기도 했다. “당시 한신아파트 500m 반경에는 학원이 없었어요.” 여보세요. 학원들은 셔틀버스를 돌립니다. 중계동 학원들은 심지어 버스를 구리시까지도 보냅니다. 집 500m 주위에 학원이 없어서 스스로 공부했단다. 정말 놀라운 사람이다.

    그는 같은 인터뷰에서 자신은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았다.”라고 했고, 그렇다면 다니기는 했다는 이야기이다. 상계동 시절에는, “하지만 엄마들의 교육열이 뜨거웠어요. 같은 아파트 단지의 대학 나온 엄마들이 과목을 나눠 아이들을 직접 가르쳤어요. 저희 부모님은 방 하나를 저와 제 여동생의 책방으로 만들어 주셨어요. 덕분에 위인전 등 다양한 많은 책을 읽었죠.”(같은 기사에서 인용)라고 말하니 전통적 사교육이 아닌 품앗이 사교육을 받은 것이고, 그는 이것을 사교육이라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싱가폴과 인도네시아에서 그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거기 있는 외국인학교들은 한국의 사교육 못지않은 수준의 교육을 했을 것이다. 그럼 목동에서 월촌중에 다니던 시절만 남는다. 이때가 “학원을 거의 다니지 않았다.”에서 유추할 수 있는 “다니기는 했다.”에 해당하는 시기가 아닐까? 그는 학원에 다니며 과학고 준비를 했다. 목동 소재 학원을 다닌 것도 아니었다. 대치동의 학원에 다녔다.

    자, 이 글을 쓰는 나는 단 한 번도 학원에 다닌 적 없이 스스로 공부하여 서울대학교에 갔다. 이것이 나의-그가 좋아하는 단어인-‘능력’을 입증하는가? 아니다. 내가 중고등학생이었던 시절에는 전두환이 과외 금지령을 내려서 중고등학생이 학원을 가는 것은 불가능했다. 물론 일부 부유층은 몰래 과외를 했겠지만, 대부분은 학교에서 강의를 듣고 스스로 공부했다. 내가 잘나서 사교육 없이 서울대에 합격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의 상황이 그러했었다는 얘기다. 이렇게 말하는 것이 진실을 말하는 방식이다.

    이준석은 사상적으로 매우 ‘얕은’ 사람이다. 그는 경험론에 근거하여 자신과 자신의 업적을 포장한다. 자신이 운영했던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의 경험이 어떻게 학생들이 자신의 ‘능력’만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주장의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소위 특목고나 이름난 전국 자사고(민족사관, 하나, 상산 등)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90% 이상 학원에 다니는 것이 현실이다. 그런데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에서 훌륭한 성과가 있었다는 것이 이 현실을 부정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는가?

    2003년부터 2019년까지 정시로 전국 각지의 의예과에 진학했던 학생들의 60% 이상은 특정한 학원에 다녔다. 어느 학원인지 말할 수 있는가, 정치인들이여? 입시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우리 ‘일반인’들은 다 안다. 강남대성학원, 줄여서 ‘강대’다. 사실 정치인들도 강남대성학원을 알고 있었다. 자신의 아이들이 수시에서도 다 불합격하고 수능도 잘 보지 못했다고 생각하는 많은 정치인, 관료, 경제인들은 ‘빽’으로 강남대성학원에 자신의 아이를 집어넣으려고 그곳의 간부들에게 온갖 청탁을 다 하곤 했다. 심지어 한때는 이런 용어까지 있었다. ‘닥강’. 무슨 뜻이냐 하면 재수학원 선택에 있어서 선택은 없으며, ‘닥치고 강남대성’에 가야 한다는 말이었다.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은 강남대성학원이나, 요즘 급부상하고 있는 시대인재학원을 대체할 모델이 될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 자신의 작은 경험에 근거해 세상을 바라보는 것을 옛 중국인들은 침소봉대한다고 말했고, 논리학에서는 성급한 일반화(Hasty Generalization)의 오류라고 부른다.

    자신이 말하고 싶은 것을 말하는 것은 모든 이의 권리이다. 하지만 제발 상계동 반지하 얘기는 그만하라. 당신은 상계동 반지하에서 잠깐 지냈는지 모르나 보통 사람들은 꿈도 꾸지 못하는 싱가폴 유학을 10대 초반에 갔었고, 그 후 목동이라는 중산층들과 부유층이 주로 살고 사교육 서비스가 매우 ‘잘 되어있는’ 지역에서 살 때 과학고등학교에 들어갔다. 하버드로 갈 수 있었던 이유도 그 싱가폴과 인도네시아에서의 외국인학교 경험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의 ‘성공’에는 그의 능력뿐 아니라 고학력인 아버지의 도움이 매우 컸다. 게다가 “결혼 전 경북 안동여고 가정교사로 부임했던 어머니는 결혼 후엔 파트타임으로 아이들을 가르쳤다.”라고 한다. 경향신문에서 띄어쓰기를 이런 식으로 처리해서 정확하지 않으나, 여자고등학교에 ‘가정교사’로 부임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일이므로, 아마 ‘가정 과목 교사’였을 것이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은 방 하나를 저와 제 여동생의 책방으로 만들어 주셨어요.”라는 것에서 볼 수 있듯, 그의 부모들은 그에게 아주 좋은 조건을 만들어 주었다. 그리고, 거기서 유추할 수 있는 것 또 하나는, 그가 살던 한신 아파트는 방이 네 개 이상이었다는 점이다. 부부의 방, 이준석의 방, 여동생의 방, 그리고 책방.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의 아버지, 고등학교 교사 출신의 어머니, 책방이 따로 있는 집. 이런 것을 누릴 수 있는 이가 1990년대 초반에 얼마나 있었을까? 내 생각으로 그런 집은 1%도 되지 않았을 것이다. 이게 그의 성장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거기다 초등학교 고학년 시절을 싱가폴과 인도네시아의 외국인학교에서 보낸 것까지 곱해보자. 그 확률은 얼마나 될까? 거기다가 목동에서 중학교에 다녔던 것까지 곱해보자. 결론은, 그는 ‘상위 0.1% 이내’에 드는 조건을 갖춘 학생이었다. 당신이 말하는 능력주의와 공정성 근저에는, 사실 자신이 얼마나 좋은 환경에서 성장했는지를 잊은, 혹은 모르는, 혹은 정치를 위해 왜곡하는, 그의 선별적 기억이나 ‘나쁜’ 마음이 존재한다.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기억을 왜곡한다. 심지어 그렇게 좋은 조건을 자신에게 제공한 부모마저 모욕하고 있다. “나는 내가 잘나서 잘 된 거예요.”라고 배은망덕하게 떠들고 있다.

    그래, 알았어. 근데 그렇지 않아. 당신은 틀렸어.

    영어 강사와 입시 및 학습 상담자 생활을 했던 나는 어떤 아이들이 입시에서 ‘성공’했는지를 알고 있다. 특목고 입시나 대학입시에서 가장 유리한 조건을 갖춘 아이들은 누구일까? 예를 들자면 이렇다. 1. 아버지가 서울대를 졸업했고, 어머니도 소위 ‘명문대학’을 졸업했으며, 대치동 선경 아파트나 미도 아파트, 도곡 렉슬 등에 사는 아이들. 2. 아버지 어머니가 모두 속칭 ‘명문대학’을 나왔으며, 할아버지가 서울 강남구, 서초구나 대구 수성구 등에 큰 건물을 가지고 있는 아이들. 3. 아버지가 ‘명문대’ 출신이며, 어머니는 교사인 아이들. 4. 강남대성학원이나 메가스터디 학원, 이투스 청솔학원 등에서 1년간 매우 성실하게 공부했던, 원래 1, 2, 3에 속했던 학생들.

    이준석은 3에 속해 있었고, 3의 위력은 엄청나다. 어머니가 교사 출신이고 아버지가 서울대 경제학과 출신이라는 것은, 부의 수준과는 무관하게, 교육계에서는 금수저다. 혹은, 다이아몬드 수저는 아니라도 루비 수저쯤은 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이준석은 그걸 잊었거나 모르거나 무시하고 있었기 때문에, 교육과 능력주의와 공정성에 관한 온갖 말도 안 되는 얘기들을 떠들 수 있었다.

    여기에 속하지 않지만, 서울대학교에 진학하는 학생들이 있기는 하다. 그것은 서울대에는 ‘지역균형 선발 전형’이라는, 이준석이 매우 싫어할 ‘할당제’에 근거한 전형이 있기 때문이다. 7년 전 일이었다. 어떤 서울대 재학생이 그 전형으로 들어온 학생들이 무식하다고 비난하며, 지역균형선발전형 또한 비판하는 글을 서울대 게시판(https://snulife.com/)에 올렸었다. 그의 주장은 할당제를 비판하는 이준석의 주장과 유사했었다. 그런데 서울대가 발표한 자료에 의하면 정시나 일반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보다 지역균형 선발 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의 졸업 시점의 학점 평균이 높았다.(7)

    “서울대 2012~2016학번 학생 학업성취도 변화 추이 결과, 지역균형선발전형 평균학점이 3.38점으로 정시 일반전형 평균학점 3.25점보다 0.13점 높아.”라는 결과가 드러났다. 게다가, “1학년 1학기 지역균형선발전형 3.15점, 정시 일반전형 3.13점으로 0.02점이 차이 나나 4학년 2학기는 지역균형선발전형 3.55, 정시 일반전형 3.35으로 0.2점 차이”가 났다. 할당제는 이런 아름다운 결과를 낳았다. ‘깡촌’ 출신들이 ‘대치동 아이들’보다 높은 학점으로 졸업하기도 했었다는 것이다.

    아, 이자의 얼토당토않은 주장에 대한 글을 네 시간이나 들여서 썼다. 나의 네 시간의 노력이 많은 이들에게 진실을 알릴 수 있기 바란다.

    <각주>

    1. http://www.sisaweek.com/news/curationView.html?idxno=64159

    2. https://byul2.tistory.com/358

    https://biz.chosun.com/policy/politics/2021/06/16/TBXMF6KJ5RCJNH43PHCBU6DG4Y/

    3. https://www.khan.co.kr/politics/assembly/article/202106161448001

    4. 강동구도 그랬느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대답할 수 있다. 2000년대 초반 서울대 의예과에서 100명을 선발했다면, 그중 네 명 정도는 언제나 강동구 학생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주로 둔촌동, 명일동, 고덕동, 상일동 아이들이었다. 상일동을 우습게 보지 말라. 거기에는 한영외고와 일반고 중 가장 입시 성적이 ‘좋은’ 학교 중 하나인 한영고가 있다. 한해에는, 67명을 학부에서 뽑았던 서울대 의예과에 둔촌 주공 아파트 거주 학생들이 둘이나 포함된 적도 있었다.

    5. https://www.hankyung.com/society/article/2000051105541

    6. https://www.jjan.kr/news/articleView.html?idxno=9446

    7.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777byung&logNo=220834784398

    필자소개
    레디앙 기획위원. 도서출판 벽너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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