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자유주의와 후기 국독자
[지구화시대 자본주의―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 ③
    2019년 06월 07일 01:4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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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화시대 자본주의 :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 ②

4. 현대 신자유주의의 기원문제 (2)
― 국제금융, 국제무역, 국제 분업 삼자관계

국내의 적지 않은 학자들은 오늘날의 지구화경제와 국제질서를 ‘신자유주의체제’라고 부르며, 또 그 본질을 금융(업)자본 주도의 새로운 자본주의 축적체제라고 인식한다. 그리고 이 같은 새로운 축적체제의 기원에 대해 대체로 1970년대 초에 발생한 브레튼우즈체제의 붕괴에서 찾는 경향이 있다. 이들은 이때부터 금융(업)자본이 주도하는 지구화과정이 사실상 본격화되었으며, 이념과 정책으로서의 현대 신자유주의는 처음부터 이 같은 과정에 봉사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러나 우리가 지난 호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자유주의는 자체 발전의 역사를 갖고 있으며, 그것이 자본주의 주도의 지구화이념으로 본격 기능한 것은 1980년대 중반 이후의 일이다. 이는 ‘이념과 정책으로서의’ 현대 신자유주의 (‘체제’로서의 그것과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가 현실 자본주의의 요구에 맞춰 한 차례 자신을 변모한 것을 뜻한다. 이 때문에 여기서 관건은 과연 현실에 있어 현실 자본주의의 요구는 무엇이었는지를 밝히는 일이 된다. 과연 그것이 금융(업)자본의 이해를 전적으로 반영한 것이었는지, 아니면 자본주의 전반의 모순전개를 반영하고 있는지를 판가름하는 일이 중요하다. 여기서 지구화과정이 실제 어떻게 진행되었는지에 대한 판단은 매우 관건적이다. 그런 면에서 지난 호에서 살펴 본 인용문(지주형, 《한국 신자유주의의 형성과 기원》,p53)의 경우 지구화과정에 대한 구체적 설명이 결핍되어 있다. 특히 지구적 경제질서를 구성하는 중요 요소인 국제금융, 국제무역, 국제 분업 삼자 관계에 대한 엄밀한 규정이 부족하다. 이하에서 지구화과정에 있어 이들 삼자의 상호관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하자.

먼저, 국제금융부터 보도록 하자. 1960년대를 경과하며 서구 선진국을 중심으로 점차 본격화하는 과잉생산문제의 배경 하에서, 자본주의 ‘국제화’를 위한 돌파구를 맨 먼저 연 것은 국제금융 분야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현대 신자유주의의 기원과 관련하여 브레턴우즈체제의 붕괴를 주목한 것은 일정 타당한 측면이 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금융 주도’의 신자유주의를 성립시켰다는 뜻은 아니며, 또 ‘지구화 정책과 이데올로기’로서의 신자유주의의 탄생과도 거리가 멀다.

국제금융 분야의 변화는 당시 세계기축통화인 달러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또한 과잉생산을 해소하는데 있어 국내 일국적 차원에서의 균형달성에 가장 먼저 한계에 부딪쳤던 미국의 필요와 요구에 의해 발생하였다.(1) 미국은 당시 자신의 국방 및 재정지출 확대로 인해 달러의 대량 해외유출이 발생하고 이로 인해 국제수지 적자가 심해지자, 결국 1971~1973년에 브레턴우즈협정을 스스로 파기하고 달러와 금의 불 태환 조치를 선언함으로써 ‘변동환율제’로의 이행을 촉진하였다. 이로 인해 국제통화체제에 일대 전환이 발생하였는데, 이 과정에서 성공을 거둠으로써 미국은 국제적 범위에서 국제수지 균형을 맞출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어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된다. 그러나 그 대신 미국의 재정적자와 무역수지적자가 급속히 증가함으로 인해 1980년대 중반 이후 ‘쌍둥이 적자’ 현상이 출현하게 된다. 이로부터 다음의 국제무역과 관련한 변화를 야기하게 된다.

1980년대 들어 미국의 무역적자의 급증과 재정수지의 지속적 악화로 인한 ‘쌍둥이 적자’ 현상의 출현은, 상품무역과 자본수지 양 측면에서 세계경제의 전례 없는 심각한 불균형을 초래하였다. 그러나 이는 역설적이게도 오히려 이후 각국의 시장개방과 금융시장 자유화를 촉진시킴으로써 지구적 단일시장의 성립에 중요한 기여를 하였다.

표1. 미국의 쌍둥이 적자 (GNP 대비 비율) (단위: %)

미국의 쌍둥이 적자가 가져온 세계경제의 심각한 불균형이 결과적으로 지구적 단일시장의 성립에 미친 영향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첫째, 각국 상품시장 개방의 촉진이다. 미국은 앞서 ‘달러와 금의 불 태환’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국제통화체제 변동의 성과에 기초하여 달러발행을 남용하는데 대한 일정한 면책특권을 부여받음으로써, 외환보유고에 의해 제약받는 다른 나라와는 달리 ‘세계 소비시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는 전반적인 과잉생산에 시달리며 위축되어 있던 세계경제에 있어 일정 출구를 제공해주는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일국 중앙은행의 발권력에도 한정이 있듯이 미국의 ‘달러 발권력’에도 한계가 있다. 만약 지나치게 그것을 남용하게 되면 미국의 달러패권은 조만간에 흔들리게 될 것이다. 때문에 그것만 믿고 쌍둥이 적자를 지속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특히 국내 산업의 공동화를 촉진시켜 취업문제가 심각해지게 되면 이는 곧바로 체제 안정에 위협이 될 수 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우선 쌍둥이 적자 중 타국에 쉽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는 ‘무역적자’를 빌미로 일대 반격에 나섰다. 예컨대 ‘슈퍼 301조’를 동원하는 등 1980년대 중반부터 본격화한 세계 각국에 대한 미국의 시장개방 압력이 그것이다. 이로부터 세계 각국 시장은 과거에 비해 대폭 개방되게 되었으며, 1986년에는 이후 WTO의 성립을 가져오게 될 우루과이 다자간협상이 시작되는 등 개방화 추세가 대폭 강화되었다.

둘째, 각국의 자본시장 개방을 비롯한 ‘금융자유화’의 촉진이다. 자국의 막대한 무역수지 적자와 관련하여, 미국은 다른 나라의 상품시장 개방만을 요구하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 금융시장 개방과 자유화를 적극적으로 요구하였다. 이는 해외로 흘러나간 자국 달러가 다시 돌아올 수 있는 통로를 마련해 줌으로써, 상품무역과 관련한 경상수지 적자를 자본수지 흑자를 통해 만회하여 전체적인 국제수지균형을 달성한다는 논리에 따른 것이다. 대미 무역수지 흑자국의 입장에서 볼 때도 그것은 그리 나쁘지만은 않은 방안이었다. 왜냐하면, 무역수지 흑자로 벌어들인 막대한 달러에 대해 미국 국채나 주식 등에 투자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리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일본 등 대미 흑자국가들은 기존의 엄격한 외환관리 제도를 완화하면서 자유로운 외환거래를 허락하는 등의 조치들을 취하게 된다.(3)

셋째, 직접자본수출(FDI)이 활성화되는 등 ‘다국적기업’의 새로운 발전이 이루어지게 된다. 이는 일본과 유럽 및 미국 기업들이 상대방의 무역보복과 보호관세를 피해 서로에 대한 직접투자를 경쟁적으로 진행하는 수단으로 나타났다. 1960년대 이래 활성화된 다국적기업의 발전은 이 시기 들어 새로운 발전단계에 들어섰으며, 이 같은 다국적기업의 발전은 이후 지구화의 전면적 진전과 관련해 상당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

이상에서 보았듯이, 1970년대 초 ‘달러와 금의 불태환’을 기조로 하는 국제금융체제의 변화는 미국의 ‘쌍둥이 적자’를 출현시켰으며, 이는 다시 전 세계적으로 상품시장 개방과 자본시장 개방을 촉진시키는 계기로 작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국제금융체제의 변화를 몰고 온 기저에는 미국 자본주의의 과잉생산 문제가 가로놓여 있었다. 1960년대 내내 미국의 과도한 국방 및 재정지출 확대로 인해 달러의 대량 해외유출이 발생하였으며, 이로 인해 국제수지 적자가 심각해진 것은 미국이 기존 브레턴우즈협정을 스스로 파기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이다. 그런데 이 같은 ‘과도한 국방 및 재정지출’은 다름 아닌 과잉생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케인스주의식의 전형적인 정책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제, 지구화경제를 추동한 마지막 요소인 ‘국제 분업’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1980년대까지 국제금융 및 국제무역과 관련하여 발생한 이상의 성과들은 이미 상당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지만, 하지만 오늘날의 지구적 경제일체화 수준과 비교하면 아직도 매우 미흡하다고 할 수 있다. 좀 더 큰 시각에서 볼 경우 그때까지는 기껏해야 이후 발생할 보다 본격적인 지구경제 일체화를 위한 예비과정이었다고 할 수 있다. 진정한 경제지구화는 1990년대에 접어든 이후라야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이다.

상술한 국제유통(즉 국제무역)과 국제금융 영역에 있어서의 진전은 각국 자본 간의 국제경쟁을 더욱 가열화 시켰으며, 이는 1970~80년대 준비되고 있던 신기술혁명을 촉진시키는데 기여하였다. IT신기술혁명의 진척이 당시 다국적기업 등의 경제활동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은 사실은 다음 사례를 보면 알 수 있다. IT기술혁명의 핵심기술이라고 할 수 있는 ‘극소전자 기술’의 개발은 1960년대까지는 주로 군사적 측면에서 추진되어 왔는데, 그것이 민간부문을 중심으로 한 발전으로 전환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1971년 마이크로프로세서의 개발이었다. 그런데 이 기술은, “일본 수동계산기 업체의 주문을 맞추기 위해 애쓰던 도중 테드 호프가 발명” 한 것이었다. 그리고 IT기술혁명에 있어 또 다른 중요 기술인 ‘원격통신’의 경우, “1980년대의 탈규제와 자유화를 향한 기업주의 움직임은 원격통신의 재편성과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고 평가된다.(4)

이리하여 마침내 생산영역에서의 국제화, 즉 ‘국제 분업’에서의 일대 혁명이 초래되었다. 1990년대 들어 본격화한 IT혁명과 그 즈음 냉전의 때마침 종식은, 각각 기술과 정치적 차원에서 지구화를 가로막는 불필요한 장벽들을 제거함으로써 국제 분업의 비약적 발전을 위한 조건을 제공하였다. 특히 기술 발전은 매우 결정적인 것으로서(5), 이로부터 국제 분업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차원의 발전을 이룩하여 ‘지구적 공급사슬'(6)이라고 하는 새로운 형식을 낳게 되었다. 그리고 이로부터 앞서의 두 가지 영역 즉 국제무역과 국제금융 역시도 다시 더 한 층의 비약적인 발전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이 시기 들어 그야말로 전 영역에 있어 새로운 차원의 국제화가 이루어지게 된 셈이다. 이때부터 다국적기업은 경제생활에 있어 일상적인 현상이 되었으며 또 국내시장과 국제시장을 통 털어 진정한 경제주체가 되었다.

이리하여 이 시기에 마침내 단일한 지구적 경제가 수립되었으며, 이제 지구적 차원의 경제일체화 과정은 더 이상 역류하거나 후퇴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것은 마치 역사적으로 제1차 산업혁명을 통해 매뉴팩처(공장제수공업)가 기계제대공업으로 대체됨에 따라 자본주의가 봉건주의에 대한 최종적 승리를 확정지은 것과 같은 정도의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상의 지구화경제가 성립되는 과정을 통해 오늘날의 신자유주의는 ‘생산의 국제화’ 단계에 진입한 자본주의 전반적 변화를 그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결코 금융(업)자본의 이해를 반영하는 것과 같은 협소한 의미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 이념과 정책으로서의 신자유주의

이상 지구화과정에 대해 살펴보았는데, 이를 종합해보면 다음과 같은 점들을 확인할 수 있다.

첫째, 지구화과정을 추동하는 제 요소―국제금융, 국제무역, 국제 분업―간의 관계에 있어 일부 국내 신자유주의론자의 주장과는 달리 국제금융의 주도성이 명확하지가 않다. 오히려 이 삼자 간에 상호작용 하는 관계가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즉 한편에선 종전 후 꾸준히 지속되어온 생산과 자본에 있어 국제화의 장기적인 추세가 이어졌으며, 다른 한편에선 국제금융시장과 국제무역 등 금융과 유통 분야에서 그 당시 때마침 발생한 변화들이 서로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진행되었다. 이 과정은 장기간에 걸쳐 서서히 이루어지다가, 1980년대 들어선 이후부터는 비교적 급속한 진행을 보여 주었다.

둘째, 위 세 요소 간의 관계를 포함한 지구화과정 전반의 큰 흐름을 결정짓는 배경에는 각국이 직면한 심각한 생산과잉과 자본과잉의 문제가 존재하였다. 이는 생산의 사회화와 자본주의적 점유 간의 기본모순(7)의 발전 때문인데, 이 같은 문제는 서구 선진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공통적인 것이긴 하지만 그중 특히 미국이라는 당대 자본주의의 발전을 선도하는 국가를 통해 집약적으로 표출되었다.

셋째, 신자유주의는 이념과 정책 측면에서 이상의 자본주의의 물적 토대와 각국 상황의 변동을 반영하였다. 때문에 그것은 일종의 자본주의 실체에 대한 ‘그림자’라고 할 수 있으며, 역사의 매 시기에 있어 이들 ‘실체’의 변화에 따라 신자유주의가 주장하는 바나 내용 및 강조점이 달라졌기 때문에 그 자신 어떤 일관된 연관성을 찾기는 힘이 든다. 전체적으로 보면 그것은 처음에는 주로 국내적 차원에서 국가개입에 반대하고 시장기능을 강조하던 케인스주의의 대립물에서, 점차 자본주의적 지구화를 추구하는 현대제국주의의 패권적 이념과 정책으로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상의 분석과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교훈은 다름이 아니라, 우리가 무엇보다도 일차로 주목해야할 점은 신자유주의의 겉으로 드러나는 현상적 모습보다도 그 이면에 놓여있는 자본주의 자체의 변동이라는 사실이다. 1970년대 이후 현대자본주의가 겪고 있는 변동은 그 정도와 심각성에 있어 현재 국내 학계나 해외 일부 좌파이론진영에서 보는 것처럼 단순한 자본주의의 산업자본주의적인 축적방식에서 금융적 축적방식으로의 변화라는 차원을 훨씬 뛰어 넘는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지금까지 역사적으로 상당히 긴 기간 존재하면서 경험해왔던 일련의 중대한 변화들, 예컨대 19세기 중반이후 자유경쟁단계에서 독점단계로의 이행, 또 제2차 세계대전 종식 후 일반 독점자본주의에서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전환에 버금간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자본주의가 종전 후의 고전적인 국가독점자본주의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를 시작하였음을 의미한다. 필자는 이를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라고 부르면서 그 이전의 국가독점자본주의(즉 전기 국가독점자본주의)와 구분 짓고자 한다. 이 전기와 후기의 가장 중요한 차이점은 중심의 이동에 있는데, 즉 자본이 일국적 중심이 아닌 국제적 차원의 자본축적운동을 본격화한 점이다.

케인스주의는 일국적 균형에 치중하던 전기 국가독점자본주의에는 적합한 이론이었을지언정 점차 그 후반에 이르러선 낡은 것이 되었다. 신자유주의는 사실상 현실 자본주의의 새로운 발전에 따른 기존 균형이론으로서의 케인스주의의 이 같은 부적합성을 제때에 포착하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처럼 기존 주류이론이었던 케인스주의를 현실과 괴리된 것으로 만들었을까? 그 근원에는 케인스주의 자체에 내재하는 ‘이론상’의 결함 이외에도, 다름 아닌 종전 후 국가독점자본주의 자신이 잉태한 생산력의 거대한 발전이 존재하였다.

두 차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오랫동안 준비되어 온 제3차 과학기술혁명은 1950~60년대 들어 본격적인 꽃을 피웠으며, 이 기간 자본주의는 유례없는 장기호황과 고도성장을 경험하였다. 그러나 이로부터 생겨난 거대한 생산력은 일국 내적으로는 충분히 소화할 수 없는 것이었다. 1960년대 중후반에 들어서면서부터 점차 전반적인 생산과잉과 자본과잉 현상이 두드러졌다. 이처럼 생산력발전으로 인한 생산과잉이 점차 심각해지자, 그것이 일정 시점에 이르게 되면 더 이상 국내시장을 중심으로 한 자본운동만 가지고서는 도저히 소화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한 과정은 “자본주의적 생산의 진정한 한계는 자본 그 자체이다.”라는 맑스의 말을 생각나게 한다. 즉 자본은 끊임없는 가치증식을 목적으로 삼으면서도, 그것은 생산의 무제한적인 증가, 자기목적으로서의 생산, 노동의 사회적 생산력의 무조건적 발전을 향하여 돌진하는 생산방법 등 ‘사회적 생산력의 무조건적 발전’을 지향케 하는 그 수단과 끊임없이 충돌하지 않을 수 없다. 이로부터 확대되는 생산능력과 갈수록 그에 미치지 못하는 유효수요 간의 괴리, 즉 과잉생산 문제가 불가피하게 발생한다. 이리하여 자본주의는 그 해결책으로써 마침내 국제적 차원의 재생산운동을 본격화하는 ‘생산의 국제화’ 시대를 열게 된다.

여기서 잠시 필자가 왜 이미 지구적 차원의 운동을 본격화한 자본주의를 ‘국제독점자본주의’라 부르지 않고, 여전히 ‘국가독점자본주의’ 내에서 전기와 후기를 구분하려 하는지에 대한 얼마간의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고 보인다. 사실 지금의 자본주의가 국제독점자본주의인지 국가독점자본주의 인지를 규명하는 일은 본 연재 전체를 포괄하는 과제이기도 하다.

다만 여기서 대강의 이유를 밝히자면 대체로 다음 두 가지를 들 수 있다. 첫째, 현 국제독점자본(다국적기업으로 상징되는)은 한편에선 전 지구적 시장에서 활동하는 ‘보편적 자본’의 성격을 지님과 동시에, 다른 한편에선 공간적 차원에서만 지구적일뿐 그 뿌리는 여전히 특정 국가에 둘 수밖에 없는 ‘특수적 자본’으로서의 이중적 성격을 지닌다는 점이다. 둘째, 현 국제독점자본은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를 반영해줄 상부구조 즉 진정한 ‘자본주의 세계정부’를 아직까지 성립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 때문이다. 이 두 가지는 현 단계 국제독점자본 발전의 미성숙성을 반영한다. 또한 이는 비록 지구적 단일시장이 지금 초보적으로 성립되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이 진정으로 성숙하기까지는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요할 것이라는 객관적 상황을 보여준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듯, 1970년대를 거치면서 발생한 케인스주의와 신자유주의 양대 자본주의 주류이론의 지위교체는, 자본분파 간의 분쟁이나 축적방식의 변화와 같은 부분적이고 기술적인 시각만 가지고서는 설명할 수 없는 매우 심각한 자본주의 자체의 근본적인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물론 국내의 논자들도 지금의 자본주의가 과거와는 다른 무언가 큰 변화가 발생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있다. 지구적 경제일체화가 나날이 우리 눈앞에 펼쳐지고 있는 현실에서 그 정도의 인식을 하지 못할 사람은 드물 것이다. 그러나 이들 중 많은 사람은 그것을 금융(업)자본의 운동을 중심으로 해서 바라보기 때문에, 그리고 산업자본에서 금융자본으로의 자본 분파 간 주도권 이전이라는 시각을 중심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그들은 위에서 언급한 자본주의의 기본모순의 발전에 따른 근본적이고 전반적인 변화에 대한 전체적 조망을 하지 못하고 그 의미를 축소시키고 추상화한다. 이렇듯 같은 지구화경제를 바라보는데 있어서도 그 의미는 매우 다르다.

지구화시대의 자본주의 변화와 관련한 이상의 내용들은 ‘생산의 국제화 라는 개념범주가 아니고서는 온전히 담아내기 힘들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이 ‘생산의 국제화’는 ‘생산의 사회화’의 최고단계를 의미하며, 국내적 차원에서 더 이상 해결할 수 없게 된 자본주의의 과잉생산 위기를 국제적 차원에서 해결하려는 돌파구인 동시에, 다른 한편 새롭고 더욱 복잡한 모순의 출발점이 된다. 즉 그것은 자본주의에 있어 ‘생산의 국제성과 자본의 국적(國籍)성 간의 모순’이라는 지구화시대의 새로운 주요모순의 성립을 가져오며, 이는 또 ‘현대제국주의’를 성립시키는 주요 근거로서 작용하게 된다.(이 주제에 대해선 이후 연재에서 다룸)

이 ‘생산의 국제화’는 경제지구화의 일련의 전개에 있어 가장 높은 고지라 할 수 있다. 그것은 ‘국제 분업’에 있어 획기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동시에 지구경제의 일체화를 또한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든다. 국제무역과 국제금융 분야의 성과 역시 지구경제의 일체화와 관련하여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러나 국제 분업의 성과에 비교한다면 그 깊이와 안정성 면에서는 훨씬 뒤떨어진다. 때문에 만약 국제 분업에 있어서의 발전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기타 영역에서의 성과는 언제라도 쉽게 번복될 수 있는 것이며 오직 국제 분업에 있어서의 확고한 진전만이 경제지구화 과정을 더 이상 불가역(不可逆)적인 것으로 만든다고 할 수 있다. 2017년에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들어선 후 취하고 있는 ‘보호무역주의’와 작금의 중미 간 무역전쟁에 있어 미국의 고전은 그 점을 잘 말해준다. 이제 패권국가 미국조차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지구경제의 일체화는 진전되었다라고 볼 수 있다.

이제 본장의 과제인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대한 규정을 내릴 때가 되었다. 오늘날 지구화시대의 신자유주의의 본질은, 넓은 의미에서 본다면 후기에 들어선 국가독점자본주의의 정책과 이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좁은 의미에서는 현대제국주의를 대표하는 미국의 패권주의적 정책과 이념이라고도 정의할 수 있다.(8) 그것은 배경에 있어 전기(前期) 국가독점자본주의 내에서 잉태된 생산력의 전반적인 발전에 따라, 일국 내 균형 추구에 실패한 자본주의가 국제적 차원에서 새롭게 균형을 추구하려는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갖는다. 자본주의는 이 시기에 이르러 생산의 국제화를 본격적으로 추진함으로써, 이미 고도화한 자본주의 기본모순을 최고수준으로까지 격화시킨다.

지금까지 본장의 논의를 통하여 신자유주의의 본질에 관해 살펴보았다. 다음번에는 계속해서 후기 국가독점자본주의론의 기초라 할 수 있는 ‘국제 분업’과 관련한 논의를 전개하도록 한다. 이를 통해 본 장에서 제기한 ‘생산과 자본 국제화’에 관한 좀 더 심도 깊은 이해를 도모한다. (다음 호에 계속)

<각주>

1. 종전 후 선진 자본주의진영을 중심으로 펼쳐진‘케인스주의 시대’에는 자본주의 생산의 균형 관계의 중점이 상대적으로 ‘일국 내’로 맞추어졌다. 자본주의 생산은 그 구조에서 보면 크게 ‘생산수단 생산부문’과 ‘소비수단 생산부문’ 둘로 나누어지는데, 마르크스는 <자본론>에서 전자를 ‘Ⅰ부문’, 후자를 ‘Ⅱ부문’이라 불렀다. 그런데 사회적 생산의 균형과 관련한 시각에서 볼 경우, 자본축적에 있어 ‘축적률’과 ‘축적구성도’의 이원적 불균형 때문에 자본주의의 경제구조가 단지 이상의 양대 부문만으로 구성될 경우에는 매우 불안전하게 된다. 이 같은 불균형을 해소하는 방식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식민정책을 통해 외부시장을 끊임없이 확대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 같은 방식은 결국 점령할 식민지의 제한성으로 인해 곧 한계에 부딪치고 만다. 불균형문제를 푸는 다른 방식은 외부시장이 아닌 국내에서 새로운 수요를 창출하는 것이다. 이 경우 관건은 양대 부문이 아닌 새로운 ‘제3의 소비’ 영역을 찾아내는 데 있다. 여기서 자본주의 선진 각국은 2차 대전 종식 후 ‘국가’의 역할에 대해 새롭게 조명하게 된다. 즉 국가로 하여금 시장을 초월하는 방식으로 제3의 소비를 의식적으로 만들어 내도록 하였다. 이리하여 종전 후 국가독점자본주의로의 이행과 함께 정부의 경제기능 강화에 발맞추어 자본주의사회의 ‘비생산부문’이 신속히 발전하게 된다. 마침내는 기존의 양대 부문에 견주어 새롭게 사회경제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수준으로까지 성장 발전하게 된다. 우리는 그것을 ‘제3부문’이라고 부를 수 있다. 이상의 제3부문의 창출에 의한 종전 후 국가독점자본주 하의 내부 균형기제는 상당 정도 유효한 것이어서 전후 일정 기간 잘 작동하였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균형 역시도 급속한 생산력발전이 지속됨에 따라 자국 내의 과잉 생산력을 모두 해소하기에는 역부족이게 되었다.

좀 더 자세한 내용은 이하 참조: 김정호, <포퓰리즘과 자본주의 ‘전반적 위기론’>, ‘전반적 위기’ 제4단계에 진입한 자본주의, http://www.redian.org/archive/129690.

2 [法]弗朗索瓦·沙奈,《金融全球化》,p101에서 재인용.

3. 다음의 일본의 사례는, 당시 대미흑자국가의 입장에서 왜 금융자유화와 개방이 필요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초과저축의 해외투자를 편리하게 하기 위해, 자본의 자유유동제도의 조건을 건설하는 것이 필수적이게 되었다. 이 조건을 갖추게 하는 구체적 조치로써, 1980년대 이래 실시한 외환관리자유화 및 관제완화·민간자본 교역관제의 폐지는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1980년에 제정된 신 <외환법>은 원칙상 자유로운 외환거래를 허락하여, 기왕의 엄격한 금지와 예외적인 외환거래를 허용하는 관제조치를 대체하였다. 특히 정부당국은 일본·미국 화폐위원회(1984년)의 충고를 받아들여, 금융·자본거래자유화와 국제화의 환경건설의 노력을 강화하였다. “[日]桥本寿郎 长谷川信 宫岛英昭 共著,《现代日本经济》,pp227-228. 한국도 1980년대 후반 ‘3저 호황’으로 막대한 대미흑자가 발생하자, 이후 외환관리법을 개정 완화하고 금융·자본거래자유화를 실시하는 등 금융자유화와 개방화조치를 본격화하였다.

4. 인용부분의 출처는 각각 마뉴엘 카스텔, 《네트워크 사회의 도래》,p94, 95.

5. 당시의 신기술혁명이 지구화경제의 수립과 관련하여 얼마만큼 결정적인 중요한 의의를 갖는 지는 다음 인용문을 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충분히 성장한 경제의 지구화는 새로운 정보·커뮤니케이션기술의 기반 위에서만 진행될 수 있었다. 첨단 컴퓨터시스템은 복잡한 금융상품을 관리하고 고속으로 거래를 실행할 수 있는 새롭고 강력한 수리적 모델을 허락했다. 정교한 커뮤니케이션시스템은 실시간으로 지구 곳곳의 금융센터와 연계됐다. 기업들은 온라인 관리로 국가와 세계를 가로질러 활동할 수 있게 되었다. 극소전자 기반의 생산은 부품의 표준화와 완성품의 주문화를 가능하게 했다. 완성품은 국제적인 조립라인으로 편성된 유연한 대량생산으로 나왔다. ……1990년대 말 인터넷은 새로운 형태의 지구적 비즈니스 기업인 네트워크 기업의 기술적 중추가 되었다,”위의 책,p182.

6. 여기서 ‘지구적 공급사슬’을 정의하자면, 그것은 상품이나 서비스의 가치를 실현키 위해 생산‧판매‧회수처리 등의 과정을 연결하는 높은 수준의 국제 분업이자 국제적 다국적기업의 네트워크 조직이라 할 수 있다. 그 전형적인 실례로 미국 포드 자동차회사의 국제적인 생산 분업 체계를 들 수 있다. 예컨대, 이 회사의 차체와 차체밑판은 프랑스에서 생산되며, 모터는 영국에서, 바퀴와 유리는 네덜란드에서 생산된다. 또 열쇠·방향판·연료탱크·앞바퀴는 독일에서 생산되고, 주유관은 노르웨이, 전동가죽벨트는 덴마크, 산열기와 스팀계통은 오스트리아, 차축과 바람막이 유리는 일본, 속도계는 스위스, 일반 차 유리와 실린더는 이탈리아, 공기정화기와 저지 및 후시경은 스페인, 차 음향계통은 캐나다에서 각각 생산된다. 기업 본부가 있는 미국에선 단지 차바퀴와 와이퍼만이 생산될 뿐이며, 마지막으로 영국의 하리우드에서 최종 조립된다. 이렇듯 국제 분업이 기업 내 분업의 일종의 부속물이 된다.

7. 자신의 생산수단과 노동에 직접 의거하는 소생산자 생산 사회와는 달리, 자본주의사회에 들어서면 생산수단과 생산과정 자체가 변모되어 사회화 된다. 이 경우 생산물은 이미 자신의 노동에 의한 생산물이 아니라 완전히 다른 사람 노동의 생산물임에도 불구하고, 자본가들은 단지 자신들이 ‘생산수단의 점유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전히 계속해서 이들 생산물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한다. 이로부터 자본주의 생산이 야기할 수 있는 현대사회의 일체의 충돌의 맹아를 포함하게 된다. 예컨대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의 대립’, ‘개별사업장에서의 생산의 조직성과 전체 사회적 생산의 무정부 상태 간의 대립’을 포함한 자본주의 일체 모순이 이로부터 파생되게 된다.

8.참고로 다른 논자들의 정의를 소개하자면 이러하다. 우선 신자유주의에 대한 초기 연구자인 촘스키의 규정은 학자들에 의해 많이 인용된다. 그는 간주하길, ” ‘신자유주의’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전적 자유주의사상에 기초하여 건립한 하나의 새로운 이론체계이며, 아담 스미스가 그 창시자로 불려진다. 이 이론체계는 또한 ‘워싱턴 컨센서스’라고 불리어지는데, 일부 전 세계질서와 관련한 측면의 이론체계를 포함한다.”[美]诺姆·乔姆斯基,《新自由主义和全球秩序》,p3. 프랑스 ‘맑스 무대협회’(Association Nationale “Espaces Marx”)의 회장 코온·사이는 직접적으로 지구화의 시각에서 신자유주의에 대해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신자유주의는 자본주의 지구화의 이데올로기적인 이론적 표현”이다. (위의 책,p2) 이 같은 규정은 조금 추상적인 느낌을 준다. 신자유주의가 고취하는 것은 일반적인 경제지구화가 아니라, “슈퍼 대국이 주도하는 지구적 경제·정치·문화 일체화 즉 지구 자본주의화를 강조하고 추진” 하기 때문이다.《新自由主义评析》,pp4-5. 또 다음과 같은 정의도 있다. 신자유주의는 “국가독점자본주의의 국제독점자본주의로의 전환의 요구에 순응하는 이론사조·사상체계이며 정책주장이다.”(위의 책,p4) 이는 상당히 타당성이 있다. 그러나 ‘국제독점자본주의’라는 개념이 일정 혼란을 줄 수 있기 때문에, 필자는 이를 피하고 대신 ‘후기’ 국독자 개념을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필자소개
김정호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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