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쓰 문제와 중국 사회,
    이우연씨의 글에 답하며
    [반론]언론자유와 노동탄압 문제 등
        2019년 02월 22일 02:2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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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우연씨의 기고 글에 대한 김정호씨의 반론 글이다. 이우연 글과 마찬가지로 상당히 긴 글이지만 나누지 않고 게재한다. 자쓰 분규를 계기로 중국 사회의 성격에 대한 논의로 논점이 확장되고 있는 느낌이다. 사실관계에 대한 이해부터 사회성격에 대한 판단까지 이견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한국의 진보진영에서 이 쟁점에 대해 구체적 포괄적으로 이해하기에는 아직 간극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만 두 사람의 토론이 고민을 자극하고 국제적 인식의 지평을 확장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둘 사이의 토론에 참전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다면 언제나 환영이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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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정호의 자쓰 분규 관련 기고 글

    * 이우연의 김정호 자쓰 글에 대한 반론과 비판 글

    이우연씨가 본인의 레디앙 ‘자쓰 사건’ 관련한 두 번의 글에 대한 장문의 반박 글을 보냈다. 이씨의 말대로 그 글에는 많은 관련한 쟁점들이 담겨 있다. 우선 신화사 언론보도에 대한 신뢰성 문제를 비롯해서, 그간 중국의 노동과 언론 탄압 상황, 중국사회 성격문제, 중국공산당에 대한 판단, 국제연대문제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조사 없이 발언권 없다”는 마오쩌동의 유명한 ‘실사구시’ 관련한 철학적 태도까지도 언급하였다.

    먼저 감사드린다. 이렇게 많은 주제들에 대해 중국문제에 관해 앞으로도 풍부한 논의를 할 수 있게 된데 대해서 말이다. 필자는 중국문제가 한국 변혁운동진영에서 한번은 공개적이면서 정식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평소에 갖고 있었다. 이우연씨의 반박 글은 이를 위한 또 하나의 계기를 마련해 주는 것이라고 판단된다. 하지만 지금 당장 한꺼번에 제기된 모든 문제를 다 다룰 수는 없다. 레디앙 독자들 역시도 중국유학을 직접 경험한 두 사람이 여러 가지 주제들에 대해 시시콜콜 다 논쟁하는 것을 지켜볼 여유는 없을 것이다. 우선 이번에는 자쓰 사건과 직접 관련된 두세 가지 문제에 집중토록 하자.

    본문에 들어가기에 앞서 한 가지 시정하고 사과 드릴 일이 있다. 필자의 불찰로 지난번 글 <중국 노동문제 관련 보도에 대해>에서 ‘레프트21의 김용욱’ 기자를 ‘참세상 김용욱’ 기자로 혼동하였다. 이 점 시정하는 바이며, 이 때문에 진보언론의 발전을 위해 분투하고 있는 ‘참세상’과 그곳 기자인 ‘김용욱’씨의 명예에 본의 아니게 불이익을 입힌 점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1. 언론 매체의 신뢰성 문제
      ―자쓰 사건에 대한 ‘신화사’의 보도는 얼마만큼 믿을 수 있나?

    우선 이우연씨는 ‘자쓰 사건’ 자체의 진상에 대해 직접 들어가기보다, 먼저 필자가 ‘신화사’ 보도를 인용하였다는 점부터 문제 삼았다. 그도 그럴 것이 사건의 객관적 진상을 먼저 파악하는 것이 본 문제에 있어선 일차적인 관건이라 할 수 있는데, 그러자면 서로가 알고 있는 사실에 대해 그것이 근거하는 정보원(源, 소스)을 정확히 밝히는 것이 문제로 될 수밖에 없다. 이 점에 대해선 필자도 동의하며 별반 이의가 없다.

    필자는 자쓰 사건과 관련하여 신화사 기자의 글을 번역해 소개하고 주로 그것에 기초하여 사건을 해석하였다. 이 경우 신화사가 중국정부 산하의 매체라는 점이 사태를 이해하는데 있어 결정적인 장애는 되지 않으리라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중국과 한국의 언론체계는 다르기 때문이다. 한국은 공공매체의 경우 민간매체가 주류이고, 그것들은 대부분 돈을 가진 자 즉 자본가들이 소유한다.

    그러나 이런 한국적 현실을 중국에 그대로 대입해서는 안 된다. 중국은 돈 많은 자들이 언론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대부분 사회 전체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언론매체는 ‘언론분야 국유기업’이라 할 수 있다. 또한 이러한 언론매체는 종이신문과 각종 정기간행물, 공중파 방송, 인터넷 등을 포함하여 방대한 언론 생태계를 구성한다. 예컨대 중국에서 발행되는 신문 가지 수만 하더라도 2017년 기준으로 1884개나 되며, 정기간행물은 1만개 이상이다.(<2018년 중국통계연감>)

    이들 역시도 지금 시장경제 하에서 과거와 달리 스스로 생존해야 하기 때문에 천편일률적일 수는 없으며, 각자의 특색을 찾기 위한 노력과 함께 생사에 가까운 분투를 한다. 중국 사람들은 이 같은 다양한 각종 매체를 통해 각자의 관심사를 만족시킨다. 이 때문에 단지 국가 언론매체라고 해서 그것이 한국처럼 일부 소수 지배계층이나 통치자의 이해를 대변한다고 보는 것은 큰 오산이다. 물론 이는 아마도 중국사회의 성격을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견해를 달리할 수도 있다.

    중국 언론매체 전체 상황에 대해선 우선 이 정도로 소개 하고, 직접 사건으로 들어가자. 형식이야 어떻든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언론이 전달하는 ‘내용’이다. 여기서 이우연씨의 글은 신화사가 정부매체임을 지적한 뒤 사건과 관련한 보도에 있어서 이하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신화사> 보도의 가장 큰 문제는 의도적으로 편집된 사실 관계들만을 보도한다는 점이다. 첫째, 자쓰 공장 노동자들이 맨 처음 투쟁을 시작한 이유가 담겨져 있지 않다. 이것이 중요한 이유는 6월부터 8월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5월 이전에 이 공장 노동자들이 겪은 삶들로부터 전개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뭐가 그렇게 억울했는지, 어떤 이유 때문에 노동조합을 만들려고 했는지 그들이 주장하는 이유는 아예 실려 있지 않다.”

    과연 그러한가? 필자가 보기엔 이런 것들은 어느 정도는 이미 배경 설명으로 전제되어 있다고 보인다. 왜냐하면 신화사 기자가 이 기사를 쓸 무렵인 8월 24일 ‘자쓰 사건’은 이미 네티즌과 일반 시민 사이에 상당 정도 알려졌으며 소개가 된 상태라고 보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한 차례 인터넷 상의 격렬한 논쟁이 진행 중인 상황이었던 것으로 인식된다. 중국에서 인터넷상의 논쟁은 필자가 경험한 바에 의하면 대단히 뜨겁고 격하다. 한번 부각된 쟁점에 대해선 수많은 장문의 주장 글들이 쏟아져 나오며, 이에 대해 댓글이 수백 개 수천 개씩 따라 붙는 것은 다반사고 공감표시는 수백만 개씩 나온다. 이것이 중국 인터넷 상의 분위기다.

    때문에 신화사 기자는 사건 초기부터 아마 모든 것을 설명할 필요는 없었다고 느꼈을 수도 있다. 이런 것들부터 모두 설명을 시작하려면 기사가 너무 장황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자세히 보면 신화사 기사의 모두엔 분명 기본적인 설명이 들어 있다.

    예컨대 “자쓰의 휴식시간 조정이 불합리하며, 정상적으로 연장근로 임금을 지불하지 않고 있다. 고온 하의 작업 시 보조비 지급을 정상적으로 하지 않고, 각종 불합리한 벌금과 노동자가 매주 집단 행진하면서 회사를 위한 광고를 하도록 강제하고 있다.”라든지, “금년 들어 자쓰의 관련한 제도규정에 대한 불만 때문에 여△총은 마찬가지로 자쓰에 대해 불만을 가진 직공 유△화(刘某华), 미△평(米某平) 그리고 다른 직공들과 결탁해서 노조설립을 요구하기 시작하였다. 회사 명의로 다른 직공들을 향해 노조건립을 하자는 유인물을 나누어 주고, 노조설립을 위한 서명 활동을 시작했다. 그에 앞서 금년 5월에 여△총은 근무태만, 싸움 등의 행위로 자쓰에 의해 해고당하였다. 노동중재 신청을 하였는데, 그 처리 결과는 그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등이 그것이다. 이 정도면 중국의 독자들도 대강 그 배경을 이해하지 않았을까 성 싶다.

    그런데 이렇게 반론하고 있는 이우연씨에게 필자는 반문하고 싶다. 왜 필자가 신화사 입장을 소개하기 이전에 중국 쪽 주류 입장에 대해선 일체 언급하지 않았느냐고? 즉 한겨레를 비롯한 국내언론들이 일방적으로 중국정부의 ‘노동탄압’ 소식을 전했을 때, 왜 이씨는 공정하게 나서서 그 반대쪽 발표에 대해서 똑같이 국내 독자에게 소개하지 않았느냐는 말이다. 아마 그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우선 이씨가 중국정부에 대해 그런 호감을 갖지 있지 않다. 이씨의 글 전체에서 느낄 수 있는 것처럼 그는 애초 중국정부를 ‘자본가계급’의 정부로 보고 타도대상으로 규정한다. 또 그런 식으로 똑 같이 양쪽 주장을 늘어놓다가는 아마 많은 지면만을 차지할 뿐 무의미한 글이 되기 쉽다. 이처럼 스스로 못하는 일을 다른 사람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보다도 보다 핵심적인 문제가 있다. 신화사 보도의 신빙성을 부정하고 있는 이우연씨는 자신 정보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있다. 필자는 이 점이 무척 궁금하다. 그는 마치 이것저것 모두 공평하게 섭렵했다는 듯한 태도로 말하는데 정작 출처를 밝힌 곳은 없다. 그럼에도 “조사 없이 발언권 없다”는 명언으로 자신이 직접 조사했다는 듯한 인상을 준다. 상식적으로 전문적인 기자라 할지라도 어느 사건을 맡아서 그것을 취재하는 것은 상당한 돈과 시간, 그리고 때로는 인맥과 연고 등도 필요하다. 더구나 낯선 땅인 중국 그 크나큰 나라에서는 더욱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필자가 볼 때는 한겨레 기자를 포함한 많은 경우 특파원이란 사람들이 하는 일들은, 자신이 직접 사건 현장에 내려가서 취재하기 보다는 기껏해야 홍콩의 친서방계 언론들의 기사를 번역하여 소개하는 정도이다. 설령 이씨와 같은 아마추어 기자가 직접 몇 사람을 취재했다 한들, 인터뷰 대상의 선정과 진행방식 등에 있어 신뢰성 문제가 아직 남는다. 이씨 스스로가 신화사 기자가 취재하여 쓴 글을 의심하듯이 말이다. 그의 ‘자쓰 사건’ 관련한 실제 글을 통해 이런 문제점들을 하나하나 짚어 보기로 하자.

    “자쓰 사건 이후 연행된 이는 100명에 가깝고, 2월 1일 기준 풀려나지 않고 있던 숫자는 54명이다. 여기엔 가택 연금 상태의 약간 명이 포함된다. 김정호는 이들 대부분이 풀려났을 것이라고 믿지만, 그것은 8월 24일 당일 연행된 이들에 한해서일 뿐, 이후 지속적으로 연행된 이들, 특히 상당수의 북경대와 인민대 학생들을 포함하면 여전히 54명이 갇혀 있다. 스스로 제대로 조사하지도 않고 ‘아마 대부분 풀려났을 것이다’라고 말하는 건 무책임하다. 인터넷을 통해 조금만 검색해 봐도 알 수 있는 사실을 조사하지 않았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딕체는 필자 강조)

    이우연씨는 결국 인터넷을 통해 알았음을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가 자신의 글에서 자주 언급하는 “조사 없이 발언권 없다”고 하는 것은 결국 ‘인터넷 검색’을 의미하는 듯하다. 즉 직접 본인이 발로 뛰어 다니고 체험하면서 쓴 그런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인터넷 뉴스의 근원을 함께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 좀 더 묻고 싶은 것은, 이 54명의 연행자들이 풀려나지 않은 구체적 사유, 즉 당국이 이들을 무슨 혐의로 구속하고 있는지 등을 확인할 수 있었으면 더 좋겠다. 어떻든 그의 말을 계속해서 들어 보도록 하자.

    “이들이 연행되는 과정은 실제로 무법천지에 가까웠다. 목격자들에 따르면 연행되는 과정에서 어떠한 ‘고지’도 없었으며, 심지어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기도 했다.”

    두 가지 문제를 제기하고 싶다. (1)목격자에 따르면? 어떤 목격자이며 어떤 언론이 소개한 목격자인가? (2) 중국의 형법체계에 대한 판단이 남는다. 아직 ‘미란다’ 원칙이 공표되고 실시된 지 2~3년 밖에 안 된 터이라 법 집행과정에서 수사관들이 종종 실수를 범할 수도 있다. 중국 뉴스에는 그런 사례들이 가끔 소개된다. 한국도 1987년 민주화가 실시된 후 그것이 실제 일상으로까지 정착된 과정에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였음을 기억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제 법정에 가면 이런 것들이 모두 공소 측에 불리하게 되며 특히 불법적 자백은 일체 증거가 될 수 없다. 그리고 현재 중국에선 재판과정이 대부분 공개된다. 정치국원이었던 충칭 서기 보시라이의 재판조차 공개리에 진행되었다. 피고와 원고 간의 법정 공방이 3시간 가까이나 전개되었다. 많은 네티즌들은 인터넷 생중계를 통해 이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구경하였다. 매우 민감한 최고위직 재판 (자칫 정치적 일급기밀과 비리가 법정 현장에서 나올 수 있다!)이 이러할 진데, 일반인의 경우 재판공개는 더욱 쉬운 일일 것이다.

    만약 법정에서 연행과 구금 그리고 신문 과정에서의 각종 불법 사실들이 폭로되게 되면 어떤 사태가 벌어질까? 현재 중국의 형법질서는 이런 점들까지 모두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게끔 변화되었다. 이우연씨는 이처럼 점점 현대화하고 있는 중국의 사법체계에 대해 일언지하에 무시하는데, 그것은 그가 중국사회의 빠르게 변화하는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줄 뿐이다. 아래 인용문을 보면 더욱 그렇다.

    “북경대학 마르크스주의학회(北京大学马克思主义学会) 소속의 한 대학생이 연행될 땐 대낮에 카페에서 친구와 함께 커피를 마시다가 일방적으로 여러 차례 두들겨 맞고 끌려가기도 했다. 이는 이 사건과 무관한 동료 학생의 증언에 의한 것이다. 그 학생은 이 사실을 목격한 후 너무 놀라고 경악한 나머지 자신의 위챗을 통해 이 사건을 고발했다. 하지만 그 친구 혹은 다른 이들이 공유해 올린 이글은 올리는 족족 삭제되었다.”

    이 글을 보노라면 이씨가 마치 실제 경험한 듯한 현장감이 넘친다. “조사 없이 발언권 없다”고 강조하였는데, 실제 그는 이들 목격자들을 만나서 확인해 보았나? 역시 정보의 출처가 문제가 되는 것 같다. 아마도 이우연씨가 이들을 모두 직접 만나 확인하지는 못했을 터이니깐 말이다. 계속해서 그의 글을 따라가 보자.

    “나아가 구속된 이들은 6개월이 가깝도록 행방이 묘연하기도 했다. 5개월이 지나서야 자신이 ‘유죄’라고 말한 학생들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변호사 접견도 이뤄지지 않았으며, 어디에 있는지 그 부모조차 알 수 없는 상황이다. 광둥성 경찰서 어딘가에 있을 것이란 추측이 있을 뿐이다. 중화인민공화국헌법 제37조는 ‘중국공민은 인민검찰원의 승인이나 결정 또는 인민법원의 결정이 없이는 체포되지 않고, 불법 구금 및 그 밖의 방법으로 신체의 자유를 박탈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규정하지만 이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우리는 이 글에서 글쓴이가 자신이 스스로 확인하지도 않은 사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쉽게 느낄 수 있다. 6개월간 행방이 묘연하다는 걸 한국에 있는 이우연씨가 추적하고 있지는 않았을 터이니깐. 그런데 그는 이 같은 출처를 밝히지 않은 모호한 소식과 중국 헌법 제37조를 과감하게 연계시킨다. 중국의 ‘헌법’은 사실상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는 것이며, 이로부터 그는 독자들에게 중국에선 헌법이나 법률 규정이 사실상 종이쪽지에 불과하다는 ‘인상’을 심어주려 한다. 그것은 필자의 눈엔 교묘한 ‘일반화’ 작업이라고 보여 진다. 선동가라면 몰라도 ‘학자’라면 극히 신중해야 할 부분이다. 왜냐하면 자칫 이런 곳에서 진리를 탐구하는 사람으로선 무엇보다 두려운 치명적인 오류를 범하기 쉬우니깐. 그럼에도 그의 글에는 계속해서 비슷한 ‘일반화’가 나온다.

    “노동자가 공회에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 역시 대다수 공회에서는 불가능하다. 자신이 일하면서 겪는 부당한 일을 공회에 호소했을 때 묵살되거나 무마되었다는 사례들에 대해 김정호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이 역시 극소수 사례에 불과하니 중국은 노동탄압 국가가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도대체 어떤 근거로 “노동자가 공회에 자신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것 역시 대다수 공회에서는 불가능하다”는 일반적 결론을 도출하는 것일까? 필자에게도 중국 공회(노조)와 관련한 자료가 있는데, 거기에는 훌륭한 활동사례도 많이 열거되고 있다. 따라서 통계적 인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만약 노동탄압 사례가 ‘극소수’라면 분명 중국은 노동탄압 국가라 부를 수 없다. 그런데 개별 사업장 차원에서의 노동탄압 사례는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발생할 수 있다. 예컨대 중앙정부의 ‘일반적’ 친노동 정책기조와는 달리, 그것을 아직 따라잡지 못하는 지방차원에서 관료나 공회간부의 ‘미숙함’, 또는 일부 부패 관리나 공회간부의 사업주와의 결탁 등도 원인일 수 있다. 그런 사례들은 실제 중국에서 종종 발생하며 언론에도 폭로된다. 그러나 이런 경우는 대개 문제가 심각하지는 않다. 이들은 대부분 ‘개별적’이며 향후 충분히 개선될 소지가 있다. 중요한 것은 이런 개별 사건들이 중국에 대해 ‘노동탄압 국가’라는 일반적 결론을 내리기 위한 보편성을 갖느냐는 것이다.

    이상에서 우리는 이우연씨의 주장과 관련하여 그 출처가 불분명한 문제점이 있음을 지적하였다. 이쯤에서 필자가 발견한 중요한 사실을 하나 공개해야겠다. 필자가 확인한 바로는 이우연씨가 의거하는 많은 정보는 ‘위키백과’ 및 그와 링크된 부분, 그리고 <중국노공통신(China Labour Bulletin)>에서 나온다는 것이다. 만약 필자의 추측이 틀리다면 이씨의 교정을 바란다. 즉 필자가 위에서 인용한 것들에 대해 이씨가 하나하나 그 정보의 출처를 밝혀주면 된다. 다행히 위키백과는 규칙상 매 정보마다의 출처를 밝히도록 되어 있다. 그래서 필자는 워키백과의 ‘자쓰 사건’과 직접 관련한 부분에 대하여 이우연씨의 주장과 같거나 비슷한 부분들의 뉴스원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랬더니 놀랍게도 <미국의 소리>와 <자유아시아방송>의 경우가 대부분이었으며, 일부 영국 <BBC>나 <독일의 소리 Deutsche Welle> 등도 있었다. 다시 말해서 거의 서구매체 보도가 주였다는 것인데, 90% 이상이 그러하였다. 의심나면 다음 링크를 통해 독자들이 직접 확인해 보기 바란다.

    (https://zh.wikipedia.org/wiki/%E4%BD%B3%E5%A3%AB%E4%BA%8B%E4%BB%B6)

    그런데 이들 매체들은 도대체 어떤 조직인가? 이우연씨가 ‘신화사’의 신뢰성에 대한 문제제기를 했듯이 우리도 잠깐 이들을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소리>와 <자유아시아방송>을 살펴보도록 하자.

    먼저 <미국의 소리>를 보자. 그것은 미국 정부기관인 신문처(U.S. Information Agency-USIA)의 해외 라디오방송체계에 속한다. 1942년 2월 24일 2차 대전 때 설립되었으며, 당시에는 주로 독일어 방송으로 대독 선전전을 담당하였다. 이후 냉전시기에는 그 중점이 소련과 동구권 그리고 중국으로 바뀌었다. 이 방송국의 책임자는 대통령이 직접 임명하며, 방송사업 관련해서는 국무부의 ‘대외정책지도’를 받도록 되어 있다. 부방송국장과 각 부서의 책임자는 모두 미국 외교관들이 담당하는데, 경비는 100% 정부에서 책임진다. 미국 의회의 비준을 받아 1976년 7월 발효된 <‘미국의 소리’ 규약>에는 “전세계 대중에게 미국의 장기적 이익에 부합하는 방송을 직접 수행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이상 ‘바이두’ 참조) https://baike.baidu.com/item/%E7%BE%8E%E5%9B%BD%E4%B9%8B%E9%9F%B3/22610921?fr=aladdin)

    다음엔 <자유아시아방송>에 대해 살펴보도록 하자. 이 방송국은 1994년 미국 의회가 3000만 달러를 출자한 돈으로 설립되었는데 1996년부터 정식 방송을 시작하였다. 겉으로는 민간방송으로서의 신분을 갖고 있지만, 사실상 미국 국제방송국(IBB)에 속하면서 미국 의회의 자금을 받는다. 2007년에 지급된 예산은 3000만 불이 넘는다. 이 방송국의 특징은 <미국의 소리>나 영국 BBC 등과 비교하면 두드러진다. 후자 역시 비록 이데올로기적 색체를 띠고 있긴 하지만, 그래도 대외적으로는 ‘중립’과 ‘객관’ 이라는 모양새를 갖추려 애쓴다. 하지만 <자유아시아방송>은 냉전적 사고를 노골적으로 띠고 있는 매체라 할 수 있다.(이상 王积龙 석사논문: 《自由亚洲电影研究》,《四川大学》)

    이 정도면 이우연씨가 자쓰 관련 정보를 얻고 있다고 보이는 뉴스원의 성격이 어떤 것인지 독자들도 대강 짐작이 갈 것이다. 이들 매체들은 완전히 미국의 통제 하에 있으며, 때문에 현재 미국이 가장 전략적 견제 대상으로 삼고 있는 중국에 대해 결코 우호적일 리가 없다. 물론 이씨의 뉴스원이 실제 이런 것들이라는 추측 하에서의 말인데, 만약 필자의 추측이 잘못되었다면 교정을 기다리겠다. 그리고 사실이 그렇다면 이씨는 왜 신화사에 대해선 중국정부의 매체이기에 그 신뢰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서, 이처럼 미국정부의 이익을 대변하는 매체에 대해선 의문을 갖지 않는지가 궁금하다.

    이제 조금 화제를 바꾸어서 언론자유와 관련한 다른 문제에 대해 언급해 보자. 이우연씨는 중국이 기본적으로 ‘노동탄압 국가’임에도 불구하고, 노동자들의 반발과 투쟁은 중국정부의 극심한 ‘언론통제’ 때문에 잘 알려지지 않고 있을 뿐이라고 주장한다. 과연 언론통제 때문에 노동자들의 투쟁이 잘 알려지지 않는 것일까?

    우리는 자쓰 사건으로부터 이에 대한 해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된다. 필자의 두 번째 기고 글에서 지적했듯이, 사건의 발단인 7월 20일부터 7월 27일 구속검거가 이루어지기까지 주동자들은 충분한 선전선동의 기회를 누렸다. 물론 7월 20일 이전에는 말할 것도 없고, 7월 27일 이후에도 한동안 그러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이를 십분 활용했으며, 그 중 일부는 이후 미국의 소리, BBC 등 서구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자신들의 주장을 계속해서 외부로 알릴 수 있었다. 필자는 지난 글에서 이에 대해 이렇게 썼다.

    “금번 ‘자쓰 사건’은 의외로 우리가 중국 내 언론자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하였다. 예컨대 이 사건을 전국적이고 국제적 쟁점으로 확대 발전시키는 데 있어 중국의 인터넷 매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사건의 주동자들은 중국의 발달한 SNS(주로 ‘웨이신’)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예컨대 <아르바이트 센터>가 본격 개입하기 시작했던 7월 22일 저녁부터 현장 영상들이 끊임없이 전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7월 26일 이들이 정문 저지를 뚫고 회사 내 5층 건물 공장으로의 진입에 성공한 후 그들은 즉각 동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7월 27일 25명이 다시금 자쓰 회사 공장 내로 진입함으로써 이들에 대한 두 번째 경찰 연행과 관련자 체포가 이루어졌을 때, ‘경찰이 사람을 때린다’, ‘구속된 노동자를 석방하라’는 소리가 인터넷 선상에서 삽시간에 전파되었다. 그 때부터 주된 공격대상은 경찰로 바뀌어 졌으며” 등등.

    필자는 이 같은 사실에 기초하여 초기 4-5월 경 여모총이 해고되어 자쓰 사건이 발생하게 될 무렵과 7월 이후로는 그 성격이 변했다고 판단한다. 이러한 변화의 중간에는 ‘아르바이트 센타’와 해외조직인 ‘노동력(劳动力)’의 개입이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즉 사건이 후기로 갈수록 ‘목적의식성’이 상당히 가미되었으며, 언론매체를 통해 그것을 크게 부각시킨 후 ‘여론화’ 하는 전형적인 절차를 밟았다. 이는 본 ‘자쓰 사건’이 자발적인 대중투쟁의 폭발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이 사건의 배후 주동자 중 한 사람이자 <아르바이트 센타> 골간성원인 불0국 등은 여러 개의 웨이신 이름으로 활동하였으며, 많은 웨이신 방에서 활동하였다. 이렇듯 사건의 주동자들은 사태가 악화되어 원만한 내부적 수습이 어렵게 되기 직전까지 상당기간 중국 내 발달한 인터넷 매체와 ‘언론자유’를 충분히 활용하였다고 할 수 있다,

    한번 생각을 해보자, 중국은 8억의 인터넷 인구를 보유하고 있다고 전해진다. 이들이 조합해서 만들어 내는 웨이신(카톡방)과 웨이보(트위터), 그리고 여러 인터넷 사이트상의 수많은 토론방과 블로그 등을 모두 합한다면 그 수자가 얼마가 될지는 정말 가늠하기 힘들다. 아마도 수천억 개는 넘을 것 같다. 그런데 이우연씨는 “중국 정부의 잘못을 지적하는 뉘앙스가 조금이라도 느껴지면 죄다 지워진다”고 하면서 중국정부가 마치 물샐 틈 없이 통제하고 있다는 인상을 독자들에게 심어주고 있다. 과연 그게 가능한 일일까? 그렇지 않다는 것이 무엇보다 자쓰 사건 자체가 남김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보인다.

    사실 언론통제 국가일수록 민중은 먼저 ‘언론자유’부터 절실히 요구하게 된다. 그리고 이를 위해 투쟁에 나설 것이다. 따라서 이 같은 사회에선 정보통제 상에 있어서 ‘조그마한 틈’이 생겨도 정부에겐 큰 위협이 된다. 왜냐하면 그동안 갖가지 언론검열에 막혀 있던 대중들인지라, 그동안 몰랐던 소식과 비리들은 봇물 터지듯이 눈 깜짝 할 사이에 전해질 터이니 말이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이 같은 요구와 소식들을 서로 전파하면서 마침내 정부를 뒤집어엎고 만다. 요즈음의 SNS는 이런 작업을 매우 쉽게 해주며, 각종 위쳇방(카톡방) 같은 것을 통해서 실제 조직하고 불시의 집회 및 시위 작업을 준비하는 것도 가능케 해준다. 자쓰 사건을 보면 중국사회는 그런 틈이 충분한 것 같아 보이는데, 그런데 중국에서는 왜 언론자유를 요구하는 투쟁이 폭발하지 않는 것일까?

    필자가 다시 언급하지만, 인터넷 언론은 지금 시기 국제 계급투쟁의 중요한 무기이다. 핵무기 때문에 강대국 간의 전면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비근한 실례가 바로 우리 자신이 살고 있는 한국이다. 한국은 언론자유 국가라고 하면서도 여전히 북한 매체에 대해서 남한 사람들이 직접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며 차단하고 있다. 북한보다도 몇 십 배나 잘 살면서, 또 국제 자본주의 진영의 압도적 여론 지원을 받으면서도 한국이 그러하다. 그만큼 이데올로기 투쟁이 무섭고 강력하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지금 미국과 서구는 세계 언론과 인터넷을 지배하면서 중국을 비롯한 몇 개 안 되는 지구상의 사회주의 국가들을 ‘섬’처럼 포위하고 있다. 우리는 이 가운데서 중국정부에게 주어진 ‘언론자유’의 폭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지 않을까?

    물론 7월 27일 이후의 자쓰 사태처럼, 이미 국제적으로 상당히 뜨거워져 버린 사건에 대해선 일시적으로 그 열기를 식히기 위해 중국정부가 민감한 부분에 대한 검색을 실시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그런 일들이 마치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것처럼 중국의 언론 상황을 묘사한다면 그것은 사실과는 다르다고 할 수 있다. 실제 이우연씨가 언론탄압이라고 지적하는 것들을 필자가 몇 개 살펴보았는데, 그가 언급했던 사이트와 계정들이 지금 살아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원래부터 그랬던 것인지 아니면 이후 사태가 한고비 넘긴 후 다시 회복된 것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심지어는 이 사건에서 노학연대의 핵심인물인 션멍위(沈梦雨)의 유명한 글(团结就是力量: 단결이 곧 힘이다)조차도 ‘바이두’를 통한 인터넷 검색과 열람이 가능하다. 관심 있는 분들은 이우연씨가 언급했던 것들을 아래 몇 개 소개하니 직접 클릭하여 확인하길 바란다.

    尖椒部落 http://www.jianjiaobuluo.com/

    土逗公社 http://tootopia.me/

    土逗公社的微博_微博 https://www.weibo.com/tootopia?is_hot=1

    沈梦雨:团结就是力量 http://www.1949a.cn/bencandy.php?fid=83&id=1173

    沈梦雨:一位流水线女工的遭遇!!!

    http://www.mzfxw.com/m/show.php?classid=4&id=106058&style=0&cpage=0&cid=&bclassid=4

    “女工米兔进行时:让反性骚扰这场大火,在工业区里越烧越旺”:

    http://3g.163.com/dy/article/DOI3SNNV052889O7.html

    1. 중국은 정말 ‘노동탄압 국가’인가?
      ―자쓰 사건의 성격과 관련하여

    남의 나라 일을 두고 지금 이렇듯 두 사람이 논쟁을 벌이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니라 자쓰 사건이 국제 쟁점화 되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노동탄압’ 내지 ‘인권탄압’이라는 국내의 보도가 있었고, 이에 따라 실제 한국의 일부 진보단체가 중국대사관 앞에서 항의집회를 하였다. 따라서 과연 자쓰 사건이 ‘노동탄압’ 내지 ‘인권탄압’ 성격의 문제인지, 그리하여 국제 진보세력이 반드시 개입할 필요성이 있는지 우선 이에 대한 분명한 판단을 내릴 필요가 있다.

    필자는 이를 위해 그간의 사건 진행과정을 다시 되돌아보면서 중요한 부분을 재구성해 보았다. 이렇게 하면 독자들도 함께 검토해 보기에 훨씬 편할 것 같다. 우선 주동자인 여△총이 해고 당한 후 자쓰 사건이 본격화한 7월 20일 이후의 상황부터 정리해보도록 하겠다. 관련 상황들은 신화사 기자의 글과 위키백과에 소개된 내용을 조합하여 구성하였다. 만약 빠진 부분이 있다면 이우연씨나 다른 사람이 지적함으로써 이후라도 함께 객관적 평가를 계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사안이 조금 길고 복잡하기에, 이후 종합평가에 도움이 되도록 필요할 땐 그 때 그때 필자의 간단한 논평을 곁들였다. (7월 이전의 과정은 생략한다.)

    7월 20일, 여△총, 미△평, 유△화 등 7인이 자쓰 정문에 도착해서 ‘노조건설’, ‘복지개선’, ‘원직복직’ 요구를 내걸고 집회와 제1차 공장 내 진입을 시도하였다. 파출소는 신고를 받고 출동하여 5인을 연행하였는데, 이에 대해 항의하는 사람들 19명이 파출소 당직실에 밀어 닥쳤다. 폐쇄회로(CCTV) 영상은 당직실이 이들 19명으로 가득 차서, 그들이 “석방하라”고 외치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을 보여준다. 여러 차례 경찰의 권고가 효력이 없는 상황에서, 당일 16시 선전시 공안국 평산분국(坪山分局)은 이 19명 소요자들을 제압하여 법에 따라 조사를 한 후 다음 날 21일 24명 모두를 훈계 석방한다.

    여기까지가 신화사 기사의 내용이다. 이 보도에 대해 우리가 만약 확인하고자 마음먹는다면 그 사실관계들은 대부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폐쇄회로에 영상이 남은 상황에서)

    위 기사에서 빠진 부분을 위키백과를 통해 보충한다면 다음과 같다. 주동자들은 7월 16일부터 계속해서 사측으로부터 폭력을 당하고 제명되었다. 20일 오전 그들은 출근투쟁을 했는데, 10여 명의 경비에 의해 쫓겨났다. 그중 1명은 맞아서 땅에 쓰러졌다.(부상여부 확인 없음) 이후의 연행된 사건은 동일하다. (미국의 소리. 2018-07-23).

    필자가 이날 벌어진 사건과 관련한 논평을 하자면, 확실히 사측과 투쟁 주체들과의 모순이 격화되었으며, 이미 사측의 보복조치로 해고자들이 속속 발생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투쟁에 앞장선 노동자들은 격동되었을 것이며, 정문 돌파를 시도하고 그를 저지하는 상황에서 경찰이 개입하였다. 이 경우 경찰은 특별히 어느 쪽을 편들었다고는 할 수 없다. 왜냐하면 다음날 모두 훈계하고 석방 조치를 하였으니깐. 경찰은 단지 사태가 커지지 않고 원만히 수습되기만을 바랐던 것으로 보인다.

    7월 21일, 주동자들은 22명을 규합하여 연자령 파출소 당직실 문 앞에 모여 구호를 외치며 경찰기관의 정상업무를 방해하였다. 7월 22일, 주동자들은 파출소 앞에서 집회를 하였다. 7월 22일 저녁, ‘아르바이트 센타 토론방’ 관리자와 토론방 회원들이 현장에 도착한 후, 현장의 영상들이 끊임없이 전파되기 시작했다.

    이상이 21일, 22일 이틀간 상황에 대한 신화사의 보도이다. 여기선 왜 주동자들이 장소를 바꿔 ‘파출소’ 앞에서 집회를 했는지 그 이유가 안 나와 있다. 주동자와 동조자들이 구호를 외친 사실만 나오는데, 위키백과를 통해 부족한 내용을 보충해 보자.

    항의자들은 ‘노조설립’과 ‘경찰엄벌’을 요구하며 <단결은 힘이다>를 합창 했다.(미국의 소리. 2018-07-23) 이것이 전부다. 짤막하지만, 여기서 우리는 연행자들이 이미 석방을 쟁취한 상황에서 이루어진 파출소 앞 집회는 그 사유가 주로 위 두 가지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왜 여기서 ‘경찰엄벌’ 요구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다. 그 정황은 다음 날 기사와 관련해서 비로소 알 수 있다.

    7월23일, 불△국(배후지도자)은 “죽고자 하면 산다(向死而生)” “연패를 거듭하며 싸우기(屡败屡战)”라는 웨이신 등록명으로 자쓰의 ‘권리수호’ 사건을 성원하기 위한 여러 가지 웨이신에 설치된 방에 가입하였다. <사람을 패는 나쁜 경찰과 깡패 경비원의 처벌을 성원하는 웨이신 방> 1,2,3 등에서 불△국은 자쓰를 비난하였다. 이 밖에 여△총이 파출소 앞에서 연설하고 노래하는 영상과 자쓰 사건을 성원하는 일련의 댓글들을 314명 회원이 있는 ‘아르바이트 센터’의 웨이신 방에 올렸다. 그 방 회원들에게는 “서로 지지하자”고 호소하고, “형편이 되는 사람은 현장에 가자! 갈 수 없는 사람은 인터넷에서 생중계하고 전파하자!”고 호소하였다. 사건에 참여한 양△보(杨某甫)는 웨이신 방에서 불△국의 주장에 호응해서, “자쓰 직공들은 집단파업을 수행하자. ‘권리수호’를 위해 파출소와 구(区)정부에 가서 정문을 막자”고 썼다.

    이상이 신화사 기사내용이다. 우리는 불△국이 가입한 방 이름을 통해 22일 ‘경찰처벌’ 요구가 ‘경찰폭력’과 관련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그런데 경찰이 실제 사람을 팼는지, 그리고 어느 정도로 맞았는지는 신화사나 위키백과 어느 쪽에서도 자세히 나와 있지는 않다. 만약 심한 부상을 입었다면 분명 ‘영상’이 돌았을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때부터 투쟁주체들이 경찰을 상대로 한 공격에도 중점을 두었다는 사실이다. 회사를 상대로 해서는 애초 ‘노조설립’ 주장을 관철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랬을까? 이후의 진행은 더욱 관건적이다.

    7월24-27일, 자쓰 회사에서는 수차례 푯말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노동자의 ‘권리수호’ 사건이 발생하였다. 몇 명의 노동자가 공장 내 구역 안으로 돌입해서 생산가동을 정지시켰다. 이 과정을 좀 더 구체적으로 보면 이러하다. 7월 24일 주동자(여△총, 유△화, 미△평) 등 20여명은 다시 자쓰에 돌입하였다. 7월 25일 저녁에는 여△총, 유△화, 미△평 등 7인은 식당에서 식사중인 자쓰 직공들을 향해 유인물을 나눠 주었다. 7월 26일 오전, 여△총, 유△화, 미△평 등 20여명은 다시 자쓰에 돌입하였다. 폐쇄회로 화면을 보면, 일부가 재빨리 경비의 저지선을 피한 후 회사 내 5층 건물 공장으로 진입하였으며, 여△총 등은 동영상을 찍어 “우리의 ‘권리수호’가 성공했다!” 고 선언하였다. 7월 27일, 여△총, 유△화, 미△평 등 25인은 다시금 자쓰 문 앞에서 집회를 한 후 공장 내로 진입함으로써 회사의 정상적인 운영질서에 대해 엄중한 영향을 주었다. 경찰은 이들 25명을 “트집 잡아 말썽을 일으킨” (寻衅滋事) 혐의로 체포하였는데, 당일 저녁 다시 선두에서 소란을 피운 4명의 혐의자를 추가로 연행하였다. 한순간에 “경찰이 사람을 때린다.” “구속 노동자를 석방하라”는 목소리가 인터넷 상에서 활발하게 전파되었다.

    여기까지가 신화사 보도 내용이다. 그렇다면 이 관건적인 4일 간에 대한 위키백과의 내용은 무엇일까? 아쉽게도 없다. 이 기간의 내용이 없기에 우리는 신화사 기사에 의거해서 논평할 수밖에 없다.

    이 4일간의 상황은 비교적 복잡하지만 정리하면 이러하다. 첫째, 24일, 25일, 26일, 27일 매일 같이 공장진입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이미 사측 ‘경비’(투쟁주체들은 ‘깡패’라 부름)는 무력화 된 상태였다. 둘째, 경찰의 본격적인 수사와 연행이 시작되었고, 이후부터 이 사건은 전국적이고 국제적 쟁점으로 변화하였다. 즉 일부 대학 이념써클과 사회의 좌익인사들이 합류하였으며, 인터넷 선상에서는 네티즌 간의 활발한 토론이 진행되었다. 국제적으로는 서구 언론과 국제단체들이 적극 보도하면서 개입하기 시작하였다.

    사태의 새로운 비약의 계기가 된 공권력의 직접 개입을 초래한 부분을 정리하자면 이러하다. 7/20부터 7/27까지 투쟁주체에 의한 총 5차례 공장 진입과 생산가동 정지가 발생하였다. 7/20 한 차례 파출소 당직실 점거가 있었고, 20일, 21일, 22일, 23일 4차례의 파출소 앞 집회가 열렸다. 이들 기록을 주목할 필요가 있는데, 왜냐하면 이는 중국 경찰이 본격 개입이 필요하다고 본 판단 근거인 동시에, 또 사태가 ‘공식화’ 할 경우 정부로 하여금 법적 처벌을 하도록 하는 근거이기 때문이다.

    7월 27일 이후의 상황에 대해서도 몇 개 더 살펴보도록 하자. 서구 언론의 보도는 사실상 이 기간에 집중되며, 위키백과의 내용도 그러하다.

    7월 29일, 학생과 중국 좌파인사 등이 파출소를 방문하여 체포된 자들을 성원하고 인터내셔널가를 불렀다,(자유아시아방송, 2018-08-13) 외부와의 연대가 본격화됨을 알 수 있다.

    7월 30일, 노동자, 학생 등 15명 대표가 영상에 나오고, 학생운동 출신 노동운동가 션멍위가 등장하여 선전시 평산구의 당 서기에 보내는 ‘공개서한’을 읽었다. 이들은 평산구 정부에 진입 시도하다가 저지당한다. 경찰이 이들 15인을 강제 구인하였으나, 당일 밤 9시에 모두 풀어주었다. 이때 일부 석방된 노동자가 구인된 기간에 가혹행위를 받았다고 털어놓았다, 뒤로 묶는 수갑, 뺨을 맞고 구타로 부상을 입었다는 것이다.(미국의 소리, 2018-08-20) <자유아시아방송>은 자쓰 직원 2명이 실종되고, 직공들이 모두 고문을 당했다고 보도하였다. (2018-08-13)

    8월 13일, 이때까지 30인 중 이미 16인은 석방되었지만, 그들은 석방 후에도 여전히 감시를 받았다. 독립매체 인사 (블로그나 SNS에 글을 올리는 사람을 의미하는 듯-주) 베이펑(北枫)은, 여전히 구류중인 14명의 노동자 중 7명은 자쓰 노동자이고 7명은 외지 노동자라고 하였다.(자유아시아방송, 2018-08-20). 구류 중인 한 명의 노동자가 인터넷을 통해 RFA(자유아시아방송 영문약자-주)기자에게 알려 주길, 구치소 내 30여 평방미터의 감시실에 50여 명을 가두었는데, 목욕물은 차고, 밥을 먹거나 심문을 받을 때 그리고 관교(管教, 구치소 내 교도관-주)를 만날 때 모두 머리를 묻고 꿇어앉아야 한다. 존엄성이란 하나도 없다.(자유아시아방송, 2018-08-13) 같은 날 오후, 북경대·남경대·북경어언(语言)대·북경과학기술대·남경중의약대 좌익학생과 자쓰노동자성원대(佳士工人声援团)가 상봉하였다.(BBC,2018-08-16) 그들은 연자령 파출소 부근의 용강성 광장에서 집회를 열고 플랭카드를 펼쳤으며, “션멍위를 돌려 달라, 우리 성원단 동지들을 돌려 달라, 우리 노동자 동지를 돌려 달라”는 구호를 외치고, ‘사회 암흑세력’을 성토하였다. 그러나 더 많은 성원단원이 붙잡힐까봐 감히 파출소 문 앞에서 항의하지는 못하였다.(자유아시아방송, 2018-08-13). 8월14일 성원단은 <연합성명>을 발표하였는데, 일부 학교 측이 성원단 회원을 ‘위협’하는 행위에 반대한다고 하였다.(위에신岳昕의 Twitter. 2018-08-14)

    이후의 진행 상황에 관해선 지면관계상 생략한다.

    이상이 자쓰 사건 진행과 관련한 대충의 경과인데, 쌍방의 주장이 얼추 모두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로부터 제기되는 몇 가지 쟁점들에 대해 이하에서 검토해 보기로 하자.

    중화전국총공회 건물

    우선 자쓰 사건이 발전하게 된 동기 규명이 필요한데, 처음 그것은 본래 중국 국내의 평범한 노사분규에 불과하였다. 이후 그것이 전국적이고 국제적인 사건으로 비화된 데에는 다음 두 가지 요인이 크게 작용하였다고 보여 진다.

    첫째는 중국 내부적 요인으로, 공회(노조)의 대응에 문제가 있었다. 신화사 기사에 따르면 자쓰 노동자들의 노조결성 요구에 대해 선전시 평산구(坪山区) 노조는 5월 22일부터 행동을 시작하여 회사 측과 노조설립 추진에 관한 사측 책임자와의 연락을 추진하였음을 알 수 있다. 사태의 진행 추이에 비추어 볼 때 그것은 신속하지는 못했지만, 그렇다고 아주 늦장 대응을 한 것은 아니었다.

    주동자 여모총은 4-5월 경 해고된 후에 이 무렵 ‘아르바이트 센터’와 연락을 갖고 다른 동료들과 본격적으로 노조결성에 나섰던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불이익을 당한 노동자가 제일 먼저 찾아오지 않았음을 볼 때, 평소 이 지역 공회의 활동이 불충분하였음을 보여준다. 최소한 지역의 노동자 대표조직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분명하게 인식시키지 못한 측면이 있다. 마땅히 여모총을 비롯한 노동자들이 사측에 불만을 갖고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이 ‘아르바이이트 센터’ 등 외부단체에 도움을 빌리지 않고서도 기존 공회 체계 내에서 충분히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을 알려주었어야만 했다.

    이런 측면에서 평산구 공회는 노동자들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지 말고,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 지역 노동현황에 대한 파악과 주동적인 조직사업의 실천이 요구된다. 평산구 공회의 결정적인 실수는, 이후 자쓰 노조설립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이 회사에서 해고된 노조설립 초기주체들을 배제시켰다는 점이다. (이점은 이우연씨의 지적이 옳다!) 이미 사측에 의한 해고조치가 이루어진 상황에서, 만약 이들을 배제시킬 경우 당연히 그들은 자신의 생존을 위해서도 공회체계 바깥에서 적극적인 반대자가 되어 더욱 적극적으로 투쟁에 나설 수밖에 없게 될 것이다. 그 때문에 한국에서도 ‘해고자’ 문제는 뜨거운 감자이며, 반드시 투쟁과정에서 노조는 이들 문제를 해결해 주어야만 한다.

    또한 도덕적으로도 그러하다. 이들은 누구보다도 먼저 자쓰 회사의 사내 문제를 지적하고 투쟁에 앞장선 사람들이다, 이 때문에 그들을 인정하고 자쓰 측의 해고를 철회시키도록 압력을 가하고, 노조가 설립될 경우에는 이들이 집행부에 진출할 수 있게끔 지원했어야 했다.(물론 중국 노동법에는 ‘위원회’(집행부)는 노조원들의 직선으로 구성된다.) 이 점을 소홀히 한 것은 평산구 공회의 치명적인 실수였다. 이 때문에 이후 자쓰 사태가 커지도록 방조하였으며, 이후 8월에 자쓰 노조가 출범하였지만 그 의미를 삭감시켰다.

    이와 함께 중국정부는 근로기준법 내지 기타 노동조건 관련하여 위법 사업장에 대한 단속과 감시를 더욱 강화하여야 한다. 이는 노동자들의 권익옹호를 위해서 필요할 뿐만 아니라, 국외 세력이 개입할 수 있는 구실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외부적 요인을 들 수 있으며, 특히 국제적 요인을 무시할 수 없다. 신화사 기자가 취재한 국제적인 외부세력 간여와 관련된 내용을 단순히 중국정부가 조작한 것이라고 치부하기에는 매우 구체적이다. 이우연씨는 이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았지만, “조사에 기초한 발언”을 강조하는 그로서는 간과해서는 안 될 사항이었다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필자의 첫 번째 기고를 인용하면서 다시 기억을 상기토록 하자.

    “이 같은 미등록 불법조직(‘아르바이트 센터’-주)의 일상적인 지출과 활동 경비는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경찰 측의 초동조사를 통해 밝혀진 바에 따르면, ‘아르바이트 센터’의 모든 경비는 사실상 서구 비정부조직(NGO)이 지원하는 해외조직인 ‘노동력’이 자금지원을 하였다. ‘노동력’ 책임자인 채△식과 또 다른 성원인 이△락(李某乐)이 정기적으로 ‘아르바이트 센터’에 가서 사업과 훈련 지도를 하였다. ……경찰에서 불△국은 다음 사항을 인정하였다. 해외조직인 ‘노동력’이 매년 ‘아르바이트 센터’에 자금을 제공하였으며, 돈은 국외의 ‘노동력’의 조직책임자인 채△식이 책임지고 조달하였다. ‘일상적인 경비는 위 ‘노동력’으로부터 먼저 황△남의 해외에 개설한 개인통장으로 입금되었으며, 다시 황△남이 자금을 나의 중국 은행통장으로 보내주었다.’고 하였다.”

    결론적으로 자쓰 사건은 중국 국내의 문제이며, 국제 외부세력이 노동탄압이나 인권문제를 이유로 개입할 사안은 아니었다고 본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중국이 ‘노동탄압 국가’라는 ‘일반 규정’을 할 수 있는 근거를 찾아 낼 수가 없다. 사실 이 정도의 사건은 한국에는 참으로 많으며 또 서구 사회에서도 아마 적지 않을 것이라고 보인다. 때문에 중국 국내적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보여 지며, 한국의 진보역량이 굳이 이런 문제까지 간여할 필요는 없다. 여러 정황으로 볼 때 이미 시진핑 정부와 공회는 전체적으로 노조결성과 노동자들의 권익보호를 기존보다 더 강화하는 정책으로 나아가고 있다. 이런 큰 방향에서 비록 시간이 걸릴지라도 중국은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해 갈 것이다.

    그럼에도 계속 이 문제를 국제쟁점화 시키는 것은 사태를 오히려 악화시키고 성격을 바꾸게 할 수 있다. 지금의 G2 대결이 본격화하는 국제정세와 맞물리면서 서구의 ‘대중국 포위전략’ 일환으로 이어지게 만들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사건 당사자들에게도 오히려 부담을 주게 된다. 왜냐하면 일단 이렇듯 국제문제화 한 후에는 당사자 간의 조용한 내부적 타협을 통한 해결의 선을 넘어서게 되며, 중국정부 역시도 법대로 집행할 수밖에 없게 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선 앞서 5차례의 회사 불법침입과 공장가동 정지, 그리고 파출소 점거 등이 모두 문제가 된다. 만약 이런 명백한 실정법 위반사실 조차도 처벌할 수 없다면 중국의 사회 기강은 유지하기 힘들 것이다. 이에 대해 사회주의국가이기 때문에 무조건 노동자 편을 드는 것은 ‘계급 전체’로서 볼 때 노동자들에게 불리하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른 한편으론 사업주 측의 불만을 사서, 지금으로서도 충분히 ‘노동’ 쪽에 유리한 중국 내 사회 균형을 스스로 무너뜨리게 만들 것이기 때문이다. 결국 ‘사회주의’와 ‘시장경제’ 를 결합하려는 노선의 추진이 불가능하게 된다. 노동자계급의 입장에선 일단 권력을 장악한 후에는 최대한 그 법질서가 무너지지 않게끔 존중하는 것이 자기 계급에 대한 충성이자 근본 이익이 된다. 그러기 위해선 존엄성 있는 국가 법체계를 끊임없이 완성해가야 하며 또 스스로 지켜야 한다. 이 같은 기본 상식을 소위 ‘국제주의자’라고 하는 사람들은 잘 이해하지 못한다.

    1. 글을 맺으며

    이우연씨와 필자는 중국사회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이 점이 금번 ‘자쓰 사건’를 바라보는 데 있어서도 결정적인 입장 차이를 낳게 하였다. 이씨는 기본적으로 중국을 자본주의사회라고 규정하며, 비록 내부 개혁을 통해서이긴 하지만 현 정부는 타도되어야 할 대상으로 본다. 필자는 중국은 사회주의국가이며 기본적으로 노동자계급이 통치계급인 사회로 본다. 중국사회 성격 문제와 관련해서 필자는 이미 몇 차례 레디앙을 통해 게재한 적이 있다.

    앞으로 이 문제는 계속해서 한국 변혁운동의 쟁점이 될 것이며 또한 진지한 논쟁이 필요하다. 이 문제에 대한 명쾌한 결론이 내려지지 않는 한 한국의 변혁운동은 단 한 발짝도 전진하지 못한다는 것이 필자의 지론이다. 왜냐하면 과거 소련으로 대변되는 ‘계획 사회주의’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사회주의의 건설 이론이 무엇인지에 대해 결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대안이 없는 운동은 결코 성공할 수가 없다. 때문에 지금 시기 중국문제는 우리 운동의 근본문제라고 하는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이 문제를 제기할 것이다. 중국이 과연 한국의 노동자계급과 전체 변혁운동에 있어서 적인지 우군인지 분명히 답하여야 한다. 이에 대해 이우연씨는 “적도 아니고 우군도 아니다”는 식의 애매한 대답을 하는데, 그 정도로는 결코 필자를 만족시킬 수 없다.

    북핵문제와 관련하여 전쟁에 대한 위협으로 한반도 긴장이 심각하게 진행되는 국면이 전개될 때 이들 소위 ‘국제주의자’들은 무엇을 하였는가? 그냥 자본주의 국가들끼리 패권다툼 하다가 서로 망하기만을 기다리면 되는 것인가? 너무 무책임한 태도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이 같은 국면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여 실제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그들이 바라는 혁명이 오기도 전에 한반도에 살고 있는 한국 민족은 전멸되고 만다. 이렇듯 엄혹한 현실 문제를 앞두고 이들 ‘국제주의자’들은 대단히 무기력하고 무책임하다. 그들은 본질상 ‘무정부주의적’이며, 그러기에 중국이 세계 자본주의의 생명을 연장시켜 주고 있다는 이상한 논리를 만들어 낸다.

    다음으로, 필자는 지난번 자쓰 관련한 두 번째 글을 쓸 때 중국이 한국의 변혁운동과 한층 가까워졌음을 강조하였다. 그것은 직접적으로는 다가오는 대규모 구조조정을 겨냥한 것이다. 한국의 취약한 대외 종속적 자본주의 축적체제의 총체적 위기가 한발 짝씩 다가오고 있음은 이제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분명해지고 있다. 그중 현대자동차로 대변되는 자동차산업의 위기는 매우 현실적인 문제가 된다. 이와 관련하여 전체 진보진영과 사회주의자들은 시급하게 대책을 마련하여야만 한다. 그러기에 필자는 중국 공상은행과 관련한 구체적인 사례를 들어가며 이 같은 중국 사례가 앞으로도 더욱 풍부하게 발굴되고 소개되어야 함을 강조하였다.

    그런데 이우연씨는 필자가 든 사례가 별것 아닌 것처럼 취급한다. 다른 자본주의국가에서도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좋다, 한 번 찾아서 제시해주기 바란다. 그런 사례가 많으면 많을수록 필자는 좋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정말 ‘자본주의’ 내에서도 ‘공기업화’를 통해 효율성과 고용의 안정성 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을 수 있다는 사실을 훌륭하게 증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만 있다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을 비롯해서 대우조선이나 현대중공업처럼 현재 구조조정에 직면해 있거나 또는 앞으로 곧 직면하게 될 노동자들에게 훨씬 자신감을 심어줄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에겐 사회주의국가인 중국보다도 같은 자본주의 국가 내에서도 그런 훌륭한 사례가 있다는 것을 발견 하게 되면 이데올로기적인 부담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우연씨가 이 같은 사례를 적극 발굴해 주기를 부탁한다.

    끝으로, 필자와의 논쟁에서 이우연씨가 보인 모순적 태도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필자가 번역하여 소개한 신화사의 자쓰 관련한 기사가 당사자 양쪽의 입장을 공평하게 대변한 것이 아니라며 비판한다. 그러면서도 그 자신은 이 사건에 대해 필자가 문제제기를 하기 전까지는 그 어떠한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자쓰 사건 관련하여 국내 보수언론과 참세상 등 일부 진보언론이 일방적인 보도를 할 때도 그러하였다. 또 그동안 한국 진보진영 내에서 중국의 주류적 입장이 거의 소개되지 않고 부정적 보도만으로 일관할 때도 그는 아무런 문제제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 자신은 결국 <미국의 소리>와 <자유아시아방송>과 같은 친미 언론의 목소리가 우리 변혁운동 내에서 일방적으로 전달되어 지도록 방조하거나 스스로 그런 역할을 하지 않았는지 반성해 볼 필요가 있다.

    이씨의 가장 모순적인 점은 이것이다. 한편에선 중국내 언론통제 때문에 그곳 노동자들의 불만과 실제 벌어지는 투쟁들이 잘 보도되지 않는다고 불평한다. 그러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필자의 글이 최근 독자들의 공감을 점점 더 불러일으키는 것에 대해 레디앙에 정중하게 ‘통제’하고 ‘검열’할 것을 요청한다. 물론 이씨 나름의 이유는 있을 것이다. 그가 보기엔 마땅히 타도되어야 할 자본가계급의 정권인 ‘중국정부’를 필자가 적극적으로 나서서 옹호하는 글을 쓰거나 그 입장을 소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결국 한국 변혁운동에 큰 해를 끼친다고 생각하는데, 필자가 보기엔 이씨가 보이는 입장이야말로 우리 변혁운동의 큰 장애이다.

    하지만 여기선 더 이상 이 문제를 다투지 않기로 하자. 다만 이씨는 왜 그 같은 논리를 일관되게 현재 자쓰 사건 등을 포함한 중국의 ‘언론 상황’을 이해하는데 적용하지 못할까 의아하게 생각한다. 즉 한편으론 ‘언론자유’의 요구를 가지고서 중국정부를 비판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론 자기 자신이 이견을 가진 다른 논쟁 상대에 대해 ‘언론통제’를 요구하고 있다. 그 자신은 이 같은 모순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필자소개
    김정호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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