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쓰 공장 분규와
    중국 노동문제 관련 보도
    국내외 언론 기사 대한 비판적 평가
        2019년 02월 15일 11:0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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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국내에서도 소개가 제법 되었던 중국 광동성 선전시의 자쓰 공장의 노사 분규와 관련한 기고 글이다. 자쓰 공장 관련해 노동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의 행동과 정부의 대응과 탄압에 대한 논란은 중국뿐 아니라 한국 진보진영 일각에서도 관심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한 필자의 강한 주장과 평가가 담긴 글이다. 논쟁의 여지가 상당하다고 보이며, 이에 대한 반론 등의 기고는 언제든지 환영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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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목차]

    1. 한국 변혁운동과 한층 가까워진 중국
    2. 중국은 노동탄압과 인권유린 국가?
    3. 중국의 법치문제
    4. ‘노학연대’와 관련하여
    5. 누가 적이고 누가 우군인가

    중국의 남부도시 선전(深圳)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회사, 등록 자본금이 5억 위엔(한국돈 약830억원) 정도에 1000명의 직공을 고용하고 용접과 로봇 등을 주된 업무로 삼는 한 회사가 요즘 한국 진보진영 일각의 시선을 사로잡고 있다. 이 회사는 바로 ‘자쓰’이다. 소위 ‘자쓰사건’은 지난해 8월부터 본격적으로 국제적인 뉴스를 타기 시작했는데, 이제 다시 관련한 기사들이 한국 언론매체에 전파되는 것을 보면 그 불꽃이 아직 다하지는 않은 것 같다. 민주노총, 국제민주연대 등 33개 단체와 개인 13명은 1월 31일 서울에 있는 중국대사관 앞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중국 정부가 ‘자쓰 사건’ 관련한 노동자와 학생활동가들을 체포, 탄압하고 있다며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다. 필자는 참세상, 레디앙과 같은 진보매체가 이 같은 소식을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을 보면서 그냥 못 본 체 하고만 있을 수는 없다고 생각하였다.

    필자가 왜 이처럼 이 문제에 대해 민감하게 느끼는지 그 이유부터 설명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그것은 중국이 한국경제뿐만 아니라 이미 한국 노동운동 및 전체 변혁운동과 깊은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다.

    1. 한국 변혁운동과 한층 가까워진 중국

    중국은 이미 우리 한국 노동운동과 여러 가지 사정으로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게 되었다. 한 가지 사례를 들어보자. 필자가 거주하는 이곳 울산에는 아마도 머지않아 세계 최장의 농성 기록을 세우게 될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 투쟁이 5년째 진행 중이다. 대학 정문 앞에 설치된 천막 농성장에선 투쟁중인 청소노동자들과 지역 연대동지들이 함께 참여하는 학습 토론회가 2주 1회씩 정기적으로 열린다.

    얼마 전엔 신년을 맞이하여 정세토론회를 개최하였다. 그 때 지역경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현대차 문제가 집중적으로 다루어졌는데, 그 대안으로 재벌해체와 ‘공기업화’에 관한 논의가 있었다. 만약 현대차 경영위기가 현실화되어 자본 측이 노동자들에 대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들고 나올 경우, 이에 대한 유일한 대안은 ‘공기업화’ 밖에 없다는데 대체로 의견의 일치를 보았다. 그런데 그럴 경우 아마도 자본과 보수언론은 소련과 동구권의 실패를 들어 ‘국유화’ 조치에 대한 집중적인 이데올로기 공세를 해올 것이다. 이에 대한 적절한 사례가 제시되지 않는다면, 단순히 좌파 일각에서 제출하는 ‘민주적 계획경제’ 같은 추상적 이론만 가지고서는 대중을 설득시키기가 힘들 것이라는 우려가 있었다.

    필자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경험한 ‘국유은행’의 사례를 들었다. 중국에서는 국유은행들이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근무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소비자들한테야 일주일 내내 은행 일을 볼 수 있으니 편리해서 좋긴 하지만, 정작 은행직원들은 힘들지 않겠는가? 어떻게 국유기업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평소 의문을 품고 있었다. 그런데 알아보니 그게 아니었다. 주5일제 근무는 준수되고 있었으며, 대신 직원들의 쉬는 날이 각자 다를 뿐이었다. 예컨대 어떤 사람은 월,목 쉬고, 다른 사람은 수,일 쉬는 식으로 휴일이 배치되는 것이다. 그 취지는 가능한 많은 사람을 고용하여 감원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는 고객서비스의 내용을 확대함을 통해 고용유지를 실현하는 방식인데, 사실상 ‘노동시간 감축’을 통한 고용유지 방안의 응용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고용창출은 그야말로 국유기업만이 할 수 있는 일이고, 자본주의 국가에서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리고 이처럼 국유기업이 주도하는 나라가 바로 중국인 것이다. 그런 한편으로 중국의 국유기업들은 효율성 또한 보장된다. 예컨대 중국에서 가장 큰 은행인 ‘공상은행’만 보더라도, 2016년 순이익으로 47조원(한국돈)을 남겼다. 당시 사상최대 반도체 호황으로 삼성전자 순이익이 40조원이었던 것에 비하면 이보다도 많다. 대부분의 국유은행들이 그렇듯 기업실적이 좋으며 많은 돈을 벌고 있다.

    국유기업이 이렇듯 벌어들이는 순 이윤은 엄청나서 국가 재정을 상당 부분 뒷받침할 수 있기에, 중국 정부는 국민세금을 높이는 일 없이도 세계에서 가장 발달한 고속철도망의 건설, 그리고 날로 완성되어가는 사회보장제도 등 사회적 생산력 향상과 인민의 복지향상을 이룰 수 있는 조건을 갖추고 있다. 이 같은 실례는 백 마디 말보다도 대중적인 설득력이 있다. 또한 통계와 실제 사실로서 그것이 결코 꾸며낸 것이 아닌 생생한 현실임을 입증시켜 줄 수 있다. 중국은 바로 이 같은 사례의 ‘보고(寶庫)’이며, 앞으로 힘겨운 구조조정 투쟁을 앞두고 있는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있어선 더욱 가까이 하고 연구해야 할 대상이다. 필자는 장차 한국의 노동운동의 발전에 있어 중국이 갖는 전략적 의미를 다시 한 번 강조하지 않을 수 없다.

    주한 중국대사관 앞에서의 노동탄압 항의 기자회견 모습

    2. 중국은 노동탄압과 인권유린 국가?

    그런데 최근 참세상 등 진보언론에서 보도된 사례를 보자면, 이 같은 필자의 지금까지의 중국에 대한 소개와 정 배치되는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중국은 ‘자쓰(Jasic)’라는 그리 크지 않은 기업의 노조 설립조차 불허하는 노동탄압 국가이며, 또 강제적인 연행 구금이 자행되어 지난 8월부터 지금까지 40여명의 행방이 묘연한 마치 무법천지의 국가를 연상시키게 된다. 이 같은 보도가 국내 보수언론만을 통해서라면 그냥 무시하고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최근에는 국제민주연대와 민주노총 같은 진보적 노동운동단체까지 포함해서 제기되고 보니 그 충격이 더하다고 할 수 있다. 중국에 대한 평가에 있어 이렇듯 극한 반차를 보인다면 아마 둘 중 어느 한 쪽의 입장은 거짓이라 할 것이다. 우리는 진실을 가리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사실 한국의 진보단체가 비슷한 보도를 한 것은 이번이 처음만은 아니다. 필자의 기억으로는 ‘레프트21’의 김용욱 기자가 2012년 초에 세계금융위기 여파로 대규모 해고가 일어나고 있다는 광동 일대를 취재한다면서 파견된 적이 있다.(관련 글 링크) 그는 정작 노동자파업 관련한 구체적 사건은 보도하지 못하고 홍콩의 거리시위를 마치 중국과 관련된 사건인 냥 보도해서 본인의 핀잔을 받은 적이 있다. 필자는 현재 국내에서 나온 중국의 노동문제에 관한 논문이나 관점이 대부분 ‘부분적인 사례 분석’에 판단 근거를 두고 있다는 공통의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한 실례로, 지난해 12월 필자가 서울에서 열린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에 참석하였는데, 마침 회의 직후 열린 포럼 주제가 중국의 노동문제에 관한 것이었다. 여기서도 필자는 비슷한 문제의식을 느꼈다. 한국 좌파가 제기하는 것들이 대부분 1990년대 후반 중국 국유기업 개혁 시기에 동북부 지방에서 있었던 일련의 직장 해고 사태, 그리고 최근에는 폭스콘 등 몇 개의 대표적인 사례만을 가지고서 반복적으로 인용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확장해서 중국이 노동탄압 국가라는 일반적 결론을 내온다는 논리적 패턴을 갖고 있다.

    만약 실제 ‘노동탄압 국가’라는 일반적 결론이 성립한다면, 이미 8억의 방대한 노동자계급을 가진 중국의 경우는 위에서 열거한 것보다도 훨씬 많은 수천 수만의 노동운동 탄압 사례가 줄줄이 보고되어야 할 터이다. 그러나 그런 사례는 실제 찾아보기가 어렵다. 결국 ‘인상’만을 심어주려 한다는 혐의를 벗어나기가 힘들다.

    이번 자쓰 사건도 크게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지난해 7월 중에 발생한 사건인데, 그것을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우려먹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이 같은 작은 사건을 발굴해서 보도하고 국제적으로 쟁점화시킬 정도라고 한다면, 아마 이보다 더 큰 사건은 더욱 찾아내기 쉽고 보도하기도 쉬울 것이라 보인다. 하지만 이들이 다른 더 큰 사건들을 찾아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아 보기에도 안타깝다.

    사실 이들의 보도는 필자가 얼핏 보아도 여기 저기 허점이 엿보인다. 중국은 노동조합 결성하기가 세계에서 가장 쉬운 나라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노동조합법상 “임금 수입에 의존하여 생활하는 육체노동자와 정신노동자”는 누구라도 민족, 성별, 직업, 교육, 신앙 등에 상관없이 노조에 가입할 수 있다는 규정(제3조) 외에도, 그들의 노조 조직률이 대단히 높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2017년 말 현재 중국의 전체 조합원 수는 3억311만 명이며, 이는 전체 노동자 수 8억 명에 대해 대략 38% 수준에 이른다. 현재 한국의 조직된 노동자가 양대 노총을 합하더라도 대략 200만 명으로 전체의 10%에 불과한 것에 비한다면 매우 높은 수치라 할 수 있다.

    중국의 국유기업에는 이미 대부분 노조가 있다. 2012년부턴 일정규모 이상의 기업들에 대해선 자국의 민영기업이든 외국의 다국적기업이든지를 막론하고 모두 노조와 당의 현장조직을 건설한다는 정부방침과 전국 총공회의 방침이 나왔다. 그리하여 필자가 알기엔 삼성의 무노조 원칙이 제일 먼저 무너진 곳이 다름 아닌 중국이다. 대기업과 대자본에 대해 중국 정부의 태도가 이러할 진대, 자쓰와 같이 그리 크지 않은 기업에 대해 무엇이 두려워서 중국 정부가 노조 설립을 방해하고 그런 무법적인 행위를 하는 것인지 상식적으로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중국의 총공회가 관변단체로 사실상 어용노조이기에 ‘독립노조’를 설립해야 한다는 주장도 필자가 보기엔 별로 설득력이 없다. 일각의 이 같은 주장은 중국의 공식적인 노조체계를 무력화하려는 명분에 지나지 않는다고 보인다. 물론 기존 노조가 어용화되는 경우는 중국에서도 발생할 수 있고 실제 이런 노조들도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노동자들이 이를 내부적으로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 역시도 충분히 보장된다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단위노조 집행부 격인 ‘노조위원회’는 전체 노조원대회(총회)나 대표대회를 통해 직선으로 선출된다. 또 이들 위원들에 대한 ‘소환, 파면권’이 보장된다.(관련법 제9조) 그리고 1/3이상의 조합원이 요구할 경우에는 임시총회를 개최할 수 있다.(제16조) 이 같은 권리행사를 통해 총공회에 속한 일부 노조가 노동자들의 이익에 반해 회사 측과 타협적이 될지라도, 노동자 스스로 이 같은 집행부를 갈아치우고 진정한 자신의 대표를 선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들이 마련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존하는 체계를 활용하기에 앞서 관변단체라고 처음부터 부정하고 드는 태도는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

    중국의 노동자들의 현장 내 권력은 한국이나 서구의 그것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공유제기업(국유기업, 집체기업)의 경우에는 노조 외에도 ‘노동자대표대회’가 법적인 규정으로 존재한다. 그래서 노동자들의 중대한 고용 관련 사안과 처우, 그리고 기업 장래와 관련한 중대 문제에 대해선 반드시 이 노동자대표대회의 동의를 받아야만 한다. 여기에다 공산당의 현장 기층조직이 또한 강력하게 존재한다. 공산당의 조직원리는 필자가 얼마 전에 <다른 백년> 칼럼을 통해 소개한 적이 있다.(<중국 정치제도에 대한 한국 사회의 편견> 참조)

    중국공산당은 레닌의 대중적 전위조직 원리와 민주집중제 원칙에 따라 결성되었으며, 가장 기층조직인 ‘당 지부(세포)’는 정조직원 3인 이상이 모이면 구성할 수 있다. 당 지부는 신입회원에 대한 심사와 기본적인 입당절차를 책임지는 등 권한이 막강하며, 각 분야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공산주의 이념에 투철한 사람들을 입당시키려고 노력한다. 노동계급의 전위부대임을 자임하는 중국공산당에 있어 노동현장은 이 같은 당 지부 건설의 일차적인 중점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중국공산당은 이러한 기층 대표들이 밑으로부터 차례로 상급 대표와 지도기관을 선출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전국 중앙위원회와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지도부를 구성하는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같은 조직이 공장에 있다고 한번 생각해 보자. 그것은 과연 노동자들에게 유리할까 불리할까? 지금 한국의 노동계급에 있어 가장 결여된 것이 이 같은 자신의 정치조직이 아닐까? 한마디로 중국의 노동자들은 한국의 노동자들과는 달리 이중 삼중으로 자신의 고충을 호소할 수 있는 통로가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금번 ‘자쓰 사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이 사건의 주동자 여모총(余某聪)은 처음 자쓰 사용자 측에 의해 해고 당한 후 ‘사회적 중재’ 형식인 노동중재를 받았다. 비록 당사자는 이 결과에 만족하진 않았지만, 이후 국가 노동 관련 기관인 노동감찰대대(劳动监察大队)는 자쓰의 불법적인 노동관행에 대해 즉각적인 시정명령을 하달하였다. 그리고 총공회의 지역지부인 선전시 평산구 지부는 상급지부 자격으로 초기부터 적극 개입하였으며, 결국 자쓰 노조가 8월 중에 출범케 하였다. 신화사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노조 출범을 제외하고는 이 모든 것이 외부세력의 개입에 의해 사건이 악화되기 시작한 7월 하순 이전인 5월 중에 이루어졌다. 필자는 이를 보면서 이러한 제도적 장치야 말로 중국에서 8억의 노동자 대군과 수천만 개의 기업체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그간 별반 파업과 노동 분규가 일어나지 않는 진정한 원인이라고 생각된다.

    3. 중국의 법치문제

    ‘참세상’ 등의 기사를 통해 법률과 인권 문제가 집중적으로 제기 되었으니 이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의 노동법은 전체적으로 보면 한국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노동자들에게 ‘절대적’으로 유리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 필자의 판단이다.

    우선 헌법조문에서부터 분명하게 노동계급이 지배계급이라고 선언하고 있다.(전문과 제1조) 우리나라를 비롯한 지구상 어느 자본주의 국가에서 헌법에 ‘형식상으로라도’ 그렇게 규정할 수 있을까? 이 같은 상위법에서의 규정성은 실제 다른 하위법을 구석구석 규정하게 된다. 필자는 아직 중국 법체계에 대해 전문적인 공부는 하진 못했지만, 이후 기회가 있으면 중국의 법체계를 본격 공부해 보고 싶은 생각을 갖고 있다. 중국의 법률체계에 대해 단지 ‘형식적인’ 것으로만 치부하는 한국 내 다른 변혁단체들도 이 같은 작업을 한번 해보길 권하고 싶다.

    이번 사건과 직접적 관련이 있는 노동법만 하더라도, 중국은 이미 2012년 노동법 개정을 통해 ‘비정규직’의 확산에 제동을 거는 법안을 마련했다. 개정안은 파견업체 설립기준을 강화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의 명확화, 노무파견 기능직무(임시성, 보조성, 대체성)에 대한 규정의 명확화, 파견업체에 대한 법률적 책임의 강화를 핵심내용으로 하였다.(백승욱,2013) 그밖에 근로계약 시에 ‘서면작성’을 법적으로 명문화하고 그것이 없을 경우엔 무기고용계약으로 간주한다는 조항이 이미 존재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나중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 법적으로 노동자 측에 유리한 해석이 가능케 되며, 해고를 어렵게 만들어 두 차례의 유기고용계약을 이룬 후에는 특별한 결격사유가 없을 시에 자동적으로 무기고용계약으로 이어지도록 유도할 수 있다. 이 같은 조처의 중요성은 필자가 이미 레디앙에서 한국 비정규직 문제에 관해 연재할 때 다룬 적이 있다. 그리고 이 같은 법률 조항의 설치는 지금 한국의 노동운동계가 한국 정부에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것임에도 쉽게 고쳐지지 않는 것들이다. 아마도 김용균 씨와 같은 젊은이들이 앞으로도 수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어도 쉽지는 않을 성 싶다. 왜냐하면 재벌체제에서 비롯되고 있는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특수성 때문에, 재벌체제가 분쇄되지 않는 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찾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노동자들에게 유리한 노동법 탓인지 중국은 노동분규가 ‘사회적 중재’를 통해 해결되는 경우가 많다. 이 ‘사회적 중재’는 공식적인 자격을 지닌 변호사를 통해 많이 이루어지는데, 노동자 측의 승소률이 상당히 높은 것을 볼 수 있다. 아래 표는 2017년 한 해 노동분규와 관련한 처리사항을 정리한 것이다. 아래 표에는 안 나오지만, 전기(2016년)에 미결되어 넘어온 건수가 3만8545건으로 당해(2017년) 신규건수 78만5323건과 합하여 2017년에 해결해야 할 건수는 모두 82만3868건이었다. 그중 해결된 것은 79만448건으로, 1년 내 96% 정도의 사안이 처리된 것을 보면 상당히 신속하다고 할 수 있다. 한국에서 비정규직 관련 재판이 진행될 경우, 노동부 판정에서부터 시작해서 대법원판결까지 대개 거의 5년 이상이 걸리는 것과는 좋은 대조가 된다. 아래 표를 보면 쌍방이 부분 승소한 경우가 가장 많고, 노사 양측 중 한쪽만의 승소율을 비교한다면 노동자 측이 압도적으로 많음을 알 수 있다. 즉 노동자들은 ‘사회적 중재’와 같은 공적체계를 통해서도 자신들의 이익을 충분히 관철시킬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상의 조건을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노동자들이 빈번하게 파업한다면 그것이 과연 자신들에게 유리한 것일까? 이 문제에 있어 한국의 활동가들은 종종 착각을 한다. 즉 한국처럼 자본가계급이 지배하고 있는 사회와 이미 노동자계급이 권력을 장악한 사회와 혼동하는 것이다. 전자에 있어선 ‘변혁’이 일차적인 과제가 되지만, 후자에 있어선 ‘건설’이 당연히 주요한 임무가 되는 것이다.

    필자는 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지난 1982년 폴란드의 자유노조 지도자 바웬사란 사람이 떠오른다. 그는 한동안 서구 언론에 의해 ‘자유투사’로 칭송되었는데, 나중에 폴란드가 자본주의 국가로 탈바꿈하면서 대통령까지 몇 차례 해먹었다. 그러나 지금 와서 그에 대한 폴란드 시민들의 평판은 완전히 ‘정치꾼’ 외에 다름 아니다. 그는 소위 ‘자유노조’ 운동을 통해 폴란드 사회주의를 쓰러뜨리는 데 공헌한 후, 나중에는 자신의 본질이 탄로나고 그리하여 역사의 버림을 받았다고 할 수 있다. 그의 조국 폴란드는 자본주의 국가로 전환한 후 과거 2등 국가에서 지금 3등 국가로 한 단계 하락을 경험하고 있다.

    중국의 형법에 대해 필자가 비록 전문가는 아니지만 독자들에게 한 말씀 드려야겠다. 중국에 오래 있다 보니 상식적인 지식 정도는 갖고 있기 때문이다. 시진핑 지도부가 들어선 후 법치를 강조한다는 점을 필자는 <다른 백년> 칼럼에서 이미 소개한 적이 있다.(<중국사회 주요모순의 변화와 ‘시진핑 사상’> 참조) 필자는 실제로 ‘미란다 원칙’, 즉, 체포사유, 묵비권행사의 권리, 변호사 선임의 권리에 관해 중국 매스컴에서 선전하고 교육하는 것을 목격한 적이 있다. 그리고 파출소나 경찰서에서 범인을 심문할 때는 반드시 녹취를 하도록 중국의 형법이 바뀌었다. 이는 고문에 의한 강제자백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녹취가 없을 경우 재판정에서 결격 사유가 되어 검사 측에 불리하게 된다. 이런 것들을 뉴스나 법률 강좌 프로그램을 통해 반복해서 인민들에게 교육하였는데, 과연 이런 상황에서도 한국 언론들이 전하는 것 같은 ‘납치, 강금, 고문, 실종’과 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 것인지 납득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국의 언론과 진보단체에선 ‘자쓰 사건’과 관련된 활동가들 40여명이 지난해 사건 발생 후 연행된 채 지금까지 행방을 모른다고 전했다. 그러나 필자가 앞서 레디앙에 번역해 소개한 신화사 기사 글 <선전 ‘자쓰 사건’의 진상>에는 관련자들의 행방이 대체로 그대로 드러나 있다. 어떤 사람은 주동자로 조사 받은 후 아마 지금은 구치소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나머지 대다수는 훈방조치된 것으로 보인다. 도대체 이들 중 어떤 이의 행방이 그렇듯 묘연하다는 것일까?

    또 일부 한국 언론기관에서 ‘쌍규(双规)’에 관한 것을 언급할 때면 필자는 혼자 쓴웃음을 짓게 된다. 도대체 이들이 알고서 그러나 아니면 진짜 몰라서 그런 것일까? ‘쌍규’는 “규정된 시간과 장소에서 조사 받는 자가 관련된 사건에 대해 설명토록 하는 것”을 말한다. 이 규정은 오직 ‘당원’들에게만 적용된다. 그리고 그 취지는 집권당인 공산당 스스로가 자신을 엄격히 관리함으로써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목적을 갖고 있다. 이 역시 시대의 변화에 따라 일반 법률체계로 수렴되어야 한다는 일각의 여론이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일반 노사분규 등에는 절대 적용되는 조치가 아닌 것이다.

    참고로 실종문제와 관련하여, ‘판빙빙 사건’에 대해서도 한국 언론의 보도와 중국의 해석은 크게 차이가 난다. 이 역시 필자가 이미 레디앙에 소개한 적이 있다.(<판빙빙 사건에 대한 중국 내 시각> 참조) 서구와 한국 언론은 3개월간 판빙빙이 ‘실종’되어 정부의 강제구금 하에 조사를 받았다고 보도하였다. 그러나 중국 측 입장은 이미 ‘미란다 원칙’이 지켜진 선상에서, 피의자와의 합의 하에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보호하기 위한 목적으로 그녀가 조사받는 사실을 공개하지 않았을 뿐이라는 것이다. 즉 피의자의 동의하에 비공개리에 조사가 진행되었다는 것이며, 자칫 정작 재판 전에 수사기관의 조사단계에서부터 그것이 언론에 공개됨으로써 이러쿵저러쿵 미리 혐의가 씌어지는 것을 방지하려는 의도라는 것이다. 이는 나름의 중국 측의 관행일 수 있다. 실제 노무현 대통령은 검찰의 수사진행 사실이 수사기관의 고의적인 유출로 언론에 미리 알려지고, 이리하여 언론들의 사전 ‘여론재판’이 진행되면서 이를 견디다 못해 자살로 몰렸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위의 중국 측 관행에 대해선 중국 내부에서도 여러 가지 평가가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따라서 이에 대해서 제삼자인 타국들이 왈가왈부할 일은 아니다. 더구나 한국 진보진영이 마치 그것을 1980년대의 군부독재에 의한 비밀리의 강제연행과 연계시키는 것은 진실과 매우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4. ‘노학연대’와 관련하여

    이번 ‘자쓰 사건’에서 특이한 점 하나가 있는데, 소위 ‘노학연대’의 등장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중국 대학생들의 이념동아리 활동이 소개되기도 하였다. (<중국 대학생들은 왜 ‘전태일 평전’을 읽는가>, 한겨레신문, 2018년 11월 24일자). 북경대 맑스주의 동아리 관련한 소식도 전해졌기에 특별히 필자의 관심을 끌었다. 그런데 5년간 이 학교에 몸담고 북경대 맑스주의 대학을 졸업한 필자로서는 상식적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측면들이 많이 있었다. 맑스레닌주의는 본질상 계급투쟁이론이며, 착취자에 대한 피착취자들의 저항을 고무하고 고취한다. 그리고 그를 위한 전략, 전술과 구체적으로 조직을 만드는 방법까지도 알려준다. 그렇기에 당면한 한국사회 변혁과 노동자계급이 해방된 사회를 궁극적으로 건설하기 위해선 한국의 노동자와 활동가들은 지금보다도 훨씬 노력해서 이 학문을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렇듯 본래 혁명적 학문인 맑스레닌주의가 국가 정책으로 줄곧 권장되고, 또 그와 관련된 저서가 한국과는 달리 전혀 금지됨이 없이 지천으로 널려 있는 것이 중국 사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그 같은 이론을 통해 각성한 중국 대학생들이 노학연대를 시도한다는 것인가? 뭔가 믿기지가 않는다. 왜 그전은 아니고 지금에 와서인가?

    40년의 개혁개방 기간을 보자면, 중국 노동자들의 삶은 지금보다도 과거, 즉 1980년대, 1990년대, 그리고 2000년대 초반이 훨씬 어려웠다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임금도 많이 올랐고 대우도 많이 좋아졌다. 한국 좌파가 주목하는 ‘농민공’만 하더라도 이들의 상황은 이미 많이 달라져 있다. 소위 ‘농민공 황(荒)’이라 불릴 만큼 동부 연안지역에선 이들을 구하기가 어렵다. 그것은 중국의 산업발전의 진행에 따라 이제 그 풍부하고 저렴한 중국의 노동력 공급에도 한계가 찾아왔기 때문이다. 특히 중서부 내륙과 농촌의 개발이 이루어짐에 따라 그곳의 노동력수요가 크게 증가하였다. 이 때문에 이들 농민공들의 임금은 크게 올라서 지금은 대졸 졸업자의 초봉 수준이 된다. 필자는 중국에 관한 이전 소개 글에서, 2000년대 들어 근 15년에 걸친 GDP와 함께 가는 중국 노동자들의 임금인상, 그리고 사회보장제도의 건설이 근래 들어 급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을 적었던 기억이 난다.(<‘G2’의 성격(2)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양 체제 간의 세계적 대결> 참조) 이 역시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렇듯 근래 들어 중국 노동자들의 상태가 크게 개선되었는데, 그런데 왜 대학생들은 과거 더 열악했을 때가 아니고 이제 와서 노학연대를 꾀한다는 것일까? 그리고 실제 이런 그룹이 있다손 치더라도 과연 이들은 전체 대학생 중 얼마만한 부분을 대변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든다. 왜냐하면 어느 집단이고 문제제기 그룹은 있기 마련이다. 여기서 에피소드 하나가 떠오른다.

    필자가 북경대 재학 시절 같은 2009학번 동기생 한 명이 선배(2007학번)를 소개시켜준다고 필자를 자기네 기숙사로 데려간 적이 있다. 필자는 거기서 소위 ‘정통 마오주의자’라는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었는데, 얘기를 나눌수록 서로 대화가 안 통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필자가 한국에서 노동운동하다가 온 사람이라고 해서 처음엔 친밀함을 보였다. 그러면서 은밀히 자기들끼리 돌려본다는 마오쩌둥의 1960년대 문혁기간 중의 어록을 담은 조잡한 인쇄본을 한 권 보여주었다. 분명 거기엔 마오가 한 말들이 줄줄이 적혀있었지만, 그러나 그것들은 모두 마오의 방대한 저서 중의 일부분일 뿐이다. 특히 그가 ‘좌익 모험주의’ 노선을 걸음으로써 중국을 ‘10년 동란’으로 몰아넣었을 때의 글들이다.

    문화대혁명을 이처럼 ‘10년 동란’으로 부르는 것은 중국 학계와 당의 공식적 평가이자, 중국 사회의 일반적 상식이다. 그런데 이 선배와 그의 동지들은 그것이야 말로 마오 사상의 진수라고 떠받드는 모습이었다. 그 시절에는 빈부격차가 없고 도둑도 없었다고 찬양하는데, 그렇지만 그들은 결코 대외적으로 과감한 선전에는 나서지 못한다. 그 이유는 결코 당국의 사상 탄압 때문이 아니라 그들 스스로 위축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국 정부는 ‘백가쟁명’을 문화와 정신영역의 정책으로 공식 채택하고 있기에 이들의 활동에 대해서도 관대하다. 실제 ‘유토피아’(乌有之乡)라 불리는 소위 ‘정통 마오주의’를 떠받드는 그룹이 공개적인 인터넷사이트 (http://www.wyzxwk.com)를 통해 활동하고 있고, ‘자쓰 사건’에도 일부 개입하였다. 그럼에도 이들은 대중들이 그들의 주장에 대해 ‘미친 사람’ 취급할까봐 스스로 꺼려하며, 전체적으로 볼 때 이들은 현실에서 동떨어진 소수자일 뿐이다. 이처럼 중국에는 좌파도 있고, 또 자본주의를 극렬 선전하는 우파들도 있다. 한국의 진보주의자들이 소위 “전태일평전을 공부”한다는 이들 맑스주의 동아리를 찬양하기에 앞서, 한 번 이들이 중국 사회에서 서 있는 입지와 대중들의 평판을 점검할 필요가 있다.

    5. 누가 적이고 누가 우군인가

    ―혁명의 첫 번째 문제

    우리는 ‘자쓰 사건’을 통해 국내외 언론에서 그간 소개된 것과 매우 다른 중국 사회의 모습, 그리고 그것을 둘러싼 주변세계에 대해 새로운 안목을 틀 수 있는 계기가 제공되었다고 보인다.

    먼저,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중국 내에 여전히 일정 강도의 계급투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때론 그것은 치열하게 전개될 수도 있으며, 특히 국내적인 요인보다 국제적 요소와 결합될 경우 상당히 심각한 사회문제로 번질 수 있는 위험성을 여전히 안고 있다고 보인다. 예컨대, 이 사건은 처음에는 ‘문제 사업장’에서 몇몇 노동자들의 불만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만약 이번 사건이 이렇듯 단순히 노동자들의 ‘권익수호’라는 개별 자본가 대 개별 노동자의 문제로 처리되었다고 한다면, 전혀 사태의 이후 진행처럼 악화될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필자가 소개하였듯이, 이미 중국 정부와 총공회로 대변되는 노동계는 사태 초기인 5월부터 노동자들의 합리적인 요구를 수용하기 위한 조처를 취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사태가 이렇게 악화된 데에는, 필자가 보기엔 여전히 중국내 존재하는 일부 저항세력 외에, 특히 서구 자본주의진영의 개입이 결정적인 구실을 하였다. 그 양태는 과거 소련과 동구권을 붕괴시켰던 그것과 본질상 비슷하며, 이후 리비아, 시리아, 우크라이나 및 지금 베네수엘라 등에서 반서방적 권력을 전복시키고자 하는 방식과도 비슷하다고 보인다. 때문에 한국의 보수세력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국제연대’라는 명목 하에 좌파까지도 여기에 한몫을 하려고 하는 것은 신중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다음으로, 중국의 언론 자유와 관련해서이다. 필자는 그간 중국의 언론자유 상황을 어떻게 정확히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할 수 있을까 고심하였다. 금번 ‘자쓰 사건’은 의외로 우리가 중국 내 언론 자유 상황을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좋은 계기를 제공하였다. 예컨대 이 사건을 전국적이고 국제적 쟁점으로 확대 발전시키는 데 있어 중국의 인터넷 매체는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사건의 주동자들은 중국의 발달한 SNS(주로 ‘웨이신’)을 충분히 활용하였다. 예컨대 <아르바이트 센터>가 본격 개입하기 시작했던 7월 22일 저녁부터, 현장 영상들이 끊임없이 전국으로 전파되기 시작했다. 7월 26일 이들이 정문 저지를 뚫고 회사 내 5층 건물 공장으로 진입에 성공 후, 그들은 즉각 동영상을 찍었다. 그리고 7월 27일 25명이 다시금 자쓰 회사 공장 내로 진입하여 이들에 대한 두 번째 경찰 연행과 관련자 체포가 이루어졌을 때, “경찰이 사람을 때린다” “구속된 노동자를 석방하라”는 소리가 인터넷 선상에서 삽시간에 전파되었으며 그 때부터 주 공격대상은 경찰로 바뀌었다. 즉 권리투쟁은 ‘국가기구’가 타격대상인 정치투쟁으로 변모되었으며, 해외언론도 단사 차원의 문제보다는 주로 ‘반체제 투쟁’의 시각에서 보도하기 시작하였다. 이는 매우 조직적인 여론 작업에 관한 전형이라 할 수 있다. 즉 의식적으로 ‘사건’이 발생하게 한 후, 언론매체를 통해 그것을 크게 부각시켜 ‘여론화’시키는 절차를 밟은 것이다. 이는 본 ‘자쓰 사건’이 자발적인 대중투쟁의 폭발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 이 사건의 주동자 불0국 등은 여러 개의 웨이신 이름으로 활동하였으며, 웨이신 방 1,2,3과 ‘하충1’ ‘하충6’ 등 많은 웨이신 방에서 활동하였다.

    이렇듯 중국의 언론 상황은 한국의 독자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하고 개방적이다. 만약 중국 정부가 한국의 언론보도처럼 언론통제를 일상적으로 강력하게 실시한다면, 애초 사건 초기에 이 사건의 보도를 원천 봉쇄하고 8월 달에 가서야 국제적인 쟁점화할 때까지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중국의 ‘백가쟁명’ 정책은 사태가 위협적이지 않는 한 충분히 국내적으로는 자체 여론의 정화기간을 둘 만한 여유는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지금 현대 세계에서 이 같은 인터넷을 완전히 통제할 수 있는 국가는 없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는 중국 내에서 언론 자유와 관련된 한에서 그렇다는 것이며,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얘기가 조금 달라진다. 인터넷의 위력이 이렇듯 강력하고 또 국제관계가 그 만큼 복잡한 만큼, 이는 반대로 구글이나 유튜브와 같은 서구 중심 매체가 중국 내에 진출하지 못하는 이유를 일정 설명해준다고 할 수 있다. 미국 트럼프 정부조차도 사상이나 이념과는 거리가 먼 화웨이에 대해서 그 회사 5G 장비의 ‘보안 누설’ 가능성을 이유로 금지시키려 하고 있지 않는가? 인터넷은 오늘날 국제 계급투쟁의 가장 주요한 무대 중 하나임을 우리가 인식할 필요가 있다.

    끝으로, 적과 아를 구분하는 싸움의 ‘기본문제’에 대해 잠깐 언급하기로 하자.

    누가 우리의 적인가? 누가 우리의 친구인가? 이것은 혁명에 있어 첫 번째 문제이다.” (마오저동, <중국사회 계급분석>) 전쟁이든 혁명이든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적과 아군을 정확히 가르는 일이다. 그렇다면 21세기의 한국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에 있어서 중국은 도대체 적인가 아군인가? 이 문제는 여전히 우리 운동에 남아 있는 중요한 숙제라고 할 수 있다. 이 물음에 대한 대답 여하에 따라 한국 변혁운동을 에워싸고 있는 국제 계급역관계는 크게 흔들리게 된다. 중국은 최소한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노동운동과 진보진영의 우군이라 할 수 있다.

    첫째, 세계경제성장의 동력이자, 한국의 최대 수출시장이란 점 때문이다. 중국은 2008년 국제 금융위기 이래 매년 30%씩 세계 경제성장에 공헌함으로써 침체에 빠진 국제경제에 지속적인 성장 동력을 제공해주고 있다. 한국경제에 있어서도 미국·일본·유럽연합을 모두 합친 것보다도 더 많은 한국 상품의 수출국이며, 이 때문에 한국의 경제성장에 큰 기여를 하고 있다. 최소한 한국 사람들이 중국을 미워하고 적대시할 이유는 없다는 것이며, 오히려 더욱 가까이 함으로써 이 지구경제의 가장 강력한 기관차로부터 한국경제의 새로운 활로를 되찾아야 한다고 본다.

    둘째, 동북아 평화와 안정 및 북핵문제에 있어서 중국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중국은 그간 북핵 위기의 결정적 순간마다 북미 간의 대결이 극한적으로 치닫지 않도록 나름의 균형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주었다. 예컨대 한반도의 비핵화 원칙을 분명히 하고, 북한의 핵무기 개발이나 핵 보유에 대해 일관된 반대를 표명해 왔다. 다른 한편에선 미국이 중심이 된 국제사회의 대북제제가 도를 지나치지 않도록 러시아와 함께 유엔을 통한 견제를 해 주었다. 이리하여 지금 한반도의 비핵화의 진척은 중국이 그간 주장해왔던 쌍잠정(雙暫停, 북한 핵·미사일 개발 활동과 한미 연합훈련을 일시적으로 동시에 중단하는 것)과 쌍궤병행(雙軌竝行,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와 북·미 평화협정 협상을 병행해 추진하는 것)의 방향으로 진행 중이다. 중국은 이처럼 동북아 정세의 안정뿐만 아니라, 전체 동아시아의 안정에 있어서도 큰 몫을 차지한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중동, 아프리카, 심지어 유럽과 같은 지역조차도 국제분쟁이 끊이지 않는 것과는 달리, 동아시아에서 별반 큰 무력충돌이 일어나지 않고 상대적인 번영을 누리고 있는 것은 중국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진보진영은 이 같은 중국의 눈에 보이지 않는 국제사회에서의 역할을 제대로 평가할 필요가 있다.

    셋째, 사회주의와 시장경제의 성공적인 결합 모델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앞으로 한국 노동계급의 해방과 관련된 풍부한 현실 경험을 제공해 줄 수 있는 자료의 ‘보고’라 할 수 있다. 한국의 노동운동은 이러한 중국의 그간 성과와 문제점에 대한 진지한 관심과 연구가 필요하다. 앞으로 ‘반재벌’ 투쟁을 본격화해 나가고, 특히 조만간 다가올 대규모 구조조정과 관련하여 노동자들이 재벌국유화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하는데 있어서 그 대안에 대한 고민이 절실히 요구되는 상황이다. 이 경우 중국의 ‘공유제기업이 주도하는 시장경제’는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던져줄 수 있을 것이다.

    필자소개
    김정호
    북경대 맑스주의학원 법학박사 , 노동교육가, 현재 민주노총 정책연구원 정책자문위원, 맑스코뮤날레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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