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문제,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2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 정립④]수탈적 원-하청 관계
    2018년 04월 13일 09: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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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관련 링크)에선 재벌체제와 한국의 대외의존적 경제구조와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이번에는 제조업 분야에서 비정규직이 광범위하게 출현하는 이유, 또 공공·유통 등 기타 분야에서 한국의 비정규직이 크게 확산되는 이유 등을 재벌체제와의 관련 속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제조업 비정규직문제와 재벌체제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는 제조업에서의 비정규직 비중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지나치게 높다는 사실이다. 한국 제조업 부문의 비정규 노동자의 비중은 38.3%(2005년 현재)이다. 이는 전체 평균 55.7%에 비해서는 낮은 수치이지만, 그 절대 규모에 있어 135만 명에서 145만 명 수준으로 전체 비정규 노동자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특히 제조업종 중 주력업종이라 할 수 있는 금속산업 부문 비정규 노동의 핵심이 사내하청 노동이다. 바로 이러한 상황으로 인해 외환위기 직후부터 사내하청 노동은 비정규직 차별철폐 및 정규직화 투쟁에 있어서 핵심적인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런데 따져보면 원래 제조업은 유통이나 서비스업과는 달리 작업 형태에 있어 일정한 숙련이 요구되는 분야가 많고, 상대적으로 경기변동의 영향이 적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고용형태로 보자면 상용직과 직접고용에 어울리며, 임시직이나 간접고용과 같은 비정규직에는 적합하지 않다. 서구 선진국의 경우 역시 비정규직의 대부분은 유통서비스와 같은 분야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제조업에서의 비정규직 고용 현상은 비교적 드물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한국은 제조업분야에서 광범위한 비정규직이 발생하고 있는데, 이 문제에 대한 규명은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있어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 문제는 이하 세 가지 측면, 즉 국제 분업 상 제조업에 주로 포진하고 있는 한국 재벌기업, 수탈적인 국내의 원-하청관계, 1990년대 재벌의 ‘신경영전략’ 으로부터 설명될 수 있다.

금속노조 현대-기아차 비정규직지회들이 3월 6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이명박 뇌물 상납, 현대-기아차 불법파견 정몽구 처벌, 근로자 지위확인 소송 대법원 판결 촉구 농성투쟁 돌입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사진=금속노동자)

(1) 제조업 중심의 한국 재벌

우선 이 문제는 수출에 의존해야 하는 한국 재벌의 주력 기업들이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에 대거 포진하고 있다는 사정과 관련이 있다.

역사적으로 보자면 한국의 경제개발이 시작되던 1960년대는 2차대전 이후 국제적인 산업구조의 재조정과 관련 산업의 국제적 이동이 시작되던 시기라고 볼 수 있다. 이 때부터 그간 전후 자본주의를 선도하였던 미국 기업들은 이후 후발주자인 일본과 유럽 기업들에 밀리면서, 노동집약적인 섬유나 흑백TV의 생산라인을 대부분 노동력과 토지가격이 저렴한 멕시코와 타이완 그리고 싱가포르 등으로 이전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 들어 이 같은 국제 분업의 변화는 한층 두드러졌는데, 이 시기엔 위의 노동집약형 산업의 이전뿐만 아니라 구조조정을 주도한 미국을 필두로 점차로 철강·화학·조선·전자부품 등 대규모 자본집약적 산업까지도 개도국으로의 설비 및 기술이전이 확대되었다.

당시 마침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을 추진하고 있던 한국경제는 1970년대 중화학공업화를 계기로, 국제 분업 상 서구 선진자본들이 고부가가치 서비스산업 위주로 재편되는 틈을 타서 점차 전통 제조업 분야의 빈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이 때 그 같은 ‘진공’을 담당한 한국의 재벌들은 지금까지 전통 제조업을 자신의 주력으로 삼고 있다.

(2) 중소자본에 대한 수탈적 원-하청 관계의 수립

한국 재벌의 주력이 제조업에 대거 포진한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제조업에서 현재 광범위하게 발생하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 현상을 모두 해명해주지는 못한다. 이 점을 밝히기 위해선 현재 초점이 되고 있는 원-하청 관계로 위장한 ‘불법파견’ 즉 ‘사내하청’이 어떻게 한국에서 광범위하게 출현하게 되는지 그 원인을 규명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그리고 또 그를 위해선 먼저 한국에서 재벌의 중소기업에 대한 위계적, 수탈적 원-하청 관계로의 편입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가 설명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애초에 사회 전반에 이 같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의 종속적 관계, 그리고 현실에서 그 구체적 표현형식인 ‘수탈적 원-하청 관계’가 광범위하게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이후의 원-하청 관계로 위장한 불법파견 즉 ‘사내하청’ 역시도 출현하기가 어려웠을 것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사내하청’이라는 것도 바로 원래 존재하였던 ‘수탈적 원-하청 관계’를 대기업 사내로까지 확대 적용한 것에 불과하다.

한국 재벌의 주력기업이 포진하고 있는 철강·자동차·선박 등 전통 제조업은 업종 성격상 전통적으로 사회적 분업이 비교적 잘 발달된 분야라고 할 수 있다. 이 분야의 생산물은 그 완성도와 생산 공정의 성격에 따라 ‘완성품’과 ‘소재·부품’ 두 분야로 크게 나누어진다. 한국의 재벌 대기업은 그중 ‘완성품’을 주로 담당하며, 나머지 중소자본들은 이 대기업과 ‘하청’ 관계를 맺으면서 소재·부품을 납품하는 역할을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 자본주의에 있어 하청지배구조는 1980년대 중 후반부터 자동차, 기계 등 금속산업 부문에서 독점대자본의 주도하에 중소 사업체의 수직 계열화 전략이 추진되면서 강화되었다. 이리하여 1980년대를 거치면서 한국경제에 있어 하청계열화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양자 관계의 주요 형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중소기업 중 하청업체의 비중은 1978년의 18.2%에서 1987년엔 48.5%로 급증하였으며, 1990년대와 2000년대 들어서서 이 비중은 더욱 높아졌다. 예컨대 한국의 중소기업이 주문생산판매 하는 비중은 1993년 53.3%에서 2003년 81.8%로 증가하였다. 2002년 현재 300인 미만을 고용하는 중소기업은 총 109,681개로 우리나라 전체 제조기업 숫자의 99.4%를 차지하는데, 이들 중 80%가 넘는 기업들이 고립된 채 스스로 완제품을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과의 긴밀한 관계 속에서 부품생산을 하고 있다. (<한국 자본주의의 재생산구조 변화: 1987-2003>,p127)

그런데 설령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원-하청 관계를 형성한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반드시 수탈적인 관계일 수밖에 없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잠시 후 보게 되는 것처럼, 선진국에서는 대체로 이들 간에 비교적 수평적인 평등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한국에서처럼 수탈적인 원-하청 관계를 형성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적인 경제구조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원래 한국이 진출한 제조업 분야는 비록 자본밀집형 산업이긴 하지만, 그 기술적 요구가 상대적으로 그리 크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 관련 기술의 상당부분이 이미 통용화된 상태여서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졌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한국은 비록 개발도상국으로서는 드물게 이 같은 자본밀집형 중화학공업에 진출할 수 있었지만, 일본과 독일처럼 제조업 강국의 지위를 계속해서 유지코자 하는 선진국들뿐만, 산업구조 고도화가 지체되고 있던 일부 선진국, 그리고 한국처럼 방금 공업화를 달성한 다른 신흥공업국들과도 치열하게 경쟁해야 하는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런데 기술적으로 이미 성숙 단계에 들어선 이 같은 분야의 경쟁은 기본적으로는 ‘가격 경‘의 성격을 지닌다. 이 경우 우선 ‘규모의 경제’를 누가 먼저 실현하여 제품단가를 낮출 수 있는지가 경쟁의 관건이 된다. 제품의 적시 출시 역시도 상당부분 이 범주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이리하여 규모의 경제를 남들보다 한발 앞서 구축함으로써 다른 후발주자들의 신규 참여를 배제키 위한 각국 자본 간의 경쟁이 치열해진다. 한국이 반도체·자동차·조선 분야 등에서 성공을 거둔 것은 이 같은 전략의 좋은 실례를 제공한다. 한국은 이들에 대해 국가적 차원에서 자본과 자원을 집중 지원하여 육성함으로써, 규모의 경제를 남들보다 한발 앞서 구축하여 다른 경쟁국들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 획득한 경쟁 우위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기술 우위에 기초한 것이 아니기에, 그 우위는 매우 박빙의 것이라 할 수 있다. 예컨대 삼성전자의 핵심전략인 ‘선행투자’는 기껏해야 길어야 1~2년, 짧게는 6개월 정도의 선두주자 자리를 보장할 뿐이다. 이것은 눈 깜짝할 사이에 다른 경쟁사에 의해 추월될 수 있는 것으로, 소재부품이나 획기적인 과학기술분야에서 10~20년의 독보적인 기술 우위를 확보하고 있는 선진국의 경쟁력과는 대조된다.

이 때문에 다른 한편 저임금 장시간노동에 기초한 가격경쟁력의 유지가 필수적으로 요구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한국에서 재벌 대기업들이 중소기업에 대한 수탈적 원-하청 관계를 구축하도록 강제하였다. 재벌 대기업은 종속적인 원-하청 관계를 통해 수출시장의 변동으로부터 발생하는 충격을 하위로 전가할 수 있게 된다. 또 이와 함께 하청기업들에게 비용 압박과 적기 생산에 따른 재고관리의 부담을 떠넘길 수 있는 등 ‘초과수탈’을 할 수 있다. 이처럼 재벌 대기업이 중소기업을 수직적인 지배관계로 포섭하는데 있어, 지난 호에서 언급했던 재벌의 선단식 (혹은 문어발식) 경영이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재벌은 이를 통해 국내시장에서 독점을 형성한 후, 이 같은 독점력을 기초로 중소자본을 그 하위에 편입시킬 수 있었다.

여기서 참고로, 독일·일본 등 한국과 마찬가지로 제조업이 상대적으로 발전한 서구 선진자본주의국가를 보자면, 이들은 한국과는 달리 비교적 평등한 ‘원-하청’ 관계를 구축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들 나라에서 그것이 가능한 이유는, 첫째, 자국 내부시장에 있어 한국과는 다른 경쟁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일본 자동차업종의 경우 완성차 회사만 10여개가 존재한다. 이 때문에 한국의 현대-기아처럼 압도적 독점체계의 구축을 통해 중소기업에 전수거래를 강요하고,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으로 산하 하청기업들을 수탈하는 행위가 성립되기 어렵다. 둘째, 부품회사인 하청 중소기업들이 자체 독자적인 기술경쟁력을 갖춘 경우가 적지 않다. 독일의 소위 ‘숨은 챔피언'(Hidden Champions)들이 그 대표적인 예인데. 이들은 중소기업이면서도 전 세계시장을 상대로 하는 ‘다국적기업’들이다. 셋째, 정부의 강력한 보호정책으로 말미암아 이들은 원청 대기업과의 관계에 있어 비교적 ‘평등’한 지위를 누릴 수 있다. 이들 국가에선 중소하청 기업들이 집단으로 협상단을 꾸려 원청 대기업의 부당행위에 공동 대처하는 것을 보장하고 있는데, 한국은 이를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금지한다.

이상 우리는 독일·일본과 같은 선진국의 원-하청 관계가 한국과 다른 원인을 살펴보았다. 이들의 예는 비록 사회적 분업의 발전에 따라 원-하청 관계의 보편화가 세계적인 추세이긴 하지만, 그러나 그 성격은 나라마다 다를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렇게 볼 때 한국의 원-하청 관계의 불평등 문제의 기원이 재벌체제에 있으며, 그 배경으로서 경제구조의 대외의존성이라는 한국적 특수성이 작용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다. 즉 해외시장에서 기술력 부족에 따른 ‘출혈경쟁’을 보완할 수 있는 장치로서, 재벌 대기업은 국내에서 중소기업에 대해 ‘피라미드식’ 다단계 수탈체계를 구축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 점은 향후 한국적 ‘비정규직 문제’를 발생케 하는 기본 배경이 된다.

(3) 1990년대 재벌의 ‘신경영전략’

한국의 원-하청 관계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일정한 자체 발전을 겪게 된다. 처음 그것이 성립되던 1980년대만 하더라도, 원-하청 관계는 하청업체의 생산설비와 저임금 노동력 등을 활용하는 단순 외주를 위주로 하였다. 그러나 차츰 대기업이 하청업체의 경영에 직접 개입하여 품질향상과 생산성제고 등 생산합리화를 강제하고, 이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에는 단가인하, 물량감소, 거래중단 등의 수단을 동원하는 밀착관리 방식으로 이행하였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핵심 대기업 자체의 생산공정을 외주로 전환하는 것을 대폭 늘리면서, 이와 동시에 대기업 내부의 직접 생산공정을 담당하는 업무에까지 사내하청을 증가시키는 현상이 나타난다.(이상 <비정규노동자 조직화 방안 연구>,p305 참조)

그렇다면 이 같은 원-하청 관계의 변화를 추동한 기저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이 재벌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1987년 이후 특히 1990년대 들어 변화된 재벌의 대 노동 전략이 우리 사회의 ‘비정규직 과도화’에 미친 영향을 고려한 측면도 크다.

20세기 후반에 지구화의 본격적 진전과 함께, 전 세계 기업경영방식에는 한 가지 뚜렷한 변화가 발생하였다. 그것은 ‘아웃소싱’ 혹은 ‘린생산방식’ 등의 명칭으로 불리어지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기업들은 자신의 경영업무 중 핵심적인 기능만을 남기고 나머지는 외부 하청업자들과의 계약으로 넘기는 소위 ‘중앙 집중 없는 집중’을 지향하는 새로운 경영방식이 나타났다. 이에 따라 기업의 경계는 유동화 되고 심지어는 허물어지게도 되었지만, 그러나 경제적 독점 권력은 오히려 이전 보다 강화되었다.

한국의 재벌 역시도 1990년대 들어 경영형태 상 이 같은 세계적 기류의 영향을 받았음은 틀림없다. 그러나 이 보다도 더욱 한국 재벌의 경영전략의 변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 것은 다름 아닌 국내 노자관계의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이러한 세계적 기류 역시도 한국 사회에 도입될 때는 매우 변형된 형태가 되었으며, 그 결과 사내하청을 비롯한 광범한 비정규직의 범람을 낳게 되었다. 이에 대해 좀 더 자세히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의 재벌체제는 그것이 수립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1980년대 후반, 예기치 않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한국 노동계급의 성장 때문이다. 그간 산업화로 인해 한국 노동계급은 양적으로 크게 증가하였을 뿐만 아니라, 특히 1987년 대투쟁을 계기로 본격적인 ‘대중적 노동운동’의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이에 따라 기존의 축적방식 특히 ‘대 노동관계’를 상당정도 수정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다. 한편에선 저임금·장시간 노동에 기초한 자신의 경쟁력 기반을 쉽게 바꾸지 못하면서도, 다른 한편 새롭게 대규모로 조직된 노동자들의 저항을 분쇄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일이 자본의 사활적 문제가 되었다. 이에 대한 답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위 ‘신 경영전략’이라고 부르는 대 노동전략의 변화이다.

이것은 지구화시대의 돌입과 이에 따른 전 세계적인 신자유주의적 사조의 범람에 편승하면서도, 가장 중요하게는 1987년 대파업이 야기한 노동자계급과 자본가계급 간의 역관계 변화를 새롭게 반영하기 위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 그것은 1987년 노동자 대투쟁 이후 현장권력의 상당 부분이 노동조합에게 넘어감에 따라 이에 대한 대응책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이 같은 ‘신 경영전략’은 직무개편·연봉제 등 임금체계 변화를 비롯하여, 비본질적 업무의 외주화 등 전반적인 내용을 포괄하였다.

이때부터 기존의 위계적 수탈적 원-하청 관계에 덧붙여, ‘사내하청’ 형식의 불법파견 등 한국사회 전반의 비정규직화가 전면적으로 진행되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볼 때, 1990년대의 ‘신 경영전략’ 역시 지금의 비정규직 문제는 한국 재벌체제의 필연적 결과라는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여기서 그간 한국기업들의 노동에 대한 전략이 어떻게 변해왔는가를 살펴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조돈문 등에 따르면 한국기업의 이와 관련한 경영전략의 변화과정은 다음 세 시기로 나누어진다.

즉 1987년 이전에는 권위주의적 통제단계로, 이 시기는 노동기본권을 부정·유린하고 국가와 자본의 직·간접적 폭력이 노동통제의 유력한 수단이 되었던 자본의 전제적 지배시대였다. 그 다음 1987~1989년의 시기에 노사 간에 헤게모니 투쟁이 일어났는데, 기존의 권위주의적 통제가 일부 와해되고 노조의 현장장악력이 강화되었다. 1989년 이후는 신 경영전략이 도입된 시기로서, 사용자는 임시직, 정리해고제, 근로자파견제, 변형근로시간제, 배치전환 등의 도입을 통해 고용유연성을 확보하는 한편, 임금-직급체계의 대대적 개편과 신기술의 도입 및 작업조직의 혁신 등을 시도함으로써 현장권력의 재 장악을 노렸다. (<비정규노동자와 노동조합>, p114 참조)

이처럼 한국의 재벌들은 1990년대 신 경영전략의 채택을 계기로 내부 업무의 대폭적인 외주전환과 함께 사내하청의 확대를 적극 추진하였다. 그것은 노조의 파업효과를 최소화시키는 효과와 함께, 유휴노동력의 발생에 따른 배치전환 등의 문제를 야기함으로써 대기업 정규직의 고용불안 심리를 활용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있었다.

예컨대 금속산업의 경우를 보자면, 1980년대 중반 이후 총무·시설·경비·식당·차량운전 등 단순 업무에서 시작된 용역화는, 1990년대 이후에는 점차 물류·간접부서·유해위험 부서(도장, 주물) 등의 생산영역으로 확대되었다. 사무직 업무에 대해서도 연봉제 등의 임금체계 개편과 함께 임시직, 계약직 도입이 이루어지면서 1990년대 중반 이후에는 과거에 부분적으로 존재하던 내부하청, 즉 사내하청이 산업 전반에 대규모로 확산되었다. 특히 자동차와 조선을 중심으로 진행된 사내하청의 급속한 확대는 대공장 내부뿐만 아니라 대공장과의 원-하청 거래에 연결된 수많은 외부 하청업체들의 구조조정과 사내하청 확대 및 구조화와 연결되었다.(<비정규노동자 조직화 방안 연구>,p302)

여기서 선후 관계가 분명해진다. 한국에서 신자유주의의 도입이 비록 1990년대 들어 시작되었지만, 그러나 그것이 본격 유행하게 된 것은 잘 알다시피 IMF 위기 이후이다. 따라서 자본의 ‘신 경영전략’과 반노조 공세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는 이 같은 자본 전략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는 신자유주의 한국적 도입보다도 1987년 대파업으로 비롯된 노자 역관계의 변화, 즉 ‘한국적 특수성’이 더 크게 작용하였다고 볼 수 있다. 신자유주의는 이처럼 먼저 시작된 계급정책의 변화에 대한 외피를 씌워주면서, 그 적용을 확대시키거나 외연을 확장하는 역할을 하였다. 이처럼 주요와 부차의 관계가 명확한데, 우리가 어찌 이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면서 한국적 계급투쟁의 역사와 특수성을 무시할 수 있겠는가?

참고삼아 한국에서 사내하청의 역사를 잠깐 짚어 보자면, 그것은 하루아침에 생겨난 것이 아니라 한국 자본주의의 역사와 오랜 맥락을 같이 함을 알 수 있다. 이미 1920년대 이후 일제치하 자본주의화 과정에서 도중(都中), 직장(職長), 고공(雇工) 등의 명칭 하에 ‘청부공’ 등의 형식으로 간접고용이 존재하였다. 1974년 현대조선소 노동자의 폭동사태도 이 같은 사내하청과 관련이 있었으며, 당시 한국의 주력 업종이었던 섬유부문의 의류·봉제 등에서도 ‘객공(客工)’이라는 이름으로 사내하청 노동과 유사한 간접고용이 널리 활용되고 있었다. 금속부문 사내하청 노동은 1987년 대투쟁 과정에서는 일부 사업장의 핵심 투쟁주체가 되기도 하였다.(이상 위의 책,p301)

이처럼 열악한 자본주의적 고용형태는 한국이 그간 식민지적 경험과 개발도상국으로서 개발독재하의 후발 산업화를 겪는 과정에서 일찍부터 생성되고 발전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전통과 요소가 한국 사회에 이미 상당 정도 존재하였기에, 이후 1990년대 들어 재벌은 신 경영전략을 수립함에 있어 위장하청을 이용한 불법파견을 쉽게 고안할 수 있었다. 재벌들은 교활하게 이를 신자유주의 탓인 양 위장하였다.

공공·유통·건축 등 기타 부문 비정규직문제와 재벌체제

지금까지 제조업 중심의 한국 재벌, 수탈적 원-하청관계, 1990년대 이후 ‘신 경영전략’ 세 가지 측면에서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와 재벌체제와의 관계를 살펴보았다. 끝으로 그간 제조업 중심으로 살펴본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 다른 영역, 즉 공공, 유통서비스, 그리고 건축 분야의 비정규직 문제는 재벌체제와 어떠한 연관이 있는지를 살펴보기로 하자.

현실에서 한국의 비정규직문제는 제조업에만 집중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유통·건설·공공운수 등 전 업종에 걸쳐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오히려 양적 측면에서 본다면 이들 분야가 제조업의 그것을 훨씬 능가한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제조업에 한정해서 한국 비정규직문제의 본질과 재벌체제의 관계를 말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그러나 무릇 다양한 현상에는 그 본질이 존재하며, 여러 요소들이 복잡하게 섞여있다 할지라도 그중에는 ‘중심적인’ 것이 반드시 있기 마련이다.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경우도 그러한데, 위의 여러 분야의 비정규직 문제 역시도 제조업의 그것을 중심에 놓고 바라볼 경우 우리는 훨씬 쉽게 그 핵심을 파악할 수 있으며 총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우선, 제조업은 생산과정을 포함하는데, 그곳은 유일하게 잉여가치가 생산되는 영역이다. 따라서 제조업은 다른 유통과 공공 부문의 자본운동의 기초와 조건을 제시하며 제약한다. 특히 한국과 같이 상대적으로 제조업 강국에 속하고 그 비중이 높은 나라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예컨대 한국 제조업의 전반적인 이윤율이 낮은데 유통이나 금융 등 다른 업종의 이윤율만이 특별히 높을 수는 없다. 마찬가지로 제조업 노동자가 광범위하게 비정규직 형태로 존재하며 차별대우를 받는 것은, 유통업 등 다른 분야의 노동형태에서도 이 같은 차별과 고용 형식이 더욱 쉽게 출현할 수 있는 배경이 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일본과 독일 등 기술선진국의 경우, 제조업에서의 정상 내지 초과이윤은 다른 유통서비스 분야에서 비정규직에 대한 차별이 한국처럼 심하지 않게 하거나, 국가가 이들 분야에서의 차별을 법적으로 금지시키는 것이 일정 정도 가능케 하는 기본조건을 부여한다.

둘째, 한국에 있어 재벌은 그들의 ‘문어발식 경영’이 말해주듯 유통과 건설 및 공공 중의 민간부문(학교·병원·운수 등)에도 광범위하게 진출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이들 분야 역시도 기본적으로 재벌의 관할 하에 있는 경우가 많다. 이리하여 이들 분야도 당연히 한국 재벌이 갖고 있는 범 ‘초과착취’적 속성을 그대로 공유할 수밖에 없다.

예컨대, 재벌소속 백화점 3사의 시장점유율은 78%이며, 이마트·홈플러스·LG유플러스 등 대형마트 3사는 53%를 차지한다. 또 각급 학교재단도 재벌에 속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울산과학대 청소노동자들이 지금까지 4년에 가까운 힘겨운 장기투쟁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학교재단 배후에 현대중공업이라는 막강한 재벌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도 비정규직 문제와 재벌과의 관계를 엿볼 수 있다.

이밖에도 요즘 들어 잇달아 발생하고 있는 추락사고 등 건설현장의 각종 사고 이면에도 재벌의 존재가 숨어있다. 통계에 따르면 2014년~2016년 100대 건설사 현장에서 그간 247명이 숨졌다. 여기서 사망자 수는 대우가 20명으로 1위이며, 현대, 에스케이(SK), 지에스(GS), 롯데, 대림, 포스코, 금호 순으로 이어진다. 이는 업체 도급순위와 거의 일치한데, 현재 우리나라 10대 건설사 중 재벌그룹에 속하지 않은 곳은 대림산업 한 곳 뿐이다. (함인선, “부끄럽다 ‘삼성건설’ “, 한겨레신문, 2018년 3월 27일자)

이렇듯 공공·유통·건설 부문은 제조업 원-하청 관계를 통해 이미 구축된 비정규직의 양산구조에 편승하고 그것을 사회적으로 확산시키는 구실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혹은 이들 각각의 분야에 이미 어느 정도 내재하고 있던 비정규직 문제가 제조업의 그것에 의해 더욱 확고해지고 심각하게 되어 간다고도 볼 수 있다. 이와 비교할 때 서구 선진국의 경우 유통서비스 분야라 할지라도 비정규직 문제의 양상은 한국과는 크게 다르며, 한국만큼 그것이 일반화되거나 또 차별이 그렇게 심하지도 않다. (제2회분 연재 참조)

셋째, 정부기관의 공공부문을 볼 때 특히 그러하다. 명색이 국민의 사회복지와 고용 및 사회 안정에 앞장서야 할 정부가, 한국처럼 오히려 차별적이고 사회불안을 야기할 수 있는 비정규직의 확장을 앞장서서 담당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보기 드물다. 이는 ‘재벌과두체제’ 하에서 재벌에 이미 포섭된 상부구조로서의 국가의 성격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으로써, 비정규직의 양산을 통해 존재할 수밖에 없는 후기 한국 신식민지국가독점자본주의 자본축적 구조의 상부구조적 특성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설령 현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부터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하는 모범을 보이려 애쓰고 있지만, 그것은 거대한 빙산을 그대로 둔 채 그 일각만을 손질하려는 것이기에 기껏해야 ‘모양내기’에 그칠 수밖에 없다.

비정규직 문제가 한국자본주의 재생산구조의 필연적인 요구이자 한국 재벌체제의 내재적 요구에서 나오는 이상, 그 구조 전반을 뜯어 고치지 않는 한 결코 근본적인 해결은 기대할 수 없다. 차라리 한국 정부는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하는 것보다, 노무현·이명박·박근혜 정부가 그러하였듯이 재벌이라는 거대한 ‘경제적 현실’에 순응하면서 오히려 ‘비정규직 고용’의 모범이 되는 길이 보다 용이하다고 할 것이다. <계속>

필자소개
과거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사노맹 사건으로 3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사회를 연구할 목적으로 16년간 중국 유학생활을 보냈다. 중국인민대학과 상해재경대학에서 각각 금융(학사)과 재정(석사)을 전공했고 최종적으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에서 레닌의 정치신문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8월 귀국하여 울산에 정착해 현재 울산 평등사회노동교육원에서 교육강사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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