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문제,
한국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1
[비정규직 투쟁의 방향 정립③]대외의존적 경제구조
    2018년 04월 05일 11:41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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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글(“한국 특색의 비정규직 문제“)에서 필자는 한국 비정규직 문제를 ‘신자유주의 탓’으로만 돌리는 사람들을 비판하였다. 그렇다면 한국의 비정규직 문제의 본질은 무엇일까? 그것은 다름 아닌 ‘재벌문제’이다. 한국 재벌은 대외 의존적인 수출주도형 한국경제를 상징하며, 이 때문에 한국에서 비정규직 문제가 광범위하게 출현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앞으로 두 차례에 걸쳐 이에 관해 서술할 것이다. 우선 거시적 축적구조의 측면에서 대외의존적 수출주도형 한국경제와 재벌, 그리고 비정규직 문제의 관계를 살펴보자.

대외 의존적 수출주도형 경제구조와 비정규직 문제

비정규직 문제는 무엇보다도 ‘노동시장 유연화’를 뒷받침해 줄 수 있는 사회적 안전판으로서의 ‘사회보장제도’가 잘 갖추어져 있는지 여부와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노동시장 유연화’ 자체는 사회적 생산력 발전에 따른 ‘노동유연화’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일종의 역사의 필연적 과정이기도 하다. 또 맑스가 얘기했듯이 노동유연화는 계급이 철폐된 사회에서 ‘인간해방’의 한 조건이자 실질적인 내용(즉 기계적 ‘분업’의 극복)이기 때문에 부정적으로만 볼 사항은 아니다.

분업의 구속에서 벗어난 노동자가 오전에는 농장에 나가 한가로운 전원 속에서 농사를 짓고, 오후에는 다시 강가로 나가 낚시질 하고, 가족들과 저녁 식사를 마친 후에는 자신의 서재로 돌아와 저술활동을 하는 ‘전일적 노동자’가 된다는 것은 바로 이를 두고 하는 말이다. 우리가 반대하는 것은 노동시장 유연화가 단순히 자본의 이윤추구의 수단으로만 이용되면서 ‘대책 없는 해고’를 남발하는 경우에 한해서이다. 그것을 방지하거나 완화시켜 줄 수 있는 것은 사회적 안전판으로써의 ‘사회보장제도’를 튼튼히 구축 하는 길밖에는 없다.

이 경우 한국경제는 대외의존적 경제구조와 자본시장의 전면 개방으로 인해 대량의 경제잉여 유출이 발생하는 관계로,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와는 달리 복지제도를 구축할 수 있는 물적 토대가 근본적으로 취약하다. 그중 먼저 대외의존적 경제구조와 관련한 것부터 살펴보자.

한국경제는 1960년대 초반 본격적인 경제개발을 착수한 이래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구조가 정착되어 왔는데, 이는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성의 출발점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대외의존성은 1997년 IMF 경제위기를 겪으면서 더욱 심화되었다.

예컨대 아래 표1에서 보듯 외환위기 전인 1988년과 1997년 무역의존도는 각각 59.4%와 58.7%이었다. 그런데 외환위기 이후인 2004년과 2005년 이 지표는 각각 72.8%와 71.2%로 높아졌다. 또 최근 2013년과 2014년에는 다시 102.8%와 95.9%로 한 단계 더 높아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한국경제의 대외의존도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심해지고 있는 추세를 보여주는 것이다.

다른 한편 이 같은 높은 대외의존성에 비해 한국경제가 국제 분업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그리 높지 못하다. 이 때문에 해외시장에서 한국기업의 경쟁력은 ‘기술우위’에 의존하기보다는 기본적으로는 여전히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기초한 ‘가격경쟁력’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경제개발 초기인 개발독재정권 시기 한국자본주의의 중요한 특징 중의 하나가 장시간‧저임금 노동이었다. 이는 초기 경제성장단계에서 강제로라도 외화를 벌어들여야 했던 한국 기업들이 해외시장 경쟁에서 의지할 수 있었던 유일한 경쟁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같은 장시간‧저임금 노동은 한국의 산업화가 기본적으로 달성된 1990년대 이후에도 크게 변화됨이 없이 오늘날에 있어서도 지속되고 있다.

오늘날 한국경제의 전반적 경쟁력이 창의와 기술력에 기초하고 있는지, 아니면 여전히 본질적으로 ‘저렴한 인건비’에 기초한 것이지를 판단하는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이 경우 자본의 ‘인적 자원(노동력)’에 대한 태도, 즉 그것의 잠재적 가능성에 대한 개발과 이용 문제가 중요해진다. 만약 노동 강도의 강화나 노동시간의 절대적 연장에 의존하는 방식에 많이 의존한다면, 이는 장기적으로 보면 필연적으로 인적 자원의 소모만을 초래하기 때문에 우리는 여전히 한국경제가 창의와 기술력 보다는 ‘저렴한 인건비’에 의존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이 문제와 관련하여 볼 때, 경상대 정성진 교수의 연구를 우리가 참고할 만하다. 그는 1970~2003년 기간 한국 자본주의 축적의 장기추세를 연구하였다. 그의 연구 결과는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회복은 경제효율성의 개선 결과가 아닌 노동강도의 강화에 따른 것임을 보여준다. 그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기회복을 가능하게 만든 이윤율의 상승이 전적으로 ‘이윤몫’ 상승에 기초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여기서 이윤몫은 ‘총부가가치에 대한 이윤의 비율’로 정의된다.

그런데 이처럼 1997년 이후 이윤율 반등을 주도한 이윤몫의 급등은 효율성의 개선 결과가 아니라 노동강도의 강화에 주로 기인하는 실질노동생산성’의 상승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 제조업 부문 단위노동비용은 1996년 85%에서 1998년 42%로 거의 절반 수준으로 폭락했으며, 2003년에도 43% 수준에 묶여 있었다. 이는 이 기간 상당 수준의 노동생산성 상승이 발생했음을 의미한다. 그런데 1996~2003년 자본의 효율을 나타내는 ‘산출-자본 비율’이 동 기간에 매년 평균 0.2% 감소율로 저하했음을 감안한다면, 이는 효율성의 개선 결과가 아니라 노동강도의 강화 결과라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 이 기간 동안 한국에서는 자본의 설비투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IMF 외환위기에 놀란 한국기업 특히 재벌 대기업들은 벌어들인 이윤을 가지고 빚을 갚거나 사내유보금을 쌓는데 급급했을 뿐 별반 시설투자를 하지 않았다.

결국 1999년 이후 한국경제의 회복을 이끈 견인차였던 수출의 폭발적 증대는 이와 같은 ‘임금 붕괴'(노동강도 강화에 따른 사실상의 실질임금의 저하))에 의해 가능했던 제조업 제품 가격경쟁력의 제고에 힘입은 것이었던 셈이다. 이에 따라 정성진 교수는 1997년 이후 신자유주의적 구조조정의 핵심이 다름 아닌 “노동자계급에 대한 착취 강화를 통한 자본의 수익성 회복”이라고 결론지었다. (이상 《한국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1987-2003》, pp.25-30 참조함)

정 교수의 이 같은 결론은 외환위기 이후 2003년까지의 자료를 기초로 한 것이지만, 이 같은 저임금을 기반으로 한 한국경제의 기조가 그 이후에도 하나의 추세로 굳건히 자리 잡아 가고 있는 현실은 이후 한국 노동자의 실질임금의 지속적 감소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ILO가 선진국으로 분류한 28개국의 데이터를 보면, 2009년에 실질임금이 가장 하락한 나라는 2008년 10월에 국가 경제가 파탄한 아이슬란드였으며 그 다음으로는 놀랍게도 한국이었다.

한국은 2007년, 2008년, 2009년에 각각 -1.8%, -1.5%, -3.3%로 실질임금의 연속적인 하락률을 기록하였다. 그런데 2009년은 한국을 대표하는 기업인 삼성전자가 원화 약세의 여파를 틈타 이 무렵 9.65조원의 순이익을 올림으로써 기록적인 실적을 기록한 해이기도 하다. 결국 이 같은 결과는 저임금에 기반해서 한국 글로벌기업이 성장했다는 사실을 반영한다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이 점은 외국인의 눈에도 분명 그렇게 비치는 모양이다. 일본인 경제평론가 미쓰하시 다카아키는 그의 저서에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한국의 규모가 큰 수출기업 중 대다수는 국내에서 과점적 이익을 획득하고 그로써 얻은 잉여현금을 이용하여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발휘할 수 있다.……국내시장에서 과점화된 기업이 국내 인건비를 깎아 내려 경쟁력을 높이면서 글로벌시장에서 경합에 이기는 구조다. “(《부자 삼성 가난한 한국》,pp24-25. 고딕체 강조는 필자에 의한 것임.)

‘절대적 노동시간 연장’ 즉 소위 ‘장시간 노동’ 문제와 관련해서도 1990년대 이후 한국경제의 저임금구조를 뒷받침하는 증거는 많이 있다. 한국 노동자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2004년에 2380시간으로 세계 최장을 기록하였다. 그것은 1986년 2734시간을 기록한 후 한 때 1998년 2390시간까지 감소했지만, 1999년 이후에는 이 같은 감소 추세가 중단되었다.

한국 노동자보다 평소 연간 500~1000시간 덜 일하는 미국·일본·독일의 1인당 연간 총 노동시간이 같은 기간(1998~2004년) 각각 1874시간, 1842시간, 1489시간에서 1824시간, 1789시간, 1443시간으로 단축된 것은 물론이고, 같은 신흥공업국으로서 한국과 경제적 지위가 비슷한 멕시코 노동자의 1인당 연간 총 노동시간도 1879시간에서 1848시간으로 줄어든 것과도 대조가 된다. 2010년 조사된 OECD 회원국 연평균 노동시간은 1749시간이었으며, 한국 평균은 2193시간으로 이보다 연 444시간이 더 많았다. 2013년 주간 2교대제가 실시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상대적으로 대우가 좋다는 현대자동차에서 “한 해 30~40여명이 일을 많이 해서 과로사나 심장마비로 죽어 나가가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노동자들의 장시간 노동 실태를 잘 말해준다고 볼 수 있다. (《새롭게 다르게》2011년 가을 호,p127)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한국사회에 있어 과거 경제개발 시기와 같은 ‘장시간‧저임금’에 따른 임노동관계의 특징이 여전히 나타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사실 장시간노동과 저임금노동은 동전의 양면과 같으며 양자 간에는 긴밀한 연관이 존재한다. 그 본질은 저임금인데, 부족한 생활비를 보충하기 위해 노동자들은 장시간 노동을 강요당한다. 때문에 한국 노동자의 ‘세계 최장 노동시간’ 기록은 한국에서 ‘저임금구조’가 여전히 지속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유력한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높은 해외시장에 대한 의존도와 낮은 기술력은 한국 자본으로 하여금 국내 인적·물적 자원에 대한 초과적 착취와 수탈을 수행할 수밖에 없게 만든다. 이 점이 똑 같이 경제의 대외의존성이 높은 독일과 한국의 차이 점이다. 진정한 제조업 강국인 독일은 기술경쟁력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에 국제교환에 있어 경제잉여 유출이 발생하지 않으며 오히려 초과이윤을 획득한다고 할 수 있다.

자본시장 전면개방과 경제잉여 유출의 가중

다음으로 금융적 측면에서의 문제를 살펴보도록 하자. 1997년 IMF 위기를 계기로 자본시장의 전면개방이 이루어짐으로써, 국제금융자본의 주식시장을 통한 국내 핵심 기업들에 대한 소유지분취득이 자유롭게 되었다. 이로부터 경제잉여의 해외유출은 과거보다도 더욱 가중되게 되었다.

한국의 자본시장 개방은 1980년대 들어 시작되었는데, 1997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그 정점에 이른다. IMF 위기 당시 해외 금융자본은 매우 헐값으로 국내의 블루칩 주식들을 대거 매집할 수 있었다. 이로부터 현재 제조업과 금융업을 포함한 대부분의 한국 블루칩에 있어 외국인 지분율은 50%가 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리하여 이들은 한국 재벌 기업들이 국내에서 독과점구조를 이용한 초과 수탈을 통해 벌어들인 이윤 분배에 손쉽게 참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 이 때문에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성은 그 전보다 한 단계 심화되었다. 이점은 IMF 위기 이후의 한국경제가 그 이전과 구분되는 매우 중요한 특징이기 때문에 특별한 주의를 요하는데, 그것은 경제개발 초기에 투자자금의 해외조달과 이를 상환키 위한 수출주도형 경제의 고착화로부터 생겨났던 ‘대외의존성’과는 대비되는 것이며, 또 그 이후 중화학공업화의 진척에 따른 과잉생산물의 해외시장 판매를 위한 ‘대외의존성’과도 구분된다.

한국에 있어 자본시장 개방의 중점은 주식시장의 개방이었다. 주식시장을 통한 상장 기업에 대한 외국인투자가 거의 무제한 허용됨으로써, 경제잉여가 대량으로 해외에 유출될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됨과 함께, 한국 기업지배구조에도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주지하다시피 각 국의 주식시장은 그 나라 우량기업들을 집결시켜 놓은 곳이다. 한국 주식시장 역시 그러하였는데, 여기엔 국내 재벌의 간판급 기업들이 대부분 상장되어 있다. 이들 기업들은 그간 국가의 집중적인 지원에 의해 육성되어 왔으며, 현재는 선진국들이 이미 경쟁력을 상실한 철강‧화학‧조선 분야뿐만 아니라, 자동차와 전자‧정보통신 등 일부 첨단 제조분야에 있어서도 나름의 입지와 국제경쟁력을 갖추게 되었다.

이들 기업들의 해외시장 경쟁력을 지원키 위해 한국정부는 법인세 감면 등 각종 특혜조치를 베풀어 주고 있으며, 또 국내 독과점적 시장구조를 사실상 묵인하는 한편 장시간·저임금의 노동 관행 역시 방치한다. 이리하여 미국을 비롯한 국제 금융자본은 자신들이 직접 이들 제조업 분야에 진출하지 않더라도, 이렇듯 한국 주식시장에 상장된 우량 재벌기업들에 투자함으로써 이들 기업들이 위의 각종 특혜를 통해 획득한 ‘초과이윤’을 전혀 힘 안들이지 않고 향유할 수 있게 된다. 이에 대해 《부자삼성 가난한 한국》의 저자 미쓰하시 다카아키는, “과점화된 시장에서 극단적인 이익을 올리는 기업의 주주 중 대다수가 ‘외국인’ “이라고 지적한다.

참고로 외국인들이 투자하고 있는 한국의 우량기업들의 상황을 보면 이러하다. 2004년 6월 28일 현재, 외국인 지분은 삼성전자(58.1%), 현대자동차(55.3%), 포스코(70,1%)였으며, 10대 그룹 계열 상장사에 대한 외국인 보유 비중은 1998년 말 30.2%에서 2004년 6월 28일 현재 48.5%로 급증했다. 또 외국인이 5% 이상의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회사 수도 2001년 말 55개사에서 2004년 6월 22일 현재 149개사로 급증했다. 은행의 경우에도 2004년 8월 현재 8개 시중은행 중 3개 은행(제일은행, 외환은행, 한미은행)의 경영권을 외국인이 장악했으며, 나머지 은행들도 외국인 지분율이 매우 높다(국민은행 77.8%, 신한금융지주 63.4%, 하나은행 65.5%). 외국계 증권사의 국내 시장점유율은 거래대금 기준으로 1999년 6.5%에서 2004년 25.5%로 급증했다.(《한국 자본주의의 축적체제 변화:1987-2003》,pp43-44.) 여기서는 2004년도 통계지표를 사용했지만, 최근 2017년 통계 역시 삼성전자 53%, 현대자동차 48%에서 보듯 그리 크게 벗어나는 것은 아니다.

이런 방식으로 국외로 유출되는 국내의 경제잉여는 아래 표 2에서 보듯 막대한 규모에 달하며, 한국 상장기업 전체 주식배당금의 30%~45% 수준에 이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가 전 세계 반도체 호경기로 말미암아 5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남겼음에도, 이것이 실제 대다수 한국 국민과 국내 경제에는 별반 도움이 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주주에게 돌아가는 몫의 절반가량이 먼저 고스란히 외국인들의 손에 돌아가서 국외로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한국 재벌기업들이 국내외 시장을 통해 아무리 많은 돈을 벌어도 그 이윤의 1/3 내지 거의 절반가량은 외국인들 손에 넘어가게 됨으로써, 결국 한국 국민들은 애써 일해서 남 좋은 일만 시켜주는 꼴이 되고 만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경제의 지속적인 외형적 성장과는 달리 대다수 국민들이 시간이 갈수록 빈곤해지는 이유를 우리는 상당부분 이 같은 경제잉여의 대량유출에서 찾을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자본시장 전면개방’으로 인하여, 외국인들은 필요할 경우 언제든지 적대적 M&A라는 방식으로 한국 상장기업에 대한 사냥에 나설 수가 있다. 이는 미국과 서구 자본에 있어선 자국 정부가 쉽게 찍어 낼 수 있는 종이화폐(달러와 유로)를 가지고 와서 한국의 노동자와 민중들이 수십 년간 허리띠를 졸라매며 키운 국내 우량기업과 맞바꿀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들 외국자본의 이 같은 위협 때문에 이제 한국 기업들은 자신의 소유권 방어에 많은 역량과 자금을 쏟아 붇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으며, 기업경영에 있어서도 유무형의 많은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예컨대, 외환위기 이후 한국 상장 대기업들의 배당률이 높아진 것은 외국인 투자가들의 성향과도 상관이 있다. 이들은 한국 기업들이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 장기적인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을 별로 달가워하지 않는다. 그 대신 이들은 당장의 높은 현금 배당을 선호하는데, 이들에게 돌아가는 막대한 배당금은 원래 제약이나 바이오, 정밀화학, 첨단부품소재, 우주항공처럼 앞으로 10~20년 걸려 개척해야 할 산업에 투자되어야 할 돈이다.

이처럼 한국경제는 그 구조적인 대외의존성과 종속성으로 말미암아 경제활동의 결과가 온전히 국내의 몫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대량의 경제잉여의 해외유출이 발생한다. 이 때문에 한국은 사회복지체제를 강화할 수 있는 충분한 물적 기반을 기본적으로 갖출 수가 없다. 이는 서구 선진자본주의 국가가 국제 분업상의 유리한 위치로 말미암아 막대한 초과이윤을 획득하고, 또 국제금융체계를 통해서 개발도상국가의 경제잉여를 흡수함으로써 자국 내 복지제도를 떠받칠 수 있는 경제구조를 갖추고 있는 것과는 질적으로 다른 점이라 할 수 있다.

여기서 모든 것을 ‘신자유주의 탓’으로 돌리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즉 지구화시대에 들어 각국 금융시장 개방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만이 예외일 수 없다는 것이다. 이 같은 인식에 기초에 그들은 실제 한국의 전면적 자본시장 개방에 대해 대체로 별반 개의치 않는 태도를 취한다. 이 역시 한국적 특수성을 신자유주의라는 일반론 속에 묻히게 하는 수법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이 먼저 깨달아야 할 사실은 한국의 자본자유화 수준이 일반 개도국은 물론이고 다른 OECD 국가들과 비교할 때도 비정상적일 만큼 높다는 점이다. 실례로, 한국의 자본자유화 수준은 2009년 자본시장 개방도를 나타내는 ‘자본 접근성 지수(CAI)’에서 10점 만점에 7.39점을 받았다. 그것은 조사 대상 122개국 가운데 12위를 기록하는 것으로 매우 상위에 위치함을 뜻한다. 예컨대 캐나다(8.25점), 홍콩(7.99점), 영국(7.95점), 싱가포르(7.92점), 미국(7.88점), 스위스(7.68점), 스웨덴(7.54점), 오스트레일리아(7.52점)보다는 낮지만, 같은 신흥공업국인 대만(6.54점) 그리고 우리보다 선진국인 일본(6.72점), 프랑스(6.99점), 독일(6.84점), 이탈리아(5.96점)에 비해서도 매우 높은 수치이다.(<축적체제 변화>,P358) 여기서도 볼 수 있듯, 이처럼 한국경제의 심각한 경제잉여 유출을 낳고 있는 과도한 자본시장 개방을 단순히 신자유주의 일반의 현상으로만 치부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국의 금융적 종속에 둔감한 ‘신자유주의 탓’ 논자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오늘날 지구적 범위에서의 금융자본의 운동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것이 특정 ‘국적’의 배경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이다. 이 때문에 각국은 지금도 주식시장 개방에 있어 매우 신중하며, 한국처럼 외국인이 국내 상장주식을 100% 제한 없이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나라는 세계에서 그리 많지 않다. 그것은 주식이라는 금융자산의 속성상 그 자산가치의 변동 폭이 채권과 같은 다른 금융자산에 비해 매우 크며, 주식시장은 또 외부적 충격에 대단히 민감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민감한 주식시장이 일단 불안한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하면 그것은 실질적인 통화수준의 변화를 통해 물가와 실물경제에 영향을 줄 뿐만 아니라, 외환관리와 나아가서는 일국 전체 금융시스템의 안정을 해치는 등 그 파급력이 대단히 크다. 더군다나 주식시장 개방은 기업소유권 문제와도 직결된다. 때문에 일부 금융 강국을 제외하고는 각국 정부는 그 개방에 있어 매우 신중하고 소극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이다. 앞서의 ‘신자유주의 탓’ 논자들은 미국과 같은 세계 자본주의 중심부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금융화 현상이 그 주변부에서는 동일한 성격으로 나타날 수 없음을 이해하지 못한다.

대외 의존적 한국경제와 재벌체제

지금까지 한국경제의 대외 의존성과 그로 인한 경제잉여의 대량 유출을 실물과 금융 양 측면을 통해 살펴보았다. 또 이 같은 경제잉여의 유출 때문에 한국에선 비정규직 문제의 해결책이라 할 수 있는 사회보장체제의 구축에 근본적인 어려움이 존재함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 같은 한국경제의 대외 의존성은 재벌체제와는 어떻게 관련되며, 비정규직 문제는 왜 그 본질에 있어 ‘재벌문제’라고 하는 것일까? 그것은 현재의 재벌체제가 이 같은 한국의 대외의존적 경제구조의 산물이면서, 또 지금에 와선 그것의 존속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물적 토대이기 때문이다. 이하에서 이에 관해 살펴보도록 하자.

한국경제가 재벌이 주도하는 재벌체제라는 점을 부인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이 같은 재벌체제가 한국에서 발전하게 된 기본요인은 ‘압축적 자본주의화’ 때문이라는 견해가 학자들 사이에서는 현재 상식처럼 되고 있다. 개발도상국의 압축적 공업화 과정에서는 그 압축성으로 인해 조기에 국민경제에 있어 독점화와 중화학공업화가 진전되며, 이 때문에 재벌과 같은 가족경영체제에 기반 한 비교적 낙후되고 낡은 소유와 경영 형태가 출현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재벌체제의 형성과정을 보면 이 같은 지적이 일면 타당한 면이 있다.

그럼에도 한 가지 의문이 남는다. 한국에서 중화학공업화가 일단 달성된 이후에도 왜 계속해서 오늘날 까지 이 같은 총수경영에 기초한 재벌체제는 해체되지 않고 지속되는 것일까 하는 점이다. 서구의 경험과 비교할 때 더욱 그러하다. 지금 많은 학자들이 재벌체제를 ‘개발도상국의 압축적 공업화과정의 산물’로서 간주하지만, 세계적으로 본다면 재벌은 사실 개발도상국만의 현상은 아니다. 서구에서도 역사적으로 독점자본이 발전하던 초기 무렵에는 이처럼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지 않는 총수경영과 재벌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지금도 우리 귀에 익숙한 록펠러, 카네기, 로스차일드 그룹 등이 그것이며, 이들은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악명 높은 ‘금융과두체제’를 구축하면서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였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들 재벌들은 점차 쇠퇴하기 시작하였으며, 1960년대 들어서면서는 보편적으로 소유와 경영의 분리가 확연히 일어났다. 그럼에도 유독 한국에선 이 같은 세계적 추세와 어긋나게 총수경영에 기초한 재벌체제가 여전히 공고하게 자리 잡고 있으며, 어떤 면에서는 날로 강화되고 있는 모습까지도 보여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우선, 그것은 ‘정경유착’의 필요성이 오늘날에도 객관적으로 사라지지 않은 것의 반증이라 할 수 있다.예컨대, “정관계와의 불법거래를 위해 비자금을 조성하려면 회계를 조작해야 하고, 이렇게 회계가 불투명해진 상황에서 총수가 경영일선을 떠나긴 힘들다.” 는 사정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자본주의 발전모델의 역사와 위기>,p50)

실제 얼마 전 최순실 사건과 최근 이명박 수사에서 청와대와 재벌 간의 밀실거래가 보여주듯이, 한국에는 여전히 뿌리 깊은 정경유착의 관행이 남아 있다. 다만 그 내용에 있어선 과거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이 진행되던 시기와 그것이 일단락되고 재벌체제가 전면에 등장한 오늘날에 있어서 일정한 변화가 있다고 보인다. 전자에 있어선 국가주도형 경제개발로 인해 정치권력이 재벌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던 상황에서 그것은 재벌의 생존을 위한 방책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후자에 있어선 이 시기 재벌체제는 이미 공고화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오히려 재벌이 정치권력의 우위에 서서 국가권력을 이용하게 된 현실을 반영한다.

다음, 한국에서 재벌체제가 날로 공고화하는 좀 더 근본적인 원인은 예나 지금이나 바뀌지 않은 한국자본주의의 축적양식, 즉 한국경제의 대외 의존적 수출주도형 경제구조와 관련된다. 예컨대 ‘기업집단’으로서의 한국 재벌은 경영적 측면에서 보자면 일종의 ‘혼합경영’ 전략을 수행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서구 선진국에서도 그것은 1960~1970년대에 한 때 유행한 적이 있다. 이는 당시 날로 치열해지는 국내외 경쟁과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비코자 하는 국제 독점자본의 일종의 생존방식이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이 혼합경영은 다시 ‘전문화’ 방향으로 수정된다. 이는 서구 선진자본주의가 그 무렵 지식경제시대에 본격 진입함으로써, 개별기업은 횡적 팽창보다는 전문화를 더욱 중요시하게 되었던 사정과 관련이 있다.

이와는 달리 한국에서 여전히 이 같은 ‘혼합경영을 수행하는 기업집단’인 재벌이 성행하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한국의 대외의존적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방식 때문이다. 서구 자본에 비해 생산력 수준에 있어 열위인 한국 독점자본은, 해외시장 경쟁에서의 불확실성에 대처하기 위해 국내에서 선단식 (혹은 문어발식) 기업집단을 형성한다. 이 같은 ‘선단식 경영’은 다음 두 가지 측면에서 한국과 같은 수출주도형 성장 모델의 국가에 있어 유리하다.

첫째, 계열기업사들을 총 동원해 주력기업을 집중 지원하고 개별자본 차원에서 그룹 내 자원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게 해준다. 둘째, 위험을 그룹 전체 및 나아가서 자신의 독점적 지위를 이용하여 국민경제 전체로 분산 전가시킬 수 있게 한다. 예컨대, 1980년대 초 삼성이 반도체분야에 본격 진출할 무렵 삼성그룹 내 다른 계열사들은 이를 지원하기 위해 재정과 인적 자원을 총 동원하는 기능을 수행하였다. 1980년대 후반에 이르러서 삼성전자의 반도체부문이 일정한 자리를 잡기까지 이들 계열사들은 계속해서 해외시장으로부터의 위험을 함께 분담해주었는데, 이 같은 ‘선단식 경영’은 현재도 한국 재벌들이 여전히 의존하는 경영전략이다.

이처럼 한국의 재벌이 채택한 경영전략으로서의 ‘선단식 경영’은 기술과 자본 면에서 선진자본에 비해 상대적인 열위에 있는 한국 기업의 생존전략이기도 하다. 이 점은 과거 한국의 산업화가 진행되던 중이나 그것이 일단락 된 오늘날에 있어서도 여전히 ‘재벌’이 한국 독점자본의 기본적인 형식이게끔 하는 중요한 근거가 된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수출주도형 경제성장 모델로 인한 한국경제의 대외의존성은 오늘날에도 재벌체제가 해체되지 않고 강화되는 조건이며, 반대로 재벌체제는 이 같은 경제성장 모델을 뒷받침하는 굳건한 물적 토대임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재벌체제는 이 같은 대외 의존적 한국경제를 대표하는 상징으로서, 양자는 본질상 일치한다. (계속)

필자소개
과거 구로공단에서 노동운동을 했으며 사노맹 사건으로 3년간 감옥 생활을 했다. 2001년부터 2017년까지 중국 사회를 연구할 목적으로 16년간 중국 유학생활을 보냈다. 중국인민대학과 상해재경대학에서 각각 금융(학사)과 재정(석사)을 전공했고 최종적으로 북경대 맑스주의학원에서 레닌의 정치신문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7년 8월 귀국하여 울산에 정착해 현재 울산 평등사회노동교육원에서 교육강사로 새로운 생활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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