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도, 강간의 왕국인가?
    [인도 100문100답-3] 절반의 사실
        2017년 07월 25일 12: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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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100문 100답-2 링크

    90년도 한때 인도는 젊은 대학생들의 배낭여행 천국이었다. 먹는 것도 불편하고, 잠자리도 불편했지만, 서구화되지 않은 풍경 속에서 순박한 사람들이 엮어내는 맛은 경쟁 사회에서 지친 한국의 젊은이들에게는 멋진 휴가처임에 틀림없었다.

    그때는 여학생들이 혼자 두어 달씩 여행을 다니는 경우도 많았으니, 인도가 여성에게 안전한 나라인지 특별히 관심을 갖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한 풍경은 2,000년대 들어 심각하게 바뀌기 시작했다. 당시 인도는 소위 BRICs의 일원으로 경제 성장과 소비 문화의 팽창이 급속도로 이루어지기 시작한 때였다. 자연스럽게 범죄율도 높아졌고, 여성에 대한 강간 사건도 자주 언론에 등장하기 시작하였다.

    인도의 강간 사건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한 것은 2012년 12월 16일 델리의 버스에서 벌어진 윤간 사건 때문이었다. 희생자 대학생은 남자 친구랑 같이 버스에 타고 있다가 운전사 포함 여섯 명의 남성에게 윤간을 당했다. 남자 친구는 집단 구타를, 피해자는 형언하기 어려운 처참한 윤간을 당했다.

    수도 델리에서 일어난 미증유의 사건을 접한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불같은 분노를 폭발하였고 정치인들은 범인들을 즉각 처형하라고 요구하였다. 피해 여성은 긴급하게 싱가포르로 이송되어 치료하였으나 13일 만에 시신으로 돌아왔다. 강간 범죄에 대한 시민들의 분노는 들불같이 번졌다.

    이후 유사한 강간 사건이 매년 대도시를 중심으로 늘어났고, 그 타깃은 점차 외국인 여성으로까지 향했다. 그때까지 상대적으로 강간 사건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하지 않던 인도에서 여성운동이 들끓고 이에 세계의 언론은 이 강간과 반(反)여성문화 저항 운동에 대해 대서특필하면서 본의든 아니든 인도에 대한 뉴스는 주로 강간에 집중하였고, 그러는 과정에서 인도는 강간의 왕국으로 자리 잡았다.

    언론의 집중 보도에 관해 정치의 음모론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으나 확인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분명한 것은 정부 여당이 이 문제를 심하게 부각시킨 것은 사실이다.

    여성이 고개 숙이는 것, 강간의 젖줄이다 @이광수

    2013년의 정부범죄기록원(National Crime Records Bureau)의 기록에 의하면 2013년 한 해 인도에는 24,923건의 강간 사건이 보고되었다. 물론 인도 농촌 문화의 속성을 살펴볼 때 보고되지 않은 사건이 훨씬 많을 것으로 생각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는 이 범죄의 98%가 평소에 아는 사람 즉 가족, 친지, 이웃 등에 의해서 저질러진 사건이라는 사실로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인도는 2,000년대에 들어서기 이전에는 전통적으로 강간 범죄율이 세계에서 하위에 속한 나라 가운데 하나였다. 물론 여성에 대한 인권 의식도 낮고, 시골에서 강간 사건은 수시로 일어났다. 사회에서 대규모 소요가 일어나면 여지없이 등장한 건 집단 강간이었다. 인도-파키스탄 분단 때 양쪽 모두에서 헤아리기 어려울 만큼의 여성이 납치 강간 당한 것이나 비교적 최근 2002년 구자라뜨 학살 사건에서 극우 힌두 청년 깡패들이 무슬림 여성을 집단 강간한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강간을 당하면 여성이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이라는 인식이 널리 퍼져 있거나 일부 무슬림 공동체에서는 어린 남동생이 잘못을 저지르면 누이가 상대 마을의 남성들에게 죄를 씻기 위해 윤간을 당하는 소위 명예 강간의 풍습도 있는 등 여러 악습이 있어 전국적으로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수의 강간이 일어나는 건 사실이지만, 서구의 미국, 캐나다, 호주, 프랑스, 스웨덴 등에 비하면 그 범죄율이 현격하게 낮았던 건 아무도 부인하지 못하는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인도 특히 대도시는 불과 10여 년 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이 상황이 악화되어 여성의 안전이 크게 위협 받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하지만 분명히 할 것은 있다. 강간 범죄율로 치면 세계 각국 가운데 상위에 랭크된 것은 대부분이 서구의 여러 나라와 치안이 아주 불안한 아프리카 몇 나라들이다. 그런데 근래에 들어서 도시를 중심으로 강간 사건이 너무 빈발하고 이에 대한 시민운동이 크게 일어났고, 그것을 언론이 집중 보도하고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다 보니 어느덧 인도는 ‘강간의 왕국’으로 불린 것이다. 절반의 사실에 절반의 누명이 뒤집어 쓰이면서 만들어진 레토릭이다.

    한국의 대학생들로서는 현지인들과 친해져서 그 집을 따라 간다거나 음료수 같은 것을 덥석 덥석 받아먹는다거나 가게에서 물건을 보여준다면서 안으로 들어간다거나 하는 과잉 행동만 하지 않으면 그리 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관광지는 전 세계 어디서나 조심해야 될 일이니 두 말할 필요 없고, 시골을 방문하는 경우는 걱정할 일은 거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인 의견이다.

    현재 인도 정부도 상당한 충격을 받아 대비책을 계속 마련 중이다. 강간범 처벌은 점차 강력하게 하는 방향으로 법을 정비 중이고, 모디 정부는 화장실을 확충 중이다. 화장실 확충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안 되겠지만 시골에서 화장실이 없다 보니 여성들이 한적한 곳에 가 용변을 보다가 변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경우라도 줄이려는 노력이다. 실제로 화장실을 확충하면서 강간 사건이 줄어들고 있다는 보고가 있는 게 사실이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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