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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된 민법이 없다고?
    [인도 100문-2] 죽어나는 건 여성
        2017년 07월 21일 12:47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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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가진 대국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 사회의 주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도에 대해 그저 인구가 많은 가난한 나라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과거에는 미국을, 지금은 중국을 알지 못하면 세계의 흐름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글로벌 파워를 가진 나라들이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도라는 사회에 대해서 겉으로나 그 내면으로나 거의 무식자에 가깝다. 아시아와 국제사회의 대국인 동시에 우리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주요한 나라인 인도에 대해 인도사를 전공한 부산외국어대의 이광수 교수가 100문 100답 형식으로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이 100문 100답을 레디앙에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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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100문 100답-1] 카스트는 폐지되었는가

    많은 사람들이 인도라는 나라를 설명하고 규정하면서 드는 어구가 ‘다양성 내의 통일성(Unity in Diversity)’일 것이다. 서로 다른 언어가 수도 없이 많고, 인종도 매우 다양하며, 종교도 갖가지로 많고 같은 힌두교라 해도 그 안에 있는 신앙 체계가 정말 다양하다.

    그렇지만 인도의 다양성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으로는 ‘통일된 민법의 부재’일 수 있다. 연방 정부 내에 하나의 통일된 체계로서 민법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각 공동체 단위마다 혼인, 이혼, 재산, 물권, 채권, 상속, 유산 등에 관한 법이 달리 적용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공동체는 관습이 분명하게 다른 각각의 종교 공동체다. 다시 말하면 힌두가 사는 지역과 무슬림이 사는 지역에서 혹은 시크나 기독교인이 사는 지역에서 민법에 관한 규정이 다 다르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

    무슬림은 일부다처제가 관습법으로 허용되기 때문에 무슬림 남성이 여성 배우자를 한 사람 이상 두는 게 적법이지만 힌두에게는 그렇지 않다. 반면에 힌두든 무슬림이든 여성은 무조건 남성 배우자를 한 사람만 두는 게 적법이다. 여성에 대한 두 종교 공동체 간의 입장은 다르지만 둘 다 공통적으로 남성 중심의 가부장 사회이기 때문에 그렇다.

    세금에 관해서도 마찬가지로 서로 다르다. 힌두는 전통적으로 합동가족(joint family)라고 하는 일종의 대가족 형태를 오랫동안 유지해오고 있기 때문에 재산을 대가족 전체 차원에서 합산하여 세금을 유리하게 적용받을 수 있지만, 무슬림의 경우는 허용되지 않는다. 물론 기독교 공동체에서도 마찬가지로 허용되지 않는다. 이혼의 경우를 한 번 보자. 무슬림의 경우에는 결혼 후 2년이 지나기 전에는 이혼할 수 없다. 하지만 다른 공동체는 그 기간이 1년이다.

    이렇듯 각 공동체마다 달리 적용되는 민법은 혼인, 이혼, 상속, 부양 등의 일에서 각 종교의 관습이 오랫동안 달리 적용해온 데다가 인도가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한 1947년 파키스탄과 분단되었고 이후 종교 간의 관습의 차이는 매우 민감한 일이 되어 대규모 공동체 간의 갈등을 야기하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을 해왔기 때문에 헌법 제정 이후 민법 제정의 필요성은 계속 요구되었으나 아직도 통일된 민법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는 상태인 것이다.

    통일 민법이 없는 사회에서 죽어나는 건 여성이다

    세계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이자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있는 인도 같은 나라가 통일된 민법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믿기 어려운 사실은 소위 샤흐 바노(Shah Bano) 사건을 살펴보면 잘 이해할 수 있다.

    전통적으로 인도의 무슬림은 세계 어느 나라의 무슬림들도 갖지 못한 이혼 절차를 갖고 있다. ‘딸락’(talaq 이혼)이라는 말을 세 번만 외치면 이혼이 성립되는 것이다. 글로 써서 보여줘도 되고, 심지어는 전화로 해도 되며 요즘 같아선 문자 메시지로 세 번만 보내면 된다. 전적으로 국가의 통일된 민법 체계가 세워지지 않은 상태에서 중세 봉건 시대의 관습이 전혀 저지당하지 않은 채 일부 무슬림 공동체에 지금까지 내려왔기 때문이다.

    마디야 쁘라데시(Madya Pradesh)에 살던 샤흐 바노라는 여성은 1987년 나이 62세에 자신의 남편이 딸락을 세 번 외침으로써 이혼을 당해 다섯 자녀들과 함께 쫓겨났고, 아무런 양육비도 받지 못했다. 이에 분개한 샤흐 바노는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했고, 재판에서 이겨 자녀 양육비를 받게 되었다.

    이때 전국의 수구 무슬림 세력이 벌떼같이 들고 일어나 재판이 코란에 규정된 신성한 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고 반대했다. 이에 선거에서 무슬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아 집권 여당이 된 회의당(The Congress Party)은 국회에서 따로 법안을 만들어 결국 샤흐 바노 양육비에 대한 대법원의 판결을 무효화시켜 버렸다. 이후 무슬림은 무슬림대로, 힌두는 힌두대로 근본주의자들의 주장이 전면에 나서면서 둘의 갈등이 극심해졌고, 결국 통일 민법 체계 수립은 완전히 물 건너 가 버렸다.

    인도는 헌법에 의해 공화국이 성립된 이후 초대 수상 네루가 시작하여 아직까지 국가 기틀의 가장 중요한 기둥으로 세속주의를 견지하고 있다. 하지만 통일된 민법 체계 하나 갖추지 못하고 있다. 이는 국가가 주창하는 것과는 달리 실제로 사회는 두 개의 종교 공동체에 의해 각각 돌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 안에서 죽어 나가는 건 여성이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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