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스트는 폐지되었는가?
    [인도 100문 100답-1] 인도 헌법 15조
        2017년 07월 18일 03:0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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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는 중국 다음으로 많은 인구를 가진 대국이다. 또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도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는 국제 사회의 주체이기도 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인도에 대해 그저 인구가 많은 가난한 나라 정도로 인식하는 경향이 크다. 과거에는 미국을, 지금은 중국을 알지 못하면 세계의 흐름을 이해하기가 어렵다. 그만큼 글로벌 파워를 가진 나라들이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인도라는 사회에 대해서 겉으로나 그 내면으로나 거의 무식자에 가깝다. 아시아와 국제사회의 대국인 동시에 우리와도 직간접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주요한 나라인 인도에 대해 인도사를 전공한 부산외국어대의 이광수 교수가 100문 100답 형식으로 페이스북 페이지에 글을 올리고 있다. 필자의 동의를 얻어 이 100문 100답을 레디앙에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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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에 관한 강의를 하면서 학생들에게 리포트를 내는 경우 혹은 일반인들과 대화를 나누는 경우 가장 황당한 이야기를 많이 듣는 것은 단연코 ‘인도는 1947년 정부 수립 후 헌법에 의해 카스트가 폐지되었다’라는 것일 것이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는지, 그 생각의 출처가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폐지되어야 마땅한데, 아직도 관습적으로 얽매어 있다, 라는 식의 사고를 하기 때문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 좋은 예로 한국 정부 외교부에서 배포한 [인도 개황]이라는 자료에는 인도 정부는 카스트 제도의 폐해를 줄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것으로 전체적으로 전문가가 아닌 사람들에게 오해를 불러일으키기 충분한 설명이다.

    아직도 카스트 안에서 불평등은 여전하다 @이광수

    카스트는 보통 영어로 뒤에 system이라는 어휘를 붙이는데 그것은 ‘제도’라기보다는 ‘체계’라고 번역하여 사용하는 게 더 제대로 된 이해를 하기에 좋다. ‘제도’라는 것 안에는 인위적인 의미가 많이 담겨 있어 누군가가 만들거나 폐지할 수 있다는 뉘앙스가 그 안에 담겨 있고, ‘체계’에는 그런 뉘앙스가 드러나지 않는다.

    카스트는 여러 특질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들을 뭉뚱그려서 말하자면 크게 위계성, 세습성 그리고 배타성을 들 수 있다. 그 가운데 위계성과 세습성은 사회 내에서 특히 도시 내에서는 많이 약화되었다. 근대 시민사회가 성립됨으로써 카스트에 의한 위계는 거의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고, 시장경제와 직업의 자유가 확산됨으로써 직업의 세습은 거의 사라졌다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남는 것은 배타성이다. 여기에서 배타라 함은 크게 음식과 결혼에 관한 것이다. 자신보다 낮은 카스트 사람이 준 물이나 음식은 되도록이면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낮은 카스트가 자신보다 높은 카스트와 같은 자리에서 음식을 공유하지 않는 (혹은 못하는) 것이다. 결혼에 관해서도 마찬가지이니 자신이 속한 카스트보다 낮은 카스트 집안 사람과는 혼인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철저하게 개인의 자유에 속하는 문제다. 이것을 ‘폐해’라고 볼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정부가 나서서 그 ‘폐해’를 줄이기 위해 꾸준히 노력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정부에서 하는 것은 분명하다. 인도 헌법 15조는 다음과 같이 분명하게 규정한다. ‘국가는 종교, 인종, 카스트, 성(sex), 출신지 가운데 그 어느 것에 의해 시민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카스트에 의한 차별 금지를 분명하게 규정하는 것이면서 동시에 그 차별의 주체가 국가라는 사실이 분명하다. 즉 음식이나 결혼과 같은 민사에 있어서는 ‘차별’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될 수 없음을 알 수 있다.

    인도에서 카스트는 – 그 존재가 긍적적이든 부정적이든 간에 – 엄연히 사회에서 주요한 기능을 하는 사회적 단위다. 소위 말하는 불가촉천민 카스트의 명단을 정부에서 정하여 그들에게는 ‘보호를 위한 차별’을 통해 사회적 혜택을 주고 있다. 선거가 카스트 몰표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은 인도 정치에서 오랫동안 있어온 다반사다.

    뭐니 뭐니 해도 카스트라는 것은 누군가에 의해 인위적으로 폐지할 수 없는 사회적 단위이자 체계다. 카스트는 자신에게 천부적으로 주어진 속성이라는 것이다. 내가 남자로 태어나고 전라도에서 태어난 것과 같은 이치다. 다만 그것으로 타인을 공적으로 차별하는 것은 안 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 갑오경장에 의해 반상제가 폐지되었던 것과 혼동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반상제는 국가가 관리하는 제도이기 때문에 폐지할 수 있지만, 인도의 카스트는 국가가 관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누가 폐지하고 어떻고 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근대 사회가 시작되었지만 인도에서만 봉건 계급 제도가 남아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서이다. 다만, 그 카스트도 체계 안에서 신분 이동이 쉬운 것은 아니지만 가능하고, 완전 무시하고 살 수도 있다. 다만 대부분이 돈 있고, 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많이 바뀌었지만 아직도 카스트 체계 안에서 인간 불평등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필자소개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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