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국의 민낯,
    홈데포의 노인 노동자들
    [텍사스일기-2] '홈데포'의 미국
        2016년 01월 22일 05:5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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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텍사스 일기-1 ‘가족관계증명서’ 링크

    어제 저녁 일기예보. 알칸사스(Arkansas)에서 발생한 돌풍과 뇌우가 오스틴 쪽으로 다가온다고 했다. 아니나 다를까 어두운 하늘을 찢어발기는 엄청난 천둥 번개가 밤새 쳤다. 억수같은 비가 2층 베란다까지 넘쳤다. 아침인데도 뒷마당이 어두컴컴하다. 그 모습을 지켜보다 며칠 전 들른 홈데포 생각이 났다.

    나 같은 이방인 눈에 “미국에서도 가장 미국적인 곳”이 홈데포(Home Depot)다(사진 1). 1978년 설립된 이 업체는 가정에서 쓰이는 건축 자재, 유지 보수 제품, 공구 등을 전문적으로 판매하는 체인점이다. 알래스카와 하와이를 포함한 미국 내 모든 주와 캐나다, 중국, 멕시코 등에 2,000개 이상의 매장이 있다. 명실 공히 세계 최대의 가정용 건축자재 업체다.

    홈데포1

    물론 치열한 경쟁자도 있다. 1946년 설립되었으며 홈데포보다는 살짝 뒤진 2위를 기록 중인 로위스(Lowe’s)가 그것. 홈데포는 오렌지색, 로위스는 짙은 푸른색을 이미지 컬러로 하고 있지만(사진 2) 매장이 위치한 지역, 건물 형태, 제품 진열 및 판매방식이 매우 닮았다.

    로위스 매장

     

    많은 미국인들이 수시로 이곳에서 갖가지 물건을 사서 DIY로 집을 고친다(물론 소득상위 1%는 손톱 하나 까딱 안하겠지만). 우선 매장의 크기가 대단하다. 우리 동네 홈데포는 건물 폭이 족히 100미터를 넘는다. 창문 없는 직사각형 창고 형태의 이런 단층 독립 매장을 빅박스(Big Box)라 부르는데(월마트나 이케아가 그렇다), 주말은 물론 평일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이 광대한 매장을 이웃 가게 쇼핑하듯 드나든다.

    이 같은 스타일의 매장이 번성하는 것은 사람들이 아파트보다는 일반주택에 훨씬 많이 살기 때문이다. 1990년대 이후 지역에 산재한 작은 가게들이 몰락하고 전국적 체인망을 갖춘 거대 유통자본들이 급속히 시장을 장악하게 된 거시경제적 변화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이유는 배관공(plumber)이나 목수 같은 전문기술 노동에 대한 엄청난 비용 때문이다.

    미국의 모든 공공건설 현장에 가면 출입구에 적정임금(Prevailing wage)이란 노임단가표를 붙여놓는다. 예를 들어 네바다 카운티의 경우 철근공이 시간당 최저 60달러, 목수는 41달러 정도 받는다(사진 3). 이 기준을 어기면 고발대상이 된다.

    프리빌리지 웨이지 사례

     

    반면에 단순 육체노동은 상대적으로 보수가 낮다는 걸 기억하셔야 한다. 월마트의 경우 시간당 최저임금이 2015년 대폭 올린 기준으로 9달러. 같은 해 한국의 시간당 최저임금 5,580원에 비하면 두 배 정도지만, 5만 달러가 넘는 이 나라 1인당 GDP를 떠올리면 그리 높은 수준이라 하기 어렵다). 보통 사람들이 자기 손으로 직접 집을 수리하고 보수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며칠 전 밀대걸레를 사러 간 이 거대 매장에서 나는 미국 사회를 관통하는 강렬한 특징을 발견했다. 첫째는 상상을 초월하는 물건의 다양성이다. 리벳이 이렇게 종류가 많은지 여기 와서 처음 알았다. 크고 작은 갖가지 모양이 어림으로 봐도 4~500가지 넘게 진열되어 있다(사진 4). 절삭용 드릴은? 역시 100여 가지가 넘는다(사진 5). 그밖에도 목재 판넬에서 시멘트, 농기구, 산업용 자재에 이르기까지 수만 가지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사진 6). 가히 압도적 풍경이다.

    홈데포2

    홈데표3

    홈데포4

    두 번째는 (그리고 보다 인상적인 것은) 노동자들의 면면이다. 다른 업종에 비해 할아버지, 할머니 종업원들이 많기 때문이다. 동작과 말이 어눌한 장애인 종업원이 열심히 제품을 설명하는 모습도 보인다. 이 업체의 고용정책이 유연하고 진보적이란 의미로 해석된다. 계산대의 할머니는 하얗게 센 백발과 얼굴 주름이 족히 80살은 넘어보인다. 비슷한 나이대의 직원들이 곳곳에서 판매서비스를 제공한다. 모두 정식 직원이다. 고작 50대 중후반에 일터 떠나는 우리 현실과 비교된다.

    기름때 잔뜩 묻은 앞치마 입고 물건 정리하는 저 할아버지는, 아마도 평생 공구를 좋아하거나 망가진 물건 고치는 걸 즐겨한 분이 아닐까 마음대로 짐작해본다(사진 7). 열심히 일하시는 모습이 보기 좋아 고개를 끄덕인다.

    홈데포5

    그러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 것이다. 이 분들이 모두, 과연 스스로 좋아서 이 나이 되도록 힘든 육체노동을 하고 있을까? 홈데포의 이 같은 모습을 성과 연령의 차별이 없는 건강한 사회의 징표로 읽을 수도 있을 게다. 보편적 미국인들의 노동관(work ethic)에 있어 나이 들어 일하는 걸 부끄러워하지 않는 경향이 있기도 하다. 실제 저분들 중에는 충분한 경제적 여유에도 불구하고 그냥 일 자체가 좋아서 일하는 이도 존재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과연 그것이 전부일까?

    젊은 나이에 땀 흘려 돈 벌고 예순 즈음에 은퇴하는 건 미국도 마찬가지다. 플로리다 같이 날씨 온화하고 풍광 좋은 지역, 혹은 유명 관광지에 노년층이 유난히 많은 까닭이다. 육체와 정신의 기력이 쇠한 나이에 엄혹한 비자발적 노동에 시달리고 싶은 사람은 세상에 아무도 없다는 것이 솔직한 내 생각이다. 그런 의미에서 혹시 홈데포의 이 노인노동자들은 자기 몸 써서 돈 벌지 않으면 살아갈 수 없는 딱한 처지일지도 모른다, 라는 생각이 불현듯 든 것이다.

    이는 내가 사는 곳 오스틴의 인구적 특성과도 관련이 있을 게다. 격월간으로 발간되는 지역 무료신문 커뮤니티 임팩트(Community Impact) 2014년 4-5월호를 보자. 1면 머리기사가 노인 관련 내용이다.

    2000년부터 이후 10년 간 오스틴은 55세에서 64세까지 인구가 미국에서 가장 빨리 늘어나는 도시이며 65세 이상 인구는 두 번째로 빨리 늘어나는 도시다. 노년층 살기에 좋은 환경이란 의미다. 이런 이유로 시 당국에서 은퇴 후 노인복지와 건강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내가 본 홈데포 노인노동자들 다수는 그 같은 혜택조차 여유 있게 누릴 수 없는 위치에 있는 분들이 아닌가 판단을 해본다.

    밖에서 보던 미국과 안에서 보는 미국이 다른 것은 당연한 일 일게다. (자국 이익을 위해 다른 나라 인권과 민주주의를 파괴해온 패권적 행태는 접어두고) 세계에서 가장 엄격한 입국심사를 거쳐 일단 국경 안에 들어오기만 하면, 합리적인 정치체계와 강력한 사회기반시설이 작동하는 “괜찮은 민주주의 국가”처럼 보인다.

    유럽 여러 나라의 재화와 소득 균분(均分) 시스템과는 비교도 안 되지만, 그래도 극빈층에게 식품을 보조하는 <푸드 스탬프(Food Stamp)>라는 최소한 복지장치가 있다. 먹거리 살 돈이 없어 굶어죽은 재작년 서울 송파동 세 모녀 같은 비극은 없다는 뜻이다.

    기득권층의 격렬한 저항 뿌리치고 의료보험 개혁, 무기규제, 최저임금 인상 등을 추진하는 오바마 같은 현실정치 진보세력이 존재한다. 첨단 기술력과 지하자원이 결합되어 뿜어내는 압도적 경제력. 자유무역의 선구자답게 1달러 샵에서 명품 매장에 이르기까지 세계 각국에서 수입한 물건들이 홍수처럼 넘쳐흐른다. 그러나 홈데포에서 목격한 저 같은 노인노동의 현실을 보면서 나의 생각은 또 달라진다. “괜찮은 표면”을 넘어선 심층의 모습 말이다.

    첨단산업이 발달한 오스틴은 텍사스에서도 손꼽히는 부자도시다. 캘리포니아 실리콘밸리에 빗대어 실리콘 힐(silicon hill)이란 별명이 붙어 있을 정도다(삼성전자 미주 반도체 공장도 이곳에 있음). 그 상징적 모습이 콜로라도 강을 낀 언덕배기에 즐비하게 늘어선 삼층, 사층의 대저택들이다.

    하지만 도로 변에 드문드문 들어선 버스정류장. 그곳에서 땡볕 맞으며, 늘 시간 어기는 버스 하염없이 기다리는 이들은 대부분 중남미 출신이거나 흑인 그리고 레드넥(red neck : 미국 남부지역의 하층 백인들. 야외노동으로 햇볕에 목이 붉게 탔다 해서 붙은 명칭)들이다. 굿윌 스토어(Goodwill Store)나 구세군 매장 같은 기증품 재판매 가게에서 멀끔한 옷차림의 백인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웃통 벗고 도로를 수리하거나 아파트에서 낙엽 청소하는 노동자들도 마찬가지. 이른 아침에는 꾸벅꾸벅 졸며 출근하는 초라한 행색의 테하노(Tejano : 텍사스에서 오랫동안 살아온 멕시코 계 원주민)와 흑인들이 버스 안에 가득하다. 싸구려 중고차 한 대 살 돈이 없기 때문이다. 진실은 때로 한낮의 그림자 속에 숨어있는 게다. 다만 눈에 잘 띄지 않을 뿐, 이 도시의 자유롭고 부유한 분위기 이면에는 심각한 계급격차와 인종차별이 감춰져있는 것이다.

    어두운 대지를 가르며 번갯불이 번쩍일 때, 우리는 대지의 일그러진 모습을 일순 목격한다. 내가 홈데포에서 만난, 지치고 쪼그라든 팔순 할머니의 표정이 혹시 그러한 섬광은 아니었을까.

    필자소개
    김동규
    동명대 교수. 언론광고학. 저서로 ‘카피라이팅론’, ‘10명의 천재 카피라이터’, ‘미디어 사회(공저)’, ‘ 계획행동이론, 미디어와 수용자의 이해(공저)’, ‘여성 이야기주머니(공저)’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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