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잔인한 승자독식 시스템과 미국 빈곤
    [inside국제경제]극단화되는 빈익빈 부익부, 신자유주의의 냉정한 결론
        2012년 07월 26일 04: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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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뉴욕의 낯설지 않은 풍경

    뉴욕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들 가운데 하나는 거리와 지하철 곳곳에서 만나는 노숙자들과 걸인들이다. 최근 출퇴근 때마다 새삼스럽게 느끼는 게 노숙자와 걸인들의 수가 최근 몇 년 사이 더 늘었다는 점이다.

    얼마 전 필자는 어느 지하철 역 입구에 널부러져 앉아서 음식을 구걸하는 한 중년의 흑인 여자를 만났다. 그녀는 돈을 구걸하는 대신 행여라도 먹다남은 샌드위치나 사탕이 있으면 나누어 달라고 말하고 있었다.

    아마도 돈을 구걸해서 음식을 사먹기에도 힘에 부치는 모양이었다. 핏기없는 그녀의 얼굴 표정에 약간의 충격을 받은 나의 머리 속은 곧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무엇이 문제일까?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급증하는 빈곤율 – 금융 및 경제 위기와 밀접한 관련

    우선 미국 사회의 빈곤 문제와 관련된 한두 개의  통계 자료를 인용하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해 보자. 지난 해 가을 파이낸셜 타임즈(Financial Times)는 미국 인구통계국(Census Bureau)이 발표한 보도 자료를 인용해 문제의 심각성을 지적한 바 있다. 그 때 신문 기사는 전미 평균 전체 인구의 15% 대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미 연방정부가 정한 빈곤선(Poverty threshold)을 밑도는 소득을 벌며 생존을 도모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해 미국 평균 4인 가구 기준 중간 가계소득 (median family income)은 46,000달러 (원화로 대략 4천 7백만원)였고, 소득 기준 상위 10% 이상의 부유층들은 연평균 250,000 달러 (원화로 대략 2억 6천만 원) 이상의 소득을 벌어들이는 것으로 집계되었다.

    연방 정부는 그 가운데 4인 가구 기준으로 연평균 22,314 달러(원화로 대략 2천 3백만 원) 이하의 소득을 얻거나 1인 기준으로 연 11,139달러(원화로 대략 천 2백만 원) 이하의 소득을 버는 사람들을 빈곤선 이하로 분류했다. 그 기준에 따라 전체 인구 가운데 약 15%에 상당하는 사람들이 연방 정부가 정한 빈곤층에 해당되는 것이다.

    물론, 미 연방 정부가 마련한 이 빈곤선 기준이 현실성이 있는 것인지 여부를 둘러싸고 많은 논란이 있어왔다.

    일부 진보적 성향의 학자들은 연방정부가 설정하는 이 기준이 더이상 적절하지 못하며, 주나 시 등 거주지 별로 평균 주거 임대료와 일반 소비자 물가를 참조하여 최소 생계비를 산출하고, 이를 바탕으로 거주지 별로 빈곤선 기준을 설정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왜냐하면 뉴욕이나 시카고와 같은 대도시에 거주하는 사람들과 중남부 주의 이름없는 시골 소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감당하는 생활비와 체감 물가 수준은 분명히 다르기 때문이다.

    이같은 빈곤선 기준에 대한 논란에도 불구하고, 현행 빈곤 기준을 따르면서 15%대의 빈곤율을 미국 전체 인구 대비 절대 수준으로 환산할 경우 약 4천 6백만명의 사람들이 빈곤에 허덕이고 있다는 결과가 나온다.

    흥미롭게도 이 수치는 1960년대 중반 경 당시 린든 존슨 행정부가 미 역사상 처음으로 “빈곤과의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대대적인 반빈곤 캠페인을 벌이기 시작했을 때의 수치에 육박하는 것이다.

    이 절대 빈곤율을 다시 각 주별로, 그리고 인종과 학력 그리고 나이별로 세분화해 보면 사태의 심각성이 더 커진다. 뉴욕 주의 경우 주 평균 빈곤률은 16.5%에 이르고, 흑인의 경우에는 30% 이상의 인구가 하루 평균 $1의 가처분 소득(disposable income)을 가지지 못한 가운데 생활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또한 전미 평균 22%대의 아동 (10명 중 2명의 아이들)이 빈곤 가정에서 태어나서 배고픔을 경험하면서 성장하고 있고, (각종 의학 자료를 종합할 경우) 압도적인 다수의 빈곤층 자녀들이 성장하면서 그들의 생애 주기(life cycle) 내내 각종 호흡기 질환이나 피부병 그리고 영양결핍에 따른 장기적인 정신적 신체적 결함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악화될대로 악화된 이같은 사태에 대한 전망을 더욱 암울하게 만드는 것은 이 빈곤층의 비율이 앞으로도 몇 년간 더욱 높아질 것이라는 데 있다.

    수많은 빈곤 문제 전문가들이 현재의 빈곤률 상승이 2007년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금융 및 경제 위기와 연동되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낮아질 줄 모르는 실업률과 전체 실업자들 가운데 점점 더 높아지는 장기 실업자들의 비중, 그리고 여전히 떨어질 줄 모르는 주택 손배압류(mortgage foreclosure) 등은, 설사 미국 경제가 본격적인 회복기에 접어들어서 3-4%대의 전례없이 높은 경제 성장률을 달성한다고 해도, 당분간 이 빈곤 문제가 쉽사리 해결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신자유주의 정책으로 더 악화된 소득 불평등

    미국 사회의 빈곤 문제를 이해하는 데 유용한 또 한 가지 자료는 미국의 소득 분배 상황에 관한 통계 자료다.

    지난 해 나는 미국의 소득 분배 상황에 대한 통계 분석으로 유명한 토마스 피케티(Thomas Piketty)와 엠마뉴엘 사에즈(Emmanuel Saez)의 통계 분석 기법을 원용해서 뉴욕 주와 뉴욕 시의 소득 분배 상황에 대한 시계열 자료를 만든 적이 있다. 피케티-사에즈의 연구 결과와 필자의 분석을 종합하면 대략 다음과 같은 특징들을 발견할 수 있다.

    먼저, 미국에서 상위 1%의 소득은 전체 국민총소득 대비 18%대(1914년 기준)에 머물러 있다가 1930년대 대공황이 발발하기 직전에는 24%대로 치솟았다.

    대공황 이후 루즈벨트 행정부 하에서 취해진 진보적 조세 정책 (예를 들어, 자본 소득에 최고 80% 이상의 누진세를 부과했던 정책) 덕분에 상위 1%의 소득은 1950년대 중반에는 10%대로 하락하는 일이 발생했다.

    그 때부터 1980년대 초까지 약 30여년 간 이들의 소득은 약간의 등락이 있긴 하지만 줄곧10%대에 머물러 있게 된다.

    그러다가 레이건 행정부가 집권한 이후 취해진 일련의 역진적 조세 정책 등에 힘입어 상위 1%의 소득 비율은 다시 치솟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0년 초에는 이들의 소득 분배율이20%를 회복하고 다시 2007년에는 대공황 바로 직전에 다라랐던 24%대로 치솟았다.

    사람의 머릿수로 환산할 때 몇 만 명에 불과한 상위 1%의 부유층이 한 나라가 일년 동안 창출한 국민 소득의 1/4을 가져가게 되었다는 것이다.

    다음으로, 뉴욕주와 뉴욕시로 시야를 좁혀보면, 미국 사회 전반을 감싸고 있는 이같은 소득불평등 문제는 그 심각성을 더한다.

    뉴욕 주 정부 산하 재정 조세국(Department of Finance and Taxation)이 보유하고 있는 시계열 자료의 한계 때문에 소득 분배 상황에 대한 분석은 1981년도에서부터 시작할 수밖에 없다.

    그 조세 자료를 분석한 결과, 뉴욕 주의 경우 소득 기준 상위 1%의 부유층은 1981년 전미 평균에 준하는 10%대의 소득을 점하고 있었다. 뉴욕 시의 경우는 그보다 약간 높은 12%의 전체 시 소득을 상위 1%가 가져갔다.

    그런데 2007년도에 이르러서는 뉴욕 시의 경우 상위 1%의 부유층이 전체 뉴욕시 소득의 45%를, 뉴욕 주의 경우는 상위 1%의 부유층이 전체 주 소득의35%를 가져간 것으로 나타났다.

    직업군으로 따지자면, 몇 만명도 안되는 은행과 보험업계의 최고 경영자들과 각종 투자 은행 및 헤지펀드의 자산 운용가들이 뉴욕 주와 뉴욕 시 가처분 소득의 절반 이상을 가져간 셈이다.

    반면 같은 기간 소득 기준 하위 50%의 압도적인 다수의 뉴욕 주 거주자들의 소득 점유율은 1981년 20%에 약간 못미치는 수준에서 2007년 10%대 미만으로 떨어졌다.

    다시 말해, 뉴욕 주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전체 연간 주 총소득의 1/10에 못미치는 소득을 벌면서 생존의 바닥에서 헤매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2007년 미국 주택시장의 버블 붕괴에서 비롯된 미국발 국제 금융 위기의 한 요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미국민들의 점증하는 가계 부채’ 문제는 이같은 극심한 소득 불평등이 야기한 구조적 결과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구조 변화와 세계화가 소득 불평등의 원인이라고….NO

    미국 사회의 소득 불평등 문제에 관해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진단을 내린 바 있다. 혹자는 미국의 소득 불평등 문제는 산업 구조의 변동 때문이라고 주장해왔다.

    경제가 성숙기에 접어들어 전통적인 제조업보다는 금융과 보험 산업 등의 서비스 업종 분야가 전체 국민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고, 그 분야들이 요구하는 기술 숙련을 갖추지 못한 일반 노동자들이 점차 주변화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와 더불어 사람들은 세계화(Globalization)에 따른 국제 경쟁의 심화와 급격한 기술 변동 등을 현재와 같은 소득 불평등을 야기한 원인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서비스 산업 중심으로 산업 구조가 변동한다고 해서, 그리고 기술 변화가 나타난다고 해서 반드시 이와 같은 소득 불평등 문제가 나타날 필요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미국과 유사하게 산업 구조의 변동을 경험해왔던 나라들 가운데에서도 많은 나라들이 미국과는 전혀 다르게 양호한 소득 분배 수준을 보여주고 있는 나라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현재와 같은 극단적인 소득 및 재산 불평등은 거대 금융 기업의 최고 경영자들이 일반 노동자 임금의 150여배나 되는 임금 외 소득을 올릴 수 있는 데서 나타나는 것처럼, 서비스업 중심의 산업 구조 고도화나 기술 변화와는 무관한 다른 요인들 때문에 빚어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집권 이후 공화당 행정부가 집권을 할 때마다 취해왔던 부유층에 대한 조세 감면 혜택이 야기한 비대칭적인 효과이다.

    그들은 조세 감면을 통해 기업 투자가 늘어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일자리도 많이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그들의 주장과는 달리 부유층에 편향된 조세 감면 조치는 그 이전까지 부유층이 부담하던 조세 부담율만을 낮추었을 뿐 그 어떠한 경제 성장 효과도 야기하지 못했다.

    오히려 부자들에 대한 감세 정책은 결과적으로 미 연방 정부의 재정 적자 폭을 키우는 결과를 가져왔고, 오늘날과 같은 경제 위기 국면에서 정작 필요한 케인즈주의적 확대 재정 정책을 국가 채무 위험 때문에 제대로 실시하지 못하는 딜레마에 빠지게 했을 뿐이다.

    빈곤과 맞서 싸울 리더십은 없다

    그렇다면 미국인들은 정치 체제의 변화를 통해 이 문제를 다룰 수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럴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 같다. 올 12월의 대선을 맞아 민주-공화 양당의 대선 후보들은 앞다투어 내놓고 있는 경제 성장 공약을 살펴봐도 그렇다.

    특히 당내 경선을 통해서 공화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밋 롬니(Mitt Romney)는 부자에 대한 감세, 각종 금융 및 환경 관련 규제 조치의 철폐 등을 핵심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심지어는 미 연방 정부가 관할하는 사회연기금을 민영화하고 “개인 책임 사회 (Individual Responsibility)”를 구현할 것을 역설하고 있다.

    오바마 행정부가 법안으로 통과시킨 전국민 의료보장제도나 금융 시장 개혁에 관한 법안들을 집권과 동시에 철회시키겠다고도 주장하고 있다.

    또한 그는 대자본이 운영하는 농업 식량 분야와 환경 관련 분야의 각종 규제를 철폐하고 금융업 분야에 대한 정부 간섭을 급진적으로 철폐하겠다는 예의 낡은 주장도 아무런 거리낌없이 거론하고 있다.

    미국은 물론 전세계가 2007년부터 본격화된 미국발 금융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바로 이 때에도 공화당의 대선 후보는 바로 지금의 숱한 부조리와 난맥상을 불러일으켰던 일련의 조치들을 마치 새로운 비전인 양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일부 민주당원들도 동조하는, 공화당 의원들의 이같은 각종 정치 구호와 헛소리들을 듣고 있자면, 그들이 발딪고 서 있는 현실은, 적어도 뉴욕 거주민들 가운데 16%에 달하는, 돈과 음식을 구걸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빈민층이 하루하루 마주 대하는 현실과는 확연히 다른 어떤 것이라는 것을 절감하게 된다.

    이런 측면에서 월스트리 점거 운동에 참가했던 한 여성이 한 텔레비전 방송국 기자와 인터뷰를 하면서 했던 말이 가슴에 와닿는다.

    그녀의 말대로 진짜 “계급 투쟁”은 미국민들 다수가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을 것인가 아니면 렌트비를 낼 것인가, 밥을 먹을 것인가 아니면 학교에 갈 것인가를 매일 같이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리는 현재의 상황일지도 모른다.

    밋 롬니 공화당 대선 후보를 비롯한 미국의 극우주의자들이 부자들의 조세 분담률을 높히자고 말했던 오바마 대통령에게 “계급 투쟁을 선동”하는 “매우 위험천만한 발언”이라고 비난했을 때, 이미 압도적인 다수의 미국인들은 미국의 극우 보수주의자들이 만들어 놓은 “개인 소유 사회”라는 게임 룰에 얽매여 거의 매일같이 “계급 투쟁”의 생체 실험 대상이 되어 왔던 것일지도 모른다.

    한국은 이들과 다른가?

    그런데 문제는 이같은 상황이 비단 미국 사회만의 비극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에서 미국 시스템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한국의 지배 엘리트들의 행태를 통해 조만간 한국 사회에도 이식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아니 이미 한국 사회는 김영삼 정부 시절부터 추진된 ‘세계화’를 통해, 동아시아 외환 위기를 통해, 또는 동북아 금융허브론과 한미 FTA를 통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어느 순간부터 미국식 승자독식 사회 시스템의 부정적 효과와 문제점들에 직면하고 있다.

    게다가 집권 초기부터 ‘강부자,’ ‘고소영’ 정권이라고 조롱과 비난을 받았던 현 이명박 정부 하에서, 한층 더 미국식 승자 독식의 사회에 근접하고 있는 현실이다.

    소위 4대강 사업에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붙고 각종 비리와 전횡을 일삼으면서도 굶는 아이들에게 밥먹이자는 것에 대해서는 생래적인 거부감을 보였던 이들, 벌이는 사업마다 국회 청문회나 국정 조사의 대상이 되고, 최소한의 상식을 갖춘 사람들이 보기에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불법과 비리의 온상이 되어 버린 이 정권의 실세들, 그러면서도 각종 국가안보 상업주의와 뿌리깊은 친일친미 이념을 강변하면서 제 나라의 국민을 통치와 훈육의 대상으로만 삼는 정권 밑에서 좌절하고 갈등하고 탄압받는 사이, 우리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미국의 한 주로 이미 편입되어 갔는지도 모를 일이다.

    결국 남는 문제는 다가오는 대선에서 유권자들이, 국민의 압도적인 다수가 빚을 내지 않고서는 그럴 듯한 삶을 영위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는 ‘미국이라는 이름의 야만적인 체제’와는 다른 비전을 제시하는 사람을 자신의 충실한 종복으로 뽑을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그리고 권력을 위임해준 기간 내내 그 종복이 주인의 의지를 거스르지 않게끔 계속해서 감시하고 비판하고 견제할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어느 지하철 역 앞에서 음식을 구걸하던 중년의 흑인 여성이 창백한 얼굴로 내게 전하던 메시지였다.

    필자소개
    뉴욕 뉴스쿨 대학원(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재 오하이오 주립대학 (Wright State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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