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결집 새정당, 가시권
    민주노총은 뭘 하고 있나
    계급정당 배제 우려해, 현재진행형인 ‘통합’ 흐름에 찬물 안돼
        2015년 08월 28일 11:58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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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공부문 노동활동가들의 현장조직인 ‘공공운수현장조직(준)’의 소식지 <공공현장>65호에 실린 글을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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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8월18-19일 민주노총 정치위원회의 수련회가 있었다. 한상균 집행부 출범 이후 쭉 공석이던 정치위원장 자리에 최근 양동규 사무총국 부총장을 선임하면서 만들어진 행사다. 이날 수련회에서는 <노동자정치의 성찰과 방향>이라는 주제로 토론이 이루어졌고, 민주노총 정치위원장, 부산본부 정치위원장, 공공운수노조 정치위원장이 각각 토론문을 제출했다.

    신임 양동규 정치위원장이 제출한 토론문(이하 토론문)은 근 8개월의 공백을 거쳐 나온 사실상 한상균 집행부의 민주노총 정치방향에 대한 입장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런데 발제내용만 놓고 보면 뭘 하자는 것이지 알 수가 없다.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하자는 것인가, 말자는 것인가?

    현장 노동자들이 원하는 것

    양동규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의 발제를 핵심요약하면 ‘노동자계급 (독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이다. 지금까지의 민주노총 방침을 함축한 용어인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계

    급’과 ‘독자’ 네 글자가 더 들어갔다.

    그 이유로 내세우고 있는 정세 근거는 1987년에서 2007년까지 한국 사회 전체가 ‘좌선회’를 이뤘고, 이후 2007년부터 현재는 ‘우선회’되어 정세가 역전되었다는 것이다. 역전된 이유로 ⑴ 20여 년 동안의 좌선회 과정은 일종의 수동혁명이었고, 87년 민주항쟁과 노동자대투쟁으로 형성된 정세를 지배계급이 체제와 제도 내적으로 포섭해 버렸기 때문 ⑵ 89년 이후 현실사회주의체제 붕괴에 따른 청산·패배·투항주의 만연 ⑶ 96-97 민주노총 정치총파업 이후 민주노조 운동진영의 제도화·관료화·조합주의화를 꼽는다.

    그리고 이 세 가지 이유로 인해 두 가지 정치현상이 파생되는데 ①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형식적으로나마 담당했던 진보정당이 계속해서 노동자투쟁과 분리되면서 부르주아 정치체제 내부로 제도화하기 시작한 것이고 ② 부르주아(제도)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선거 참여와 관련해서도 그나마 유지했던 노동자계급의 독자 대응마저 포기하고 민주대연합 등 야권연대로 후퇴한 것이다. 신자유주의 우파와 신자유주의 좌파 사이의 정권 교체로 달라질 것은 없기에, 노동자계급은 야권연대를 버리는 동시에 노동자 정치세력이 보이는 현재의 지리멸렬함을 극복해야만 정세를 근본적으로 호전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민주노총 정치 사업의 초점을 내년 4월 총선에서 노동자계급 (독자) 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원년이 되게 하는 것에 맞추겠다고 한다. 여기서 ‘다시 시작하는 새로운 원년’ 은 무슨 뜻 일까?

    민주노조

    진보다원주의의 속내

    정세상황을 진단하면서 문제의식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지난 20년간의 흐름과 그로부터 파생된 정치현상은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의견을 달리 할 것은 없다. 지극히 당연하고 옳은 말이고 새삼스러운 얘기도 아니다.

    문제의식과 진단은 기존 평가에서 새로울 것도 차이도 없는 것 같은데 결론은 엄청난 차이를 드러낸다. 토론문은 지난 15년간의 ‘진보정당(정치)을 통한 정치세력화’를 실패로 단정한다. 그리고 실패에서 얻은 교훈으로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진보정당’ ‘진보정치’만으로 설정하고 실행해서는 안 되며, 진보/변혁세력이 하나가 아니라 다수로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고 반영해야 한다”고 말한다. “진보정당 사이의 통합을 주장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계급정당/변혁세력’에 대한 배제를 낳을 수 있다”는 것이고, 진보정당보다는 대중조직 차원에서의 정치사업과 정치활동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는 “투쟁을 통한 대중의 정치화”를 하자는 것이다.

    매일노동뉴스가 양대노총 소속 노조간부 615명을 대상으로 지난 6월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자. 27.2%의 응답자가 새정치민주연합을 지지한다고 답했고, 그 다음은 정의당 8.6%, 노동당 6.8%, 새누리당 6.7% 순이었는데, 지지정당이 없다는 응답이 50.2 %로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한국노총은 새정치민주 연합 지지율이 38.1%로 가장 높았고, 민주노총은 새정치민주연합(15.8%)·정의당(13.5%)·노동당(10.9%)에 큰 차이 없는 지지율을 보였다. 특히 정의당·노동당·국민모임·노동정치연대가 통합하면 내년 총선에서 투표하겠다는 답변은 한국노총 48.7%, 민주노총이 70%로 높게 조사됐다.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를 진보정당만으로 설정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에 동의한다. 우리는 민주노동당 실패 이후 진보정치의 분열을 겪으며, 정당운동을 넘어서 노동이 중심이 되는 지역거점운동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의 노동정치운동에 대한 제기와 시도를 해왔다. 그러나 이것이 ‘계급정당’의 배제를 우려해 진보통합을 반대하는 민주노총의 정치적 입장으로 이어지는 것에는 심각한 우려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정당을 통한 노동자 정치세력화’ 추진이 한차례 실패했지만, 그 실패의 교훈을 딛고 새로운 노동정치를 실현하려는 노력을 줄기차고도 일관되게 해온 사람들이 있고, 그 노력이 비로소 지금 진보단위들의 결집 움직임과 각계의 지지선언으로 나타나고 있다. 물이 들어오고 있고 지금은 노를 저을 때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많은 현장의 노동자들은 지지할 수 있는 강하고 통일된 우리의 노동자정당을 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주노총 정치위원장의 문건은 얼마나 물정 모르고 뜬구름 잡는 얘기인가?

    대책 없는 투쟁만능주의 경계

    마지막으로 투쟁에 대한 부분이다. 투쟁을 통한 대중의 정치화, 좋은 얘기다. 진보정당보다는 대중조직 차원에서의 정치사업과 정치활동을 획기적으로 강화해서 노동자계급 투쟁 자체를 지속적으로 하자고 주장한다. 나아가서는 민주노총의 전 사회적인 투쟁을 하자고 강조한다. 정말 갈망하는 바이다. 민주노총이 태동기에 그랬듯 진보정당이 필요 없을 정도의 강력한 정치투쟁 전선체가 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말은 좋은데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인가? 민주노총은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가? 지금은 단위사업장의 투쟁 과제도 전부 정치권으로부터 파생되어 나온다. 거의 모든 것이 현실정치의 힘의 관계에 기반을 두어서 제도와 법률로 압박해 들어온다. 복수노조, 타임오프, 임금피크제, 일반해고 요건 완화 등. 상대가 언론과 정치권력을 장악하고 있는, 가장 강력한 적인 정부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

    당위적인 총파업을 외친다고 투쟁전선이 회복되는 것이 아니다. 이제는 집회 몇 차례 데리고 나온다고 조합원들의 ‘투쟁심’이 높아지지 않는다. 노동자 대중의 ‘정치투쟁의식’을 높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업장 담장을 넘는 의식화의 장이 필요하고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이 진보정치의 공간이다. 진보정당일 수도 있고, 동네 민중의 집일 수도 있다. 민주노총의 정치사업계획은 중장기적인 정치의식 강화를 통한 노동자 계급성 강화와 현실정치 대응의 두 가지 전략이 동시에 나와야한다.

    우리의 투쟁은 결코 현실정치를 피해갈 수 없다. 조합원 대중이 현실정치에서 제대로 선택하고 지지할 진보정당을 만들어 제도권 내의 싸움에서 유력한 정치 무기로 쓸 수 있는 그릇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 그릇이 ‘노동중심의 대중적 진보정당’인 것이다.

    양동규 정치위원장이 비판했듯, 야권연대에 기대고 사업장 투쟁현안이 생기면 새정치연합 을지로위원회를 찾는 지금의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실체적 진보정당은 존재해야 하고 더욱 강화되어야 한다. 15년간의 과정을 헛되이 평가할 것이 아니라 총연맹은 그동안 부족했던 산별연맹과 산하조직에서 실천할 일상적 정치 사업과 정치투쟁의 기획들을 시급히 고민해서 제출해야 할 것이다.

    한상균 집행부가 들어서고 8개월여만에 정치위원회가 가동되기 시작하면서 내세우고 있는 것이 ‘성찰과 반성’이다. 그리고 ‘토론을 해보자’는 것이다. 도대체 언제까지 성찰과 반성만 하고 있을 것인가? 민주노총 새 집행부가 들어설 때마다 제 입맛에 맞는 성찰과 반성만 하고 있어서야 되겠는가. 이제는 실행이 필요할 때다.

    민주노총이든 연맹이든 새로운 지도부가 들어섰을 때 앞서 걸었던 동지들의 마지막 발자국부터 출발할 줄 아는 자세를 가졌으면 한다. 내년 4월 총선이 노동자계급 정치세력화를 다시 시작하는 원년이 되게 하고 싶다는 목표가 섰다면, 제2의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위해 부단한 경주를 해왔던 단위들의 노력을 존중하고 그 성과를 민주노총이 대중적으로 받아 안아 사업으로 펼치기 바란다. 지금의 외부적 조건이야말로 진보정치를 통합하기 위한 민주노총의 행보가 빛을 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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