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여행자를 위한
    라오스 하안거 이야기
    [에정칼럼] 일상이 된 이상기후?
        2015년 07월 29일 02:3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늦은 밤, 비가 온다. 오늘 밤은 요란스레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소나기는 아니다. 그래도 낙숫물 소리가 제법 시원하고 오래다. 모레면 라오스가 하안거(夏安居)에 들어가는 명절, ‘카오판싸’다.

    *사진 [우기 차창 밖 풍경] 라오스 루앙파방(Luangprabang)에서 왕위양(Vangvieng)으로 가는 우기의 버스 창밖 풍경

    라오스 루앙파방(Luangprabang)에서 왕위양(Vangvieng)으로 가는 우기의 버스 창밖 풍경

    라오스의 명절과 계절

    남북으로 긴 라오스는 좀 차이가 있지만 대략 사월 중순부터 구월까지, 한 해의 절반을 우기로 잡는다. 자연히 나머지 절반은 건기. 우기가 시작되는 사월 중순은 라오스 음력으론 오월. 그렇지만 라오스 불력(佛曆)으로는 새해를 시작하는 날, ‘삐마이’가 된다.

    나는 칠월 초 라오스로 다시 들어왔다. 절정의 화전 연기를 다독여 가라앉히는 삐마이 단비가 우기의 시작을 알린 지 두 달이 훌쩍 넘은 때다. 그럼 라오스 북부도 모내기를 모두 마쳤어야 했고 적어도 하루에 두세 차례 흠씬 비가 내려서 보통 천수답이라도 논물이 찰랑거려야 한다.

    그런데 삐마이 무렵 태국 치양마이 공항을 마비시킬 정도의 화전 연기를 비추던 텔레비전들이 칠월 초인데도 여전히 거북등짝처럼 쩍쩍 갈라진 논바닥을 비췄다. 라오스의 계절을 기온에 크게 좌우되지 않고 건기와 우기로 나눌 수 있게 하는 것은 비다.

    열대에 위치해 있어도 라오스의 여름은 엄연히 겨울보다 뜨겁다. 섭씨 40도를 훌쩍 넘어가기 일쑤인 라오스의 여름을 여름으로 불리지 않게 식혀주는 것이 비다. 그런 비가 오지 않는 라오스의 칠월은 그야말로 모든 것이 타들어가는 불볕 더위. 동남아시아의 어머니 강 메콩마저 건기의 수위를 넘어서지 못하는 것 같았다. 칠월 초 라오스는 전에 없던 계절, 우기가 아닌 너무 가문 여름에 있었다.

    그런 소중한 ‘비님’께서 다행히 가까스로 칠월 중순을 넘기면서는 하루 걸러 한 번씩 오시다, 하루 한 번은 오시다, 하루 종일 오는 것처럼 오시게 되어, 제대로 라오스가 우기가 된 지는 이제 고작 보름이 됐다. 그리고 여기 내가 있는 곳, 싸이냐부리(Xayaboury)에서는 모내기를 시작한 지 한 주가 되지 않았고.

    [모내기하는 엄마와 아기] 물론 관계수로가 잘 정비된 논은 건기에도 벼농사가 가능하다. 저녁 무렵 모내기 마무리를 하는 엄마와 이를 돕는 아기

    물론 관계수로가 잘 정비된 논은 건기에도 벼농사가 가능하다. 저녁 무렵 모내기 마무리를 하는 엄마와 이를 돕는 아기

    일상이 되어가는 이상기후?

    라오스는 바다가 없다. 그래서 해일도 없고 태풍도 심하지 않다. 불안정한 지각대도 아니어서 화산도 없고 지진도 거의 느낄 수 없다. 국제적으로 뉴스거리가 될 만한 급작스런 대규모 자연재난은 없다. 그러나 바다를 대신한 메콩에 풍요로운 자연에 절대적으로 의지해 살아가는 지역인 만큼 작은 자연환경의 변화에 훨씬 민감하다.

    나는 라오스의 이상기후 현상을 2008년 여름에 났던 큰 홍수부터 기억한다. 그때 싸이냐부리는 공설운동장에 1미터 이상 물이 찰 정도로 읍내가 몽땅 물에 잠겼었다. 메콩은 대부분의 저지대 나루터는 물론 그 위쪽에 지은 집들에까지 들이쳐 모든 것을 휩쓸어가 버렸고. 2010년엔 예상치 못한 시기의 호우로 중국 업체가 건설 중이던 루앙파방(Luangprabang) 근처의 댐이 붕괴되어 하류의 마을들을 침수시켰다.

    2010년 말 2011년 초 건기에는 라오스와 태국 북부에 비가 자주 내려 이상 저온을 초래했고 반대로 우기에는 가뭄이 들어 물 부족으로 대학 기숙사들이 문을 닫을 수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게 했다. 더불어 이 물 부족은 냉방전력 소비를 폭증시켜 잦은 정전 사태까지 불러오면서 특히 도시 주민들의 고통을 가중시켰다.

    2014년 초에도 비가 내려 날이 추워지면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노숙이나 다름없이 지내는 빈곤층이나 기후변화 취약계층의 동사(凍死)를 염려하기도 했다.(나를 포함해 일반적인 라오스 기후 정보를 믿고 별 대비 없이 단출하게 짐을 꾸려온 여행자들이 큰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그리고 올해 2015년의 가뭄. 이렇게 늦어진 모내기는 빈곤층에 취약계층에 또 어떤 고통을 부과하게 될까?

    전 지구적인 기후변화를 탓으로 밖에 할 수 없는 이런 이상기후, 기후재난은 이제 라오스에서 거의 매년마다 일어나고 있다. 비교적 직접적인 원인들을 짚어 볼 수 있는 지엽적인 기후재난도 계속 점증하고 더욱 일상화되어가고 있다. 대표적인 문제가 벌목과 화전, 농장의 확대로 인한 숲과 수목량의 감소, 수목량의 감소와 댐 건설로 인한 자연적인 하천의 수량 조절능력의 저하와 전반적인 수량의 감소가 그것이다.

    캄무완 쿤캄 건천

    [캄무완 쿤캄 건천] 라오스 중부 캄무완 지역의 유역변경식 댐 건설로 말라버린 하천 바닥에 남겨진 조각배들

    오늘 라오스를 여행하는 이들의 하안거

    라오스 남부에 이르러서는 4천 개의 섬과 신비한 돌고래를 품을 만큼의 위대한 메콩도 그 상류인 중국에 건설된 몇 개의 댐으로 오히려 자연스런 수량 조절이 심각하게 영향을 받고 있다고 대부분의 라오스 사람들이 말한다. 그래서 그들은 물고기가 상류로 올라갈 수 있는 어도와 하류를 비옥하게 만드는 토사와 강물의 흐름을 거의 방해하지 않는 방식의 싸이냐부리 댐 건설을 선택 했노라고 변명한다.

    그러나 이런 굵직한 것 말고도 그들 스스로가 이미 수천 수백의 크고 작은 메콩 지류들의 안정적 수량 유지의 근원인 주변 숲의 감소에 가장 직접적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부인할 수는 없다.

    [매컹 씨판던]: 라오스 남부 메콩 강변 나무들 모습. 우기의 엄청난 메콩의 수량에 적응해 이렇게 휘어져 자란다.

    [매컹 씨판던]: 라오스 남부 메콩 강변 나무들 모습. 우기의 엄청난 메콩의 수량에 적응해 이렇게 휘어져 자란다.

    스님이 보통 사람만큼이나 많았을 시절, 한창 자라는 농작물에 피해를 주지 않고 많은 비로 위험해진 외부 환경을 조심해 정처에서 경건하게 수행하도록 하는 하안거는 이제 일반 대중도 따르는 계율 같은 것이 되었다.

    라오스의 가장 유명한 축제는 새해 삐마이와 더불어 바로 이 하안거가 끝나는 날, 배 경주 축제로 알려진 명절, ‘억판싸’다. 하안거는 그 기간 동안 가급적 집을 떠나지 않고, 음주가무를 삼가고, 몸과 마음을 정갈히 해 위험한 우기, 어려운 시절을 무사히 나오는 라오스 전통의 지혜가 된 거다.

    라오스의 기후변화, 기후재난의 위험은 책임과 함께 중국에게도, 라오스 사람들에게도, 온실가스를 잔뜩 배출하고 돌아다니는 우리 여행자들에게도, 그냥 지구의 어느 누구에게도 동시에 존재한다. 대중이 수행자의 계율을 나누어 지키며 위험한 시기를 지나는 지혜를 발휘했듯이 오늘 라오스 여행하는 우리도 억판싸의 흥겨움보단 카오판싸의 의미를 한 번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싶다.

    짬빠싹 왓푸 계단

    [짬빠싹 왓푸 계단] 라오스 남부 짬빠싹(Champasak) 왓푸 유적 돌 계단에 놓인 공양물 살펴보는 여행자. 우기엔 산 중턱을 오르는 돌계단에도 초록의 이끼가 덮인다.

    필자소개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라오스 재생가능에너지 지원센터 센터장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