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결집으로
진보 혁신의 기초 만들자
[릴레이기고-4] "물적 토대 필요"
    2015년 06월 18일 11:10 오전

Print Friendly

노동당과 정의당,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의 새 진보정당 창당 추진이 대표자들의 공식선언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 모습을 마땅찮아 하는 이들도 있고, 잘 했다는 박수소리도 들린다. 모든 일이 그렇지만, 특히 새로 시작하는 일은 기대의 크기만큼 불안함 또한 도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세력 재편을 통해 새로운 진보정당이 만들어지면, 추락하던 진보정당이 힘차게 날갯짓할 것이라는 희망의 근거가 대체 뭐냐는 날선 비판이 불안함의 실체다.

일면 타당하다. 그래서 앞서 진보결집을 주장하는 글을 보낸 이는 이렇게 말한다.

“어떤 종류의 혁신도 기본적인 역량이 갖춰진 다음에 기대할 일”이고 “아무것도 없는데 혁신을 기대하는 것은 창조주나 할 일”이기 때문에 “현재의 분리 상태로는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따라서 “진보결집은 새롭게 역량을 갖추는 것이고, 흩어진 자원을 집중하는 것이며, 그래서 혁신의 새로운 출발이 될 수 있다.” 그리고 “진보결집으로 문제가 다 해결될 거라고는 아무도 말할 수 없다.”는 점도 설명하고 있다.

필자의 생각도 마찬가지다.

덧붙이면 국가권력에 의해 통합진보당이 강제로 해산된 지금의 상황은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진보정당의 제자리 찾기를 위해 노선 경쟁을 벌였던 지난날과 완전히 다른 상황이라는 점이고, 이 달라진 상황에서 예전 기억을 끄집어내서 진보정당 간의 분화에 따른 경쟁과 혁신을 통해 제대로 된 진보정당을 만들어보자는 주장하는 것은 현재의 상황을 제대로 보지 못하는 태도이다.

또 통합진보당의 자기모순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힘으로 그 반대파를 일거에 몰아내버리는 지금의 정치권력체제가 가져올 가까운 장래의 사회적 파국에 맞서서 진보정당 활동가들이 인민들과 함께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헤아림도 부족한 주장이다.

각설하고, 필자 역시 혁신을 위한 물적 토대로서 진보결집을 통한 새로운 진보정당 창당이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임무임을 강조하면서, 그렇다면 새로운 진보정당에서 실현해야 할 혁신의 구체적인 모습이 무엇인지를 지방의원인 필자의 활동과 관련하여 그려보고자 한다.

풀뿌리, 지역에 주목하는 정당이어야

먼저 풀뿌리 정치에 주목하는 당이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중앙당-광역시도당-지구당 내지 당원협의회로 내려오는 위계적인 조직체계에 대한 반성과 해체부터 있어야한다. 지구당 내지 당원협의회는 인민들의 삶이 있는 곳에서 가장 밀접하게 접촉하며 활동하는 당부다.

삶이 있는 곳에 갈등이 있고, 갈등을 드러내고 사회적으로 재조정하는 것이 정치의 역할이라면 마땅히 정치는 삶의 현장에 있어야 한다. 이 때 삶의 현장이 바로 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개인의 삶을 재조직하고, 그 과정에서 그 개인들을 정치의 주체로 새롭게 호명하여 더불어 활동하고, 그 결과로서 개인의 삶을 뛰어넘는 지역사회의 재조직화로 나아가는 것이 풀뿌리 정치라고 정의해왔다면, 새로운 진보정당의 정치는 바로 풀뿌리 정치여야 한다. 그 풀뿌리 정치를 보완하고, 연결하며, 촉진하는 조직으로서의 당이 필요하다.

중앙당에서 기획하고, 전국적이고 동시적인 활동이 필요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럴 경우에라도 중앙당의 기획은 지역에서 재기획되어야 하고, 전국적이고 동시적인 활동은 지역의 상황, 현재성에 조응하는 것이어야 한다.

도시와 농촌이 다르고, 공장밀집지역이라도 노조의 조직 여부에 따라 다르고, 가난한 사람들의 땅이라 하더라도 하다못해 나이 차이에서 오는 저마다의 현재성이 있다.

그 현재성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건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의 말과 행동이 아니다. 내 말, 내 행동과 다른 것은 머리로도 가슴으로도 수용하기 힘든, 나와는 다른 말과 행동일 뿐이다. 정치를 하는 특수한 사람의 것일 뿐, 내 것이 아니다. 이래서는 공감을 얻을 수 없다. 하물며 지지를 바라겠는가.

노동자를 대변한다는 노동당의 말과 행동이라도 마찬가지다. 아니, 어쩌면 노동당의 말과 행동이 노동자의 그것과 다르다면 오히려 배신감을 느끼게 할 것이다.

지역의 구체적인 노동자들의 모습을 드러내야

얼마 전 필자는 공공부문 비정규직 정책과 관련하여 구정질문을 하였다. 구정질문을 하면서 청사 청소하는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만났다. 가족관계를 묻고, 나이를 묻고, 언제부터 일했는지를 묻고, 가구 소득원이 따로 있는지를 묻고, 한 달 생활비 지출내역을 물었다.

아픈 곳은 없는지, 방은 월세인지 전세인지, 아직도 건사해야 할 자식이 있는지, 그런 자식이 있다면 금전적으로는 얼마나 지원하는지, 그녀들의 삶 구석구석을 물었다. 그리고 그녀들의 근로계약서와 급여명세서를 전달받아 살펴보았다. 그녀들의 작업장에 가서 이야기하고, 의회 본회의장에 오시라고 해서 그녀들의 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직접 듣도록 안내했다.

홍익대-청소노동자

청소노동자 파업 당시의 자료사진

민간 대행업체에 고용된 청소노동자들도 만났다. 근로계약서에 적혀 있는 작업시간과 실제 작업시간이 다를 수밖에 없는 현장을 돌아봤다.마찬가지로 그가 하루하루 살아가는 삶을, 방구석 여기저기를 들여다보듯 묻고 물었다. 구정질문은 그렇게 준비되었고, 언론에서는 비정규직이 아니라 그녀와 그의 삶을 들여다보았다.

중앙당에서 비정규직 철폐 캠페인과 최저임금 1만원 투쟁을 기획하고, 전국의 모든 지역에서 중앙당이 만든 똑같은 선전물을 돌리는 방식으로는 공감을 얻기에 부족하다. 내 옆집에 사는 비정규직 노동자의 월급 명세서를 한번 들여다보자. 그 가족이 먹고 살기위해 한 달에 지출해야 하는 돈 쓰임새를 조사해보자.

그러면서 당사자를 만나고, 비정규직이라는 추상의 용어 말고, 지금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에 전염된 사람들을 1번, 2번, 3번처럼 비인간화시키는 호명방식이 아니라, 대구 서구 비산동에 사는 나이 마흔에 고등학생 두 명을 키우는 개똥이 씨는 5년 동안 섬유공장 비정규직으로 전전하며 특근과 야근을 월 30시간씩 해가며 받는 180만원 월급으로 부식비 60만원, 교육비 40만원, 방값 30만원, 통신비 20만원, 보험 20만원, 교통비 10만원 쓰고 나면 한 푼도 남지 않아서 부인이 식당에서 벌어오는 120만원으로 나머지 생활비를 충당하고 있는데, 이게 사는 건가라고 묻는 방식이어야 한다.

선전물 하나를 만들더라도 지역에서 살고 있는, 이름을 가진 구체적인 비정규직 노동자의 삶을 드러내야 한다. 그래야 공감한다. 그게 현장성이다. 그게 풀뿌리 정치의 모습이다.

진보결집으로 풀뿌리 연합체로서 진보정당의 물적 토대 형성을

풀뿌리 정치는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아니라, 인민들이 듣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찾아낸다는 점에서도 주목해야 한다.

(숨어있는)사회적 갈등을 드러내고, 누군가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그 갈등을 조정하는 것이 정치라면, 정치는 결국 갈등 주체의 몫이다. 갈등 주체가 가장 힘들어하거나, 혹은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은밀히 조작되고 있는 갈등이 우리 정치활동의 주된 소재가 되어야한다.

다시 한 번 당사자들의 삶을 주목해야 하는 이유다.

몇 월이 되면 이런 활동을 기획하고, 이런 사람들이 많으니 호응이 있을 거라는 기획이 아니라, 실제 그들의 삶을 관찰하는 수준을 넘어 그들과 함께 생활하면서 그들의 갈등을 찾아야한다.

그리고 그 갈등이 어떤 정치경제적 이유에서 비롯되어서 누구의 지갑을 두둑하게 하는지, 혹은 누구의 호주머니를 털고 있는지, 혹은 누구의 사회적 이익을 빼앗고 있는지를 그들과 함께 찾아가는 정치가 풀뿌리 정치다.

그런 풀뿌리 정치는 단순히 자신의 대변자를 바꾸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 자신이 주체로 나서고, 자신의 삶과 지역사회의 재조직화를 통해 순간이 아닌 지속적인 사회변화의 동력으로 성숙된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결국 풀뿌리 정치는 한 번의 변화가 아니라 계속되는 변화를 담보하는 주체 역량을 키우는 정치다.

이런 활동은 매스미디어를 활용하는 스타 정치인 몇몇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극복할 수 있는 방식이기도 하다.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서 진보정치의 민낯인 지역 활동가를 대중정치인으로 성장시키고 드러내는 방식이기도 하다. 당사자를 주체로 호명하는 방식이기도 하고, 역할을 직접 담당하는 활동가를 육성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그런 풀뿌리 정치의 연합체로서의 정당이 새로운 진보정당의 모습이길 바란다.

나 자신부터 자기의 생활공간에서 활동하고, 주변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일상생활과 주변사람들을, 그것이 굳이 당원이 아니어도, 사회적으로 조직하는 활동을 해야 한다. 필자가 가장 중요하게 그리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혁신 모습이다. 결국 이런 혁신의 모습도 지금처럼 진보정치의 여러 자원들이 분산되고, 단절된 상태에서는 곤란하다.

물적 토대가 새롭게 정비되어야 가능하고, 진보결집에서 그 가능성을 엿보자는 것이다.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의 연계 강화하고 선순환 구조 만들어야

두 번째로 국회와 지방의회의 의정활동이 서로 연계하고 협력하는 시스템을 갖추는 혁신을 기대한다.

지난 2005년 민주노동당 당시 한 국회의원이 새마을운동중앙회, 바르게살기운동중앙회, 한국자유총연맹 등 대표적인 관변단체 3조직을 겨냥하여 관변단체지원육성법 폐지를 추진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는 광역의원 11명과 기초의원 31명이 지방의원단 모임을 가지고 있었다. 지방의원 워크샵에서 이 관변단체지원육성법 폐지에 대한 논란이 오갔다. 내년이 지방선거인데, 정작 지역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이들 단체를 벌집 쑤시듯 해놓으면 도대체 선거를 어떻게 치른단 말인가라는 불평이 쏟아졌다.

그 때 이렇게 말했던 기억이 있다.

“관변단체육성지원법 문제다. 자원을 특정 정치세력의 지역외곽조직 구축에 쏟아 붓는 것이고, 이것은 정략적으로도 우리에게 좋지 않다. 다만 이들 조직의 현실적 힘이 적지 않고, 또 지역사회에서는 이들 조직의 장악력이 대단해서 여론을 조작할 수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들과 제대로 한판 하겠다면 조직화된 이들의 여론장악 및 조작력을 무너뜨리고 이들에 대항하는 세력이나 여론을 형성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들 조직의 문제점이 무엇인지, 그 현장에 있는 지방의원들에게 실태보고서를 작성하게 하고, 이를 취합해서 국회의원과 지방의원 전체의 의정활동으로 드러내는 기획사업을 배치한 후 여론이 이들을 압박하는 상황으로 몰고 간 뒤에야 이들을 제어하는 입법활동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당에서는 국회에서의 논의도 제대로 되지 않을 조건에서 현장에 있는 지방의원과 전혀 협의하지 않고 추진하는 것이 문제다. 이건 당 조직 전체의 의정활동이 아니다. 국회에서의 입법이 지역이라는 현장에서 발현되고 있는 현실과도 맞지 않는 의정활동 전략이다.”

당시의 문제의식을 그 뒤에도 여러 차례 의정지원단 내지 지방의원 지원담당자에게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제대로 반영 되지는 않았다.

생각해보자.

국회에서 입법과 예산으로 정책화되는 사업, 특히 그것이 다수 대중들에게 전달되는 사업의 경우 거의 대부분이 광역자치단체를 거쳐 기초자치단체의 현장에서 행정서비스로 전달된다.

그 현장에 지방의원들이 있다.

앞서 말한 삶이 있는 풀뿌리 현장성의 반복이다. 그곳에 있는 지방의원들이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구체적으로 그 현장에 있는 사람들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며 전달되는지를 찾아가서 확인하고, 관련자들과 대화하면서 현장에서의 문제점과 과제를 정리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지방의원들이 가지는 강점인 현장성으로 국회에서 부족할 수 있는 점을 보완하여 우리 당의 주의주장이 결코 현실과 유리되어 있지 않음을, 아니 오히려 현실에서의 적극적인 개선책을 찾아내고 있음을 드러내야 한다.

지방의원들도 지역에서 자연스럽게 당을 대표하는 대중정치인으로 성장할 수 있는 정치적 과정을 겪게 되는 이점도 있다.

지금까지 국회의원 한 명에 매달려왔던 진보정당운동의 처지를 모르는 바 아니지만, 이제는 당 정책의 구체성과 현실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지방의원들을 당을 대표하는 지역의 대중정치인으로 키우기 위해서도, 지방의원들이 동네 민원해결사가 아니라 당의 정치인으로 정치적 행위를 할 수 있도록 당 전체의 의정활동 전략이 새롭게 만들어져야 한다.

새누리당의 김태호 최고위원이나 예전 열린우리당의 김두관 최고위원을 보라. 이것이 필자가 두 번째로 바라는 새로운 진보정당의 혁신 모습이다.

물론 이 모습 역시 물적 기반의 축적 없이는 어렵다고 보고, 특히 지금의 단절상태에서는 자기 당 중심으로 의정활동이 강할 수밖에 없어 정당의 틀을 넘어서는 연대와 협력은 어려울 수밖에 없음을, 지난 2010년부터 2014년까지 대구에서 야당지방의원 협의체를 꾸려왔던 경험에서도 확인한 바 있다.

여전히 풀리지 않는 대목도 있고, 갸우뚱거리는 부분도 있을 것이다.

다 해소할 수는 없는 것이고, 다가오지 않은 예측의 일이라 누구의 장담도 지금은 손에 꽉 잡히지 않을 수 있다. 다만, 그 불안함으로 지금의 난망을 가릴 수 없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이에 불안함을 극복하고 새로운 혁신과 그 가능성을 만들기 위해 우리가 나서야 한다.

필자소개
노동당 대구시당위원장. 대구 서구 의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