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 재구성은
    노동당의 창당정신
    [릴레이 기고-3] 노동당의 결단이 통합을 혁신의 기회로 만들 수 있다
        2015년 06월 17일 10:19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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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동당을 비롯해 국민모임, 노동정치연대, 정의당, 이 네 조직이 6월 4일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공동 선언>(이하 <공동 선언>)을 발표했다. 노동당은 대의원대회를 앞두고 <공동 선언>이 천명한 새 진보대중정당 건설에 대해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오가는 여러 이야기들 중에는 이 통합 시도가 과연 노동당의 지향과 부합하는 것인지 묻는 목소리도 있고,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하면 통합을 단순한 조직 확대가 아니라 진보정당운동의 내용적 혁신의 계기로 만들지에 대한 고민도 있다.

    나는 현재와 같은 진보정당 분립 구도를 재편해야 한다는 데 적극 동의한다. 그리고 노동당이 이 재구성 과정을 앞장서서 열어가는 주역이 되어야 한다는 데도 동의한다.

    진보정치 재구성은 재창당 순간부터 노동당의 기본 정신이자 역사적 과제였다. 노동당 강령은 “진보정치의 이념과 운동의 재구성을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겠다고 선언하며 “우리는 언제나 개방되어 있고, 또한 더 넓은 우리를 계속 찾아 나설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이제 노동당의 이러한 포부와 구상을 실제 정치적 결실로 만들어 낼 모처럼의 기회가 열렸다. 그렇다면 이 기회를 놓쳐버리지 않는 것이야말로 지금 우리의 절박한 임무다.

    진보정치 재구성은 노동당의 창당 정신

    그럼 진보결집 논의를 둘러싸고 특히 노선이나 의제와 관련해 제기되는 의문이나 고민은 어떻게 볼 것인가? 이에 대해 우리는 이미 명확히 정리된 약속을 지니고 있다. 바로 노동당 강령이다.

    노동당 강령은 진보정당이 여럿 존재하는 상황에서 노동당과 다른 정파들 사이의 차이를 찾아내고 부각하기 위해 작성된 문서는 아니다. 이 시대, 이 사회에 필요한 진보정당운동의 이상과 원칙에 대한 노동당의 선언이다. 그 내용은 고스란히 진보정치 재편 과정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이기도 하다.

    따라서 진보정당 통합을 혁신의 기회로 만드는 일이란 다른 게 아니다. 노동당 강령의 방향에 따른 통합, 그게 혁신의 큰 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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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3년 7월 21일 진보신당 임시당대회. 임시당대회를 통해 진보신당은 노동당을 당명을 개정하고 강령과 당헌을 새롭게 제정했다. 사진 : 박성훈

    강령 해석 권한은 물론 모든 당원에게 있다. 다만 여기에서 내가 생각하는 노동당 강령의 핵심 내용을 꼽아보자면, 다음 세 가지다.

    첫째, ‘평등 생태 평화 공화국’을 건설한다.

    표현은 다양할 수 있다. 민주노동당, 진보신당에서 이야기되던 ‘평화에 기반한 녹색 사회국가’도 같은 내용이다. ‘사회국가’는 또 ‘복지국가’라 불릴 수도 있다. ‘사회적 공화주의’가 함축하던 바도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아무튼 이것은 먼 미래의 유토피아가 아니다. 우리 시대에 당장 착수해야 할 당면 과제다.

    둘째, ‘평등 생태 평화 공화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이에 맞서는 기득권 세력들과는 단호히 대결한다.

    진보정당은 이 대결의 정치적 도구다. 이것을 노동당 강령은 이렇게 정식화하고 있다. “자본과 노동이 대립하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항상 노동의 편에 선다. 억압과 차별, 배제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우리는 반드시 이에 맞서는 이들과 더불어 싸운다.” 이런 맥락에서 진보정당의 궁극 과제는 지배 세력과 민중 사이의 권력 관계를 돌이킬 수 없이 뒤집는 것이라 정리할 수 있다.

    셋째, 한국의 정치 지형에서 위 내용은 양대 보수정당 독점 체제를 타파한다는 정치적 과제로 나타난다.

    양대 보수정당은 진보정당에게는 모두 경쟁과 대체의 대상이다. 노동당 강령은 과거 진보정당운동이 이 방향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자유주의 정당 의존”으로 귀결된 것을 명확히 비판한다.

    재편과 통합의 방향이 돼야 할 노동당 강령 정신

    이제 현재의 통합 논의를 보자. 우리가 판단을 내릴 만한 자료는 아직은 <공동 선언>뿐이다. 그럼 <공동 선언>은 노동당 강령의 지향에 얼마나 부합하는가?

    <공동 선언>에서 우리는 익숙한 문구와 내용을 발견할 수 있다. 노동당 강령의 용어가 그대로 채택된 대목도 있다. 그 중 제일 눈에 띄는 것은 “한국정치를 재편할 강력한 진보정당으로 성장하기 위해, 보수정치세력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발전 노선을 견지”한다는 문장이다.

    노동당 강령 내용 중 어쩌면 다른 진보 세력과 가장 이견이 있을 수 있는 게 위의 세 번째 명제다. 그런데 <공동 선언>은 이를 “보수정치세력과 구별되는 독자적인 발전 노선”이라는 문구로 수용하고 있다. 출발점으로는 나쁘지 않다.

    물론 출발점은 어디까지나 출발점일 뿐이다. 단어와 문구 몇 개를 합의하는 것만으로 노동당 강령 정신이 구현되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새 정당의 강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논쟁은 계속될 것이다. 강령이 제정된 뒤에도 매번 구체적인 상황을 놓고 당의 방향을 확인하는 쉽지 않은 경험을 반복해야 할 것이다. 즉, 정치 세력들의 통합에서 어떤 ‘보장’을 장담할 수는 없다. 이것은 역시 ‘모험’이다. 노동당 강령을 제정할 때 함께 하지 않았던 세력들과 함께 하면서 그 정신을 재확인한다는 것은 성공의 보장 따위는 없는 도전이다.

    그럼에도 난 지금 노동당이 이러한 모험에 나서야 한다고 믿는다. 통합 논의를 함께 하는 다른 세 조직에 대한 판단 때문은 아니다. 그 판단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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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월 4일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 건설을 위한 4자 대표단 공동선언. 4자 대표단은 공동선을 통해 새로운 대중적 진보정당의 원칙과 당면과제 이후 추진계획을 밝혔다.

    내가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이제껏 네 조직 어디에도 직접 속하지 않으면서 관망하던 진보 대중, 특히 노동조합운동 경험을 지닌 노동자들이다. 이들이야말로 노동당 강령의 큰 줄기에 가장 선뜻 공감할 예비 당원들이다. 하지만 혼란스러운 진보정치 지형을 이유로 수많은 노동자들이 진보정당운동 전체에, 따라서 우리 노동당에 거리를 두고 있는 게 현실이다.

    새 진보정당의 출범은 이 궁지를 타파하는 첫 걸음이 될 것이다. 노동당 강령의 정신에 가장 전폭적으로 동의하면서도 이제껏 ‘우리’로 함께 하지 못한 이들이 ‘우리’가 되는 계기가 될 것이다. 노동당 강령의 메시지가 드디어 그 수신자에 가닿기 시작할 것이다.

    나는 바로 이러한 가능성에 기대를 건다. 이 기대가 헛된 게 아니라면, 새 진보정당에서 노동당 강령 정신을 단지 문구만이 아니라 실제 정치로 구현해내는 것 또한 충분히 도전해볼만한 과제다.

    혁신은 보다 풍부한 자원과 함께 ‘운동정당’의 길에 나서는 데서부터

    아직 논의는 시작 단계다. 그만큼 평가의 근거가 적기도 하지만 또한 그만큼 많은 가능성이 열려 있기도 하다는 이야기다. 통합이 동시에 혁신의 과정이 되도록 이전 경험들과는 다른 경로를 그려보고 이를 밟아나갈 기회가 있다. 4년 전 총선, 대선만을 내다보며 창당한 통합진보당은 두 선거를 거치며 붕괴했다. 이것과는 다른 경로라면, 과연 무엇이 있을까?

    나는 새 당이 창당 과정에서부터 철저히 ‘운동정당’(노동당 강령의 표현이다)의 길을 밟아나가야 한다고 제안한다. 현재의 노동당보다 훨씬 풍부해진 기반과 역량을 바탕으로 보다 강력한 ‘운동정당’의 활동을 펼쳐야 한다. 이것이 진보정당운동 혁신의 첫 번째 관문이 될 것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창당 단계부터 선별된 핵심 정책 과제들을 중심으로 전조직적인 캠페인에 나서야 한다. 20대 국회 임기 동안 이 과제들을 반드시 실현하겠다고 약속하고, 이 약속으로 선거에서 지지를 모아야 한다.

    어떤 과제들이 있을까? <공동 선언>은 이미 이를 대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최저임금 인상”, “비정규직 관련법 개폐”, “공공 보육, 공공 의료 구축”, “부자 증세, 복지 증세”, “핵발전소의 단계적 폐지”, “정당명부비례대표제 확대” 등은 시급한 과제들이다.

    진보정당 활동 경험이 오랠수록 이런 의제들이 너무 식상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어쩌면 이것이야말로 함정일지 모른다. 더 이상 이들 과제를 진보정당과 보수정당을 구별해주는 익숙한 표지 정도로 창당 선언문이나 강령의 한 구석에 고이 모셔둬선 안 된다. 새 진보정당은 이들 과제를 공직 임기라는 ‘정해진 시간 동안’ ‘반드시’ 쟁취하겠다는 약속으로 공직에 진출하고 다시 그 실현 여부로 다음 선거에서 심판받아야 한다.

    과거 민주노동당은 “부자에게 세금을, 서민에게 복지를” 약속하고 국회에 진출했다. 즉, “부자 증세, 서민 복지”라는 대중의 ‘명령적 위임’을 받고 국회에 나아간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은 이 약속을 지키는 데 전력을 다하지 않았다. 이 약속을 실현하는 것에 당의 운명이 달려 있다는 합의도 없었다. 결국 민주노동당에게 국회 임기 4년은 명령적 위임의 수행이나 사회 변혁의 리듬과는 아무 상관없는 직업 정치인의 구직 주기 정도가 되고 말았다.

    새 진보정당은 민주노동당이 멈추었던 이 지점에서 다시 출발해야 한다. 노동당 강령은 “기성 정치 문화를 혁신”하는 것을 ‘운동정당’의 중요한 한 내용으로 제시하고 있다. 기성 정치 문화의 혁신은 진보정당운동 안에서부터 이런 정치 문화를 혁신하는 데서 시작된다.

    선거 과정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대중의 ‘명령적 위임’의 구체적 내용을 확인하는 것, 이 위임의 수행을 통해 제도정치의 공허한 주기를 사회 변혁의 절박한 시간으로 변화시키는 것은 그 첫 걸음이다. 새 진보정당은 한국 사회에서 처음으로 이런 정치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자신의 운명을 걸어야 한다.

    나는 새 진보정당이 실제로 이런 전 조직적 캠페인 속에서 창당과 총선을 경과한다면, 새 당 안에서 노동당 강령 정신이 구현되는 데도 더욱 힘이 붙을 것이라 확신한다. 노동당 강령의 지향은 활발한 대중적 캠페인을 통해 더 많은 대중이 더 능동적으로 함께 할수록 더욱 광범한 지지를 얻을 수 있는 내용임을 자신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다름 아니라 이미 ‘대중정당-생활정당-운동정당(노동당 강령)’의 경험과 합의를 쌓아온 우리 노동당이 보다 힘차게 참여할수록 새 진보정당은 더욱 견실하게 ‘운동정당’의 길을 밟아나갈 것이다.

    이러한 통합과 혁신의 상호 상승 작용이 작동할 수 있다는 것을, 그 중심에 노동당의 결단이 있다는 것을 우리 스스로 무시해서는 안 된다. 이제는 결단해야 할 때다.

    필자소개
    노동당 전 부대표, 정책위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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