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장·이윤·자본 둘러싼 중세의 대서사시
    [책소개]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남종국/ 앨피)
        2015년 05월 16일 09:17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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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책은 11~15세기 유럽 경제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했던 베네치아, 제노바, 피렌체, 시에나 등의 이탈리아 도시와 그 상인들의 이야기다. 1천 년 전 지중해 시대를 열어젖힌 이탈리아 상인들은 진정한 ‘자본주의의 선구자’들일까?

    그들은 이윤을 위해서라면 어떠한 위험도 마다하지 않았다. 험준한 알프스를 넘어 샹파뉴 정기시로, 악천후로 인한 난파와 해적의 위험이 상존하는 지중해의 거친 바다를 헤치고 이슬람과 비잔티움 세계로, 실크로드의 흙길을 따라 몽골제국의 수도 대도로, 페르시아 만을 경유해 향신료의 산지인 인도 남부까지… 거래를 위해 그들이 가지 못하는 길이란 없었다.

    이 책은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의 장구한 여정을 좇아 그들에게 씌워진 찬양과 비난의 실체를 추적한다. 유럽과 지중해를 넘어 아시아와 인도, 아프리카라는 새로운 ‘블루 오션’을 개척한 이탈리아 상인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이탈리아 상인의 위대한 도전

    자본주의 기업가의 원형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에 대한 평가는 극단적으로 엇갈린다. 그들은 한편으로 고대 헬레니즘 시대의 상업과 은행 기술을 보존하고, 이를 바탕으로 상업·은행·정보 그리고 근대적 은행제도, 더 나아가 자본주의 산업을 발전시킨 모험정신과 혁신의 아이콘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동시에 정치권력과 결탁하여 상업적 이해관계를 관철시킨 일개 장사꾼이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확실한 것은, 그들은 환어음이라는 새로운 상업기술을 기반으로 물류와 자본의 흐름을 주도하고, 복식부기를 이용해 자본과 상품의 이동을 효과적으로 조직한 근대 자본주의 기업가의 시초라는 점이다.

    당시 이탈리아 상업도시들은 지중해 세계 최고의 경제력을 자랑했다. 비록 그들이 이슬람 세계와 비잔티움제국(동로마제국), 아시아의 선진적인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여 이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을 뿐이라는 주장이 옳다고 해도, 그들의 경제활동이 지중해를 중심으로 한 세계 역사에 미친 영향을 간과할 수 없는 것이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1천 년 전 베네치아·제노바·피렌체·밀라노 등 이탈리아의 작은 상업도시들과 상인들은 이슬람 세계와 비잔티움제국(동로마제국), 아시아의 선진적인 문화와 기술을 받아들여 동서무역과 제조업, 해운업, 조선업 등 다양한 분야에서 유럽 자본주의의 토대를 마련했다.

    르네상스를 떠받친 경제적 배후

    14세기 이탈리아 르네상스의 배후에는 이탈리아 상업도시들과 상인들의 자본과 이윤이 있었다. 중세 이탈리아 도시와 그 상인들의 활동은 사회사적으로나 정치문화사적으로나 두드러지기 때문에 이들에 관한 연구의 역사는 길고, 그 연구 성과도 방대하다. 유럽에서 로마가 무너진 뒤 천 년이 흐른 뒤에도 이탈리아의 시인과 사상가들은 이 시대의 위대함을 찬양했다. 14세기 르네상스 인문주의자인 페트라르카가 이 시대를 ‘문명의 빛’으로 묘사한 것은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이탈리아에 다시 역동적인 활기를 몰고 온 힘, 그것은 이탈리아 상업도시들과 상인들에게서 나왔다. 11~12세기를 전후하여 지중해와 유럽 대륙 곳곳을 누비고 다니기 시작한 이탈리아 상인들은 이 무렵에 이르러 유럽 최고의 거상들로 성장했고, 이탈리아의 도시들은 모직물과 향신료를 사러 온 외국인들로 붐볐다. 이러한 상업적 활기에 힘입어 이탈리아는 새로운 도약을 이루었고, 마침내 유럽 근대 문화의 산실이 되었다. 오늘날 이탈리아 해군은 과거 위대했던 중세 해양도시의 업적을 기려 이 시대를 대표하는 4대 해양도시인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아말피의 깃발을 해군기로 사용하고 있다.

    서유럽 중심의 서양사가 놓친 이면

    중세 이탈리아 상인들의 활약상을 이야기하려면 당시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한 지중해 세계에 대한 이해가 필수적이다.

    이탈리아 상인들이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한 시기는 비잔티움제국의 쇠퇴기와 맞물린다. 고대 로마제국을 이어받아 거의 1천 년간 지중해의 패권을 장악하고 동서 세계를 잇는 관문 역할을 한 비잔티움제국은, 12세기 들어 십자군으로 상징되는 서유럽의 견제와 당시 제국의 주변에서 성장하던 이슬람 세력의 도전으로 점차 힘을 잃어 갔다.

    그리고 역사적으로 크게 주목받지 않았지만, 그 이면에는 이탈리아 상업도시와 상인들이 있었다. 12세기 후반에 이미 “비잔티움의 부富가 거의 모두 라틴인(이탈리아인)들의 수중에 들어갔다. 더 나쁜 것은 그들의 거만함”이라며 이탈리아 상인들의 경제적 침탈과 위세를 개탄할 정도였다.

    이 책은 당시 지중해 세계를 분할했던 세 개의 문명권, 서유럽/비잔티움/이슬람의 정치적·사회적 역학관계를 조명하며, 그 속에서 이탈리아 상인들의 활동상을 추적한다. 따라서 기존 중세 서양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서유럽 중심의 역사를 그 측면에서 조망하는 소중한 기회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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