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나는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 ⑦
    [마지막 기고] 죽은 박종철이 산 박상옥을 잡는다!
        2015년 04월 06일 09:05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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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일 7일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 조작사건의 담당 수사검사였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열린다. 박상옥 후보자는 한국사회 민주주의와 독재의 한 분기점이었던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은폐 왜곡시키는 데 일조한 당사자로서 대법관 후보자 자격이 없다는 것이 시민사회의 일관되고 절대적인 평가이다. 이번 연재 기고 글이 박상옥이라는 한 개인에 대한 평가를 넘어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현재적 의미와 우리 사회 민주주의의 위기적 현실을 재인식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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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나는 당신이 한 일을 알고 있다! -6 링크

    박상옥 인사청문회는 역사 되돌리려는 어리석은 자들에 대한 심판의 장 되어야

    박종철군 고문치사 축소은폐 조작사건의 수사검사로 참여하면서 사건의 축소은폐 조작에 함께 한 박상옥의 대법관 후보자 인사청문회가 바로 눈앞으로 다가왔다.

    처음 이러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시민사회는 광범위하게 반대의 목소리를 높였고, 새민련, 정의당, 노동당을 비롯한 야당도 박상옥의 즉각적인 사퇴, 대법원장의 임명 제청 철회, 박근혜 대통령의 임명동의안 제출 철회를 요구하면서 청문회 일정 잡기 자체를 거부했다.

    그러나 박상옥은 뻔뻔스럽게도 사퇴를 거부한 채 ‘자세한 이야기는 청문회에서 말씀 드리겠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양승태 대법원장과 박근혜 대통령 역시 이에 대해 묵묵부답이었다.

    그렇게 해서 결국 청문회는 열리게 되었다. 이에 대해 이러저러한 말이 많지만, 나는 일단 청문특위 위원이자 새민련 원내대변인 박완주 의원의 말을 믿고 싶다.

    “박상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연기 끝에 열리기로 한 이유는 야당 의원들이 박상옥 후보자가 도덕적으로 흠결이 없기 때문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니라, 청문회를 통해 당시 박종철 열사의 고문치사사건에 대한 철저한 검증과 다시는 국가권력에 의한 고문과 진상의 축소ㆍ은폐, 비겁한 방조ㆍ묵인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역사적 사명 때문이었다.”

    지금 이 시각에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은 조작되고 있다

    앞서 이야기했듯이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은 1987년 5월 18일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었다”라는 성명을 발표함으로써 검찰의 2차 수사를 이끌어낸 바 있다. 그런데 이 성명서 내용 중에는 특이한 표현이 등장한다.

    “범인조작의 각본은 경찰에 의해 짜여졌으며 현재도 계속되고 있다.” 이때는 여전히 범인이 2명으로 조작되어 있을 때였고, 경찰 수뇌부와 검찰, 관계기관대책회의 등이 총동원되어 축소조작은폐가 진행되고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무려 28년이 지난 지금 이 시각에도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고 있다’고 한다면 그 말을 믿을 수 있는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지금 이 시각에도 사건의 진상이 조작되고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며, 청문회 장에서도 새누리당 청문특위 위원과 박상옥에 의해 그런 조작은 계속될 것이다.

    이미 새누리당 측 간사인 이한성 의원은 지난 4월 3일 평화방송과의 인터뷰를 통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가 대법관직을 수행하는 데 있어 ‘자질에 문제없다고 본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한성 의원은 이것으로도 부족했는지 박종철군 고문치사 사건 수사 당시 상황을 왜곡하면서 안상수와 박상옥에 대한 ‘영웅화’를 시도한다. 완전히 소설이다. 그런데 애석하게도 이한성의 소설 작품 수준은 그렇게 완성도가 높지 않다.

    고문치사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박종철, 박상옥 안상수 그리고 전두환

    새누리당 이한성 의원, 청문특위 간사인가, 간사한 소설가인가

    “그러니까 그 당시 안상수 당시 검사가 당직을 하던 중에 박종철 서울대 학생이 죽었다.. 이런 정보보고를 받고 1987년 1월 14일입니다. 그래서 시신이 안치되어 있는 남영동 분실로 가서 검시를 했죠. 그리고 난 다음에 이것이 보통 일이 아니다.. 혹시 많은 사건이 있기 때문에 이것이야말로 진실되게 밝혀서 정의가 세워져야한다.. 이런 신념으로 언론인하고 의사하고 많은 분들을 참관시켰습니다. 가족들도 참관시키고.. 그래서 이게 죽은 사실이 있다는 것을 우선 기정사실화함으로써 죽은 사실 조차도 감추어지는 이런 일이 없도록 우선 조치를 취했고요. 초동수사 단계에서도 혹시 어떻게 한 사람 고문에 두 사람이 가담할 수 있느냐하는 의문도 제기를 했습니다. 그런데 당시 구속되어온 두 사람의 경찰관은 우리가 다 했다, 이렇게 사실 관계를 맞춰서 진술하는 바람에 당초에는 1차 수사에서는 밝히지 못했다고 이렇게 말 할 수 있겠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거짓말이다. 안상수는 1월 14일 당직검사가 아니었다. 당연히 박종철군이 죽었다는 정보보고를 받은 적도 없다. 따라서 ‘남영동 대공분실에 가서 검시하는 일’은 있을 수 없었다.

    안상수가 남영동 대공분실에 간 때는 ‘얼굴 없는 현장검증’을 위해 간 1월 23일이 처음이었다. 이미 밝혔듯이 1월 14일 경찰의 화장 기도를 막고 다음날 부검을 실시하도록 이끌어낸 인물은 안상수가 아니라 최환이었다.

    안상수는 1월 15일 당직검사로 최환의 지시를 받으면서 부검을 실시하는 역할을 수행했을 뿐이다. 부검 과정에 언론인을 참관시켰다는 것은 아무리 소설이라고 해도 상상력이 좀 지나친 편이다. 그런 수준의 ‘정의로운 검사’가 수사팀에서 배제되지도 않는다는 건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에 대한 지나친 미화이다.

    박종철군이 ‘죽은 사실’은 부검 실시 이전인 1월 15일 중앙일보 석간에 나면서 이미 언론에서도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검찰이 부검을 통해 밝힐 일도 아니었다. 두 명의 고문 경관이 우발적으로 범한 ‘직무과욕에 의한 불상사’라는 ‘일관된 진술’에 검찰 수사팀이 감쪽같이 속아 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5명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 다만 감쪽같이(의도적으로) 속아줬을 뿐이다.

    “자기가 모시던 부장검사가 주임검사고 5년 선배 되는 안상수 현재 창원시장입니다. 그 분이 상석 선배검사로서 수사의 실무를 맡고 박상옥 검사는 임관된 지 3년차 되는 신임검사로서 지엽적인 사건 수사와 여러 가지 행정처리, 정보보고를 맡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전형적인 ‘막내검사론’이다. 두 명의 고문 경관 중 한명인 강진규의 수사를 담당한 인물이 바로 박상옥인데, 이게 지엽적인 사건 수사였단 말인가.

    그렇다면 지엽적이지 않은 수사, 고문에 가담한 경관이 5명이라는 사실, 윗선도 이미 고문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 축소은폐조작에 가담했다는 사실 등 중요한 사건 수사를 별도로 했는데, 지금까지 숨겨온 사실을 이한성 의원은 알고 있기라도 하단 말인가.

    ‘4년차 신입사원’이 있다는 걸 들어본 적이 없는데, 검사는 4년차(3년차가 아니라 4년차다!)여도 신임검사로 불린다는 것은 이번에 처음 알았다.

    박상옥은 안상수와 역할 분담을 통해 고문경관 강진규와 이후 고문에 가담한 사실이 밝혀지는 황정웅과 반금곤 등을 참고인 조사하는 등 사건수사의 한 축을 담당한 인물이었다. 결코 지엽적인 역할이 아니었다. ‘신임검사’에게 이런 중대한 사건의 한 축을 담당하게 했다고? 소설이 그래도 일관성은 있어야 사람들의 흥미를 자극한다.

    “당시에 고문에 관계했던 사람이 더 있다는 얘기를 한 달 반 뒤에 듣고 그래서 수사를, 진상을 밝혀내기 위해서 무진하게 노력을 했습니다.”, “재판까지 미뤄가면서 세 사람의 추가 수사를 강력하게 건의를 했습니다.”, “그것을 안상수 검사에게 이야기를 듣고 부장에게, 주임검사에게 보고를 하고 확대 수사를 상부로 계획을 보고하고 하겠다고 건의 했는데 상부 수뇌부에서는 관계기관 대책 회의를 하고 와서 `그것은 두 사람 밖에 없다고 하더라. 세 사람 얘기는 낭설이다, 그렇게 마무리해라` 이런 방침을 주는 바람에 더 이상 진행을 못시켰습니다.”

    무슨 노력을 무진 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재판은 두 고문경관이 한 진술(“3명이 더 있다”)을 정리하지 못하면 당연히 진행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재판정에서 진실을 폭로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대책이 없었던 것이다.

    박상옥은 안상수 검사에게 이야기를 듣고 윗선에 보고할 처지도 아니었다. 안상수가 처음 이야기를 들은 2월 27일 당일 윗선인 신창언 부장에 이미 보고한 상황이었다. 수사계획서도 ‘안상수와 신창언 둘이 작성했다’고 『안검사의 일기』에 이미 나온다. 아무것도 모르는 ‘막내검사’, ‘신임검사’가 어느 날 갑자기 상황을 주도하는 ‘영웅’으로 등장하는 데, 그 과정에서 너무 비약이 심하다. 좋은 소설이 되기에는 약점이 너무 치명적이다.

    28년 전의 박종철군 고문치사 축소은폐 조작사건에 대한 이런 식의 축소은폐조작 시도는 대법관 청문회에서도 이한성 의원을 비롯한 새누리당 청문특위 위원들을 통해 계속될 것이다. 박상옥 역시 국회 청문특위에 보낸 답변서를 통해 “사건의 진상을 알면서도 축소하거나 은폐한 사실은 없다”며 사건의 축소은폐조작 시도에 가세할 뜻을 밝힌 바 있다.

    선배들도 그랬는데 뭘 – 박상옥은 과연 친일파 선배를 떠올리고 있을까?

    이번 대법관 청문회에 임하는 박상옥의 심정은 무엇일까. 신창언 부장검사는 헌법재판관도 했고, 함께 수사를 담당했던 안상수는 국회의원도 여러 번하고 한나라당 대표까지 했는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이런 심정일까. 역사에 대해 그리 관심이 없었을 박상옥이 아마도 처음 대법관을 하겠다고 나설 때는 자신의 과거가 그렇게 큰 문제가 될 줄 몰랐을 수도 있다.

    그러나 박상옥은 “(검찰이) 사건의 진상을 충분히 인지하고 있었음에도 직무를 유기하여 수사를 진행하지 못하다가 국민에게 은폐사실이 폭로된 이후에야 추가 공범을 포함 치안본부 관계자 등 은폐에 가담한 책임자를 최소한만 기소하여 관계기관대책회의의 부당한 개입을 방조하고 은폐한 잘못이 있다.”, “검찰 또한 헌법에 독립성을 보장받고 있었음에도 권력층의 압력에 굴복하여 진실왜곡을 바로잡지 못한 점에 대하여 사과할 필요가 있다.”는 내용을 담은 2009년 ‘진실과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의 결정(“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관계기관대책회의 은폐․조작 의혹”)이 갖는 의미를 간과했다.

    국가기관이 뒤늦게나마 87년 당시의 검찰 행태를 비판하면서 정식으로 유족에게 사과할 것을 권고했다는 것은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과정에서 ‘안상수 신화’도 산산조각이 났음은 이미 밝힌 대로이다.

    그동안 무려 3차례나 진행된 박종철군 고문치사 축소은폐사건에서 단 한 차례도 수사대상에 오른 적이 없는 검찰로서는 무척 당혹스러운 일이었을 것이다. 물론 검찰은 이미 이명박 정권으로 바뀐 다음이다 보니 끝내 유족에게 사과조차 하지 않는다. 그 결과 이번에 박상옥이 뻔뻔스럽게 대법관이 되겠다고 나오면서 당시 검찰(수사팀)의 행태가 다시금 도마 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박상옥은 이렇게 말해도 여전히 억울해할지도 모르겠다. ‘아니 일제 강점기 친일한 인물들도 ‘독립운동가’로 변신해서 국립서울현충원에 아직도 묻혀 있는 인물도 있고, 당시에도 나같이 ‘먹고살기 위해’ 친일한 인물들 중 서정주같은 이는 ‘종천순일파(從天順日派)’라는 해괴한 신조어까지 만들어서 변명하면서 잘 살았지 않나. 그런데 왜 나만 가지고 그래!‘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우리가 일제로부터 해방되면서 친일청산을 제때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은 지금까지도 우리를 족쇄처럼 억누르고 있는 게 엄연한 사실이다. 이제 그러한 역사의 비극이 반복되게 해서는 안 된다. 더군다나 6월 민주항쟁으로 일구어낸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의 역사를 무화시키는 의미를 담고 있는 박상옥의 대법관 임명은 절대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죽은 박종철이 산 박상옥을 잡는다!

    하늘은 왜 박상옥 당시 수사검사를 대법관 후보자로 추천하도록 내버려두었을까. 박상옥 당시 검사를 대법관으로 만들어 우리의 자랑스러운 민주주의 역사를 부정하기 위함일까. 그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무슨 까닭일까. 아마 다른 뜻이 있을 것이다.

    하늘은 역사적 사건 ‘박종철군 고문치사 축소은폐 조작사건’이 28년이 지난 지금에도 그 진상이 많은 부분 은폐되어 있는 현실을 안타깝게 여겨 그 실체적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들추어냄으로써 우리로 하여금 온전히 역사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주려고 그런 게 아닐까.

    그렇다면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추천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한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릴 일이다. 이제 국회가 해야 할 일은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의 적격 여부를 단순히 따지는 그런 ‘청문회’가 아니라, 아직도 은폐되어 있는 박종철군 고문치사 축소은폐 조작사건의 진상을 있는 그대로 밝혀내 껍데기가 여전히 판치고 있는 현실을 극복하는 데 힘을 보태는 역할이어야 한다.

    소설 삼국지에서는 ‘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중달을 쫓는’ 이야기가 나온다. 박종철은 이미 1987년 당시에도 자신의 몸을 민주의 제단에 바치는 ‘의로운 죽음’을 통해 장세동 당시 안기부장을 비롯해서 수많은 인물들을 낙마시킨 바 있다. 이제 ‘죽은 박종철이 산 박상옥을 잡을 것’이다. 역사는 그렇게 발전하는 것이 아닐까.

    28년이 지난 지금 박종철의 의로운 죽음으로 만들어 낸 ‘87년 체제’는 발전적인 균열이기는커녕 전면 후퇴의 가능성을 내포한 균열조짐으로 심각한 위기에 봉착해 있다. 하늘에서 이러한 사태를 바라보는 박종철 열사의 심정은 과연 어떨까. 지난 28년 간 죽은 박종철에게 빚지고 살아 온 우리가 지금 해야 할 일은 과연 무엇일까. 먼저 간 친구를 생각하면서 나도 스스로에게 자문해본다.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와 박종철 고문치사 은폐조작사건 관련 연속 기고를 끝냅니다.>

    필자소개
    박종철기념사업회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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