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범식씨는 자살하지 않았다
[프로파일러의 범죄이야기] 하청노동자 죽음, 자살로 단정해
    2014년 11월 12일 03:5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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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월요일, 울산 MBC의 시사 프로그램(탐사기획 돌직구40) 제작진으로부터 지난 5월 현대중공업 선박사업장에서 발생한 변사사건에 대한 분석을 의뢰받았다.

이 사건은 내부 도장작업을 하던 현대중공업 사내하청 노동자 정범식씨가 쇠파이프로 엮어 만들어진 4m 높이의 족장(가설 이동통로 발판) 아래로 늘어진 (산소 공급용) 에어호스에 목이 감겨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관련기사)

당시 사건을 수사했던 수사기관에서는 부검 소견과 기타 수사 결과(병원 검진기록과 통신 수사기록 등)를 토대로 해당 사건을 자살로 처리했지만, 유족과 노조에서는 자살의 가능성에 적극 반대하면서 작업현장의 상황을 근거로 사고사라고 주장했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자칫 잊혀져버릴 것 같았던 이 사건은, 10월 17일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의 울산경찰청 국정감사에서 야당의원에 의해 현안 질의가 되면서, 논란과 의혹이 다시 수면위로 터져 나왔다.(관련기사)

이번 사건을 분석하면서 필자가 주목한 부분은 부검의의 부검소견서와 수사기관의 부실한 수사 등이다.

우선 제일 먼저 이번 사건 처리의 첫 번째 문제점인 부검 소견에 대해 살펴보면, 일반적으로 변사사건을 처리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은 해당 죽음에 대한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해당 죽음이 자살, 타살, 사고사, 자연사, 병사 등의 5가지에 모두 해당할 수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해야 한다. 당연하게도 미리 특정한 죽음으로 예단해서는 절대 안 된다.

그런데 문제는 현실에서의 여러 가지 제약조건으로 인해 이런 기본적인 원칙이 잘 지켜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이번 사건처럼 과학적인 분석으로도 그 원인을 찾기 힘든 죽음의 경우 특히 그러하다. 그래서 그럴 경우 지금 이 사건을 담당한 부검의와 같은 문제점이 발생하는 것이다.

즉 담당 부검의는 부검을 통해 사망의 원인을 밝혀내려고 했으나 그 원인을 밝혀내지 못했다. 그리고 사실 이번 사건만이 아니라도 변사사건 중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없는 죽음들도 충분히 가능하다. 일례로 얼마 전에 발생한 유병언 변사사건만을 보더라도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이후 국과수)의 최정예 분석관들이 총동원되었어도 결국에는 ‘원인 불상’이지 않았는가? 아직 인간의 과학적 지식으로 풀지 못하는 것도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이번 사건의 부검의는 ‘원인 불상’으로 부검소견서를 작성해야 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현장 부검의와 관련된 현실적인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해당 부검의는 국과수 소속의 부검의가 아니라 수사기관에 의해 촉탁된 외부의 (병리)부검의였다.

우리나라의 수사현실에서 (지방 분원, 이 사건의 경우 부산 국과수) 국과수 소속의 부검의는 그 숫자가 소수라서 부검의 1인이 담당해야 하는 사건들이 많기에, 부검의 우선 순위에서 많이 밀리는 변사사건의 경우 간혹 관례적으로 외부의 촉탁 부검의를 이용하곤 한다.

이 사람들은 사건에 따라 건당 수임료를 수사기관으로부터 받기 때문에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현실적으로 간혹 존재한다. 예를 들어 만약 특정한 사건에 대해 명확한 결론이 아닌 ‘원인 불상’으로 부검소견서를 작성한 경우 의도하지는 않았고 실제 더 유능하지만, 수사기관의 입장에서는 다소 능력이 부족한 부검의로 찍힐 수도 있는 것이다.

만약 이 경우가 된다면 수사기관은 원인이 불상이기 때문에 별도의 수사력을 투입해서 그 원인을 밝혀야 하는 부담이 생길 수도 있는 것이다. 이 경우 아무래도 그런 부검의를 수사기관이 비교적 선호하지는 않을 것이다.

반대로 다소 과학적인 근거는 빈약하지만 추정에 의해서라도 부검소견서에 원인을 적시해준다면 수사기관은 그 추정에 따라 사건을 종결할 수 있는 상황이 생겨서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상황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이렇게 서비스를 잘 해주는 부검의가 결국에는 수사기관으로부터 선호될 수 있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참으로 안타깝지만 이것이 우리나라 과학수사의 현실이다. 결국 국가적으로 수사현장의 수요에 맞는 부검의를 육성하지 못하고 있는 틈새시장을 촉탁 부검의들이 맡게 되어 발생할 수 있는 문제인 것이다.

이번 사건의 부검소견서를 보면 부검소견서의 첫 페이지에서 마지막 페이지 끝나기 전까지 95% 가량은, 결국 여러 가지 분석을 해봤지만 그 원인을 알 수 없다는 점을 상세하게 적시하고 있다. 그런데 마지막 페이지의 나머지 5%에 가게 되면 갑자기 논조가 확 바뀌는데 즉 부검으로는 원인을 알 수 없고 따라서 당시 현장의 상황을 고려해서 판단해야 한다고 하면서 다음 줄에는 변사자의 사회경제적 상황에 의해 자살로 판단하는 것이 적합하다고 서술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부검의는 변사자의 사회경제적 상황을 통해 죽음의 원인을 찾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검의는 사체, 그리고 사체와 관련된 과학적인 분석을 통해 죽음의 원인을 찾는 사람이고, 사회경제적 상황을 통해 죽음의 원인을 찾는 사람은 담당 수사관(혹은 담당 수사관이 위촉한 심리 전문가)인 것이다.

아니 황당하게 부검소견서에 본인의 전문분야도 아닌 사회경제적 상황을 언급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인 것이다. 부검의는 부검의가 해야 하는 것만 분석하고 그 결과를 소견서에 적시하면 되는 것이다. 즉 본인의 부검 소견에 따라 원인을 알 수 없다고 하면 본인의 임무는 종료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황당한 소견서에 의거해서 수사기관은 자살로 사건을 종결한 것이다. 그럼 그러한 변사자의 사회경제적 상황은 누가 제공한 것인가? 그 제공자는 결국 담당 수사관이 아닌가? 결국 담당 수사관이 원하는 대로 결론을 낸 것인데 그렇다고 할 때 도대체 부검은 왜 필요한가?

본질적으로 사체에 남겨진 물적 증거와 변사자의 행동증거는 독립적으로 분석되어야 한다. 행동 증거에 따라 물적 증거를 설명한다면 물적 증거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이다. 이 점이 이 사건의 가장 큰 문제점이라고 할 수 있다.

현중 사망사고

고 정범식씨 유가족들이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모습(사진=울산산추련)

다음으로 언급되어야 하는 점이 수사기관의 부실수사 논란이다. 유족이나 노조에서 처음부터 의혹을 제기했던 것이 바로 이 점인데, 수사기관은 사건 발생 후 한 시간도 채 안돼서 자살이라는 예단을 가지고 수사에 임했다는 점이다.

앞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변사사건을 처리함에 있어서 5가지 죽음에 대해 공평하게 예단 없이 수사해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런데 이 사건을 수사한 수사기관은 미리부터 자살이라는 예단을 가지고 수사에 임했다는 정황이 드러난다.

일단 현장 상황의 경우 도장 작업장의 특성상 매우 열악(매우 어둡고 위험요소도 많고)해서 안전사고가 다수 발생한다는 점을 감안했어야 했다. 작업에 필요한 여러 가지 호스들이 난간에 겹겹이 걸쳐 있었고, 공기 마스크가 필수적인 상황도 감안했어야 한다. 또한 강한 압력으로 뿜어져 나오는 쇳가루(일부는 쇠구슬도 섞여 있음)의 존재나 활동이 부자연스러운 작업복의 특성도 충분히 감안했어야 한다.

즉 에어호스 없이 미로 같은 작업장을 빠져나오다가 어두운 환경에서 타 작업자가 쏜 쇳가루들에 의해 충격을 받고 양손을 녹색테이프로 밀봉된 상태에서 부자연스럽게 족장을 건너다가 사고를 당했을 가능성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따라서 수사기관은 단지 에어호스에 목이 감겨 매달린 상태를 중심으로 성급히 자살이라는 결론을 내리기 전에 유사한 환경에서 유사한 복장을 하고 엉켜있는 에어호스를 비집고 족장을 건너가는 상황을 시뮬레이션 했어야 했다.

실제 필자는 이렇게 사고를 당해서 목에 감겨 매달려 죽음을 맞이한 경우를 외국 사례에서 본 기억이 있다. 충분히 가능한 상황인데 실험을 해보지도 않고 엉뚱하게 에어호스 훼손 실험만을 진행한 것은 분명 자살에 대한 예단을 가지고 수사를 한 잘못이 있다.

그리고 현장의 에어호스 매듭이나 위치로 보아 자살을 시도할 수 있는 여건은 전혀 아니다. 우선 매듭의 경우 자연스럽게 감겨서 생긴 것인데 이를 인위적인 매듭이라고 우기는 것도 이해가 가지 않는 점이다. 이 점은 간단히 매듭 전문가들에게 자문만 구했어도 쉽게 해결될 일인데 안타깝다.

다음으로 현장 위치의 경우에도 필자가 봐온 많은 케이스를 비롯해, 다양한 문헌에 보고된 케이스를 포함해서 이런 현장에서의 자살은 거의 유일할 것이다. 그런데도 어떻게 이 죽음을 보고 자살이라고 결론을 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또한 일반적으로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그 방법의 선택이나 장소를 선택할 때 의미가 있거나 쉽고 익숙한 장소/방법을 선택한다. 수사기관의 결론대로라면 매듭 같지도 않은 매듭을 걸고 자신의 손으로 매듭도 묶지 않고 단지 에어호스를 두 번 목에 감아 4m 정도의 높이에서 뛰어내려서 죽으려고 했다는 주장이다. 완전 소설도 이런 기가 찬 소설이 없다. 어떻게 이런 말 같지 않은 생각을 할 수 있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종합적으로 수사기관이 자살로 내사 종결한 근거를 보자.

1. 자살이다.

2. 사고 현장이 자신의 작업장에서 떨어져 있다.

3. 호스에 감겼으나 저항 흔적이 없다.

4. 호스를 핸드레일에 꼬아 감은 흔적이 있다.

5. 석 달 전에 부부가 다퉜다.

6. 카드와 통신비 연체 내역이 있다.

7. 4개월 전 아내에 대한 의심으로 정신과 진료 내력이 있다.

이에 대해 한 가지씩 반론을 제기하면

1. 자살에는 동기가 있어야 하는데 그 동기가 없다. 돈 문제? 애정 문제???

2. 자신의 작업 현장에서 벗어난 이유는 바로 자신의 예어호스가 훼손되어 이를 교체하거나 할 이유로 작업장을 이동한 것이다. 그렇다면 반대로 자신의 작업장에서 죽었으면 자살이 아닌가? 말도 안 되는 주장이다.

3. 호스에 감긴 흔적이 없을 수 있다. 현장 상황의 경우 급작스런 사고도 가능하다. 따라서 저항의 흔적이 없다는 점은 사고사의 경우 더 가능하다.

4. 핸드레일의 매듭을 잘 살펴보면 인위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5. 이 부분은 자살로 예단하고 억지로 가져다 붙인 사항이다. 만약 이렇게 생각한다면 필자 앞에 담당 경찰들을 데려다주면 그 사람들을 1시간 안에 자살 위험자로 만들 수 있다. 억지로 가져다 붙인 것이다.

6. 돈 문제를 부각시키려는 상투적인 수법이다.

7. 사실 이 사건이 자살로 보이는데 큰 기여를 한 사항이 바로 이 점이다. 특히 7년 전 정도에 진료를 받은 망상장애 부분과 4개월 전 의처증 부분을 집중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그런데 7년 전 망상장애 진료 부분의 경우, 의사의 소견서를 잘 살펴보면 실제 증상이 몇 가지 나타난다고 하고 있지만 그것이 지속적으로 진행되는 것인지 명확하지 않다.

여기에서 실제 망상장애가 위험한 것은 지속적인 증상이다. 그런데 두 차례 진료를 받고 그 다음은 정상적으로 생활을 했다는 점에서 실제 망상장애로 확진을 받아야 할지 알 수 없다. 실제 망상장애가 꾸준히 7년 동안 지속되었다면 정상생활이 가능하겠는가? 직장 동료나 주변 사람들이 어느 정도는 알아챘을 것이다.

그 다음으로 의처증 부분인데 변사자 부부는 변사자의 직장 문제로 기러기 아빠 생활을 하고 있다. 그러면 어느 정도는 그런 다툼은 있었을 것이다. 없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닌가? 결론적으로 정신적인 장애 여부도 자살의 동기가 되지 않는다.

그렇지만 만약 이 부분이 실제 동기와 연결된다고 수사기관이 판단했다면 수사기관은 변사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을 전문가에게 의뢰했어야 한다. 그런데 수사기관은 간단히 전문가에게 의뢰하면 될 것을 하지도 않고 비전문가인 부검의에게 슬쩍 흘려준 뒤 부검의로부터 사회경제적 환경으로 인한 자살로 답변을 받는 꼼수를 쓴 것이다.

필자는 변사사건에 대해 필자가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수사기관에서 자살은 타살이 아닌 죽음을 의미한다.”

말 장난 같지만 사실 이 말 속에는 우리나라의 수사현실이 응축되어 있다.

아버지가, 남편이, 자식이 자살을 했다고 생각하는 가족은 평생 그 짐을 짊어지고 살아야 한다. 물론 사고사, 타살로도 죽음을 당하면 절대 안 되지만 이 경우는 적어도 가족들이 죄책감을 가질 가능성은 줄어든다. 그래서 변사사건을 처리하는 수사기관은 단 한 사람의 죽음도 소홀히 다루어서는 안 된다. 한 사람의 목숨은 태산보다도 큰 가치가 있는 것이다.

국정감사에서 재수사를 약속했으니 재수사가 진행될 것이다. 그 재수사에서는 반드시 앞서 언급한 사고 가능성에 대한 시뮬레이션을 객관적인 주체에 의해 객관적으로 진행해야 한다. 그리고 또한 변사자에 대한 심리적 부검도 반드시 진행해야 한다. 이 두 가지 사항에 대한 재수사만으로도 이번 변사사건의 실체적 진실이 밝혀질 것이다.

필자소개
배상훈
2000년대 중후반 경찰청 범죄심리수사관(프로파일러)과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행동과학팀(프로파일링 부서) 재직했다. 현재는 서울디지털대학 경찰학과 교수이며, 국립중앙경찰학교 (수사) 프로파일링 과목 담당 외래교수이다. 화학을 전공하고, 대학원에서는 진보정치를 주제로 논문을 쓰고, 임상병리사와 사회복지사를 거쳐 프로파일러의 삶을 살아온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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