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중공업 사망 사고
    경찰, 자살로 서둘러 사건 종결
        2014년 10월 06일 08:1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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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중공업 하청노동자인 고 정범식 노동자가 작업 도중 에어호스에 목이 감겨 사망한 사고에 대해 울산동부경찰서가 자살로 내사를 종결한 가운데, 경찰이 휴대폰 미납이나 수개월 전 배우자와 사소한 다툼이 있었다는 문자 메시지 등 다소 황당한 근거를 내놓아 부실수사가 지적되고 있다.

    이에 현대중공업 사내하청지회는 경찰과 현대중공업이 결탁해 사고 수습을 서두른 것이 아니냐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과 경찰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정 씨는 지난 4월 26일 작업 현장에서 사용하는 리모콘이 오작동하자 고치라는 지시를 받았고, 그 과정에서 작업 현장을 반복해 이동하는 도중 사고를 당한 것으로 보인다.

    사고 현장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정 씨는 의식을 잃고 쓰러져 있던 당시 두건과 방진마스크를 쓰고 양손에는 장갑을 착용하고 손목 부위를 테이프로 감은 상태로, 작업 현장에서 필요한 안전장치를 착용하고 있었고, 호스 높이도 3미터밖에 되지 않았다. 또 목에 감겨 있던 에어호스도 인위적으로 묶음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에 현장에서 근무하는 정 씨의 동료들은 사고 당시 정 씨가 자살한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고 증언했다.

    전국금속노동조합 현대중공업사내하청지회 등은 6일 국회 기자회견에서 정 씨가 작업 도중 사망한 것에 대한 철저한 진상규명을 위한 검찰 재조사를 촉구하며 현대중공업이 산업재해를 은폐하려 한다고 비판했다. (관련기사 링크)

    현대중공업, “산재 은폐한 적 없다”
    안전관리책임자, 사고현장 오자마자 자살이라고 말해 소문 확산

    현대중공업 측은 “우리는 산업재해를 은폐하려한 적도 없고, 산업재해 판단은 근로복지공단에서 내리는 것이기 때문에 산재 판단을 기다리고 있다”고 입장이다.

    결론적으로, 정 씨는 현재 상황으로는 산재를 받을 수가 없다. 산재로 판단할 근거가 없다. 경찰에서 이미 자살로 내사 종결해버렸기 때문이다. 현중하청지회는 이 점을 석연치 않게 여기고 있다.

    정 씨의 사고는 토요일에 발생했고 휴무인 일요일을 제외하면 월요일 하루 수사한 것이 조사의 전부다. 그런데 경찰은 정 씨의 휴대폰 요금 미납과 3개월 전 배우자와 문자 메시지로 한 말다툼 등을 근거로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그 근거만 보면 작업 현장에서 벌어질 수 있는 사고로 인한 사망 가능성은 아예 배제한 것 같다고 현중하청지회는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정 씨의 미망인과 현중하청지회는 정 씨의 죽음이 자살로 보기 어렵다고 항의했지만, 경찰은 ‘떳떳하다’는 식의 입장을 보였다고 현중하청지회 하창민 지회장은 말했다.

    하 지회장에 따르면, 정 씨가 에어호스에 목이 감겨 있어 호스를 끊어내고 있는 도중 현장에 온 안전관리책임자는 ‘자살’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 후 관리자들 사이에서 정 씨의 죽음은 자살로 포장됐고 일부 동료들도 그렇게 여겼다고 한다. 그리고 경찰은 빠른 속도로 수사를 마쳤다. 여기까지는 울산동부경찰서의 부실 수사만을 지적하고 넘어갈 수 있는 일이다. 하지만 여러 정황상 경찰이 현대중공업과 결탁은 아니더라도, 사후 처리에 대해 연대한 의혹은 분명 있어 보인다.

    정 산재사망

    지난 8월 남편의 죽음을 자살로 규정하는 경찰 앞에서 항의를 하는 정씨 부인(사진=울산저널)

    사망 후 노동지청에 보고 안 해
    경찰 수사 하루 만에 수사 결과 발표…사내하청지회, 석연치 않아 의혹제기

    작업 현장에서 노동자가 사망할 경우, 사측은 24시간 내에 노동지청에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현대중공업이라는 거대 기업은 정 씨의 사망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다. 반드시 원청 기업에서 사건에 대해 보고할 의무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통상적으로 원청이 노동지청에 보고하게 돼있고, 원청 기업이 하지 않았다면 하청 기업이라도 정 씨 사고에 대해 보고해야 한다.

    그러나 정 씨의 죽음에 대해 원청 기업인 현대중공업도, 하청 기업도 정 씨의 사고에 대해 보고하지 않았다. 이 같은 상황이 바로 현대중공업이 산재를 은폐하고 자살사로 포장하려고 한다는 현중 사내하청지회가 의혹은 제기하는 한 근거이다.

    사측에서 노동지청에 보고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묻자 하 지회장은 “자살이라고 결정을 지었으니 그랬겠죠. 노동부에서도 사건 못 받았기 때문에 모른다 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 홍보 관계자는 이날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경찰에서 자살로 결론을 내릴 순 있다. 변사 사고라고 내릴 수 있지만, 현대중공업에서 (자살이라고) 결론을 내리는 건 무의미하다. 경찰의 자살 결론만이 유의미하다”라고 말했다. 다시 말해, 현대중공업이 자살로 결론을 내렸다 해도 그 판단은 어떤 효력도 가지지 못하기 때문에 산재를 은폐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입장이다.

    정 씨의 사고에 대한 산재 여부에 대해 기업 측의 공식 입장이 있느냐고 묻자 “없다”며 “사측에서 임의적으로 판단을 내리면 얼마나 큰 혼란이 있겠냐. 자살로 결론을 내리고 산재를 은폐했다고 하는 것은 전혀 맞지가 않다”고 말했다.

    현중 사내하청지회, 자살로 단정 지을 사안 아니다

    현중 사내하청지회는 산재 여부를 떠나 제대로 된 수사 없이 자살로 규정해버린 것에 대해 억울함을 토로한다. 정 씨의 사고는 지난 8번의 하청노동자 사망사건과는 달리 목격자가 없다.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죽음의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알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정 씨는 정말 자살했을 수도 있고, 타살을 당했을 수도 있다. 혹은 산업재해일 가능성도 있다. 목격자가 없기 때문에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고, 이런 상황일수록 경찰은 사망자의 명예를 위해서라도 더욱 명확하게 조사하려는 노력을 보여야 한다는 것이 현중 사내하청지회의 주장이다.

    현중 사내하청지회 하창민 지회장은 “자살의 근거를 대려면 명확하게 해야 하는데, 명확한 게 없다”며 “산재하고 자살하고 사이에 혼란이 있을 수 있다면, 원인미상도 될 수 있는 거 아닌가. 그것조차 없기 때문에…”라고 말했다.

    그러나 울산동부경찰서는 <레디앙>과의 통화해서 “자살로 판명할 이유가 있었고, 사건 현장을 봤을 땐 산업 사고라고 보기엔 매우 희박했다”며 “배우자와 다투거나 휴대폰 미납 등만 가지고 자살로 종결한 것은 아니다. 자살로 판단할만한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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