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누군가의 죽음으로
    유지되는 핵발전소의 현실
        2014년 09월 24일 02:1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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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년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 사고가 일어난 지 이제 3년이 지났다. 그러나 한국 시민들은 제2의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폭발이 한국에서 일어나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걸 알면서도 제 자식이 먹는 음식의 방사능 물질만 검사하는 것으로 만족하거나, 여전히 밀양 송전탑 건설을 반대하는 시골 할매들의 투쟁은 황혼의 고집이라고 치부한다.

    물론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진 엄청난 재앙에도 불구하고 도쿄에 거주하는 일부 시민들은 어느새 다른 나라의 일인 것처럼 잊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은 전력 소비량은 가장 많지만 그 위험성은 지방에 전가하는 지역 간 전력 수급 불균형 문제 때문일 테다. (관련기사 링크 “밀양 송전탑, 우리 모두가 공범자” )

    문제는 이 뿐만이 아니다. 건설업이나 자동차 제조업에서 고질적인 문제로 제기된 다단계 하청구조 시스템이 남아있는 한, 원전의 위험성은 누군가의 목숨을 건 노동으로 유지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공공운수연맹 환경에너지안전협의회 등이 23일 공동주최한 ‘한-일 핵발전 노동 워크샵 – 포스트 후쿠시마, 핵발전 노동자의 삶’에서 눈물로 터져 나온 핵발전소 노동자들의 생생한 증언은 여러 의미에서 등골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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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후쿠시마 원전에서 근무하다 3.11 지진…피난 뒤에야 폭발 소식 알아

    이날 서강대학교 다산관에서 열린 워크샾에 참석한 32세의 니이쯔마 히데아키씨는 차분하게 후쿠시마 원전의 작업을 설명하다 결국 3년 전 3.11 폭발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렸다.

    원전에서 근무하던 도중 갑작스러운 지진에 급하게 집으로 귀가하려 했지만, 평소 20분이면 도착했던 거리가 3시간이나 걸렸다. 집에 돌아가서도 여진으로 집이 붕괴될까 차 안에서 새우잠을 잤다. 그러다 피난 지시 방송을 듣고 원래 살던 나라하마치에서 이와키시로 피난해 친척집에 가서야 후쿠시마 1호기 폭발 소식을 들었다.

    현재 그의 집은 거주제한구역이기 때문에 돌아갈 수 없다. 부모님은 임시주택에, 니이쯔마씨는 이와키시에 아파트를 임대해 살고 있다. 그는 이 이야기를 한참이나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하다 애써 담담하게 이야기를 하나 싶었더니 결국 눈물을 훔쳤다.

    니이쯔마씨는 원전에 처음 입사했을 때 주로 제1원전에서 냉각계통 재순환 펌프와 방사성 폐기물(핵연료봉) 처리 장치를 분해하고 점검하는 일을 했다. 2009년 2월 다시 파견된 사업장에서는 원자로 터빈 건물 내 기기에 달려있는 배관의 밸브를 점검하는 일을 했다.

    하청업체 입사할 때마다 피폭량 확인 후 출입허가증 발급받아야
    위험한 구역에서 작업할 때는 고무장갑 2~3개씩 끼어야

    이러한 일들을 하기 위해 그는 현재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방사선 관리 수첩’을 등록해 발급 받았다. 이 수첩은 피폭량을 기록해두는 생명과도 같은 것이다. 계약이 끝나거나 피폭량의 임계치가 달해 해고를 당할 때 이 수첩을 되돌려 받지 못하면 자신이 얼마나 피폭 됐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재취업에도 문제가 생기거니와, 방사능 피폭으로 산업재해를 신청할 때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 내 신분증과도 같은 ID카드도 2종류이다. 하나는 원전 부지 내로 출입하기 위한 구내 출입증과, 관리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허가증으로 나뉜다. 관리구역이란 방사능 물질을 취급하는 시설과 방사선 발생장치를 사용하는 시설이 있는 곳으로, 정해진 방사능 수치를 초과할 우려가 있다.

    노동자들은 관리구역에 출입할 수 있는 허가증을 받기 위해 ‘홀바디카운터’라는 기계에 들어가 내부 피폭을 확인해야 한다. 이러한 행위는 다른 사업소(하청업체)에 파견 갈 때마다 행해진다.

    작업 구역에 따라 입는 방호복도 다르다. 위험할수록 옷은 두껍고 숨도 쉬어지지 않는다. 고무장갑은 반드시 2~3장을 겹쳐 끼어야 하고, 전면 후드 마스크도 착용해야 한다. 이 마스크는 2시간만 착용해도 머리 뒤쪽이 아파서 술 마신 다음 날 착용하면 많이 힘들었다고 한다.

    작업을 끝낸 뒤에는 ‘퇴역 모니터’를 거쳐야 한다. 작업을 끝낸 노동자들의 신체에서 오염이 있는지 없는지를 검사하는 곳으로, 만약 여기서 오염 물질이 발견되면 큰 문제가 되기 때문에 퇴역 모니터로 들어가기 전에 ‘서베이 미터’라고 해서 노동자가 직접 오염 여부를 확인한다.

    니이쯔마씨는 이 부분에서 한 일화를 소개했다. “한 번은 제 친구가 서베이 미터를 통해 ‘퇴역 금지’가 된 적이 있다. 얼굴 쪽에서 문제가 됐다고 하기에 왜 그런 거냐고 물었더니 마스크를 좀 만졌다고 하더라”며 “그래서 퇴역 모니터를 통과하기 위해 친구는 얼굴에 크림 같은 걸 발라서 다시 검사한 뒤 통과하기도 했다. 친구의 얼굴이 굉장히 빨갰다”고 회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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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적 피폭 상한선과 다단계 하청구조…내일 죽어도 좋다는 노예 계약
    피폭된 노동자들의 96%는 도쿄전력 하청 노동자들, 위험의 외주화

    ‘피폭 노동을 생각하는 네트워크 활동가’ 나스비씨는 ‘법정 피폭량’과 원전의 다단계 하청구조가 결합하면서 가난한 노동자들이 위험한 원전 노동에 떠밀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스비씨에 따르면 원전의 다단계 하청구조는 상상을 초월한다. 기본적으로 7~8차까지 이어지는데, 심한 곳은 17차까지도 내려간다고 한다. 이 때문에 원전 폭발 수습작업에 투입될 인력이 부족해지자 일본 정부가 일당을 하루 1만 엔에서 2만 엔으로 올렸지만 실제로 임금 인상 혜택을 받았다는 노동자들을 찾아볼 수 없다는 지적이다. 노동자들에게 최종적으로 돌아가는 임금은 도급업자들로부터 정해진다는 것이다.

    원전 근로자 1인당 연간 피폭 한도는 50mSv(밀리시버트), 5년간 100mSv이다. 나스비씨는 “피폭 상한선을 정한다는 건 노동자들이 법적으로 방사능에 노출되면서 일하는 걸 인정하는 것이기 때문에 그 자체도 이상하지만, 노동자가 연간 피폭 상한선이 다다를 때 해고할 수 있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러니깐 법적 피폭 상한선의 제도 이면에는 노동자들이 하루 만에 피폭 상한선 50mSv건 5년간의 상한선인 100mSv가 쌓인다 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의미이다. 또한 노동자들에게 한없이 불합리한 다단계 하청구조는 마치 노동자들을 그 쓰임이 다하면 가차 없이 버려도 되는 소모품으로 전락시키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특히 원전 노동자들의 피폭량을 조사해보면 96%가 전력회사 이외의 사람들이라는 지적이다. 원전이 있는 지역에는 정작 전력회사 직원은 없고, 다단계 하청구조로 수급한 지역 주민들, 전국을 떠도는 일용직 노동자들뿐이라는 이야기다.

    여기서 나스비씨는 “도쿄라는 도시가 원전이라는 위험한 시설은 다른 지역에 강요하고, 또 그 지역 사람들에게 피폭 노동을 하게 만든다”고 지적했다.

    그는 “도쿄전력은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꽤 큰 기업이기 때문에 그 지역 사람들은 원전에서 일한다면 안정된 수입을 얻을 수 있다”며 “그러나 현지 사원이 도쿄전력 본사의 사원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절반 정도는 중학교만 졸업한 사람들이 일한다”고 설명했다.

    오염수 누출 사고 있는데, 다단계 하청구조로 보고하는데 30분 걸려
    1966년 원전 상업 가동 이후 방사능 피폭 산재 인정은 불과 13건

    이러다보니 작업 환경은 최악이다. 나스비씨에 따르면 지난 2013년 10월, 냉각수 배관 작업 도중 냉각수가 누출되는 사고가 일어났다. 냉각수는 현장에 있던 16명의 노동자들의 온 몸으로 튀었다. 상황이 이러니 펌프를 멈춰야 하는데 펌프를 멈출 권한은 현장에 없는 도쿄전력 직원이었다.

    사고 소식을 보고하는 데에만 30분이 걸렸다. 이 하청회사가 저 하청회사로 보고하다 최종적으로 도쿄전력에 전달되는 데까지 최소 30분이었다는 것이다. 더구나 펌프가 멈춘 것 역시 그 보고가 다 끝났기 때문이 아니라 선량이 계속 치솟자 도쿄전력 본사에 경보가 울리면서 알게 됐기 때문이란다. 제대로 보고가 다 거쳐 간 것이라면 30분이 아니라 그 이상이 걸릴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낡은 창고를 사용하기 위해 지반을 보강하는 공사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안전장치를 마련하지 않아 토사가 무너져 내려 사람이 갇힌 적도 있고, 오염수를 저장하는 탱크를 만드는 회사에서는 노동자들에게 아침, 저녁으로 각 2시간씩의 추가 근무를 강요하고 화장실 대신 방호복 안에 소변을 보라고 강요하기도 했다.

    그렇다고 산업재해가 제대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다. 1966년 상업원자로가 가동하기 시작 이후로 약 50만 명의 노동자가 원전에서 일했지만, 그동안 피폭으로 인한 산재를 인정받은 케이스는 13명뿐이다.

    방사능 피폭으로 인한 대상 질병이 7개에 불과하다. 후쿠시마 원전 폭발 이후 수습 작업 도중 첫 사망자는 오오스미씨였다. 수습작업에 투입된 지 이틀째에 심근경색으로 사망했지만 심장은 방사능 피폭에 의한 영향과 관계가 없다는 이유로 산재가 인정되지 않았다. 오염이 심한 폭발 지역이라는 엄청난 스트레스나 과로 문제는 당초 다루어지지도 않았다.

    니이쯔마 “원전, 찬성도 부정도 하지 않지만 고향에는 돌아가지 않을 것”
    나스비 “다단계 하청구조 없어지지 않는 한 원전산업 사라지지 않을 것”

    니이쯔마씨는 지난 4월부터 원전 없는 세상을 위해 시민들이 십시일반 돈을 모아 만든 ‘이와키 오텐토 Sun기업조합’에서 일하고 있다. 태양광 발전으로 에너지를 만드는 일이다. 그와 동시에 방사능 위험 경계지역 투어에서 해설사 역할도 하고 있다.

    그는 이번 워크샾에서 “현재 경계지역에 투어를 다니면서 사람들에게 재난지역을 안내하지만 나 자신도 여전히 갈등을 잔뜩 안고 있다. 정말 해결할 수 있는 사태인가….그런 생각들 때문”이라며 “저는 아직 원전에 대해 부정도 찬성도 하지 않는다. 제가 일했기 때문에 노동자들의 고통도 현황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다시 고향에 갈 것인가라는 문제에서는 안 가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는 “원전도 사람이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가동에 있어서는 여러 안전대책을 세워 사고가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스비씨는 원전 노동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원전이 가동되는 순간부터 누군가는 영원히 짊어져야 할 노동”이라며 “그런데 다단계 하청구조와 같은 차별 구조가 있는 상황에서 원자력산업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이러한 차별구조를 전환하는 것이 탈원전의 핵심이기도 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이날 워크숍은 1부에서 니이쯔마, 나스비씨 이외에도 원전이 가동된 1966년부터 원전과 피폭 문제를 고민했던 보도사진 작가 히구치 켄지씨도 참여했다.

     2부에서는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의 이강준 연구기획위원의 발표에 현광훈(공공운수노조연맹 환경에너지협의회), 기유정(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윤기돈(핵없는 사회를 위한 공동행동)씨의 토론이 이어졌다.

    이번 워크샾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공공운수노조연맹 환경에너지협의회, 녹색당 탈핵틀별위원회, 땡땡책 협동조합, 서강대학교 사회과학연구소,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 한일연대미디어 The Ful에서 공동주최했고, 아름다운 재단에서 지원했다.

    필자소개
    장여진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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