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재벌은 인도를
    어떻게 지배하게 되었나
    [인도 수구보수파의 생얼-9] 인도와 한국의 닮은 꼴
        2014년 08월 13일 03:25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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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도 수구보수파의 생얼-8 링크

    해외토픽으로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인도의 재벌에 관한 이야기다. 2013년 10월에는 프랑스 칸느에서 수백억 유로의 비용이 들어가는 어느 인도 재벌의 초호화 결혼식이 열린다는 기사가 떴다.

    결혼식의 주인공은 인도의 한 재벌 회장의 아들인데 칸느 해변과 주변 지역 궁전에서 동시에 진행되는 세계적으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초호화 결혼식이다. 그리고 그 결혼 후에 또 다른 인도 재벌의 결혼도 예정되어 있다 한다.

    그런데도 인도 사람들은 별 관심을 갖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저택 또한 인도 재벌의 것이다. 뭄바이에 있는 릴라이언스 그룹 회장가의 집인 안틸라는 27층 규모에 가격이 10억 달러로 추산되는 집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분양이나 임대 따위를 하지 않는 순수한 개인용 저택이다.

    삼성 이씨들이 들으면 인도에서 태어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할만한 이야기가 있다. 인도의 세법에는 상속세와 증여세라는 항목이 아예 없다. 그래서 거대 재벌들이 식민지 시대부터 3대 혹은 4대씩 거대한 기업군을 통째로 물려주어도 한 푼의 상속세도 내지 않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사치로 해외토픽의 단골 출연자이자 인도 최고 재벌 중 한 명인 릴라이언스 그룹 회장 무케시 암바니가 그의 아내에게 생일 선물로 5천 2백만 달러 짜리 전용비행기를 사주어도 증여세 한 푼 내지 않았고, 호화로운 그의 개인 저택을 자식에게 물려주더라도 상속세 한 푼 내지 않아도 된다.

    1955~1985년 기간에는 인도에도 상속세가 있었지만 경제자유화 조치의 하나로 폐지되었고 심각한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부활시키려는 시도가 있었지만 기득권 세력의 강력한 저항으로 아직도 제자리 걸음이다. 이에 비하면 머리 쥐어짜며 불법, 편법 상속으로 경영권을 대물림하느라 창업자 이병철이 한국 최고의 세법전문가라는 농담이 나돌게 한 삼성은 준법정신 투철하고 검소한 이들이다.

    현재 인도의 재벌들은 인도의 정치와 경제를 지배하는 최고의 지배자들이다. 공식 용어로는 ‘코포레이트 그룹’ 혹은 ‘모노폴리 하우스(monopoly house)’ 라고 불리며 ‘친족에 의한 지배’, ‘다각화’, ‘대규모(과점)’ 등을 특징으로 하는 기업들은 인도 주식 시장 ‘센섹스지수(Sensex Index)’를 구성하는 30개 기업 가운데 60%를 차지하고 있다. 나머지는 국영기업이나 신생 IT기업들이다.

    1,000억 루피 이상의 자산을 보유한 재벌가의 수는 22개에 이르는데 기업소유 자산이 아니라 ‘개인(가족) 자산’이 그 정도니 그들의 부유함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인도 부유층의 자산 성장률은 세계에서 가장 빠는 속도로 증가하고 있다.

    또 세계 최고의 부패국가 인도에서 정경유착이 없으리라 생각하는 이는 없을 것이다. 인도 재벌들의 정치와 국가 운영에 대한 영향력은 식민지 시대에 만들어진 국민회의의 출발시부터 지금까지 어느 정도의 부침은 있었지만 흔들리지 않고 있다. 그것도 단순한 정경유착이 아니라 정경일체화라고 불릴 만한 방식으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인도 재벌은 크게 두 집단으로 나눌 수 있다. 식민지 시대부터 상인가문에서 출발해 대를 이어 내려온 재벌들과 신자유주의 시대 이후에 부상한 신흥 재벌로 크게 나누어 진다. 하지만 규모와 영향력 면에서는 전통 재벌들이 아직 좀 더 우위에 있다고들 한다.

    전통재벌의 두 강자인 타타 재벌과 비를라 재벌은 반세기 이상 인도에서 가장 큰 재벌집단이었다. 현재는 타타 재벌과 릴라이언스 재벌이 ‘새로운 2강“을 형성하고 있다. 나머지 중견 재벌들은 부침을 거듭하며 등장했다 사라지고 있다.

    타타와 비를리

    타타그룹의 창업자인 잠셋지 타타(왼쪽)와 간샴 다스 비를라

    타타와 비를라로 대표되는 전통 인도 재벌의 기원은 봄베이(지금의 뭄바이)와 꼴까따 이 두 도시에서 나타난 상인 공동체다. 봄베이를 중심으로 활동한 페르시아계 상인들의 공동체를 ‘파르시(Parsi 혹은 Parsee)라고 하고 꼴까따를 중심으로 활동한 상인집단으로는 ’마르와리(Marwari)’가 있다.

    이들이 급격하게 부를 축적할 수 있었던 것은 1820년경 영국․중국․인도의 삼각 무역체제가 완성되었기 때문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중국과의 차무역으로 인한 적자를 메우기 위해 영국은 인도에서 재배한 면화와 아편을 중국으로 수출했다. 이것이 서구의 중국 침략 신호탄이 된 아편전쟁의 원인이다.

    중국으로의 아편 수출에 참여한 인도 상인들은 큰 돈을 벌게 되는데 가장 먼저 아편 거래에 참여한 상인들이 파르시고 그 중에 가장 두각을 나타낸 가문이 바로 타타 가문이다. 즉 타타 재벌의 최초의 자본 축적은 식민주의에 근거한 아편무역을 통한 것이었다.

    이때 모은 돈을 바탕으로 인도 경제가 영국경제에 금융적으로 편입되기 시작한 1850년대 즉 ‘인도의 산업 혁명’ 시기에 타타 가문은 방적업에 진출했다. 그리고 방적업 투자 열풍과 그에 따른 거품경제가 만들어낸 부동산값 폭등을 잘 이용한 타타 가문은 부동산 투자로도 엄청난 돈을 벌어 들였다. 이제 단순한 상인 가문이 아니라 진정한 자본가가 된 것이다.

    19세기 말에 타타를 비롯한 자본가 계급이 정치적 권력에도 접근할 수 있는 기회가 열렸다. 당시 영국에서는 선거권 확대와 함께 민주주의가 발전하면서 식민지 정책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는 상황이었다.

    인도의 식민지 정부는 ‘인도인 지식층을 회유해 불만을 제거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그 장치가 바로 1885년 만들어진 ‘인도국민회의(Indian National Congress)’였고 그 해 12월에 제1차 인도국민회의 대회가 봄베이에서 개최되었다. 그 무렵 타타 가문은 방적업을 통해 번 돈을 부동산에 투자해 봄베이 최대의 부동산 갑부가 되어 있었다.

    타타가문은 이 부를 이용해 국민회의에 자금을 제공했다. 그렇다고 해서 타타 가문을 민족주의에 투철한 애국적 민족자본가로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영국 정부에 헌납한 돈은 간디의 독립운동에 지원한 액수 보다 훨씬 많았다. 그 댓가로 타타 가문의 수장 라탄 타타는 1916년 영국에서 작위를 얻었고 영국에 주로 거주하다가 1918년에 사망해서도 영국에 묻혔다.

    또 다른 재벌 비를라는 마르와리 출신이다. 흥미롭게도 비를라 가문은 처음에는 국민회의의 강경파들에게 자금을 지원했다. 아마도 타타와의 차별화를 노렸을 것이다.

    비를라 재벌의 제3대 회장 간샴 다스 비를라(Ghanshyam Das Birla: G. D. 비를라, 현재의 회장 쿠마르 망갈람 비를라의 증조부, 1894~1983)와 마르와리의 젊은 상인들 일부는 국민회의 내 강경파였던 딸릭(Talik)을 지원했다. 하지만 경찰의 체포위협을 겪고 나서 곧바로 온건파 간디를 지원한다.

    1924년부터 비를라는 간디와 많은 서신 교환을 하고 그가 필요한 거의 모든 자금을 제공했다. 그 이후로 비르라는 간디의 후원자이자 비서로 알려진다. 간디의 소박해 보이는 생활과 대중을 도덕으로만 감화시켰을 것 같은 활동은 실은 상당한 비용이 드는 것이었다. 현실 정치에서 이런 힘 없이 영향력을 가지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문제는 간디가 그 후원금으로 인해 어떤 영향을 받았는가 이다. 간디 스스로는 “재벌의 생각에 영향을 받는 것은 거의 없다.… 재벌 후원자에게 우리 정당이 의존한다는 점 자체는 불행한 일이지만 그 사실이 우리의 정책을 저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간디는 진실을 말했을 수 있다. 하지만 간디 이후 국민회의는 재벌의 정치 후원금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했다. 인도에서 간디의 문명비판 정신과 자본주의가 하나로 합쳐진 ‘간디주의 자본가(Gandhian Capitalist)’ 라는 말이 있다. 얼핏 기묘해 보이는 이 둘의 결합이 실은 간디주의로 위장한 자본가들이었음은 그 이후의 역사가 보여준다.

    인도 재벌이 비약적으로 성장한 계기는 두 번의 세계대전이었다. 1914년 전쟁으로 철강 수입이 막히자 타타제철은 인도 식민지 정부에서 필요로 하는 철강을 독점 공급했다. 비를라 가문도 1차 대전 기간 동안 자산이 4배로 팽창했다. 비를라는 은 투기를 통해 막대한 부를 얻었다. 이를 통해 두 재벌은 상인에서 산업자본가 즉 현대적 의미의 자본가로 전환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도 전시특수를 톡톡히 누렸고 특히 간디가 주도한 “인도를 떠나라(Quit India)” 운동 이후 인도에서 철수하는 영국 자본을 인수해 몸집을 불렸다. 한국의 초기 재벌들이 적산불하를 통해 탄생한 것과도 비교해 볼만한 경우다.

    뭄바이의 빈부격차

    도로 하나를 사이에 둔 격심한 뭄바이의 빈부 격차 모습

    1947년 독립한 인도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와 시장경제의 혼합 체제를 표방했다. 그런데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에 대해 자유주의자들이 진보적이건 급진적이건 공통적으로 유포시킨 오해가 있다. 이 오해는 상당히 널리 퍼져 대중적 상식이 되었다.

    첫 번째는 국가 주도의 계획경제는 사적 자본의 자유와 이익을 침해한다는 것이다. 인도의 사례는 그 반대가 진실임을 보여준다. 한국의 재벌도 국가의 강력한 비호가 없이는 성장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인도에서 대자본가들은 스스로가 계획 경제의 필요성을 역설했고(대공황의 여파와 당시 소련의 높은 경제성장률은 네루는 물론 인도자본가들에게는 무척 큰 감명을 주었다.) 계획의 입안자이자 집행자로 직접 참여했고 결국 최대 수혜자가 되었다.

    또 인도에서는 국영화를 통해 기존의 민간기업을 국가가 인수하는 방식을 취하지 않았다. “새로운 기업의 창설에 의한 국영부문 설치“라는 방침에 따라 새로운 기업을 만들었고 이것은 오히려 기존 재벌들과 협력 관계를 맺게 되었다.

    두 번째 오해는 국가 주도 계획경제는 필연적으로 부패와 비효율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재벌과 국가의 관계는 대자본의 이윤추구 특히 지대추구 행위가 부패의 가장 큰 원인임을 잘 보여준다. 국가와 관료제는 그 자체로 부패한 것이 아니라 사적 이익 추구에 연루됨으로써 부패한다. 중요한 것은 계획의 입안과 실행의 장치를 누가 통제하고 누구의 이익을 위해 사용하는가이다.

    인도에서 계획과 국가 자체를 부패, 비효율, 권위주의와 동일시하며 비판했던 논리는 결국 신자유주의의 전면화를 정당화했다. 한국의 급진자유주의자들이 했던 역할도 마찬가지다. 두 집단 모두 자본 특히 금융자본이 후원한 제도, 대중매체를 통해 목소리를 유포시켰다는 점도 똑 닮아있다.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이 본격적으로 시작한 1990년대 이후 인도의 재벌은 국가 발전을 이끄는 견인차로서 정당성을 인정받았다. 국가 발전은 개혁, 자유화, 유연화, 민영화 등 얼핏 들으면 민주화와 동일한 의미로 오해받을 수 있는 어휘들로 뒷받침되었다.

    이제 시장은 사람들이 일상 용품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고 기업들이 거래하는 곳이다. 그리고 그 거래는 주식이나 선물(先物)과 같이 손에 쥐는 상품이 아닌 보이지 않는 상품을 사고파는 행위가 되었고 그 주도적 역할을 재벌이 한다. 미래의 청사진은 재벌들의 머리에서 구상되었고, 그것은 국가적 차원에서 진행되었으며 그것을 거스르는 자들은 사회 자체적으로 제거되게 만들었다.

    사회 정의와 경제 민주화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다는 명분을 내걸었지만 정작 모든 이득은 재벌들 배로만 들어갔다. 그 사이 생태계는 파괴되고, 자살하는 사람들은 급증하고, 집이나 삶의 터전을 잃은 사람 또한 측정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아졌다. 가난한 사람들을 죽이고, 빼앗고, 쫓아내기 위하여 법이 만들어지고, 군대와 경찰이 동원된다.

    언론은 저항하는 사람들을 시대에 뒤떨어지는 자로 매도하고, 사람들은 자기에게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릴 뿐, 저항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오로지 이윤만을 위한 주식회사 인도공화국이다. 그 주식회사 안에서 재벌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행사하는데, 그 권위를 국가가 위임해주고 그 대가로 엄청난 돈이 국가 권력을 쥔 정치인과 관료들에게 들어간다. 그리고 돈의 위력에 짓눌린 사람들의 투표를 통해 그 모든 행위를 정당화 받는다. 그 사이 국민만 죽어나고, 국토만 파괴된다.

    이것은 최근 10년 동안 인도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런데 인도라는 말만 하지 않으면 한국에서 일어난 일로 이해하기 딱 십상이다. 당연히 그렇다. 그것은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가 신자유주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 시대에는 재벌이 국가고, 국민은 그 노예다.

    필자소개
    당인리대안정책발전소 부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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