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조를 낳은 사람들,
종교 공동체 폭력 잉태해
[인도 수구보수파들의 생얼-8] '4대세습'이냐 '학살자'냐
    2014년 08월 11일 02:42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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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앞 회 글 인도 수구보수파의 생얼-7 링크

인디라 간디가 암살당한 후 1984년 12월 총선에서 회의당(I)(인도국민회의를 약칭으로 보통 회의당이라 부르는데, 그 당이 1967년 분당되면서 인디라 간디를 중심으로 만든 정당을 ‘인디라’의 약자인 “I”를 덧붙여 부르는 이름이다.)는 전체 하원 의석수의 80퍼센트를 휩쓸어버렸다. 델리에서 시크교도 3,000 여명을 학살하면서 선거를 적대적 감정으로 몰고 간 덕이었다.

국민들은 집권 여당이 조장한 광분과 난동 속에서 치른 선거에서 정치적으로 아무런 경험이 없는, 오로지 인디라 간디의 아들이자 네루의 외손자라는 사실만 가지고 있던 라지브 간디(Rajiv Gandhi)에 대해 인도 투표 역사상 가장 큰 몰표를 퍼부었다.

인디라 간디가 암살당한 날 바로 수상직을 이어받은 라지브 간디는 몇 개월 뒤 어엿한 수상직에 올랐다. 수상 라지브 간디는 자신의 어머니가 조장하였고 그 부메랑으로 돌아온 뻔잡 문제를 맨 먼저 해결하려 하였다. 자신은 어머니를 잃고, 시크교도들은 성지가 유린당하고 동포가 수 천 명이 학살을 당한 상황이었다.

그는 뻔잡을 기반으로 하는 분리주의 정당 아깔리 달(Akali Dal)과 평화 협정을 맺으려 하였으나, 실패하였고 급진주의자들의 국가 분리 운동은 계속되었다. 그러던 중 정권이 통째로 스웨덴의 무기 제조 회사인 보포르(Bofor)사로부터 뇌물을 받은 사건이 터지고 결국 그 여파로 1989년 신생 사회주의 계열 정당인 민족전선(National Front)에게 정권을 넘겨주었다.

라지브 정권의 재무장관을 사임하고, 야당의 길을 택한 싱(V. P. Singh)의 정권은 인도 역사상 두 번째의 비(非)회의당 정부였다. 그렇지만 싱의 정권은 공산당과 우익 수구 세력인 인도국민당과 불안정한 연립을 통해 세운 것이어서 세력 구조가 매우 취약하였다. 정파 싸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연립 정부는 무너졌고, 다시 치러진 1991년 선거에서 패배하여 사라지고 만다.

그 때 야당의 입장에서 선거를 지휘하던 라지브 간디는 남쪽 첸나이 근처에서 재임 중 스리랑카에 평화유지군을 파견하여 타밀 반군의 앙심을 사 그 보복으로 벌인 자살 폭탄 테러로 암살당한다. 그러면서 지난 40여 년 동안 집권 여당으로서 실질적인 일당 지배를 해 온 회의당의 영향력은 급격하게 떨어지면서 ‘네루 왕조’에 의존해 온 회의당의 몰락이 눈에 띄게 구체화되었다.

이후 10여 년 동안 회의당이 몰락하면서 강력한 야당으로 등장한 힌두 근본주의 보수 정당인 인도국민당과 수구난동세력 민족의용단과 의용단일가의 연합 세력이 전 국토를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그러다가 2004년 선거에서 라지브 간디의 부인인 소냐 간디(Sonia Gandhi)가 회의당을 다시 집권 여당으로 올려놓는데 성공하였다.

소냐 간디는 이탈리아 태생이라는 이유로 당시 여당인 인도국민당의 심한 공격을 받았다. 수구난동세력들은 ‘인도를 또 다시 유럽의 식민지로 만들 것인가?’라고 주장하며 오로지 소냐 간디의 혈통만을 물고 늘어졌다. 소냐 간디의 출생지 문제는 바로 선거 쟁점으로 불붙었지만, 승리를 거두지는 못했다. 정권은 야당이던 회의당이 되찾아갔다.

야당이 승리하게 된 계기에는 소냐 간디에 대한 ‘유럽 식민지’ 논쟁을 라지브 간디의 아들이자 인디라 간디의 손자인 라훌 간디가 차단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라훌 간디는 자신의 아버지가 암살된 후 암살 협박에 외부에 나타나지 않고, 홈스쿨을 통해 공부를 하면서 일체 외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가 2004년 선거에 혜성같이 등장하였다.

그러면서 선거는 오로지 네루의 외증손자이자 인디라 간디의 손자인 라훌에게만 쏠렸다. 라훌 간디는 아버지 라지브가 암살 당했을 때는 스물한 살인 앳된 청년이었으나 2004년 정계 입문하였을 때는 어엿한 30대 중년으로 성장해 네루 가문을 잇는 어엿한 재목으로 보이기에 충분하였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의 지역구인 웃따르 쁘라데시 주의 아메티(Amethi)를 선거구로 하여 국회의원으로 당선되었다. 어머니인 소냐 간디는 자신의 지역구를 아들에게 넘겨주고, 라훌의 할머니이자 자신의 시어머니인 인디라 간디의 생전 지역구인 라이바렐리(Rae Rareli)로 옮겨 동반 당선되었다.

2004년 총선에서 승리한 회의당은 극우 세력이 계속해서 ‘이탈리아의 식민지’가 된다고 자극하면서 그 점을 물고 늘어짐으로써 극우 민족주의를 부추길 가능성이 있어 (소냐 간디가) 수상직에 오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여전히 네루 가문의 정치적 자산 위에서 정치인 입지를 탄탄히 누리고 잇는 것만은 사실이다.

결국 혈통 정치는 라지브와 소냐 간디의 아들 라훌 간디로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오로지 가문과 혈통을 가지고 지역구를 좌지우지 하는 보수 정치인이나 그 거물급 인사를 통해 자신의 일신의 영당을 꾀하려는 얄팍한 민심이 들어맞은 영원한 제국의 역사다.

2004년 총선 당시 회의당(I)는 아메티가 속한 U.P.(웃따르 쁘라데시) 주의회 80석 가운데 10석밖에 확보하지 못하는 참담한 상황이었다. 라훌은 혜성같이 정계에 등장하면서 선풍을 일으켰는데, 특히 젊은 층이 그에게 열광을 했다. 전형적인 이미지 선거였다.

그는 할머니 인디라 간디의 죽음을 잘 활용해 당시 집권당인 인도국민당을 국가 분열을 조장하는 세력이라 비난하고 자신을 모든 종교와 카스트를 통합하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특히 무슬림 테러를 부추기는 외부 세력 (=파키스탄을 의미함)이 있다며 비판했으나 여당의 지지 기반인 힌두 근본주의의 난동에 대해서는 특별한 비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어머니와 여동생이 주로 지역구 선거 운동을 하게 하고 자신은 전국을 다녔다. 인디라 간디와 라지브 간디를 그리워하는 국민들은 그에게 환호했고 그 결과 인도국민당에게 빼앗긴 정권을 약 10년 만에 되찾게 되었다.

하지만 인도국민당과 수구난동세력이 뿌려놓은 아요디야(Ayodhya)를 중심으로 하는 종교 공동체 간의 충돌이 여전히 불씨로 타오르고 있는 자신의 지역구가 속한 웃따르 쁘라데시 주에서는 기대 이상의 큰 성과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하지만 2009년 주 의회 선거에서는 주 의회의 25%를 차지하는 선전을 했다.

아요디야 모스크를 파괴하고 종교 공동체주의에 불을 붙인 후 10년 동안 집권을 한 수구 세력인 인도국민당과 그 연대 세력들은 라훌 간디에 대해 야당은 세습 정치라고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지만, 워낙 강한 혈통 중심의 세계관에 쌓인 인도인들에게 그리 크게 먹히지는 않는다. 라훌 간디는 상대적으로 젊은 나이인지라 젊은 층에 대한 기대와 개혁을 하겠다는 레토릭에 열중하는 편이다.

작년에는 시민감시법안(Citizen’s Ombudsman Bill)을 검토 도입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이곤 했지만, 그 어떤 구체적이고 실효성이 있는 방안을 내지 않았다. 그것은 단지 2009년 이후로 부패 문제가 본격적으로 이슈화되면서 시민운동가 안나 하자레(Anna Hazare)가 이끄는 부패 척결 운동이 델리를 비롯한 전국에 들불같이 퍼지는 상황에서 나온 임시방편인 셈이다.

라훌 간디는 상대적으로 젊다는 이미지와 상승 효과를 내면서 청렴한 이미지의 정치인으로 자리매김 할 뿐이었다. 속 빈 강정일 뿐이었다. 자신의 아버지도 젊음을 무기로 청렴한 이미지를 만들었으나 결국 비리로 정권을 내주었다는 사실을 국민은 망각하였기 때문에 보수 정치인들은 유물이 되어 버린 칼집에서 이미지 정치를 다시 꺼내 든 것이다.

급기야 2013년에는 그는 회의당(I)의 부총재로 선출되어 당의 청년 조직과 대학생 조직을 이끌어 왔다. 그리고 올 봄 2014년 인도 총선에서 회의당의 수상 후보로 선거를 이끌었으나 대패하였다. 이탈리아 태생 어머니를 두고 있다지만, 인도에서 태어났고 민족주의의 상징인 힌디를 모어로 구사하는 전형적인 힌두 인도인이라 네루 혈통의 후예로 완벽한 셈이다. 결국 혈통에 기반을 둔 ‘네루 왕조’는 여전히 살아 있는 인도 정치의 진행형이다.

라훌과 모디

라훌 간디(왼쪽)와 나렌드라 모디

하지만 ‘네루 왕조’의 힘은 예전 같지 않다. 지금은 오로지 돈, 돈, 돈 … 경제 성장을 내세운 인도국민당의 시대가 왔고, 이는 당분간은 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라훌 간디로 이어지는 4대 세습이 과연 성공을 거둘지는 미지수다. 그것은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다.

라훌 간디의 아우라는 그의 아버지나 할머니와의 그것과는 달리 그렇게까지 성스럽지는 않다. 그의 아버지인 라지브는 정국이 시크교도에 대한 복수라는 블랙홀에 빠져 선거의 모든 이슈가 사라진 채 선거를 산 라지브가 치른 게 아니고 죽은 인디라가 치른 것이어서 압승을 거둘 수 있었다. 할머니 인디라 때는 인도를 독립으로 이끌고 분단의 과정에서 국민국가의 통합을 내세운 네루의 후광이 준 아우라를 국민들이 벗어나기에 역부족이었고, 인도국민회의의 조직력을 감당할 만한 야당이 존재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라훌은 비단 야당뿐만 아니라, 많은 지식인들로부터 야유와 조롱을 받는다. 과거에는 있을 수 없는 풍자와 패러디가 봇물처럼 쏟아진다. 그가 하바드 경영대학원 1년을 제대로 다녔는지, 영국의 캠브리지 트리니티 컬리지의 준박사(M.Phil)를 제대로 마쳤는지 등에 대한 시비는 여전히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을 봐도 그는 과거 자신의 집안 어른이 누린 아우라를 누리지 못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그렇지만 가장 큰 적은 야당 지도자인 나렌드라 모디(Narendra Modi)가 구자라뜨 주지사로 거둔 경제 발전의 성과다. 모디는 2002년 구자라뜨 학살을 실질적으로 자극하고 진두지휘 한 정치인이다. 그래서 일각에서는 도살자라 불리는 사람이다. 수구난동세력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경제 정책을 적극 받아들여 자신이 주지사로 있는 구자라뜨 주의 경제 지표는 매우 빛이 난다. 경제 정의나 사회 정의 혹은 빈부의 격차 같은 것은 생각할 겨를이 없다. 그가 도살자든 학살자든 개의치 않는다. 오로지 필요한 것은 빵이다. 4대 세습이냐, 학살자냐? 인도인들의 선택에 귀추가 주목된다.

혈통에 의존하는 투표 행위는 아시아 각 나라가 식민 지배를 받은 후 근대적 의미의 시민 사회를 이루지 못해 만들어진 결과다. 노동자, 농민, 자본가 혹은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주아 등 비본질적이고 생득적이지 않은 여러 집단을 중심으로 사회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그런 현상이 발생한 것이다.

그 빈 자리를 어떤 곳에서는 언어가, 어떤 곳에서는 지역이, 어떤 곳에서는 종교가, 어떤 곳에서는 반공이, 어떤 곳에서는 혈통이 그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대체적으로 그 여러 자리들은 국가주의를 기반으로 지탱되었다.

1970년대의 한국의 박정희, 북한의 김일성, 필리핀의 마르코스와 같은 독재자들은 국가주의를 최대한 활용하면서 강력한 카리스마를 쌓았다. 그 안에서 한국은 국가주의와 혈통 그리고 지역주의를 묶은 봉건 체제를 한국식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주조하여 활용하였다.

하지만 그 못지않은 또 하나의 신화가 있다. 1990년대부터 아시아 각국에 불어 닥친 신자유주의의 광풍이다. 아시아 각 나라들은 다양한 경제 위기를 극복해 가는 과정 속에서 경제 제일주의 속에서 무한경쟁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해법으로 찾았고, 그 여정 속에서 어렵게 성취한 민주주의를 후퇴하는데 동의하고 있다. 오로지 돈과 성공, 정글에는 인간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배고픈, 경쟁에 목을 맨 짐승들만 우글거렸다.

한국 사회도 마찬가지였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국민의 다수는 경제를 살릴 것처럼 보이는 이명박을 선택했다. 그가 전과 16범이고 아니고는 관심 밖이다. 그렇지만 그는 국정 운영을 잘못했고, 그 결과 국민은 정권을 바꾸는 것으로 뜻을 모으는 게 하는 것이 아니고 사람을 바꾸는 데로 뜻을 모았다.

야당이 독재자의 딸이라는 프레임을 걸면 걸수록 국민의 다수는 경제 중흥의 지도자 박정희를 떠올렸다. 국민은 박근혜의 아버지가 독재를 했건, 이명박이 국정을 망쳤건 개의치 않았다.

그들은 사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보았다. 그들은 박근혜를 통해 경제 개발의 위대한 영도자를 떠올린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에 순간적으로 후회를 한다, 그렇지만 다시 만들어진 신화를 이겨낼 수는 없다. 박근혜씨가 자식이 없다고 해서 안심하지 말라. 없는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신화다.

필자소개
이광수
역사학자. 사진비평가. 부산외국어대학교 인도학부 교수. 저서로는'사진인문학', '붓다와 카메라', '제국을 사진 찍다' (역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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