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보정치의 어제와 오늘
    진보3당의 지역 평당원들의 대화를 소개하며
        2014년 06월 17일 09:5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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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산외대 이광수 교수와 이창우(정의당), 남종석(노동당), 최희철(녹색당) 4명의 부산지역 진보정당 당원들이 한국 진보정치의 과거, 현재, 미래에 대해 서울이 아닌 지역의 시각, 고위직이나 명망가가 아닌 평당원의 시각에서 수차례의 긴 방담을 나누었다. 도대체 왜 진보정치는 이렇게 일그러지고 몰락했나라는 안타까움이 출발이었다. 작년 7월부터 10차례  방담을 진행했고, 올 지방선거 이후에 한 차례 더 진행했다. 앨피출판사에서 이 방담을 묶어서 곧 한 권의 책으로 출판될 예정이다. 이 책의 서문으로, 방담의 취지와 고민에 대해 남종석씨가 대표로 정리했다. 문제의식이 압축된 책의 서문이 독자들과 공유할 가치가 있다는 판단이 들어 필자들과 앨피출판사의 동의를 얻어 게재한다.<편집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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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고된 지방선거 진보정당들의 성적표

    2014년 지방선거가 끝났다. 세월호 재앙과 이에 대한 정부여당의 무능력이 극적으로 드러나면서 제1야당인 새정치연합은 9개 광역시도에서 승리했지만 진보정당들은 몰락했다.

    통합진보당은 전국에 후보를 내었지만 지역구에서 단 한명의 광역의원도 당선시키지 못했다. 정의당 역시 마찬가지다. 노동당은 전국적으로 겨우 1%대의 지지를 받았고, 녹색당도 마찬가지다.

    이번 선거는 지난 선거까지 있었던 야권연대가 불가능한 상황에서 치러진 최초의 선거였으며, 새정치연합은 광역의원만이 아니라 기초의회 의원까지 모조리 출마시키면서 비한나라당 표를 독식했고, 그나마 있던 진보정당 기초의원의 몫까지 다 가져가버렸다. 진보정치는 시민들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으며 존재 기반마저 심각하게 문제시 되는 상황에 이른 것이다.

    진보의 몰락은 이미 예상되었던 바이기도 하다. 2010년 통합진보당 당내 경선과정에서 있었던 투표 부정 사태로부터 시작하여, 통합진보당의 분열과 연이은 정의당의 창당은 진보가 균열을 거듭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건이었다.

    더군다나 대리투표와 같은 경선 부정이 존재했음에도 불구하고 통합진보당 잔류파인 자주파들은 자신들은 아무런 잘못이 없으며, 대리투표는 관행이었을 뿐이라고 스스로를 정당화해 왔다. 부정투표도 관행이니 문제없다는 것이다.

    또한 ‘우리만 부정투표 했냐, 너희도 하지 않았냐’ 하면서 통합진보당 잔류파와 탈당파 간의 갈등은 진흙탕이 되었고, 이에 대한 시민사회와 대중들의 반응은 매우 차가웠다. 한때 진보진영은 민주주의를 향한 헌신성, 약자들과 함께 하는 정의, 연대의 정신과 동일시되었지만, 이제는 기성 정치권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더 부패한 세력으로 비춰지기 시작한 것이다.

    2013년 ‘통진당 사태’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통합진보당의 당권파로 알려진 경기동부연합 세력은 주요 활동가들의 비밀모임에서 전쟁 시 ‘무장투쟁’ 가능성까지 언급한 것이 밝혀지면서 통합진보당 당권파들이 ‘주사파’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난 것이다.

    통합진보당 당원과 당권파의 핵심세력을 동일시 할 수는 없지만 그들 지도부가 북한에 대한 충성도가 높은 집단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 되었다. 이제 진보는 ‘종북’과 동일시되었고 대중의 지지는커녕 혐오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리고 만 것이다.

    북한체제의 비정상성에 대한 비판의식은 고사하고 그 체제를 숭배하는 집단이 진보진영에 남아 있다는 것은 대중들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시민운동 진영도 마찬가지다. 과거 시민운동진영은 민중운동과 진보진영의 연대세력이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 시민운동 진영은 자신들과 이해관계가 밀접히 결합된 새정치연합과의 정책연대를 더 중요시 한다. 진보정당들은 고립되었고, 왕조를 숭배하는 ‘반민주주의’ 진영이 되었으며, 성찰하고 반성하지 않는 집단으로 전락하게 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진보가 몰락하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하다. 2000년 민주노동당의 창당과 함께 민중의 독자적 정세력화라는 희망에 부풀어 올랐던 진보진영은, 제도권에 진입한 지 십 수 년 만에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든 낙제생이 되었고, 도덕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는 집단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6,4 지방선거의 결과는 이미 몰락한 진보정치에 대한 사형선고인 셈이다.

    진보3당

    진보정당 1기, 민주노동당을 돌아보며

    필자는 90년대 말에 진보정당의 당원이 된 것으로 기억된다. 당시는 민주노동당이 아직 건설되기 전으로 민주노동당의 전신이었던 ‘국민승리 21’로 존재하고 있었다. 1990년 대학에 입학한 후 필자는 민중민주파(People’s Democracy: PD)와 인연을 맺게 되었다. 민중민주파란 오늘날 주류 언론들이 평등파라고 칭하는 진보진영의 한 축이다.

    90년대 이후 민중민주파의 중요한 정치적 목표 가운데 하나는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였다. 우리는 보수적인 우파정당만이 존재하는 한국 사회에서 사회주의를 표방하는 정당이 존재하게 된다면 그것은 분명 역사의 큰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더불어 노동자 민중의 이해를 대변하는 정당이 국회에 들어감으로써 노동자계급의 실질적인 이익을 의회 공간 내에서 실행할 수 있는 축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한 것이다.

    당시 노동운동에 참여하고 있던 다수의 세력들은 전위정당 노선을 포기하고 합법적인 대중정당 건설을 목표로 정치적 합의점을 만들어 가고 있었다. 일부 근본주의 좌파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민중민주파는 대중적인 계급정당 건설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1997년 대선 당시 민중진영은 권영길 민주노총 전위원장을 민중후보로 추대하여 대선에 참여하게 된다. 국민승리 21로 이름 붙은 선본은 보수 양당으로 굳어진 한국 사회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다. 2000년 창당하게 된 민주노동당은 국민승리 21을 모태로 하여 탄생하게 된다. 초기 민주노동당은 독자적 정치 세력화의 필요성을 강하게 느끼고 있던 노동운동 정파들, 비자주계열의 노동조합 활동가들, 진보적 시민들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

    오늘날 자주파로 불리는 민족해방파(National Liberation: NL)는, 당시까지만 해도 미국의 신식민지인 남한에서 독자적인 진보정당은 필요하지 않다고 여겼다. 그들은 자유주의 성향의 보수야당을 비판적으로 지지해서 자주적 민주정부를 수립하는 것을 목표로 두고 있었다.

    더군다나 자주파 가운데는 독립된 국가로 북한이 존재하기 때문에 한반도의 해방은 전략적으로 북한 노동당에 의해 지도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주사파들도 있었으며, 이들은 남한에서 독자적인 전략적 지도부가 존재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자주파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과 같은 전선체를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민주노동당의 창당 이후 민족해방파들은 점차 민주노동당으로 가입하기 시작한다. 민족해방파들이 주도하던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 2001년 충남 괴산군 군자산에 모여 합법적 대중정당 건설을 결의한다.

    이른바 ‘군자산 결의’로 알려진 이 활동가 대회에서 채택된 문건 ‘3년의 계획, 10년의 전망’에 따라 그들은 10년 안에 자주적 민주정부를 건설하고 연방제 통일을 이루기 위해 합법정당을 만들고 이 정당을 통해 집권하겠다는 계획을 마련한 것이다.

    이 결의가 있은 후 민족해방파들은 민중민주계열이 만든 민주노동당에 조직적으로 가입했으며, 점차 당권을 장악해 들어간 것이다. 민중운동의 다수파였던 민족해방파들은 2004년을 기점으로 민주노동당의 당권을 장악했으며 다수파로서의 실질적인 지위를 확보한 것이다.

    이 과정을 통해 민주노동당은 민중민주파와 민족해방파가 공존하며 내부에서 경쟁하는 체제가 되었으며, 한쪽은 평등파로 다른 쪽은 자주파로 불리게 된 것이다.

    민중민주파가 평등파고 분류되는 것은 이들이 남한 사회내의 계급갈등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계급간, 성별간 평등의 실현을 중요한 전략적 목표로 삼고 있는 것이다.

    반면 민족해방파는 한국 사회의 주요모순이 미제국주의의 억압 때문이라고 보고, 미제국주의의 식민지로부터 해방되는 것 즉 민족자주를 실현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전자는 평등파 후자는 자주파로 불리게 된다.

    평등파도 그렇듯 자주파 내부에도 구별되는 흐름이 존재한다. 과거 전선체로 있을 당시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은 지역 조직들의 연합체였다. 이 조직은 광주전남연합,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 울산연합, 부산연합, 농민회 등이 결합된 조직이다. 이들 가운데에서 경기동부연합이 자주계열의 최대 정파가 된 계기는 이들이 2006년 광주전남연합과 통합하여 범경기동부연합을 결성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자주계열은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 부산연합과 같은 계열인 울산연합 등 크게 3개의 핵심 분파를 주축으로 구성되어 활동해 왔다.

    이들 내부에서는 주체사상을 수용하는 집단도 있고 그렇지 않은 집단도 있기 때문에 일괄적으로 주사파라고 지칭할 수도 없으며, 핵심지도부의 사상과 지지층의 입장이 동일한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주파 내부의 차이가 존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대외적인 활동에서 이들은 늘 공동의 행보를 취해왔으며, 단결된 모습으로 활동해온 것이다.

    자주파가 당권을 장악한 이후 민주노동당에서는 바람 잘 날이 없었다. 당은 늘 노선투쟁, 헤게모니 투쟁으로 시끄러웠다. 자주파들은 언제나 반미자주화를 중요한 투쟁의 목표로 삼았다. 미군기지 반대, 한미군사 훈련 반대, 맥아더 동상 해체, 국가보안법 철폐가 이들에게는 무엇보다도 중요했다. 반면 평등파는 민생, 복지, 신자유주의 반대 등을 중요한 정치적, 정책적 목표로 삼았다.

    두 경향이 대립되는 것은 아니지만 강조점은 뚜렷이 달랐다. 그러다 보니 정책목표, 투쟁방향을 둘러싸고 갈등이 늘 있었다.

    갈등을 더욱 극적으로 만든 것은 북한 핵무기 개발과 핵실험 관련 논쟁이었다. 평등파는 민주노동당의 강령에 근거하여 모든 핵무기를 반대하고 핵발전도 반대했다. 평등파의 입장에서 보면 북한 핵무기도 미국 핵무기처럼 민족의 생존을 볼모로 잡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식이 존재했다.

    반면 자주파들은 북한의 핵무기 보유가 미제국주의와 대결하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북한이 보유하는 것이라고 보았다. 자주파들은 핵무기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반대하지만 미국이 핵무기를 보유한 이상 북한도 핵무기를 가질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왜냐하면 미국은 호시탐탐 북한체제를 전복시키려고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평등파의 입장에서 자주파들의 이런 태도는 기가 찰 노릇이었다. 평등파들은 어떻게 진보정당이, 평화주의 정당이 핵무기에 대해 침묵하거나 지지할 수 있는가 라고 생각하였다. 두 진영 간의 골은 갈수록 깊게 패였고, 그 사이에서 상처가 곪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도 있었다. 소위 일심회 사건이다. 일심회 사건은 민주노동당 사무부총장이던 최기영 등이 민주노동당 당원들의 신상을 북한 정보원에 넘긴 것을 말한다.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의 직접적 계기는 이 사건이었다. 평등파들이 보기에 자주파 중 핵심세력은 여전히 주사파였고, 그들은 민주노동당의 정보를 북한 공작원에게 제공했던 것이다.

    이 사건이 발발하고 난 이후 평등파들은 발칵 뒤집혔다. 평등파들에게 자주파는 남한 사회의 독자적 변혁을 포기하고 남한 진보진영을 북한 노동당의 정책에 종속시키는 존재로 보였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당내의 정보를 북한에 제공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평등파는 북한에 정보를 제공한 두 당직자들은 민주노동당에서 제명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원 정보유출을 매우 심각한 반당 행위로 본 것이다.

    자주파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은 아직 재판이 지속되는 상황이고, 국가보안법으로 공격받는 동료를 어떻게 제명할 수 있냐고 버티었다. 결국 일심회 사건을 계기로 평등파의 일부가 민주노동당을 탈당하면서 진보는 다시 분화되기 시작한다.

    선도 탈당파들이 당에서 탈당한 이후 심상정 의원을 위원장으로 비상대책위원회가 결성되었지만, 2008년 민주노동당 대의원 대회에서 심상정 비대위 안이 부결됨으로써 남아 있던 평등파조차 모두 탈당함으로써 민주노동당은 공식적으로 분화하게 된 것이다. 그 이후의 사태는 앞에서 이야기한 바와 같다.

    앞에서 언급했던 ‘이석기 그룹’은 경기동부연합의 핵심적인 활동가 조직이었다. 1심 판결에서 법원은 이석기 전의원을 비롯하여 이 그룹의 핵심 활동가들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필자는 이들이 무슨 내란 음모를 꾸몄다거나 그들 모임에 대해 어떤 내란죄가 성립된다고도 믿지 않는다.

    그러나 필자는 언론에 발표된 ‘이석기 그룹’ 토론 녹취록을 읽고서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의 대화록은 21세기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좀처럼 듣기 어려운 컬트적인 특징이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도 자주파 일부가 주사파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정도가 저렇게 심할 것으로는 생각하지 못했다.

    3대 세습체제, 억압적인 단일 정당 지배, 민족의 절멸을 초래할 수 있는 핵무기의 보유와 핵실험, 호전적이고 선정적인 프로파겐다 등 북한은 현대적인 문명사회라기보다는 비정상적인 전체주의 사회로 남한 대중들에게 비춰진다. 그 시각이 모두 옳다고는 할 수 없지만 북한체제가 낡고 후진 사회라는 것은 어느 누구도 부정할 수 없다.

    그런데 한국 사회의 가장 진보적이라고 스스로 주장하는 집단이 북한 체제를 숭배하고, 따르고 있다는 것은 어떤 점으로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것은 주사파를 바라보는 일반 시민뿐만 아니라 자주파를 제외한 모든 진보진영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이다. 심지어 같은 자주파들인 인천연합조차 이석기 그룹과 같은 주사파들과는 다른 길을 걷고 있는 것이다.

    진보가 무엇인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 좋은 방향으로의 변화를 표상하는 것 아닌가? 그런 진보진영이라면 인권, 민주주의, 착취로부터의 해방, 자유, 평등, 생태 이런 것을 표방해야 하는 것 아닌가? 어떻게 낡고 낡은 체제를 옳다고 여기며 그것을 따를 수 있는가? 대중들이 갖는 이런 의문은 너무나 정당하며, 평등파들이 자주파들에 대해 갖는 의문은 결코 오해라고 할 수 없다.

    다만, 아쉬운 것이 하나 있다면, 자주파의 열정과 헌신성을 어떻게 살릴 수 없을까 하는 점과 평등파는 마치 분열을 향해 달리는 기관차 같은 태도다. 그 두 가지의 아쉬움이 전체 진보 정당에 속한 모든 이의 마음속에 짙게 배어 있지 않을까? 착잡하다.

    2013년 ‘이석기 그룹’ 사태는 평등파가 자주파에게 갖고 있던 의구심을 확증시켜 주었다. 비록 국정원이 제출한 녹취록이 조작된 측면이 없지 않았지만, 그들 모임에서 나온 발언들 다수는 자주파의 핵심 세력이 주사파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자주파가 진보진영의 가장 큰 세력이라는 점은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다. 다수의 대중들은 자주파니 평등파니 잘 구별하지 못한다. 이들에게는 이석기 그룹, 자주파의 모습이 진보진영 전체와 다를 게 없는 것이다. 이석기 사태 이후 진보의 몰락은 예정되어 있던 것이다. 지난 6.4결과는 이를 확증시켜주는 것일 뿐이다.

    과거엔 같은 당의 당원, 지금은 서로 다른 당의 당원들의 대화

    통합진보당 사태로 황망한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고 있던 2014년 초, 부산외국어대학 이광수 교수가 ‘진보가 어쩌다 이렇게 되었나?’를 주제로 진보정당의 평당원들의 입장에서 몇몇이 모여 자유로운 토론을 한 번 해 보면 어떻겠느냐 라는 제안이 들어왔다.

    학술적인 논의나 정치적 논쟁보다는 진보정당에서 음으로 양으로 몸을 담았던 지역의 평당원 입장에서 우리들의 경험을 토대로 그간 진보진영에 쌓여 있던 여러 문제들을 허심탄회하게 이야기 하고, 그 폐부까지 한번 발가벗겨보자는 것이었다. 서로 갈라져서 지리멸렬해진 진보진영의 평당원들이 모여, 진보정치에서 무슨 일이 있었고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주제로 자유로운 토론을 한 번해보고, 이를 바탕으로 책을 내 보자는 견해를 제시한 것이다.

    우리들은 노동당, 녹색당, 정의당 당원이었다. 한 때는 모두 민주노동당 당원이었다가 지금은 각각 당적을 달리 하는 이른바 탈당 전문가이자 입당 전문가들이다. 탈당과 입당의 지속적 반복, 이것은 어쩌면 한국 진보좌파의 운명이자 죽어가고 있는 진보의 증거이기도 하다. 통합과 분열, 갈등이 진보정당의 역사이듯.

    이광수 교수의 제안은 이 모든 역사를 있는 그대로, 날것의 상태로 한 번 곱씹어 보자는 것이었다. 이 제안을 처음 접했을 때 나는, 정당 활동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는 상황에서 책임 있는 발언을 할 수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이광수 교수는 오히려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우니까, 정치적 고려로부터 자유로우니까 모든 것을 이야기 할 수 있고,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있어야 진보진영에 대해 갖고 있는 대중들, 진보적 시민들의 궁금증도 풀 수 있으며, 그 궁금증을 풀어나가며 이에 대해 어떻게 답변할 것인가를 고민하는 게 진보의 재생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조건이 아니겠느냐며 설득했다.

    평당원들의 걸러지지 않는 목소리야말로 진보진영이 처한 냉정한 현실을 인식하는데 도움이 되는 것이고, 이런 과정을 거쳐 진보정치의 현실을 진단해 보는 것이 진보진영이 재도약 하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문제의식이었던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시도는 진보정치에 대한 일종의 민족지학적인 탐구인 것이다. 현장의 구체적 경험을 거르지 않은 속살 그대로를 재현 하는 것 말이다.

    우리는 크게 세 꼭지로 나누어 토론을 진행했다.

    첫째 부분은 자주파를 탐구하는 것이었다. 자주파 내에 최대 정파는 경기동부연합이고, 이 조직의 핵심구성원들은 주사파이다. 자주파에 대한 토론은 자연스럽게 주사파와 연관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나 토론은 주사파 자체에 대한 것보다 민주노동당, 통합진보당에서 자주파와 함께 한 역사를 통해 그들이 ‘실천적으로’ 어떤 존재인가에 초점을 맞추었다. 자주파의 생각이 무엇이든지 간에 구체적으로 드러난 그들의 실천의 문제를 다루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자주파와 관련된 토론 과정에서 이들은 집단적 성찰을 거부하는 조직문화를 갖고 있으며, 대의의 정당성(반제국주의, 통일 등)으로 모든 활동을 정당화하는 독특한 전통을 지닌 조직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자주파의 역설은 ‘민주주의의 문화에 전혀 익숙하지 않은 집단이 민주주의를 위해 가장 헌신적으로 투쟁하는 조직’이 되었다는 점이다.

    두 번째 꼭지에서는 평등파에 관해 토론했다. 평등파를 단 하나의 정파로 묘사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평등파의 공통성을 확인시켜 주는 유일한 잣대가 있다면 그것은 아마 비자주파 진보세력(정당과 사회운동진영)이라는 점이다. 그 외에 평등파를 규정하는 공통분모가 있는지 의문이다.

    평등파의 가장 오른 쪽에 자리 잡은 집단은 진보적 자유주의이다. 국민참여당 계열 출신들은 미국 민주당 좌파 정도의 진보성을 지니고 있다.

    진보적 자유주의자들의 왼쪽에는 사민주의자들이 있다. 유럽식 복지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이들의 목표이다. 이들은 자본주의 체제 내에서 평등과 인권, 민주주의의 심화를 주장한다는 점에서 진보적 자유주의와 친화성이 있다. 반면 계급불평등 해소, 노동자계급의 단결, 경제적 구조개혁을 주장하는 점에서 사회주의와 친화성을 갖는다.

    사민주의의 왼쪽에는 사회주의자들이 있다. 사회주의자들 가운데서도 합법적 대중정당을 통해 ‘민중의 독자적 정치세력화’를 추구하는 민주적 사회주의자들도 있고, 여전히 전위정당을 건설하여 남한 자본주의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마르크스-레닌주의자도 존재한다. 이들 모두가 평등파인 것이다.

    거기다가 최근 주목받고 있는 녹색당도 범평등파에 속한다. 녹색은 근본적으로 산업주의를 비판하기 때문에 사회주의와 선택적 친화성을 갖기 때문이다.

    평등파와 관련된 토론에서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정의당은 진보적 자유주의와 사민주의자들이 연합하고 있지만, 아직 독자적 정체성을 확립한 정당이 아니라 과도기적으로 존재하는 정당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정의당은 경우에 따라 오른쪽으로도 갈 수 있고 더 왼쪽으로도 갈 수 있는 과정 중의 정당이라는 것이다.

    더불어 정의당은 자본주의 내에서 개혁의 심화를 주장하지만 사실상 자본주의와 타협했다는 비판으로부터도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노동당은 매우 헌신적인 활동가들이 존재하지만 내부의 반정치주의 문화, 근본주의, 정치적 역량의 부족으로 인해 점차 당세가 약화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노동당이 선명하게 주장하는 사회주의적 목표는 말은 화려한데, 구체적인 실행전략이 부족하기 때문에 공허한 측면이 강하다는 것이었다. 좋은 이야기지만 이를 실현할 구체적인 프로그램도 없고 실력도 부족하다는 것이다.

    녹색당은 근본주의적 관점을 견지하고 있지만 당세가 매우 작고, 주된 구성원들은 중간계급 교양인들이며, 정치적 경험이 거의 없는 ‘순진무구한 세력’이라는 것이다.

    셋째 꼭지에서는 진보정치의 미래를 다루었다. 앞으로 진보진영이 어떤 경로를 거처가야 재생가능한가를 집중적으로 토론했다. 토론과정에서 모두가 합의한 것은 진보좌파가 이렇게 갈라진 현실에서 미래는 없다는 것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진보는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진보진영에게 주어진 선택의 경로는 여럿 있었다. 그 중 하나는 빅텐트론이다. 진보진영이 새정치연합에 들어가 좌파블럭을 형성하는 것 말이다. 어차피 진보좌파가 독자적인 힘을 구축할 수 없다면 새정치연합에 들어가 생존을 모색하며 미래를 설계하자는 것이었다. 토론에 참여한 네 명 모두 이 가능성을 부정했다. 이념적 조건에서 부정하는 이도 있었고, 지금까지의 경험을 토대로 거부하는 이도 있었다. 새정치연합에 들어가는 것은 몇몇 스타 정치인들의 개인적 성공 외에 다른 가능성이 없다는 것이었다.

    다른 하나는 자주파와 재통합을 해야 하는가이다. 우리들의 결론은 당분간 자주파 특히 그 핵심인 주사파들이 변화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았다. 우리는 자주파와 정당통합을 하기 위해서는 자주파들이 경기동부연합과 분리하거나 지금까지의 조직문화에 대한 깊은 성찰과 자기 비판이 있어야만 한다는데 합의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연대 세력은 될 수 있을지언정 연합세력은 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더군다나 자주파를 포함하는 통합전략은 통합 자체를 불가능하게 할 것이기 때문에 그 과제는 미래의 일로 미루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현실적으로 실행가능한 경로는 녹색당, 노동당, 정의당과 민주노총을 토대로 활동하고 있는 제 세력들이 공통의 집에서 함께 동거하는 것이었다. 그것이 구체적으로 어떤 경로를 통해, 어떠한 형식으로 만들어야 하는지는 활동가들의 상상력과 추진력에 맡기기로 했다.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은 녹색당 내부에서도 세력형성이 필요하다는 현실적인 판단이 등장하고 있고, 노동당 내부에서도 새로운 전환이 모색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정의당은 원래 과정으로서의 정당이니까 어떤 방향으로 당겨지는가가 그 미래를 결정할 것이지만 그리 쉽게 새정치연합으로 흡수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앞서도 밝혔듯이 우리는 부산이라는 한 지역의 진보정당 평당원들이다. 그야말로 작은 목소리의 주인공일 뿐이다. 우리가 진단하는 진보정치의 현실은 그 본질을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을 수도 있고, 우리가 제시하는 진보정치의 방향이 틀렸을 수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책의 부제를 ‘작은 목소리’라고 붙였다.

    덧붙여 우리가 제시하는 방향은 이미 많은 활동가들이 공유하는 문제의식이라 특별히 새로운 것이 없을 수도 있다. 다만 우리는 이 방담에서 현재까지 진보진영 내부의 여러 모순점, 갈등, 입장 차이를 여과 없이 토로했다는 것만은 말할 수 있다. 이 방담이 진보의 재구성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2014년 6월 16일 네 사람을 대표하여 남종석 씀

    필자소개
    경남연구원 연구위원.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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