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재보험도 '민영화' 시작
    사회보험제도의 틀 자체 위협
    노동부 "산재보험 민영화하려는 보험회사 많아" 우려
        2014년 04월 08일 03:3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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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표적인 사회보험 중 하나인 산업재해보험(산재보험)의 민영화가 시작되고 있지만 이를 저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법률조차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는 실정이다.

    현재 산재보험은 보험설계사, 학습지교사, 레미콘 기사 등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의무적으로 적용되고 있지 않다. 이들이 (개인) 사업자라는 이유이다. 그러다 지난 2008년 이들 노동자들도 산재보험을 ‘선택’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됐지만, 사업주들이 이를 기피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10.3% 수준에 머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대선 대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의무 가입을 공약한 바 있고, 국회 환노위에서도 관련한 법안이 발의됐다.

    새누리당의 최봉홍 의원이 발의한 <산업재해법>은 모든 노동자들이 산재보험에 ‘의무 가입’시키는 안은 아니지만, 현재 사업주들이 악용하고 있는 ‘산재보험 적용예외 신청’에 제한을 두어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을 재고시키겠다는 것이다.

    정부 여당에서 발의한 데다가 노동부측에서도 필요한 법안이라고 동의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문제는 다른 곳에서 터졌다. 바로 보험회사들이 지난해 하반기부터 특수고용노동자들 대상으로 민영 산재보험을 출시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국회 환노위에서 최 의원의 개정안을 두고 여야와 정부까지 모두 이견이 없었지만 새누리당의 이완영 의원이 보험회사의 민영 산재보험을 이유로 격렬하게 반발했다.

    특히 격론 끝에 환노위에서 이 법안이 처리됐지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권성동 의원이 다시 제동을 걸어 표류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보험회사, 민영 산재보험 출시…민영화 전초전 우려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들은 44만여명에 이른다. 그 중 보험설계사가 33만여명으로 가장 많다.

    일반 노동자들은 산재보험료 부담액이 없다. 전액 사업주가 부담한다. 반면 특수고용노동자들은 산재보험을 ‘선택’해 가입할 경우 절반의 보험료를 부담해야 한다.

    문제는 보험회사가 ‘민영 산재보험’을 출시했다는 점이다. 특히 보험회사는 이 보험을 단체보험 형태로 출시해 사업주가 보험료 전액을 부담하게 해 특수고용노동자들로 하여금 공영 산재보험보다 바로 이러한 민영 산재보험으로 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보험회사들은 자사 설계사를 대상으로 이러한 민영 산재보험을 권장하고 있다. 설계사들 입장에서는 보험료를 회사에서 내주고 있으니 마다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민간의 산재보험은 ‘법’이 아닌 ‘약관’에서 보장 받기 때문에 보장 범위도 사업주가 내는 보험료의 크기에 따라 달라지고, 보장성도 공영 산재보험과 비교해 떨어진다. 특히 공영보험은 노동자의 과실을 따지지 않지만 민간보험은 과실 여부를 판단하기 때문에 실제 보험금을 지급받을 수 있는지 여부는 현재로서는 파악도 불가능하다.

    택배기사

    대표적인 특수고용노동자인 택배기사들(방송화면)

    노동부측 “솔직히 산재보험 민영화하려는 보험회사 많아” 우려
    환노위 법안 심사소위에서 새누리 이완영 위원 강력 반발

    지난 2월 18일 환경노동위원회 법안심사 소위원회에서 최 의원의 개정안을 두고 특수고용노동자들이 공영 산재보험과 민영보험 중 원하는 곳으로 ‘선택’할 권리를 박탈한다는 이유에서 반대한다는 입장과, 공영보험을 원칙으로 하고 민영보험은 대체재의 역할을 해야 한다는 입장으로 갈렸다.

    특히 새누리당의 이완영 위원은 특수고용근로자 입장에서 단체보험은 100% 회사가 부담하지만, 공영보험은 근로자가 50%를 부담해야 한다는 논리를 펼치며 극렬히 반대했다.

    하지만 야당 위원들과 고용노동부조차 근로자들에게 산재보험을 공영보험과 민영보험 중 자율적으로 선택할 선택권을 준다면 다른 4대보험인 건강보험과 국민연금, 실업급여까지도 근로자가 원할 경우 가입하지 않을 권리로 확대될 우려가 있다며 난색을 표했다. 즉 사회보험 제도 전체가 무너질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이다.

    특히 정현옥 노동부 차관은 이날 “솔직히 말씀드리면 자칫 어떻게 되냐 하면 지금 그렇지 않아도 산재보험을 민영화하려고 하는 보험회사들이 굉장히 많다”고 산재보험의 민영화 가능성을 우려했다.

    보험회사가 설계한 민영 산재보험의 보장 수준이 공영 산재보험보다 훨씬 더 좋다는 이완영 위원의 주장도 쟁점이 됐다.

    하지만 이 위원이 제출한 자료에서조차 사망의 경우 유족급여가 산재보험료 월10만원 수준일 때 1억2천만원인 것에 반해, 보험회사 산재보험의 경우 월 30만원 부담할 때 1억2천만원으로 오히려 민간 산재보험의 보험료가 더 비쌌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정의당의 심상정 위원이 “(최 의원의 개정안은) 사회보험을 세워 나가자는 취지인데 민간에서 설계한 것과 어느 게 좋고 나쁘고를 어떻게 평가하냐”며 “민간보험은 사회보험보다 이윤을 더 남겨야 하는데 어떻게 더 좋을 수가 있냐”고 반박했다.

    새누리당 소속인 김성태 소위원장도 “외국에도 산재보험이 그래서 무너진 나라가 많다. 미국 같은 경우에도 민간보험요율이 사회보장보험요욜과 비교가 안 된다”고 심 위원을 거들며 “아직까지는 산재보험의 사회보장 측면을 더 강조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소위는 여야 위원 모두 최 의원의 안에 찬성했지만 이완영 위원이 끝까지 처리를 반대하면서 전체회의에서 결정하기로 했고, 2월 21일 전체회의에서 통과됐다. 그러나 이 위원은 소위원회에서 자신이 반대해왔다는 이유로 “소위 결정을 무시한 것”이라며 강력 반발했다.

    환노위에서 어렵게 통과시킨 <산재보험법>개정안, 법사위에서 ‘찬물’

    환노위에서 새누리당의 이완영 위원이 극렬히 반대하긴 했지만 다른 새누리당 위원들이 법안 처리에 동의하면서 이 법안은 같은 달 27일 법제사법위원회로 넘어갔다.

    그런데 이날 새누리당 권선동 위원은 이 개정안 심사에 앞서 “우리당의 환노위원 한 분이 전화를 해서 환노위 통과 과정에서 법적 절차를 제대로 거치지 않았다고 하면서 불만을 제기했다”고 지적하며 찬물을 끼얹기 시작했다. 역시나 보험회사의 민영 산재보험이 반대의 이유이다.

    권 의원은 자리에 배석한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에게 이 개정안에 대해 “보험설계사의 경우 보험회사에서 100% 보험회사 돈으로 단체보험을 가입해주고, 보험 범위나 대상이 훨씬 더 큰데 이거를 반대하고 (공영 산재보험 가입)을 강제하는 이유가 무엇이냐. 공단 수입 때문에 그런 것이냐”고 질타했다.

    이에 방 장관은 “특수고용직 근로자들은 사각지대에 있었고 그래서 이를 확대하는 것”이라며 “산재보험의 특성상 이건 사회보험이고, 설령 민영보험이 있더라도 역할이 다르지 않냐”고 설명했지만, 권 의원은 “역할은 다르지만 혜택은 같지 않냐”고 주장했다.

    권 의원은 “지금도 특수형태 근로종사자 본인이 원하면 고용주가 산재보험에 가입시켜주고 있다”며 “그러니깐 종사자가 뭘 원하느냐,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맞지 이렇게 국가에서 강제하는 것은 비례의 원칙이라든가 국민 복지 차원에서 오히려 더 문제가 있다”며 이완영 위원이 환노위에서 제기했던 내용을 그대로 반복했다.

    이어 권 의원은 이 개정안에 대해 논의가 더 필요하다며 이를 법안심사 제2소위원회에서 논의할 것을 요구해 이날 처리되지 못했다.

    법사위의 제2소위원회는 타 위원회 법안을 심사하는 곳으로 여야 5인씩 동수로 구성되어있고 이춘석 새정치연합 의원이 소위원장이다.

    보험설계사 김씨 “설계사들도 민영 산재보험 문제 잘 몰라”
    민주노총 “보험회사 로비에 국회가 놀아났다” 강력 비난

    새누리당의 이완영, 권성동 의원 모두 산재보험 의무 가입을 반대하는 이유로 ‘노동자들의 선택권’을 중요시 여겼다. 보험회사가 만든 민영보험이 공영보험보다도 좋다는 논리도 있다.

    하지만 보험설계사들은 이같은 논의 흐름을 제대로 알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한 생명보험회사에서 설계사로 근무하고 있는 김모씨는 <레디앙>과의 통화에서 “우리 회사의 경우 설계사들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5%에 불과하다. 이는 회사가 가입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현재 보험사가 출시한 민영 산재보험에 대해 그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는 설계사들은 많지 않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험사 입장에서는 생명보험 설계사만 15만명에 육박하고 손해보험사와 보험대리점 등에 소속된 설계사까지 30만에 육박하는 시장을 지키고 싶어하기 때문에 적어도 설계사들에게는 민간 산재보험을 권장하고 있다”며 “단체보험 형식으로 보험료 100%를 보험회사가 부담하겠다고 하는 것도 설계사들을 민영 산재보험으로 유도하려는 의도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보험사들은 현재 산재보험 의무가입 등이 법안이 통과될 경우 앞으로 보험설계사들이 자신들도 노동조합을 설립할수 있다거나 회사가 자신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해야 할 의무를 갖는 것으로 해석할 우려를 갖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영 산재보험과 비교해서도 민영 산재보험의 보장이 썩 좋은 편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현재 많은 경제전문지들은 보험회사의 민영보험이 공영보험보다 보장 범위와 혜택이 더 크다고 홍보하고 나섰지만 김씨의 의견은 다르다.

    그는 “근본적으로 보험의 가입 여부 및 보장 범위와 보험료의 크기는 사업주의 생각에 따라 바뀔 우려가 크고, 보상 기준 자체도 ‘법’이 아닌 ‘약관’으로 보장되어있는 한계를 갖고 있다”며 “그런데도 현장 일선에서 보험사측이 약관에 대한 제대로 된 설명 없이 오로지 보험료를 사업주가 100% 낸다는 이유로 적극적으로 민영 산재보험 가입을 권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제기했다.

    아울러 그는 노동부와 근로복지공단에 대해서 “보험사들이 이러한 민영 산재보험을 출시하는 것을 방치하는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국회에 대해서도 “특수고용노동자들의 산재보험 적용을 위한 법안 처리도 중요하지만, 환노위와 정무위 등 관련 상임위에서 민영보험 상품을 내놓고 있는 보험사를 규제할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의 민병두 의원(정무위원회)실의 한 관계자 역시 “민영 산재보험이 더 좋다는 주장은 보험의 원리를 봤을 때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라며 “공영 산재보험은 전체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만들었고 보험료도 노동자와 사업주가 공동으로 부담하기 때문에 리스크도 적을 뿐더러 단일 행정망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용절감 효과도 크다”고 말했다.

    이어 “그러나 민간 보험회사의 기본 원리는 이윤을 남겨야 하는데 사업비 자체가 공영보험보다도 많이 들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라며 “수익과 비용이라는 2가지 측면만 보더라도 민간 보험이 더 우월할 것이라는 일각의 주장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지적했다.

    한편 민주노총은 지난 2월 28일 국회 법사위에서 개정안 통과를 막아 2월 통과가 무산된 것에 대해 “재벌 대기업 보험 사업주 단체의 사기극에 놀아난 것”이라고 비난한 바 있다.

    당시 민주노총은 민영 산재보험에 대해 “철저히 사업주의 편의에 따라 가입 여부가 결정되고, 보상도 사업주가 낸 보험료에 따라 보장 범위가 달라진다. 더욱이 약관을 통해 대부분의 직업병을 보상에서 제외하고 있으며, 산재보험이 무과실 책임주의로 노동자를 보호하는데 비해, 과실에 따라 보상범위를 제한하고 있다”며 “가입과 약관이 모두 사업주의 권한으로 노동자들은 약관을 알 수도 없고, 허위 과장광고와 사기극으로 현혹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필자소개
    레디앙 취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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