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듀! 비둘기호 2000년 11월 14일
    [산하의 오역] 철도가 사유화되었으면 '정동진' 몰랐을 것
        2013년 11월 15일 02:56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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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재다!” 하는 탄성을 내지르는 일은 많지만 진짜 천재라고 생각하고 그러는 경우는 드물다. 내게 그 드문 경우 가운데 하나로 백무산이라는 필명의 시인이 쓴 시 하나를 읽었을 때를 들겠다. 시 제목은 <기차를 기다리며>였다.

    새마을호는 아주 빨리 온다
    무궁화호는 빨리 온다
    통일호는 늦게 온다
    비둘기호는 더 늦게 온다

    새마을호 무궁화호는 호화 도시역만 선다
    통일호 비둘기호는 없는 사람만 탄다

    새마을호는 작은 도시역을 비웃으며
    통일호를 앞질러 달린다
    무궁화 호는 시골역을 비웃으며
    비둘기호를 앞질러 달린다

    통일쯤이야 연착을 하든지 말든지
    평화쯤이야 오든지 말든지

    KTX 이전 서울에서 각지를 연결하는 철도의 제왕(?)은 ‘새마을’호였다. 그 새마을이 굉음을 내며 달린 뒤에야 무궁화호는 기적을 울릴 수 있었고 그 뒤 꾸물꾸물 움직인 것이 통일호였고 새마을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통일호마저도 간혹 지나치는 시골 역마다 꼬박꼬박 서고, 또 다른 기차가 지나갈 때는 세월아 네월아 철로변에 웅크려 있다가 상대 열차 꼬리가 멀리 사라지면 느릿느릿 일어나 잰걸음을 놀리는 시골 늙은 개 같은 기차가 비둘기호였다.

    특급, 우등. 보통 등으로 나뉘어 불리던 기차명이 새마을 무궁화 통일 비둘기로 조정된 것은 1984년이었다.

    물론 새마을호라는 이름이 처음 쓰인 건 새마을 노래를 작사 작곡했던 박통 1세 때 일이다. 박통 1세는 서울 부산 간 운용되던, 대전과 대구만 서고 서울로 내달리던 고속 열차에 ‘새마을’이라는 이름을 하사했고 그것이 그 이후 계속 이어진 것이다.

    그리고 백무산 시인은 이 기차 이름을 보면서 국가가 주입하는 이념이 민족의 염원인 통일울 압도하고 나라 꽃이면서 대통령 휘장이기도 하고 영관급 계급장에 사용되는 무궁화가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를 내리누르는 현실을 절묘하게 담아냈던 것이다.

    대학 시절 무엇 때문인지도 기억 안 나지만 “자 떠나자 남해바다로 삼등삼등 비둘기호 열차를 타고”의 심경이 되어 부산행 비둘기행 표를 끊었던 기억이 있다.

    용산발 부산진행 비둘기호. 새마을호의 세 배쯤 걸린다는 소식은 익히 듣고 아는 터였지만 그만큼 여유 있는 철도 여행이 되리라 부푼 가슴에 책도 한 권 사고 도시락도 근사한 걸로 하나 장만하고 올라탔는데 그로부터 시작된 13시간의 여행은 그야말로 설국열차의 무한궤도와도 같았다.

    도시락은 수원 지나서 먹어 치웠고 책은 대전 오기 전에 다 읽었다. 도시락과 책값에 주머니는 비는 바람에 그로부터 근 9시간 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는데 지겹고 좀이 쑤셔 온몸에 두드러기가 나는 줄 알았다.

    잠을 청해도 웬만큼 잤다 싶으면 아직 충청도였고 이젠 다 왔다 싶으면 대구도 못 미치고 있었다. 화장실을 가면 청소 열흘 안한 공중 화장실 분위기였고 구멍 아래로는 철커덩 철커덩 철로 자갈들이 보였고 돌아오면 내 자리엔 누군가 앉아 있었다. 부산진행 기차에는 좌석표가 있었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아저씨 같으면 일어나시오! 하겠는데 할머니들이 떡 버티고 앉아 위엄있게 다리를 쩌억 벌리고 앉아 계셨으니.

    도 경계를 넘을 때마다 바뀌는 사투리의 향연과 아주머니의 수다들은 그나마 낭만으로 넘길 만 했다. 흙냄새 소똥 냄새 막걸리 냄새에다가 어느 불콰하게 취한 시골 아저씨가 휴먼 피자 한 판을 토해 놓으시는 바람에 난리가 나기도 했다.

    잠시 옆에 앉았던 육군 병장 이 병장은 어서 군대에 오라며 군대에 와야 남자가 된다고 듣기 싫은 장광설을 늘어놓다가 대구에서 내렸고 그 다음에 앉은 아주머니는 별로 먹기 싫은 가지무침을 어서 먹어 보라며 내밀어 사람을 곤욕스럽게 했다. 옆 자리에 예쁜 여학생이 앉는 꿈을 안 꾸었다면 거짓말이지만 어쩌면 그렇게 현실은 꿈과 반대인지.

    비둘기

    아마 80년대 청춘을 겪었던 사람들이라면 70년대의 “삼등 삼등 완행열차”의 80년대판인 비둘기호 열차 승차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실연을 당해서, 또는 바다가 보고 싶어서, 아니면 강원도 두메산골 부대로 떨어진 애인 면회하러, 아니면 기차 한 칸을 점거하고 고래고래 노래 부르며 강원도로 향하던 MT부대의 일원으로서. 지나치는 역이 없는 오지랖 넓은 기차였기에 비둘기호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연을 실었고 또 여러 곳을 재발견했다.

    드라마 <모래시계>로 유명한 정동진은 그 중의 하나. 1994년까지 정동진역은 탄광 주민들이 주로 이용하는 한적한 역으로 동해시에서 오가는 비둘기호만 머무르는 역이었다. 탄광 인구가 줄어 폐쇄가 검토된 바도 있었다.

    그런데 드라마 <모래시계>에서 긴 생머리 휘날리는 운동권 여학생 고현정이 어촌 마을에서 체포되는 장면이 이 정동진역에서 촬영됐고 “바다에서 가장 가까운 기차역”으로 일대 화제가 되고 대단한 관광 명소가 된 것이다. 정동진에 이르는 비둘기를 미리 끊었더라면 장소헌팅맨 서정민씨가 이곳을 찾지 못했을 것이고 정동진 역 앞의 소나무에는 ‘고현정’의 이름이 붙어 있지도 못했을 것이다.

    마지막 비둘기는 2000년 11월 14일까지 살아남아 있었다. 강원도 정선 산골짝의 증산과 구절리 두 역을 잇는 길지 않은 단선 철로(45.9km)를 하루 세 번 오가던 비둘기호가 대한민국 철도가 마지막으로 운영하던 비둘기였다.

    정선 하면 또 탄광으로 유명하던 고장. 구절리가 탄광 경기로 흥청거릴 때에는 숱하게 많은 사람들로 들어찬 만원 기차였지만 아픈 사연 남기고 사람들이 떠나간 후엔 황량하기까지 한 한적함으로 남았고 이른바 ‘적자노선’으로서 폐기됨으로써 한국에서 비둘기호의 생명은 끊겼다. .운행 34년만이었고 그 노선은‘통일호’가 대신하기로 했다.

    ‘새마을호’를 명명했던 박통 1세의 따님 박통 2세께서는 최근 ‘도시철도 시장 개방’을 공언하시었고 그 직후 국무회의는 세계무역기구(WTO) 정부조달협정 개정안을 의결했다. 정부는 극구 아니라고 우기고 있긴 하지만 다분히 철도 사유화 (민영화라는 말은 거짓말이다. 철도 주인이 될 사람들은 결코 민(民)이 아니므로)의 포석으로 비친다.

    통일 따위는 오든지 말든지 앞으로 내달릴 새마을도 필요하고 비둘기는 물럿거라 기적을 울리는 무궁화도 필요하다. 그러나 비둘기처럼 때론 하루에 사람 하나 올 것 같지 않은 오지라도 꾸준히 찾아가고, 등짐 지고 나물 보따리 둘러멘 사람들의 벗이 되고, 비싼 돈 내지 않고도 (비둘기호는 폐지될 때에도 서울 부산이 5천원 정도였던 걸로) 올라탈 수 있는 철도도 필요하지 않을까.

    사유화된 철도였다면 우리는 비둘기호가 2000년까지 운용되는 것도 보지 못했을 것이고 정동진역은 듣도보도 못했을 것이다.

    필자소개
    '그들이 살았던 오늘'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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