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물과 인간...헨리 스피라의 삶
    [책소개]《모든 동물은 평등하다》(피터 싱어/ 오월의 봄)
        2013년 07월 27일 11:39 오전

    Print Friendly, PDF & Email

    《동물해방》,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죽음의 밥상》, 《다윈주의 좌파》, 《동물과 인간이 공존해야 하는 합당한 이유들》(공저)은 모두 피터 싱어의 대표작이다. 이 책들에는 모두 한 인물이 공통으로 소개되고 있다. 바로 헨리 스피라다. 피터 싱어는 이 책들에서 헨리 스피라를 가장 윤리적이고 실천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다. 곧 피터 싱어가 주창하는 실천윤리학을 가장 현실에 잘 구현한 사람으로 헨리 스피라를 꼽고 있는 것이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는 피터 싱어가 쓴 헨리 스피라 평전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피터 싱어는 세계적인 철학자이며 실천윤리학의 거장이다. 그동안 역사, 종교, 문화 등 인간의 총체적 삶을 조명하며 자신의 실천윤리관을 펼쳐왔고, 특히 다른 인종을 차별하는 인종차별주의자라는 말에 빗대어 동물차별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을 종(種)차별주의자라고 지칭하여 많은 논란을 자아냈다.

    그의 대표작인 《동물해방》은 현대 동물운동의 개막을 알린 기념비적인 책이며 아직까지도 논란이 되고 있는 책이기도 하다.

    책은 평전 형식으로 진행되지만, 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과 동물해방 사상을 밑바탕에 깔고 있는 철학서이기도 하다(이 책의 원제가 《행동하는 윤리학(Ethics into Action)》이다). 헨리 스피라는 피터 싱어의 실천윤리학과 동물해방 사상을 현실에 구현한 가장 모범적인 운동가이다. 그렇기 때문에 피터 싱어는 그의 대표작들에서 헨리 스피라의 삶을 자주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피터 싱어는 책에서 “헨리 스피라의 윤리적이고 의미 있는 삶을 본받으라”고 말하고 있다. 헨리 스피라는 평생을 낮고 힘없는 약자들과 함께 해왔다. 젊었을 때는 좌파 운동, 흑인 시민권 운동을 했고, 동물들이 학대받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난 뒤에는 줄곧 동물해방 운동에 전념했다.

    무엇보다 그는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잘못된 것이 보이면 바로 행동에 나서서 바로잡고, 서슴없이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 그랬기 때문에 그 무섭다던 연방수사국(FBI)과 대결하는가 하면, 지연전술과 흑색선전을 능수능란하게 사용하는 대기업을 궁지로 몰아붙이기도 했던 것이다. 때로는 멈칫할 때도 있었지만, 언제나 용기를 잃지 않고서 꾸준히 활동을 밀어붙였다.

    그리고 자연사박물관 투쟁, 메트컬프-해치 법 폐지, 레블론 항의운동 등 대부분 원하는 성과를 얻어냈다. 피터 싱어는 헨리 스피라의 삶을 통해 개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고, 더 좋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의미 있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지금 한국에서도 동물권에 대한 관심이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다양한 동물보호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고, 여러 형태로 동물운동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동물운동의 선구자인 헨리 스피라의 평전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가 출간된 것은 나름대로 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마지막 6장에는 운동가 헨리 스피라가 어떤 방식으로 세상과 싸웠는지가 자세히 실려 있다. 그는 ‘모 아니면 도’식의 운동방식이 아니라 ‘오늘 가능한 일을’ 철저하게 대중과 함께 실천해왔다. 그의 집요하고도 재치 있는 실천 앞에 거대 기업들도 국가기관도 두 손을 들고 말았는데, 이런 실천들을 통해 그는 세상을 조금씩 천천히 바꿔왔다. 세상의 변화를 위해 뭔가를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책이기도 하다.

    헨리 스피라는 누구인가?

    벨기에에서 태어난 헨리 스피라(1927~1998)는 평생을 힘 없고 착취 받는 존재들과 함께했다. 유대인이었던 그의 가족은 2차 세계대전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했다. 미국으로 이주하기 전 파나마에 잠시 거주했는데, 거기서 헨리 스피라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협해 집세를 징수하는 사람들을 보고 불의가 개인의 탐욕이나 가학성이 아니라 훨씬 체계적인 문제라고 보기 시작했다.

    동물평등

    미국에서 그는 더 큰 구조적인 문제를 바꾸기 위해 좌파가 되었고, 트로츠키주의자로서 사회주의노동자당에서 활동했다. 그리고 전국해운노조에 가입해 부패한 지도자들에게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저항했고, 1950년대에는 미국 흑인 시민권운동을 지원했다.

    쿠바혁명이 일어나자 쿠바로 가서 그곳의 혁명 열기를 몸소 느꼈고, 미국 정부가 쿠바를 침략하려 하자 즉시 반대 집회를 열어 정부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는 이 일로 FBI의 감시 대상자가 되기도 했다. 그는 강자가 아닌 약자의 편에, 억압하는 사람이 아닌 억압받는 사람의 편에, 그리고 괴롭히는 사람이 아닌 괴롭힘을 받는 사람의 편에 서 있었고, 이를 평생 실천해왔다.

    슬럼가 아이들을 가르치는 고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동물운동에 전념하게 되었다. 55세가 되기까지 그는 동물에 대해 이렇다 할 만한 생각 자체가 없었다. 그러나 두 가지 사건이 일어나면서 그의 운명이 바뀌기 시작했다. 첫째, 그는 고양이를 입양했고, 고양이의 매력에 흠뻑 빠지게 되었다. 둘째, 피터 싱어의 에세이 《동물해방》을 읽었다.

    피터 싱어는 기념비적 저작 《동물해방》을 발표하기 전에 에세이 《동물해방》을 《뉴욕 리뷰 오브 북스》에 실었다. 그의 주장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인간이 동물보다 도덕적으로 우월하다고 인정할 만한 윤리적인 근거는 결코 존재하지 않다는 것. 거칠게나마 비교할 만한 존재들이라면 인종, 성별, 혹은 문제의 생물종에 상관없이 모든 존재의 권리는 동등해야 마땅하다는 것. 또 동물도 인간과 마찬가지로 똑같이 고통을 느낀다는 것.

    이러한 이론적인 결론에 따라 실천적인 결론이 따라 나왔다. 현대의 집중적 사육기술로 길러진 동물들은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사지를 마음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같은 종끼리 만나지도 못한다. 그들의 가장 근본적인 권리는 무시된다. 따라서 이러한 사육체제를 옹호하는 짓은 그만둬야 한다. 이러한 체제를 통해서 생산된 제품을 먹는 게 이 방식을 가장 직접적으로 옹호하는 것이다. 이런 피터 싱어의 글을 읽고 헨리 스피라는 자신의 인생 방향을 결정했다. 헨리 스피라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나는 동물복지가 정치적인 쟁점이라고 조금도 생각하지 못했다. 하지만 어떤 동물은 쓰다듬고 어떤 동물은 포크와 나이프로 찌르고 자르는 게 과연 적절한 것인지 생각해보기 시작했다. (……) 싱어는 미국에서 해마다 40억 마리 이상의 동물이 죽는다고 설명했다. 그것들이 겪는 고통은 심했고, 만연했고, 커져갔고, 체계적이었으며, 사회의 공인을 받는 상태였다. 그리고 희생된 것들은 자신의 권리를 옹호하기 위해서 단결할 능력이 없는 존재였다. 나는 동물해방이 지금까지 살았던 내 인생의 논리적 확장이라고 생각했다. 힘이 없는 약자들, 희생자들, 지배와 억압을 받는 존재들과 동일시했던 내 삶과 말이다.”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 있으면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믿고 있던 스피라는 곧장 동물운동에 투신하게 된다. 인간은 힘없고 취약한 존재를, 지배받고 억압받고 착취 받는 모든 희생물을 동정하지만, 극도의 고통을 가장 체계적으로 받고 있는 동물은 등한시하고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동물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존재이며, 도움이 가장 필요한 존재라고 여기고 즉각 행동에 나서기 시작한 것이다.

    누구와 왜 싸웠는가? 대기업, 정부기관 등과 동물들의 고통을 줄이기 위해 싸우다

    첫 번째 싸움 상대는 미국자연사박물관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동물은 다양한 방법으로 실험 대상이 되고 있었다. 암이나 여러 주요 질병들의 치료 방법을 탐구하는 목적도 있었지만 그보다 하찮고 때로는 매우 괴상한 목적 때문에 하는 실험도 있었다. 이 가운데는 동물에게 심각한 고통을 안기는 것들도 있었다.

    미국자연사박물관은 고양이 성행동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이는 인간의 질병을 연구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곧 이 실험이 공동체에 조금이라도 가치가 있는 이유를 설명하기 매우 어려웠다. 결정적으로 실험은 눈에 보이게 고양이를 괴롭혔다.

    고양이들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사지가 잘려나갔다. 감각기관의 제거가 성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관찰하는 게 실험의 목적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고양이의 후각을 파괴했고, 성기의 신경을 잘라 촉각을 둔화시켰고, 뇌의 일부를 제거하기도 했다. 시민의 세금으로 아무런 정당성도 없는 고양이 성행동 연구를 지원한 미국자연사박물관은 결국 헨리 스피라가 이끄는 운동 세력에게 무릎을 꿇어야 했다.

    다음의 큰 싸움은 화장품 기업이었다. 화장품과 기타 물질들은 안구 손상 검사를 받는다. 표준 방법은 존 드레이즈 박사의 이름을 본 딴 드레이즈 검사다. 토끼는 가장 널리 쓰이는 동물이다. 검사가 필요한 제품의 농축액이 토끼의 안구에 투입된다. 며칠에 걸쳐 반복 투입하는 경우도 있다. 그다음 상처를 입은 크기, 팽창과 적화의 정도, 기타 손상 유형에 따라 손상이 측정된다. 30년 동안 드레이즈 검사는 인간의 안구에 손상을 입힐지 모르는 물질을 검사하기 위해서 널리 사용됐다.

    이 검사를 막기 위해 헨리 스피라는 운동을 조직하고 다양한 방법으로 대처하기 시작했다. “이 문제는 다음과 같이 상정될 수 있었다. 토끼를 실명시킬 만큼 샴푸의 가치가 있을까? 화장품 산업이 이 검사를 하는 것은 앞뒤가 너무 안 맞았다. 화장품 산업은 꿈을 팔려고 하지만, 토끼에게는 악몽을 만드는 게 현실이다. 그들이 실제로 하는 일의 실상을 폭로하면 산업의 이미지가 실추될 위험이 따를 것이다. 눈먼 토끼는 아름답지 않다.”

    동물실험의 완전 폐지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헨리는 각 화장품 기업들에게 동물이 들어가지 않은 대안 실험 개발을 위한 기금을 요구하기 시작했다. 레블론, 에이본, 브리스톨-마이어스, 피앤지 등 화장품 대기업, 다국적기업들은 처음에는 헨리의 요구를 무시했지만, 헨리가 펼치는 다양한 방법에 결국 굴복하고 대안연구를 위한 기름을 조성하게 되었다.

    그런 다음 식용동물이 겪는 고통이란 훨씬 난해한 문제에 착수하여 닭고기 기업가 프랭크 퍼듀, 동물을 살육하는 대기업 몇 곳, 미국 농무부, 맥도날드를 목표로 삼았다. 20년 동안 헨리의 독특한 운동 방법 덕분에 동물들의 고통은 줄어들었다. 지난 50년 동안 대형 단체들이 수백만 달러를 들여서 활동한 것보다 더 큰 성과를 얻어냈다.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삶이란 무엇인가?

    피터 싱어는 헨리 스피라가 어떻게 활동했는지 보여주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밝히고 있다. 운동가 헨리의 인생은 동물운동뿐만 아니라 기타 수많은 윤리적인 대의를 위해서 활동하는 사람들을 위한 교범으로 활용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 한 개인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좋은 답을 제시해주기 때문에 헨리 스피라의 삶이 특별하다고 말한다.

    그리고 두 가지 생각을 반박하고 싶다고 말했다. 첫째는 사회가 너무 거대하고 너무 복잡해서 개인이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는 것. 아무래도 부자이거나 큰 조직체의 수장이 될 정도로 운이 좋지 않으면 대부분 개인 자신이 세상을 바꾸지 못한다고 여기기 쉽다.

    어쨌든 우리가 사는 사회는 수천에서 수억 명의 사람들로 구성된다. 정부는 관료주의에 포박되어 있으며, 정치인은 표를 잃을지 몰라 전전긍긍한다. 연간 수익이 수천만 달러에 이르고 그만큼 광고예산을 집행하는 다국적기업은 여론을 휘어잡고 있다. 가장 큰 소비자 단체조차도 대적하지 못할 정도로 그 기업은 권력을 휘두른다. 상황이 이런데, 한 사람이 무엇인가 중요한 변화를 일으킬 수 있기나 한 것일까?

    헨리는 레블론과 싸워 이겼지만 부를 얻은 것도 아니었고 대형 조직의 지도자가 된 것도 아니었다. 그는 약자와 착취 받는 자의 편에 섰고 다른 사람에게 배운 전략을 학습하고 시험했다. 그리고 거기에 40여 년 동안 활동하며 통찰했던 사항을 적용했기 때문에 그는 대부분 승리할 수 있었다.

    헨리가 성취한 승리와 지식은 강력하다. 타인에게 전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동일한 방식으로 헨리의 승리 방법을 사용할 것이며,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고 자기가 처한 상황에 맞게 수정해 싸울 수 있을 것이다. 한 개인이 세상을 변화시키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해 헨리의 삶을 통해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두 번째는 우리네 인생이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는 것. 지금 이 시대는 끝없이 소비하고 낭비하며 기회를 찾고 찾으라는 문화가 대세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리사욕을 추구하는 것이 유일한 합리적인 목적이라고 여기고 있다. 이렇게 물질적인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성공하는 사람도 있고 실패하는 사람도 있다. 부를 얻지 못해 이룬 게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부유하지 못해서 행복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헨리는 재산을 소유하는 삶보다 무엇인가 이루고 즐겁게 사는 법을 깨달은 사람이다. “나는 세상을 바꾸는 활동을 하고 있을 때 기분이 제일 좋습니다. 죽을 때가 되면 과거를 뒤돌아보면서 이렇게 말하고 싶어요. ‘나는 이런 활동을 하면서 타인을 위해 더 좋은 세상을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의무감 때문이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한 일이죠.”

    곧 세상을 바꾸는 일을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의 행동이 즐거워서 그렇게 살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헨리의 인생은 자기만의 가치에 따라 살면서 의미를 찾는 사람들의 모범 사례로 삼을 만하다. 사람들이 경모하는 유형이 모델, 인기 운동선수, 자수성가형 백만장자, 인기 영화배우인 시대에서 대안이 되는 역할 모형이 필요한데, 헨리가 좋은 사례 중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윤리적 관점을 바꾸는 것이 말 이상의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헨리의 활동에서 배울 수 있다는 것. 즉 말을 행동에 옮기면, 결국 세상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피터 싱어는 헨리 스피라의 삶이 이런 면에서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고 있다.

    필자소개
    레디앙 편집국입니다. 기사제보 및 문의사항은 webmaster@redian.org 로 보내주십시오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