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 예수회 대학의 '대안투자' 교육
    [inside 국제경제]'자본주의는 죄악'이라며 '파생금융상품' 가르쳐
        2013년 06월 21일 09:4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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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잠깐 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지난 학기에 이어 저는 강사 자격으로 포담대학(Fordham University)이라는 곳에서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이 학교는 1900년대 초에 만들어졌고, 뉴욕 소재 대학들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가톨릭의 예수회를 교육 이념의 근간으로 삼는 대학이지요.

    뉴욕 시내에만 벌써 두 개의 캠퍼스를 가지고 있고, 뉴욕 주 북동부의 웨스트 체스트라는 곳에 또 다른 캠퍼스를 유지하고 있는 유서 깊은 대학입니다. 특히 법학 분야나 공공정책 분야에서는 미국 안에서 수위를 달릴 만큼 유명한 대학이지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이 대학이 점점 이상하게 변해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학교 당국이 재정을 집중적으로 투자해 가며 건물을 증개축하고 새로운 교육 프로그램을 확대 개편했는데, 그것 가운데 하나가 가빌리 비즈니스 스쿨입니다.

    가빌리라는, 아마도 이탈리아계 동문의 막대한 개인 기부금을 바탕으로 경영 대학의 이름을 바꾸고 건물을 증개축한 것이지요. 그러고 나서 이 학교의 운영진은 경영 대학 교수진과 비즈니스 스쿨에 입학하는 학부 학생들을 대대적으로 뽑기 시작했습니다.

    학기 말이 다되어 가는 어느 날 저는 부랴부랴 수업을 끝내고 학교 발행 신문을 읽다가 깜짝 놀랄만한 기사 한 토막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기사에는 이 학교 경영 대학이 올해 말부터 뉴욕 소재 대학들 가운데 처음으로 학부 학생들을 대상으로 소위 ‘대안 투자'(Alternative Investment) 분야를 전공으로 선택해서 공부를 할 수 있게끔 연계 전공 프로그램을 개설한다는 소식이 실려 있더군요.

    어느 예수회 대학의 ‘대안 투자’ 프로그램

    현대 금융 시장에서 말하는 대안 투자란 무엇일까요? 이것은 한마디로 채권과 주식을 사고팔면서 수익을 얻는 전통적인 자산 다변화 전략에 비해 훨씬 더 공격적으로 고수익-고위험 상품을 사고파는 투자 전략을 통칭하는 말입니다.

    투자 상품의 대상도 전통적인 의미의 국공채나 기업 채권 또는 기업 발행 주식 이외에 국내외 부동산 자산, 해외 원자재, 2-3차 파생 금융 상품 및 적대적 인수합병 등을 가리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각종 헤지 펀드나 (칼라일 그룹, 소버린 그룹, 그리고 론스타 등 각종) 사모펀드 등이 해오던 일이지요.

    물론 이 같은 대안 투자의 주체는 이러한 업무를 주로 해오던 몇몇 금융 그룹들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미국발 금융 위기가 불거지기 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거대 상업 은행들(시티뱅크, 제이피모건, 뱅크 오브 아메리카 등)이 별도의 투자 기금(Special purpose vehicles, SPVs)을 조성해서 이 같은 무분별한 투자 전략을 벌여왔고, 그 중요한 매개체가 되었던 금융 상품이 바로 주택 담보부 채권을 포함한 각종 유동화 자산들과 신용 부도 스왑 등이었습니다.

    투자 기법의 측면에서 이 대안 투자는 단순한 금융 거래를 넘어섭니다. 현물 시장에서 금융 상품들을 사고팔면서 시세차익을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선물 시장에서 체결하는 옵션 거래는 물론 각종 파생 금융 상품에 대해 중층화된 포지션을 취하고 또 신용 부도 스왑 거래를 복수로 체결합니다.

    이 때문에 아마도 이 대안 투자 기법을 전문적으로 운용하는 금융 기업이나 기금 운용자들 가운데 그 누구도 거래 당사자와 상대방의 금융 포지션의 실체를 정확히 알 수 없을 것입니다. 금융 위기와 같은 극단적인 상황으로 사태가 치닫기 전까지는 말이지요.

    캘리포니아 주 공무원 연기금 공사의 때늦은 후회

    이 같은 금융 거래의 복잡성과 잠재적 위험 증폭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내외의 너무나 많은 개인 및 기관 투자자들이 자산 다변화 전략 가운데 하나로 자체 자본이나 기금 가운데 일부를 이 대안 투자에 할당해 놓고 있습니다.

    심지어 기금 규모로 따질 때 미국에서 수위를 달리는 몇몇 대표적인 공무원 연기금들, 예를 들어 캘리포니아 주 공무원 연기금과 뉴욕 주 공공부문 노조 연기금 등도 전체 기금 가운데 일부를 칼라일 그룹에 의탁하여 이 런 방식의 투자를 해오다 크게 손실을 봤다는 사실이 2007-8년 미국발 금융 위기가 터진 다음에 밝혀지기도 했습니다.

    물론 이 연기금들은 2010년경이 되자 이 손실금을 만회하기 위해 주 정부 검찰에 몇몇 금융 기관들을 고소했습니다. 그 이전까지만 해도 어느 정도의 수익률만 보장해 주면 투자 대상이 무엇이고 어떤 투자 기법을 동원하건 전혀 상관하지 않겠다던 태도를 바꿔서, 브로커 회사들이 금융 상품의 위험성을 충분하게 알려주지 않았고, 서로 담합하여 높은 거래 수수료를 챙겨 갔다는 이유로 말이지요.

    이처럼 한 경제 안에서 금융 부문의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각종 연기금을 통한 자산 증식이 은퇴 후 노후를 설계를 하는 데 있어서 무시할 수 없는 중요성을 가지게 되면, 그리고 특히 정부가 제공하는 기초 사회복지의 양과 질이 무시할 수 있을 정도로 미미한 사회에서는, 이 같은 자기 파괴적인 투기적 자산 증식 행태가 기승을 부리기 마련인 것 같습니다.

    하물며 공공 부문 노조가 관리하는 연기금도 이 같은 투기적이고 자기 파괴적인 투자 전략에서 벗어날 수 없을 만큼 말이지요.

    그런데 한 사회가 이 모양으로 구조화되기 시작하면 제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공장과 거리와 광장에 모여 목소리를 높여도, 이미 처음부터 지는 게임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한국의 각종 연기금들은 어떻게 투자되고 있나?

    생각이 여기에 미치자 저는 자연스럽게 한국에서 운영되고 있는 정부와 민간 기업 및 재단 등의 연기금이 지금 어디에 어떻게 투자되고 있을까 궁금해지기 시작했습니다.

    2007-8년의 미국발 국제 금융 위기의 여파가 한국에 미치기 시작했을 때 한때 한국의 온라인 신문에서는 주요 사립대학들의 자산 투자 손실 규모가 공개되기도 했고, 정부 운영 국민 연금의 투자 손실에 대한 보도와 설왕설래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로부터 6년이 더 지난 지금, 특히 최악의 금융 위기 국면이 지나가고 미 연준의 연이은 양적 완화 조치 등으로 저리의 달러화 유동성이 전 세계 금융 시장에 넘쳐나고 있는 이 때, 한국의 각종 연기금은 자산관리 대행회사들 (증권회사와 투자신탁회사들)에 의해 어디에 어떻게 투자되고 있을까요?

    제 아무리 부정적인 선입견을 버리려고 노력해도, 고수익-고위험 투자를 통해 단기적으로 자산 가치를 증식하는 데만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투자금이 어디에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 꼼꼼하게 캐묻고, 이 과정에서 예를 들어 최근 문제가 불거진 삼성전자나 남양유업 등과 같은 반사회적인 기업들의 채권과 주식에는 절대로 투자를 하지 말라고 자산관리사들에게 일일이 지시를 할 법한 개인 투자자들은 그리 많지 않은 것 같기 때문이지요.

    이와 마찬가지로 학생들이 내는 등록금으로 자산 투자를 하는 대학 당국은 어떤가요?

    언제 한국의 그 많은 국공립 및 사립 대학들 가운데 단 한 대학이라도 학생과 교수들 그리고 대학 행정 지원을 포함한 학내 구성원들 전체의 의견을 수렴하여 어떻게 하면 대학 기금을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곳에 투자할 것인지에 대해서 중지를 모은 곳이 있던가요?

    한국의 대학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자산 증식과 더불어 사회적으로 가치 있고 또 지속 가능한 투자에 관한 최소한의 가이드라인 같은 것을 학내 구성원들과 함께 만들어 보려고 한 적이 있었는가 말입니다

    한국의 정부 당국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동안 기획재정부 고위직 관리들이 간간이 말로 떠들긴 했어도, 지금까지 국민연금관리공단이 보유한 소유 지분을 매개로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특정 재벌 기업의 소유와 경영에 대해서 단 한 차례라도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이 있던가요?

    이처럼 개인이나 법인은 말할 것도 없고 정부 부처마저도 자산 투자와 운용의 가이드라인을 사회 구성원 전체가 참여한 가운데 민주적으로 함께 정하고, 자산 증식 이외에도 사회적 가치를 증진하는 방향으로 이 공동 자산을 운용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한, 따라서 결과적으로 개인 및 기관 투자자들 모두가 단기적인 자산 증식에만 혈안이 되어 있는 한, 안타깝게도 기업의 지배 구조를 민주적으로 개선하고 사회적인 통제를 달성하는 일은 요원한 과제가 될 것 같습니다.

    무어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DVD 표지

    자본주의 – 러브 스토리

    마이클 무어가 최근 만든 <자본주의 – 러브 스토리>라는 다큐멘터리 가운데 몇 가지 인상적인 장면들이 기억납니다.

    무어 씨가 천진난만한 얼굴로 몇몇 종교 지도자들에게 오늘날의 미국식 자본주의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충실하냐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세계적으로 명망 있는 기독교와 가톨릭 신부와 주교들은 주저 없이 ‘오늘날의 (미국식) 자본주의는 죄악’이라고 단죄를 내리더군요.

    이냐시오 로욜라가 추진했던 가톨릭 내의 종교 개혁의 가르침을 따르겠다는 뉴욕의 예수회 대학 포담의 총장과 학장 신부들 가운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마이클 무어의 러브 스토리에 나오는 이 장면에 공감을 표명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니, 그들 가운데 과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많은 돈을 투자해서 새로 개창한 비즈니스 스쿨에서, 그들이 그토록 자랑스럽게 개설하겠노라고 말한 대안 투자 연계 전공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금융 위기 발생 이후 캘리포니아와 뉴욕 주 연기금 운용 담당자들이 했을 법한 때늦은 후회를 조만간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어쩌면 제 수업을 들었던 학생들 가운데 일부도 조만간 이 대안 투자를 전공으로 삼아 학교를 졸업할는지 모르지요. 기껏 전임강사 신분으로 경제학 기초 과목들을 가르쳐온 마당에 그들에게 어떤 조언을 해줄 수 있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그들만 어리석다고 비난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거대 금융 그룹을 살리려고 지금까지 미 연준이 해왔던 일련의 정책들을 고려할 때, 특히 ‘정실주의’와 ‘대마불사’ 등 동아시아 외환위기 당시 국제통화기금과 미 재무부가 한국을 향해 퍼부어댔던 그 비난의 용어들이 그 어떤 때보다도 더 잘 미국 경제의 현실을 설명해 주는 용어가 되어 버린 게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그 누구보다도 앞서 학교의 명성을 드높이겠다고 사심 없이 노력하고 있을 포담대학의 예수회 주교들이, 다른 어떤 대학들보다도 먼저 헤지펀드와 사모펀드의 자산 거래사들을 육성해야 학교가 살고 학생들이 취직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 가운데 하나일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결국 미국이나 한국이나 이제 더 이상 이기는 게임을 할 수 있는 방법은 존재하지 않게 된 것일까요?

    필자소개
    뉴욕 뉴스쿨 대학원(The New School for Social Research)에서 경제학을 공부했고, 현재 오하이오 주립대학 (Wright State University)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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