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애들이 개만도 못하냐"
    [진보정치 현장] 옥곡지구 공공도서관 부결의 이해관계들
        2013년 04월 26일 11:1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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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이가 삽살개만도 못하냐” “무엇이 두려워서 무기명 투표를 하느냐”고 경산시의회 본회의를 방청한 주민들의 고함소리가 곳곳에서 들렸다.

    지난 3월 14일 경산시의회 임시회 제2차 본회의에서는 상임위원회에서 통과된 ‘옥곡지구 공유재산관리 수시계획안’이 재석의원 총13명 가운데 찬성 3표, 반대10표로 부결된 안타까운 일이 벌어졌다.

    의회 결과에 분노하고 있는 학부모들과 도서관 관련 단체 사람들

    의회 결과에 분노하고 있는 학부모들과 도서관 관련 단체 사람들

    ‘옥곡지구 공유재산관리 수시계획안’은 옥곡지구 703평 부지에 총80억원 규모의 서부권 거점 공공도서관을 신축하는 계획안으로서 경산시가 공공도서관 신축계획, 해당부지 용도변경, 타당성용역조사 등 일련의 행정절차를 2년 동안 진행했고 소속 상임위를 통과하여 최종적으로 본회의 승인만을 남겨둔 상황이었다.

    하지만 지난 제154회 경산시의회 임시회에서 ‘옥곡지구 공유재산관리 수시계획안’에 대해 부결시키는 흐름이 시의원들 사이에서 형성되었다.

    내가 소속된 행정사회위원회에서는 심의과정 중 ‘경산시 삽살개 육종연구소 운영에 관한 조례안’도 함께 다루었는데 모의원은 ‘내 마음은 개새끼(삽살개님)도 시가 지원해 주는데 왜 사람 새끼한테는 지원을 못해 주냐며’ 항변하였다. 참고로 경산시는 지난 해까지 삽삽개 지원예산에 총147억을 지원했다.

    여전히 의원들 간에 이견이 있었지만 행정사회위원회에서는 ‘옥곡지구 공유재산 관리계획안’에 대하여 찬성4명, 반대2명, 기권1명으로 통과되었다.

    하지만 본회의에 통과시키려면 많은 어려움이 예상되었다. 경산시의회 권력구조를 보면 다수가 새누리당 소속이고 소수의 무소속의원과 진보정당 의원이 있다. 일단 의결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또한 ‘도서관’의제가 기존정치질서에서는 부차적인 의제로 여겨지는 현실이 존재한다.

    그럼 어떻게 이 난국을 헤쳐 나갈지 수 많은 생각이 들었다.

    별로 가진 것이 없는 나로서는 옥곡지구 도서관 신축의 필요성에 대해 진정성을 가지고 경산시의원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드디어 본회의 날. 도서관 관련 단체 회원분들과 시민단체, 학부모들이 방청석에서 참관하는 가운데 본회의가 진행되었다.

    의장은 본회의에서 다룰 다른 안건들을 먼저 처리하고 ‘옥곡지구 공유재산관리 수시계획안’에 대해 의원들에게 이의가 없는가 물었다. 그러자 모의원이 이의를 제기하고 반대 발언을 했다.

    반대의견의 요지는 “최근 시민들의 도서관 이용실태가 전자책, 작은도서관 등으로 변화하고 있고, 경산시도 8억원을 투자해 전자도서관을 개설한 바 있다”며 “서상도서관의 경우 독지가의 부지와 건물 기증으로 군립도서관이 돼 45년이나 지난 역사 문화적 가치를 지니고 있다”며 매각에 반대하고, “앞으로 대규모 공공도서관보다는 작은도서관으로 가야한다”며 부결시길 것을 요구했다.

    이에 대해 나는 원안 찬성발언을 진행했다. 발언에 앞서 의장에게 2011년 서부동 주민 5000명이 서명한 도서관 청원 용지를 집행부로부터 제출할 것을 요구했다.

    경산시의 슬로건이 ‘인재를 양성하는 1등 교육도시 경산’인데 공공도서관 3개는 턱없이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지난 2012년 경산시가 발주한 도서관장기발전계획 및 옥곡동 도서관 건립 타당성조사에서도 하양시립도서관이 있는 하양읍 시민들의 대출현황이 20,802건으로 1위이고 공공도서관이 없는 서부1동 대출현황이 19,203건으로 이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 2012년 15개 읍면동 주민의견조사에서도 향후 도서관 공급유형을 공공도서관건립 47.2%, 어린이도서관 21.3%, 작은도서관 설립 15.9%이며 향후 도서관공급필요지역으로 서부1동이 가장 높게 나왔고 옥곡동 도서관건립 타당성 진단에서는 100점을 기준으로 98점으로 매우 우수함으로 타당성 진단 결과가 나왔다.

    그런데 경산시민의 대표인 시의회가 도서관 건립을 바라는 주민들의 간절한 마음을 외면하여 경산시의회 역사상 큰 오점으로 남을까 두렵다며 원안 가결을 호소했다.

    이후 반대, 찬성, 반대토론을 하고 나서 무기명 비밀투표를 진행했다.

    이때 주민들의 한숨소리와 항의소리가 여기저기서 나왔지만 의원들은 별로 개의치 않으며 정해진 절차에 따라 투표를 진행했었다. 결과는 찬성 3표, 반대 10표로 지난 2년 동안 진행한 80억규모의 ‘옥곡지구 공유재산관리 수시계획안’은 결국 부결되었다.

    이 사업은 옥곡지구에 도서관 설립을 바라는 주민들의 자발적인 운동으로 시작하여 서부동 주민 5000여명이 마음을 모았고 경산시장이 없는 행정의 공백 속에서도 중단 없이 추진된 사업이었다.

    경산시의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모습

    공공도서관 건립을 부결시킨 경산시의회를 규탄하는 기자회견 모습

    나 또한 담당부서와 수없이 협의했고 단 하루도 잊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추진한 사업이라 본회의장에서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고 주민들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는 정치권력에 강력하게 항의하였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며 대한민국의 정치현실을 경산시의회에서 그대로 보는 듯하다.

    주민들의 삶의 문제를 외면하고 오로지 이 성과가 누구에게 가는지 판단하는 현실, 내가 갖지 못할 바에는 차라리 못하게 하는 현실, 시민들이 부여한 권력을 악용하는 나쁜 정치행위가 죄악시되지 않는 현실들은 이번 본회의에서 더욱 절실히 알게 되었다.

    이후 상임위가 통과시킨 ‘옥곡지구 공유재산관리 수시계획안’을 본회의에서 부결시킨 초유의 사태에 대해 각종 언론에서 보도가 연일 나갔고 이 사실을 알게 된 지역주민들은 경산시의원들이 다른 것도 아닌 도서관설립을 부결시킨 것에 대해 도저히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주민들의 눈높이에도 부응하지 못하는 정치를 기존 정치권에서 일상적으로 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지역여론의 악화와 시민사회단체의 항의로 인해 얼마 전 경산시의회 의원 전체 간담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옥곡지구 도서관 신축을 약40억 규모로 축소하는 것에 대해 의원들이 의견을 모았고 현재 집행부가 규모 축소에 대해 검토를 진행하는 중이다.

    도서관 신축 규모가 절반으로 축소되어 다시 공유재산심의위원회, 상임위원회, 본회의 통과라는 행정절차가 남아있는 상황이다.

    어쨌든 이번 사태는 경산시민들에게 또 다른 정치 불신을 안겨준 일이라 경산시민들에게 죄송한 마음이 든다. ‘역시 정치하는 놈들이 다 그렇지’ 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걱정이 된다.

    하지만 도서관 부족으로 인해 겪는 일상의 문제를 깨달은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도서관 운동에 참여하여 지역 시민단체들과 함께 지속적으로 제도권 정치에 개입해 ‘도서관’이란 새로운 의제를 형성한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인류의 역사에서 당위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은 없듯이 도서관운동 또한 기존 정치질서에 저항하고 그것을 극복해 나가면서 확장될 것이라 믿는다.

    비록 ‘옥곡지구 공유재산관리 수시계획안’이 의회에서 부결되었지만 경산지역에서 도서관 운동은 지속적으로 성장할 것이며 우리는 그 역사를 만들었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든 생각은 의회 권력에서 다수가 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우리 사회에 더욱 필요한 것은 시민들의 생각과 가치관을 성장시키는 사회적 기반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그럴 때 만이 우리사회에 녹아있는 다양한 삶의 문제를 극복하고 공동체적 대안사회로 나아갈 수 있다고 여겨진다.

    도서관 운동은 그 물줄기에 한 부분으로서 끝없이 흘러 갈 것이다.

    필자소개
    정의당 소속 경북 경산시의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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