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딴지일보가 SM을 알아?
    [짤방칼럼] 고은태 사건과 SM, 그리고 편견
        2013년 03월 22일 09:53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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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권활동가 고은태씨의 성희롱 사건이 ‘변태적 취향’으로 해설되는 SM 또는 DS로 알려지자 여론은 이런 성적 취향에 대해 관심이 쏟아졌다. 이때 <딴지일보>의 ‘필독’이라는 필자가 “[타인의 취향] 고은태의 고독한 커밍아웃”이라는 제목의 글로 SM과 고은태 사건을 풀어나갔다.

    멜돔인 ‘누구야’씨는 해당 글에서조차 SMer에 대한 편견과 오해가 담겨져 있다며 이를 반박하는 [짤방칼럼]을 보내왔다. 이번 칼럼에는 미리 SM 용어에 대해 해설을 붙인다.

    SM: Sadism and Masochim / 가학증과 피학증
    에세머: SM을 즐기는 자
    플: SM플레이의 줄임말
    DS: Dominance and Submission/ 지배와 복종. 보통 돔과 섭으로 부른다.
    멜돔: 돔(가학) 역할을 하는 남성을 지칭
    멜섭: 섭(피학) 역할을 하는 남성을 지칭
    펨돔: 돔(가학) 역할을 하는 여성을 지칭
    펨섭: 섭(피학) 역할을 하는 여성을 지칭
    스윗: Switch. 돔과 섭의 역할을 오가는 자를 지칭
    바닐라: 비에세머를 일컫는 용어
    변바: 보통 멜돔으로 위장해 펨섭을 강간, 폭행 목적으로 접근하는 이들을 지칭

    <편집자>
    —————————————–

    일단 딴지일보 필자 ‘필독’ 씨에게 경의를 표한다. 나는 웬만하면 온라인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고은태 사건에 대해 별로 글을 쓰고 싶지 않았다. 일단은 내가 지금 너무 바쁘기 때문이다. 야근에서 야근으로 이어지는 직장인의 생활에 애인이자 섭이 있는데도 플레이는 커녕 섹스해본 지도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레디앙>에서 ‘이제 SM에 대해 말해야 할 때가 아니냐’ 고 제안했다. 잘 쓰지도 못하고 돈도 안 되는 글을 쓰라는데 쓰고 싶을 리가 만무하다. 그런데 내 트위터 타임라인에 RT된 글을 보고 정신이 버쩍 들었다. (딴지 트위터 캡처)

    “고은태 성희롱 사건에 부쳐 최고의 전문가를 초빙했습니다. 본격 프로 SMer가 정밀하고, 깊숙하게 사건을 집도합니다.”라는 자극적인 문구를 보자마자 황당해 하며 링크를 눌렀다.

    본격 프로 에세머라니, 그게 뭔가? 에셈판에서 한 십년 묵으면 본격 프로 에세머인가? 천 번을 플해보면 본격 프로 에세머가 되나?

    에셈판에서 ‘본격/프로/경험 많음/못하는 플 없음’을 자랑하는 돔 유형이 딱 한 가지 있다. 어떻게 순진한 초보 펨섭들 잘 꼬셔서 플해보려는 변바(변태 바닐라. 자기가 매우 진실한 에세머이며 플에 능하다고 사기치면서 초보 에세머들에게서 섹스나 플 따먹는 데 중점을 두는 작자들이다)들이다. 하긴 여기서는 꼬시려는 게 초보 에세머가 아니라 독자들이지만.

    읽으면서 몇 번을 허허 웃다가, 아 이건 안되겠다, 암만 바빠도 몇 가지는 짚고 넘어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처럼 글 못 쓰고 긴 글 쓰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이 정도로 강한 동기 부여를 하다니, 역시 글의 힘은 세다. 그리고 그런 글을 쓴 ‘필독’ 씨도 대단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다시 한번 경의를 표한다.

     딴지

    1.

    일단 ‘필독’ 씨의 사소한 오류, 그러니까 DS를 SM에 비해 장기간의 인간관계를 뜻한다고 설명한 지점 같은 건 넘어가도록 하자. SM을 SM플레이, 그 중에서도 일플(일회성 플)과 동일시하는 데서 나온 오류이고 그것만으로도 많은 에세머들이 웃겠지만, 그건 그래도 현재의 에셈 문화에 대한 치명적인 오해를 불러일으키지는 않으니까.

    ‘자신을 에세머라 착각한 펨섭’ 같은 황당한 표현도 그렇다. 에세머들 사이의 성향 분류가 펨섭, 멜돔 등인데 저런 표현은 ‘자신을 인간이라 착각한 한국인’ 같은 이야기가 된다. 하지만 아마 필독 씨는 ‘자신에게 펨섭 성향이 있다고 생각한 에셈 입문 여성’ 정도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다. 넘어가자.

    내게 경각심을 불러일으킨 부분은 여기였다.

    “에세머임이 드러난 고은태씨. 커밍아웃을 (당)하는 방식 중 상상할 수 있는 최악의 케이스이지만, 에세머들은 이럴 때 무척 재미있어한다. 사실 에세머가 바닐라(일반적인 성적 취향자를 이렇게 부른다.)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적절한 비유일진 모르지만… ‘필독미남조’라는 어떤 새가 국내에 자생하는 걸 뻔히 알고 있던 조류학자가 있다고 치자. 이 학자는 모종의 이유로 필독미남조를 세상에 알리지 않고 있다. 그러다가 이게 최초로 발견되었다고 세상이 떠들썩해지고 방송팀이 출동하고 리포터가 상기된 목소리로 보도하는 걸 보고 있으면 꽤 흥미롭지 않겠는가. 느긋한 구경거리랄까, 여유와 결합된 묘한 즐거움이 느껴지는 거다.

    물론 에세머들은 ‘바닐라’들이 자신들의 취향을 얼마나 역겨워하는지 익히 알기에, 고은태처럼 아닌 밤중에 커밍아웃으로 워프한 이가 인간쓰레기로 매장되는 모습을 봐도 별 감정 없다. 슬프거나 비참한 건 어불성설이고, 안쓰럽긴 하지만 어쩐지 재밌기도 하다. 다 안다, 에세머 니네 이 사건 보면서 속으로 한 번 쯤은 웃는 거.

    인터넷에서 자기 망신을 넘어 자기가 소속된 집단의 망신을 시키는 인간들의 전형적인 패턴이 여기 나온다. ‘난 이러저러해.’라고 말하면 될 것을 ‘여자는/남자는/XX는 이러저러하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체 저런 추론이 몇 명의 에세머와 이야기해보고 내린 결론인지 모르겠다. 내가 아는 에세머들이 에세머를 다 대표한다고는 말할 수 없으나, 내 주변 에세머들(트친들과 에셈사이트의 글까지 포함한다)의 반응은 대략 이렇다.

    1) 고은태가 에세머인지 의심스럽다.

    2) 에세머라도 질이 나쁜 에세머다(유부남/녀가 파트너를 구하는 행위는 에세머들 사이에서도 뜨거운 감자다. 유부남/녀라는 것을 속였다면 인간 쓰레기로 치부되고, 속이지 않는다고 해도 좋은 눈길은 받지 못한다. 에세머가 바닐라에게 집적대거나 바닐라를 에세머로 끌어들이려는 시도도 좋게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많다).

    3) 유명인이 엮인 저런 사건이 터졌으니 이미지 업소나 에셈사이트에 대한 단속이 더 강화되겠다.

    4) 바닐라들이 호기심에 차서 몰려올 것이다. 당분간 에셈사이트에서는 신입회원 받지 말자.

    대부분의 에세머들은 고은태에 관심 없다. 고은태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던 사람도 있겠지만 누군지 몰랐던 사람이 더 많다. 그 사람이 망하는 모습에 재미있어하는 변태적(합의하에 서로 쾌락을 얻기 위한 폭력을 주고받는 것이 변태가 아니라, 생판 일면식도 없는 남이 망하는 것을 재미있어하는 심성이야말로 변태적인 것이다)인 심성을 에세머 전반에 둘러씌우지 말고 본인의 몫으로 남겨라. 에세머들은 다만 이 사건이 에세머들과 에셈사이트에 미칠 영향을 걱정할 뿐이다.

     

    2.

    “고은태는 자신의 언행에 상대가 불쾌감을 느낀다는 사실을 파악한 순간 문제의 행위를 멈췄다. 해당 내용이 담긴 고은태의 사과문은 피해자와 조율한 결과라 하므로, 의심할 필요는 없겠다.

    에세머들은 이 지점에서 정신 못 차리고 질주하는 인간들을 하도 많이 봐 와서, 아마 고은태가 내내 실수하는 와중에도 그나마 최소한의 자제력과 현명함은 갖췄다고 판단하고들 있을 거다.”

    다시 말하지만, 제발 자기가 에세머를 대표한다고 생각하지 좀 말자. 이 사건을 에셈 커뮤니티에서의 사건으로 묘사하자면 이런 거다.

    <유부남 멜돔이 펨섭에게 집적댔다.

    펨섭이 미적미적 장단을 맞춰주다가 잠수 탔다.

    멜돔은 드리워 놨던 수많은 낚시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냥 그러려니 잊어버렸다.

    갑자기 펨섭이 ‘저 작자가 나한테 이러저러했다’고 게시판에 뙇! 터뜨렸다.

    멜돔은 사과문 쓰고 잠수 탔다.>

    이수만

    이 글의 SM은 위의 SM(이수만) 아님^^

    여기서 에셈 커뮤니티 활동 좀 해본 에세머라면 대부분 저 멜돔이 ‘실수하는 와중에도 그나마 최소한의 자제력과 현명함은 갖췄다고 판단’ 안한다. 펨들은 총체적 밥맛이라고 생각하고, 멜들은 멍청하게 들이댔다고 생각하지.

    물론 범죄 행위에 준할 정도로 막 나가는 인간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구글링을 해서 싫다는 상대에게 어떻게든 접촉하려고 하고, 사이 괜찮을 때 확보한 상대의 사진을 가지고 계속 놀자고 협박하고……실제로 에세머 중에 그런 인간들이 있다. 사회에도 그런 인간들이 있다.

    그러나 그런 인간들이 인간 사회의 표준일 수 없듯이, ‘에세머들은 하도 많이 봐 와서’라는 식으로 에세머의 표준으로 갖다 붙이지 말란 말이다. 누가 필독 씨에게 그런 권리를 주었는가? 아~ 본격 프로 에세머시라서? 국제 에셈 연맹에서 자격증이라도 발부받으셨는가?

     

    3.

    “PS. 마지막으로, 고은태가 겪을 한 가지 현상을 예측해보겠다. 고은태는 이제 펨섭들로부터 팬레터를 받을 것이다. 아마도 ‘고은태 취향’일 일부 펨섭에게만 해당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멜돔이라 주장하는 남성들을 의심하고 경계하는 게 당연한 펨섭들의 현실상 고은태처럼 ‘검증된’ 멜돔은 상당히 탐나는 상대다.”

    나는 그 예측이 틀렸다고 예측하겠다. 두 가지 측면에서다.

    일단 필독 씨도 지적했듯이 펨들, 특히 펨섭들은 경계심이 많다. 정서적이고 안정적인 관계를 바라는 펨섭들이 많다는 점을 염두에 둔다면 경계심이 많을 수밖에 없다. 게다가 에셈 커뮤니티의 남녀 비율은 평균적인 인터넷 커뮤니티의 남녀비율과 같거나 남자가 더 많다.

    즉 여성들에게 선택권이 훨씬 많다는 말이다. 그런데 대체 왜 유부남, 그것도 이제 아웃팅당하고 이혼하거나 끊임없이 부인에게 감시받게 될 가능성이 큰 유부남에게 대시를 하겠는가? 안 그래도 펨섭들에게 유부남은 경계 대상 1호다. 슬프거나 환멸에 찬 이별로 끝날 가능성이 많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안 좋은 일로 유명세를 탄 멜돔? 동반 아웃팅 되라고? 안됐지만 고은태 씨는 새로 섭을 구할 마음이 있다면 이 사건이 망각의 저편으로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야 할 거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두 번째로, 대체 뭘 보고 고은태가 ‘검증된’ 멜돔이라는 것인가? 은밀한 부위의 사진 보내라, 에그 넣고 편의점 갔다 와라, 이 정도는 야설만 본 꼬꼼화 중학생들도 명령할 수 있는 범위다.

    오히려 자기 취향을 확실히 알 정도로 경험 있는 펨섭이라면 필독 씨가 그토록 비웃은 ‘오른쪽 세 번째 발가락에 키스하고 싶다’에서 이상한 감을 느낄 것이다. 멜돔이라고 풋잡을 하거나 사랑하는 섭의 발을 애무해주지 말라는 법은 없지만, 보통 멜돔이 펨섭에게 대시할 때 그런 말을 하지는 않는다. 오히려 자기 발을 핥게 해 주겠다는 말을 하면 했지. 경력 좀 되는 펨섭 누나는 “야동만 본 변바나 스윗아냐?” 하고 말하더라. 언론 타면 검증인가?

    그렇게 치면 지금 인사청문회로 언론 타는 ‘인재’들은 다 ‘검증된 인재’겠구먼. 나는 이 정도 멘트에서 감을 못 잡는 필독 씨가 오히려 ‘현역 프로로 뛰기에는 감을 잃지 않으셨어요?’라고 물어보고 싶은 것이다.

    바쁜 와중에 열받아서 내리갈기다보니 생각보다 필독 씨를 많이 까버렸다. 미안하다. 그러나 필독 씨가 내 버튼을 누른 건, 자신이 에세머이고 에세머의 성적 취향은 존중받아야 한다고 말하는 바로 그 글에서 에세머들을 미성숙한 인간으로 묘사했기 때문이다.

    1) 생판 모르는 남이 까발겨지고 추락하는 것을 보면서 재미있어하고 2) 인간남캐의 표준을 매우 낮게 잡으며 3) 언론 탔다고 검증됐다고 덥썩 믿어버리는 사람들로 이루어진 집단. 바로 언론이 그리는 *청소년*이다.

    에세머들은 미성숙한 인간이 아니다. 일반적인 기준으로 보면 성적인 취향이 특이하지만 나머지 부분에서는 평범한 사회인들이며, 많은 부분에서 일반적인 남녀 관계에 대한 관념을 공유한다. 상호 동의 후 이루어지는 플을 제외하면, 사회에서 성폭력인 건 에셈 커뮤니티에서도 성폭력이고, 사회적으로 꺼려하는 인물은 에셈계에서도 기피당한다.

    내 여동생이 어렸을 때 거미를 무지 무서워했다. 우리 어머니는 “야, 네가 거미 덩치의 몇 배냐? 네가 거미 무서워하는 것보다 거미가 널 훨씬 더 무서워한다.” 하면서 동생을 구박했다.

    마찬가지다. 에세머가 무섭고 혐오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오히려 에세머 쪽이 비 에세머들을 더 무서워한다. 공포스럽고 혐오스러워하는 것보다는 공포와 혐오를 당하는 쪽이 훨씬 더 무서우니까.

    그러니까, 제발, 에세머들을 그냥 놔두시라. 특히 같은 에세머라면서 에세머를 이상한 집단으로 그리지는 마시라. 두 배 세 배 배신감 느낀다. 자기가 뜨려고 에세머 팔아먹는 건 아닌가 하는 무서운 의심마저 든다. 딴지 필자 자리가 뭐 그렇게 뜨는 자리냐고 반문한다면 할 말 없지만. (레디앙 필자 자리보다는 더 쳐주는 자리이긴 할 것 같다 ^^)

    PS. 마지막으로, 고은태는 고독하게 커밍아웃한 거 아니다. 아웃팅 당한 거다. 그 차이는 아시는지?

    필자소개
    이말삼초 멜돔. 현재 이년차 연애DS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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