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프랑스, 일본과 다른 한국 교통요금
    경제민주화는 시민들의 삶을 바꾸는 것이 되어야
        2012년 12월 14일 04:20 오후

    Print Friendly, PDF & Email

    대통령선거의 열기가 점점 달아오르고 있다. 이제 며칠만 지나면 한국사회를 새롭게 변화시키겠다는 후보 중의 하나가 새로운 대통령 당선자로 결정될 것이다. 지난 대선의 화두가 경제를 살려 국민들을 잘살게 해주겠다는 것이었다면 이번 대선의 핵심 의제는 경제 민주화이다.

    지난 5년 이명박 정권의 친 재벌정책으로 가속화된 양극화로 서민들은 숨조차 쉴 수 없는 지경이고 중산층이라 불렸던 사람들은 하우스푸어 신세로 전락했다. 박빙의 접전을 벌이고 있는 박근혜, 문재인 후보 진영은 유세 현장 마다 진정한 경제민주화를 이루어 내겠다며 한 표를 호소하고 있다.

    그러나 시민들은 유력 후보 진영의 경제민주화 공약을 피부로 느끼지 못하고 있다. 성장이 우선이냐 분배가 우선이냐는 고전적 논쟁이나 재벌규제 위주의 거대담론들을 시민들이 체감하기에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재벌위주의 파행적인 경제체제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한국사회는 수렁에서 탈출하기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재벌위주의 사회시스템이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 전반에 뿌리내리고 있어서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결을 동시에 추구하지 못하면 거대담론 사이에 묻혀 시민들의 현실적 삶이 개선되는 것은 바라볼 수 없다.

    시민들의 삶 바꾸는 경제민주화가 필요 – 대중교통정책이 가야할 길.

    지난해 치러진 프랑스 대선에서 유력 후보들의 공약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것 중의 하나가 파리를 중심으로 한 수도권 교통문제였다.

    특히 철도나 지하철 노선의 혜택을 받는 곳과 그렇지 못한 곳 또는 생활을 위해서 장기간 이동을 해야 하는 시민들에 대한 대책에 대선후보들이 정책을 내놓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로 여겨진다.

    프랑스 녹색당의 제안을 사회당이 받아 대통령 선거에 당선된 올랭드 정권이 추진하고 있는 파리를 중심으로한 수도권의 교통정책은 우리에게 많은 시사점을 준다.

    파리의 지하철과 광역 전철망은 도심을 중심으로 거리에 따라 1-5존으로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뉜다. 그리고 이 구역에 따라 요금이 달라진다. 물론 거리가 멀 수록 더 많은 요금을 지불해야한다.

    여기에서 사회적 불평등이 시작된다. 파리의 중심부일수록 집값이나 임대료가 비싸 가난한 사람일수록 시의 변두리나 외곽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가난한 사람일수록 더 멀리 이동해야 하고 더 많은 비용을 부담하는 구조가 되었다.

    프랑스 철도역의 한 장면

    1-2존 구역만을 이용하는 파리 시민들의 한 달 정액이용요금이 9만원 정도 내는데 비해 1-5존 이용시민들은 17만원을 내는 구조다. 교통요금에서부터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다. 폭등하는 전세값을 감당 못해 점점 더 수도권 외곽으로 이사행렬이 이어지고 있는 일은 이미 일상화 되었다.

    파리의 외곽에 사는 시민들은 불편하고 비싼 대중교통요금을 내느니 자가용을 이용하겠다며 차를 몰고 나와 교통혼잡비용과 대기오염, 이에 따른 도로유지보수비도 치솟았다. 녹색당은 승용차 이용률을 낮추어 온실가스와 환경오염을 줄이는 것만으로도 사회적 비용은 훨씬 절감된다며 1-5존의 전철이용요금 통합제를 강력히 주장한 것이다.

    결국 사회당은 수도권 교통문제 해결책의 하나로 1-5존까지의 통합요금제를 도입하여 올해에는 주말에만 적용하고 내년부터는 평일까지 확대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발생하는 추가비용 5억 유로는 기업과 부자들에게 세금을 걷어서 충당하기로 했다. 바꿔 말하면 그동안 가난한 사람들이 사회적 비용을 나누어 부담하고 있었다는 얘기다.

    이처럼 우리가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회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체제로 계속 변화해왔던 것이 우리 사회였고 특히 지난 5년간은 이 흐름이 가속화되었던 시기였다.

    한국의 지하철요금은 국제적 수준과 비교할 때 싼 편이다. 서울시 지하철 공사나 한국철도공사에서 밝힌 자료에 따르면 수송원가 이하의 요금을 받고 있고 이것이 적자의 주요 원인 중 하나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렇게 싼 요금은 정말 이용시민들을 위해서 싸게 책정된 것일까?

    한국의 교통요금은 고스란히 이용시민들이 부담하는 것으로 결코 싼 요금이 아니다. 더구나 지하철과 철도의 적자도 시민들의 세금으로 보전하고 있는 셈이니 결국 시민들은 세금과 요금으로 공공교통체제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비싼 일본 철도요금의 비밀은?

    경제수준을 감안하더라도 이웃나라 일본의 철도나 지하철 요금은 우리에 비해 상당히 비싸다. 관광안내 블로그나 가이드책자에도 일본에서 보다 싸게 철도를 이용할 수 있는 여러 방법들을 소개할 정도로 일본의 교통요금은 비싼 편이다. 그러나 일본에 사는 사람들은 비싼 요금에 대한 사회적 저항의 정도가 상당히 낮다. 그 원인은 무엇일까?

    바로 생산활동에 소요되는 대중교통요금을 사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고용된 모든 노동자들의 출퇴근이나 업무용 교통요금은 사업주가 부담한다. 이것은 복지혜택이 좋은 대기업들만이 아니라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시간제 점원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이런 교통요금 사업주 부담은 일정한 액수의 보조금이 아니라 실제 발생한 교통요금을 지원해주기 때문에 교통비 부담을 상당히 해소시켜주고 있다.

    결론적으로 한 달간의 교통요금을 지불할 때 개인이 사적으로 이용한 요금만 부담하게 되므로 실제로 시민들이 느끼는 부담은 크지 않다.

    지난 3월 일본의 공공교통문제에 관해서 인터뷰를 한 국토교통성의 우츠보 쇼타 철도산업 국제과 전문관은 일본에서 고용주가 피고용인에게 교통요금을 보전해주는 것은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것으로 기업활동에 필요로 하는 인력에게 교통비를 주는 것은 당연한것 아니냐는 반문을 해왔다.

    현재는 많이 퇴색됐지만 일본 경제를 이야기 할 때 상징처럼 말해졌던 완전고용과 가족 같은 직장은 봉건적 막부체제에서 메이지 유신을 거치면서 새로 발달하게 된 자본주의 기업문화에도 영향을 준 때문이었다. 일본의 자본주의는 일본 사회의 문화적 영향을 받아 일부 공공 영역의 사회적 비용을 기업이 부담하는 것이 서구와 다른 점이다.

    유럽의 경우에는 정기권이용자들에 대한 혜택으로 공공교통요금의 부담을 줄여주고 있다. 스웨덴의 경우 서울에서 평택정도의 거리를 통근하는 이용자의 경우 월 7만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하게 되는데 이것은 명목상의 요금보다 훨씬 싼 금액이다.

    독일의 경우에는 대학생들까지 아예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데 무료라기보다는 매년 초에 납부하는 년간 45만원 정도(주정부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의 등록금에 포함되어 있는 학생회비에 열차요금 같은 교통비가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공공교통요금은 사회구성원들이 생산활동과 일상활동을 무리없이 수행할 수 있도록 책정되어야 한다.

    한국은 60년대 경제개발시기부터 80년대 중반까지 수출산업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저임금 정책을 유지했다. 이 저임금 정책은 농민의 희생을 바탕으로 했는데 저임금 정책을 유지하기 위해 저곡가 정책을 펼쳐야 했던 것이다. 주식인 쌀이 비쌀 경우 노동자들의 저임금을 유지할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생산비에 못 미치는 쌀값으로 농민들은 시름에 잠겼고 농촌의 해체가 가속화되었다.

    한국 경제의 눈부신 발전은 저임금으로 수출경쟁력을 보장했던 노동자들과 저곡가 정책에도 농촌을 지키고 쌀을 생산한 농민들의 희생이 바탕이 되었다. 현재 한국의 싼 공공교통요금은 이런 저곡가 정책과 맞닿아 있다. 교통요금의 모든 부분을 온전히 시민들이 부담하는 구조가 되다보니 교통요금을 원가수준으로 높일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사회 각 분야의 희생을 바탕으로 커다란 성공을 거둔 한국의 기업들이 과실은 온전히 자신들의 것으로 취하고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오랜 역사가 공공교통체계에도 물들어 있는 셈이다.

    한국의 경우 소위 수익자 부담원칙을 내세워 전적으로 이용자들에게 교통비를 전가시키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부채질하는 교통요금 체계가 갖는 문제뿐만이 아니다. 지난 몇 년간 확장된 민자사업들은 공공교통부문마저 토건재벌과 금융재벌의 수익창구로 전락시켰다.

    이런 사업에 앞장 선 사람들은 공공의 이익이 아니라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주저함이 없었던 지자체의 장들과 국토부 등 공무원들이었다. 서울 지하철 9호선이나 전국의 말썽 많은 경전철 사태가 말해주듯이 말로는 국가경제를 위한다고 했지만 드러난 결과들은 철저히 재벌 챙기기였다.

    경제민주화는 우리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양극화를 촉진하는 사회시스템으로 정착된 여러 가지 제도들을 바꿔나가는 것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 첫걸음은 서울과 수도권의 공공교통요금체계의 개편에서부터 출발하는게 바람직하다. 2000만 수도권 시민들이 부담없이 이동권을 누릴 수 있는 체제로의 개편은 공공교통이용을 촉진하여 상당한 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는 일이 될 것이다.

    먼저 현재 장거리 이동에 더 많은 요금을 부담하게 하는 요금체계의 개편이 필요하다. 프랑스의 교통개혁안처럼 공공교통요금이 가난한 사람들이 더 많은 부담을 지지 않도록 서울시와 경기 일원을 운행하는 모든 지하철과 전철의 요금체계를 단일 요금체계로 전환하는 조치가 필요하다.

    만약 재정상의 문제 등으로 당장 도입이 불가피 하다면 최소한 출퇴근시간의 일정한 시간대에는 단일 교통요금이 적용되게 하는 방법을 우선적으로 도입할 수 있다. IT기술이 발달한 한국에서는 몇 가지 프로그램만 손보면 손쉽게 도입할 수 있다. 이런 체제를 구축하는데 있어서의 걸림돌은 역시 민자사업으로 진입한 민영지하철이다.

    사회의 건강한 성장 해치는 민자사업들, 전면 재정립 필요

    따라서 민영지하철과의 실시협약이나 요금체계개선을 위한 사회적 합의절차가 준비되어야 한다. 필요하다면 새로운 법률을 제정해서 민영지하철이 공공교통체계를 훼손하는 주범이 되는 일을 막아야 한다.

    현재 신분당선 같은 경우 고작 17.3KM의 노선을 가지고도 서울시 지하철보다 훨씬 높은 요금을 징수하고 있다. 이들이 높은 요금을 받는 이유로 든 것이 광역버스보다 빠르게 이동한다는 것인데 이런 이유라면 광역버스보다 빠르게 이동하는 공영 지하철이나 전철의 요금들도 모두 올려야 한다. 더구나 신분당선은 기관사가 필요 없는 무인운전시스템이고 최소의 인력으로 운영비도 절감되는 구조라 자랑하고 있다. 이처럼 자동화 시스템으로 인건비조차 기존의 지하철보다 적게 드는 효율적인 회사가 시민들로부터는 더 높은 요금을 받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민자사업자에 대한 특혜를 반대하는 목소리(사진=민주노총 서울본부)

    결국 민영지하철에 투자한 재벌건설사들과 금융사들의 이익을 이용 시민들이 보전하고 있는 셈이다. 지하철 9호선이나 신분당선이 자신들의 요금 정책을 고수하려면 몇 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건설비나 운영비에 국가 보조가 없고 전체 지하철 네트워크에서 독립적으로 존재해 사업을 벌인다면 이들 사업체의 요금책정에 왈가왈부 할 수 없다. 수많은 사철이 존재하는 일본에서처럼 특정 지역의 특화된 관광노선 같은 경우라면 요금 책정 권한은 온전히 운영사의 자율에 맡길 수 있다.

    그러나 지하철 9호선과 신분당선의 경우 상당한 국가의 재정이 투입되었고 또한 완성된 노선이 기존의 공공교통시스템과 연결된 환승체계를 갖고 있다. 이들 민자사업 철도는 공영지하철과의 환승 시스템으로 독자적으로 운영될 때 보다 훨씬 더 많은 이용객을 확보 할 수 있다. 공영지하철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얻는 시너지 효과가 지하철 9호선이나 신분당선의 가치를 더욱 빛나게 하고 이것이 네트워크 산업이 갖는 가장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이런 현실 속에서 30년간 운영권을 갖는 민간사업자에게 지속적인 고수익을 보장하는 체제는 경제민주화라는 이 시대의 시대정신을 심각하게 훼손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1대 99의 사회로 전환해 가면서 시장경제 체제 자체가 심각한 위협을 받는 현실에서도 한국의 재벌기업들은 사회적 책임은커녕 남은 1의 몫도 가져가겠다는 행보를 거리낌 없이 하고 있다. 기업을 살려야 경제가 산다는 도식에서 벗어나 사회 공동체의 노력과 희생으로 성장하고 유지되는 기업에게 더 많은 사회적 책임을 묻는 사회가 되어야한다.

    기업가 정신이 사라지고 영리적 활동과 탐욕의 경계가 무너진 오늘날 기업을 강제하는 것은 시민사회의 몫이고 이런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대변해야하는 것이 정치권력의 의무이다. 교통요금까지 가난한 이들이 더 부담하고 더 고통스런 출퇴근이나 통학을 감수해야 하는 사회를 방치하는 것은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자본공화국임을 말해주는 것이 아니고 무엇인가?

    필수 공공재로서의 공공교통수단의 위상을 다시 세우고 이에 필요한 부담을 명확히 규정하는 법적체계의 구축은 오직 이윤이라는 탐욕의 고깃덩어리로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자본의 목에 채울 수 있는 단단한 고리가 될 것이다.

    시민들이 경제민주화를 체감할 수 있는 현실적 개혁방안을 제시하는 후보를 보고 싶다. 장기적으로는 지역 통합요금제의 도입으로 버스와 지하철 등의 대중 교통수단이 사회적 불평등을 완화해주는 장치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역 통합요금제가 정착되기 전까지는 출퇴근 시간 때만이라도 통합요금제로 전환하여 사회활동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부담을 줄여주어야 한다. 이런 작은 변화만으로도 세상은 많이 달라질 것이다.

     

    필자소개
    사회공공연구소 철도정책 객원연구원

    페이스북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