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비의 마음치유 이야기⑨
    "설렘과 기쁨이 물결치는 그 날"
        2012년 11월 13일 01:41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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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봄비님의 글은 11월 9일 보내온 글인데, 조금 늦게 게재한다. 글 내용의 시간대와 맞지 않는 부분은 그 탓이다.<편집자>

    그는 기억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그를 만난 적이 있다. 벌써 여러해 전 뭔가를 상의하고 싶다고 나를 찾아왔던 최병승 동지. 이야기를 나누다 어느 대목에서 툭 눈물을 떨어뜨렸는데 그 모습이 가슴에 남아 커다란 덩치의 남자를 순진하고 아이 같다고 기억하고 있다. 그가 지금 고압전류가 흐르는 23미터 송전탑 위에서 천의봉 동지와 함께 현대차 불법파견 정규직화를 요구하며 고공농성을 하고 있다.

    어제 새누리 당사 앞에서는 30일 넘게 단식투쟁 중인 쌍용차 김정우 지부장과 함께 쌍차 동지 20명이 동조 단식에 들어갔다는 소식을 들려왔다. 머리를 깎고 곡기를 끊고 목숨을 내놓고 투쟁하는 동지들이 이 땅 곳곳에 버티고 있다. 평범한 일상을 보내다가 큰 소리로 웃고 떠들다 멈칫 뒤돌아봐진다. 서럽고 슬프다.

    나도 이런데 몇 년째 길거리에서 삶을 이어가는 동지들과 그 가족들의 일상은 또 얼마나 무겁고 힘겨울까. 따뜻한 밥상을 마주 대하고 앉아 아이들 크는 이야길 나누는 저녁 식사가 얼마나 그리운 나날일까.

    기쁨이나 환함이 들어올 자리를 잃어 마음속에 버석버석한 사막바람이 불고 있을 오늘 아침, 한진중공업 정리해고 노동자 92명이 전원 복직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당연한 일이지만 너무 늦어서 그동안의 힘겨웠던 투쟁이 억울하지만 그래도 이 소식은 가슴에 시원한 바람 한줄기를 몰고 왔다.

    삶에는 희로애락이 숨 쉬고 있어 그 감정의 물결이 막힘없이 시원하게 소통되어야 숨통이 트인다. 무거움에 암담함에 짓눌려있는 가슴, 내 안에 굳어져 버린 희로애락을 끌어내기 위해 한진 사랑방 과정 시작 전에 노래를 부르곤 했다.

    처음엔 어설픈 솜씨라도 기타를 칠 줄 아는 동지의 반주에 맞춰 ‘아침이슬, 사랑으로’ 등 편안한 노래를 부르며 시작했다. 오랜만에 함께 노래를 부르자 어떤 동지가 ‘삶은 달걀에 사이다만 있으면 놀라온 것 같네’ 라고 농담을 했고 손뼉을 치며 한 목소리로 흥을 돋우니까 진짜 어디 야유회라도 온 기분이 들었다.

    몸놀이를 하는 모습

    어느 날은 지금 마음을 담아 ‘함께 가자 우리 이 길을’이나 ‘솔아 솔아 푸르른 솔아’를 부르며 과정을 시작하기도 하고 마음이 내키면 ‘찬찬찬’, ‘칠갑산’을 분위기 있게 부르기도 했다. 나이가 있는 그룹에서는 ‘목로주점’이나 ‘행복의 나라로’ ‘솔개’ 같은 노래가 인기 있었다.

    어떤 동지는 매번 노래를 부르지 않아 노래를 싫어하느냐고 물었더니 ‘노래를 듣기만 했지 불러본 적이 없다’며 소처럼 큰 눈을 끔뻑 끔뻑 감았다 뜨곤 했다. 1박2일 숙박 프로그램을 할 때는 몸과 마음이 더 유연해졌다. 유연한 몸과 마음은 노래 뿐 아니라 놀이도 과정 안에 초대되었다.

    둥글게 둘러 앉아 ‘개똥벌레’를 부르며 과장된 몸짓으로 ‘아무리 둘러봐도’ 주위를 둘러보기도 하고, ‘여기 개똥무덤이’를 부르며 옆에 있는 동지의 머리를 짓누르기도 했다. 어린 아이 같이 노래 가사 하나에 몸짓을 얹으면 두 눈에 장난 끼가 스물스물 들어차곤 했다.

    노래를 부르며 놀다 자기가 돌아가고 싶은 나이를 물어보았다. 아무 걱정 없었던 10대가 되고 싶다는 사람, 그래도 나는 ‘22살 연애할 때가 좋아’ 라고 말하는 사람. 모두 그 나이로 돌아가 ‘아가씨들아’를 해맑게 불렀다. ‘트랄랄랄라~ 트랄랄랄라 ~ ’를 부를 땐 처녀 총각이 된 듯 아름답게 왈츠를 추기도 했다.

    더 어린아이가 되어보자고 ‘앞으로’란 노랠 불렀다. 동지의 어깨를 잡고 ‘앞으로’ 나가며 노랠 부르다가 다시 ‘뒤로’ 걸으며 노랠 부르다가 ‘옆으로’ 동지의 몸을 발길로 차며 장난을 치다가 ‘뒹굴며’ 온 방안을 뒹굴다가 ‘굴러서’ 동지의 몸을 넘어가며 굴러다니기도 했다.

    평소 너무 점잖아 조심스러웠던 어떤 형님, 장난에 푹 빠져 양말을 내던지며 온 몸을 그룹 안에 던지는데 그 모습이 너무 재미있어 웃음을 멈추지 못하기도 했다. 그동안 울고 웃고 마음 나누며 지내온 시간에 웃음이 더해져 더 단단해지고 가까워지는 시간이었다.

    놀이가 끝난 후 올라오는 느낌을 나눴다. ‘재미있었다, 힘들다, 더 놀자, 고등학교 이후로 이렇게 신나게 놀아본 적이 없었다.’ 등등 언제 놀아봤는지도 모르게 살아온 세월이야기가 이어졌다.

    마치 20년 전으로 돌아간 느낌이라는 이야기, 노조 처음 만들었을 때 4박자 춤을 추며 놀았던 기억이 새롭다는 이야기.

    노래를 부르지 않았다던 동지는 놀아본 기억도 없노라고 긴 세월 일에만 파묻혔던 삶을 내보이기도 했다. 어떤 동지는 ‘30대가 없었던 거 같아. 파업하고 투쟁하느라 거의 30대는 통으로 들어낸 것 같아’ 라고 말하는데 그 느낌이 스산하고 안쓰러웠다.

    정문 앞 텐트에서 혹은 스스로 닫아버린 방문 안에서 차가운 밤들을 보냈을 동지들의 얼굴이 떠오른다. 오늘 투쟁의 한 고비를 넘긴 그들의 마음에 희망이 솟으리라, 흥겨움이 물결치리라.

    사람들은 말한다. 아무리 천재라도 노력하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아무리 노력하는 사람이라도 즐기는 사람을 이길 수 없다고. 웃으며 투쟁하자고 신바람 나게 살아보자고 외치고 있지만 현실은 벽처럼 완고하고 답답하다.

    꿈을 꾼다.

    송전탑에서 내려온 동지들과 단식을 풀고 힘차게 쇳밥을 지을 쌍차 동지들과 긴 시간 길에서 살아왔던 재능교육 해고자 동지들, 콜트·콜텍동지들, 유성동지들, 대우차 판매 동지들, 그리고 사회의 관심에서 조차 밀려나 작고 힘겨운 투쟁을 이어가고 있는 모든 동지들이 대한문 시청광장에 다 모이는 날, 이제 사람 사는 세상이 되었다고 어깨 걸고 춤추는 날, 삶 안에 설레임과 기쁨이 바다처럼 물결치는 그 날이 속히 오기를 꿈꾼다.

    입장과 조직을 넘어 명분과 원칙을 넘어 사람 중심, 노동자 중심으로 하나 되는 그 꿈같은 날이 오늘 한진의 아침처럼 곧 밝아 오리라.

     

    필자소개
    홀트아동복지회 노조위원장을 지냈고 현재는 아리랑풀이연구소 그룹 상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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