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남스타일', 최저질의 세뇌제
    가장 조잡하고 동물적인 자본주의적 욕망을 멋지게(?) 포장한 것
        2012년 11월 09일 01:04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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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이런 글 쓰기도 미안합니다. 천의봉, 최병승 동지 등이 송전탑 농성을 하고 있는 이 순간에는, ”국내”라면 그들이 대표해서 싸우는 비정규직 문제부터 먼저 떠오르고 어떻게 해서 그들과 연대할 수 있는가 라는 생각부터 하게 돼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아무래도 쓰지 않을 수도 없는 것 같습니다. 비정규직을 아무리 쥐어짜도 배나 자동차 수출의 분야에서 중국과의 경쟁이 장차 어려울 것을 파악한 남한의 지배계급은, 내수 위주의, 민중 생계 위주의 새로운 경제로의 전환 대신에 또 하나의 ”수출 드라이브” 카드를 빼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제 저들이 바깥에서 내다 팔려 하는 것은 번지르르하고 편리하고 비싸 보이고 안락한 ”산업화와 민주화 기적의 나라 코리아”의 이미지가 깔려 있는 세뇌제 (洗腦劑; 속칭 ”대중 문화”), 즉 소위 ”한류”입니다.

    그 새로운 위대한 수출입국 (輸出立國) 드라이브의 선두에 서 있는 수출 전사는 바로 옥관문화상(!)쯤이나 받은 ”싸이” 박재상씨와 그의 ”강남스타일”이기에, 그 ”기적의 수출 상품”에 대해서 그래도 몇 마디를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물론 이 상품 자체를 제가 ”평론”하려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그럴 만한, 개성이 있는 텍스트나 동영상이 전혀 보이지가 않기 때문이죠. 그러나 이와 같은 ”강남産 세뇌제”가 ”히트 수출 상품”이 됐다는 것 자체는 오늘날 신자유주의적 세계가 도달한 어떤 막다른 골목에 대해서는 너무나 많은 것을 말해주고 있기에 조금 언급해야 하겠어요.

    ”한류 상품”들의 절대 다수가 다 그렇듯이, ”강남스타일”의 가장 큰 특징은 그 이를 데 없는 뻔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예컨대 북조선 지도자가 입을 열면 아마도 ”자주성”과 ”주체”가 언급되고 ”강성대국”이 언급될 것이 뻔하듯이, 자만심에 빠진 강남특별시 시민이 만들 수 있는 세뇌제 (洗腦劑)도 너무나 뻔합니다.

    세상만사가 두루 형통하고 볼테르의 한 주인공처럼 ”나는 역사상 최고의 세상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는 남성 주인공, 감각적인 다리와 엉덩이, 그리고 ”노출이 심하지 않아도 너무 야한 춤”을 선보이는 여성들이라는 ”배경”, 비싸 보이는 버스, 비싸 보이는 빌딩들, 비싸 보이는 댄스 학원, 비싸 보이는 승마 교육… 평양발 선전 동영상이라면 꼭 나올 것 같은 주체사상탑처럼, 뻔해요. 너무 뻔해요.

    영상도 그렇지만, 그 이상으로 – 지금 제 아들이 자신도 이해 못하면서 계속 앵무새처럼 외우는 – 가사의 뻔함은 역겨운 지경에 도달해요.

    ”정숙해 보이지만 놀 때 놀고, 가렸지만 노출보다 더 야하고, 이 때다 싶으면 머리를 푸는 여자” – 이것은 근대적 마초의 꿈의 여인입니다. A lady at table, a whore in bed (식사자리에서는 숙녀, 침대에서는 창녀). 그러한 여성을 상대로 해서 사회적 위상 확보 욕망부터 성욕까지 다 채워보려는 것은 남성 우월주의적 사회의 가장 평범한 남성의 가장 평범한 욕구에 속할 것입니다.

    ”밤이 오면 심장이 뜨거워지는 여자”… 여성 여러분, 이런 포르노적 상상들에 대해 절로 화가 나지 않으세요? 여성을 일차적으로 ”성”으로 보려는 태도는 분명한데요. 아, 남성인 저부터 들으면 들을 수록 은근히 화 납니다. 그러나 이 동영상을 접한 6억인가 7억인가 되는 ”세계인”의 절대 다수는 설마 이게 다 뭔 말인지 모르겠지요?

    시청자의 다수가 가사를 모르겠지만, 설령 알아도 큰 차이는 없었을 것입니다. 이 동영상이 체현하는 남녀들의 욕망들이 자본주의적 세상에서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하기에, 이 동영상이 이렇게 ”히트”를 친 것입니다.

    ”섹시 레디”가 선보이는 비싼 명품 옷을 입어보려는 욕망, 마천루 같은 그 멀리 보이는 주상복합체에서 한 번 살아보려는 욕망, 여유만만하게 비싼 댄스나 요가 교육을 받아 몸을 단련해보려는 욕망, 이 모든 것을 그 돈으로 가져다 줄 수 있는 박재상씨 본인과 같은 남자를 – 뚱뚱하다 하더라도 – 한 번 잘 꼬셔보려는 욕망, 그리고 무수한 감각적인 여성 다리를 눈요기감 삼아 감상하면서 이 모든 여체들에 대한 정복적이고 야한 상상을 해보려는 남성적 욕망… 뻔하죠? 역겹죠? 뻔하고 역겨운데, 이건 ”한류”의 상당부분을 팔아주는 핵심 코드들입니다.

    ”강남스타일”과 같은 최저질의 ”한류”는 가장 저속하고 가장 조잡하고 가장 동물적인 자본주의적 욕망들을 아주 ”멋지게” 만들어주는 것을 세일즈 포인트로 합니다.

    수많은 조선족 등 외국인 노동자와 국내 비정규직 등의 피땀으로 건설한 그 화려하기 짝이 없는 빌딩들의 숲을 배경으로 하고, 부동산 투기 등 반사회적 행각으로 치부한 ”강남족” 자녀들의 잘 훈련된 건각 (健脚)들을 시각적 재료로 이용해서요.

    이런 수준의 비디오가 ”잘 나갈 수” 있는 세계는 도저히 무슨 세계인가요? 아무런 출구도 보이지 않는 장기 공황의 늪, 중국 경(硬)착륙과 동아시아 경제 전체의 장기적 침체 가능성, 미증유의 격차 사회의 도래를 맞이하는 신자유주의적 세계는, 우리 앞의 심연을 직시할 용기조차 없습니다.

    우리가 <타이타닉>을 타고 있다는 것을 똑똑히 기억할 용기는 물론 없고요. 낭떠러지를 향해서 계속 달려가도, 이들은 그냥 눈을 감고 감각적인 강남의 아가씨 다리들에 대한 야한 꿈 속에서 어떤 상상의 도피처를 찾으려는 셈입니다. 뭐, 그래 봐야 낭떠러지에서 떨어져버리는 순간을 연기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말입니다.

    필자소개
    오슬로대 한국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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