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철탑 위의 농성일기 6일, 8일차
    : 현대차 비정규직지회 천의봉
        2012년 10월 26일 11:26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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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현대자동차 불법파견 인정, 신규채용 중단, 정몽구 구속이라는 요구를 가지고, 최병승 소송당사자와 송전탑 20m 지점에서 고공 농성 중인 현대차 비정규직 지회 천의봉 사무국장이 휴대폰으로 작성한 농성일기를 보내왔다. 열악한 조건에서 작성한만큼 간혹 오타가 있지만 옮기는 과정에서 최대한 원문 그대로 실는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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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일차 일기

    비온다해서 어제 그 난리를 쳤구만, 다행히 아침에 눈을 뜨니 비는 오지 않았다. 철탑을 지켜려던 조합원 100명이 있었기에 철탑 위의 날씨는 후끈하게 느껴졌다.

    평소 출투 대오보다 많은 100여명이 모여서 일주일을 알리는 출투를 시작했다. 일주일동안 여기를 사수한다고 지칠만도 한 조합원들은 한치의 흔들림없이 여기를 사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늘부터 사수대오가 줄어든다. 조합원들이 허기진 배를 채우고 현장으로 돌아간다.

    저녁내내 잠잠했던 하늘도 철탑 위를 먹구름이 뒤덮고 있다. 하늘도 뭔가 비장한 각오를 한 모양이다. 비 올 채비를 마쳐놓은 상태다. 좁은 공간에 걸쳐진 판자는 바람땜에 요동을 친다. 울산본부 주최 문화제가 열린다. 그렇지만 하늘은 우리에게 공간을 열어주지 않았다.

    문화제 시작과 동시에 비는 쏟아붓기 시작했고 여기 내가 있는 곳은 십오만사천볼트 전기가 흐르는 고압전선 송전탑이다. 나는 전기를 무지 싫어한다. 어렸을 때 아버지 친구들과 밧데리를 가지고 물고기 잡으러 갔는데 뒤에서 물고기 주어 담다가 내가 감전되고 말았다.

    그 밧데리가 차량용 밧데린데 그게 12v전압이다. 여기에 앉아 있으면서 별 생각이 다든다. 어렸을 때 12v에 잠깐 기절했었는데 천둥번개가 쳐서 철탑으로 전기가 타고 흐르면 이게 몇볼트인지 상상이 가지 않았다. 잠깐 후회를 해본다.

    술 먹으면서 병승형이랑 약속했던 그날을 밖에 집회문화제는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지긋이 눈을 감고 기도를 해본다. 비는 와도 좋은데 천둥번개만 치지 말라고. 바람이 세게 불었지만 비로 인해 온몸이 다 젖은 나는 철탑을 잡을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나마 내가 앉아있는 곳은 나무 합판이어서 전기는 안통할거라 생각한다.

    폭우로 인해 문화제는 중간부분에 취소되고 비를 피하기 위한 조합원들은 하나둘씩 눈 속에서 멀어지고 있었고 조합원들이 앞에 있을 때는 괜찮다고 스스로 나를 달래봤는데 조합원들이 하나둘씩 안보이기 시작하니 나의 불안감은 더 커져가고 있다.

    긴장감을 없애기 위해 담배를 꺼냈는데 이런 젠장! 라이타도 물에 젖어 켜지지가 않는다. 입에서는 자연스레 욕이 나온다. 그렇게 두어시간이 흐르고 비는 그쳤다. 비땜에 잠깐 꺼내지 못한 내 전화기는 수십통의 문자와 몇통의 부재중 전화가 와있었다.

    힘내라는 문자와 응원격려 메시지였다. 이 문자를 보며 아까 잠시 후회했던 그 순간이 미워진다. 응원격려 메세지와 함께 내 마음도 다독거려본다. 이제 내 몸이 나의 몸이 아니라 10년간 현대차에 한을 품고있는 조합원들의 몸이라고 850만 비정규직의 몸이라고 밑에서도 분주하다.

    비맞고 몸 상한 데는 없는지 젖은 옷을 갈아입고 지나가는 비와 함께 나의 하루도 지나 간다.

    송전탑에서 고공농성 중인 천의봉 사무국장(사진=현대차비정규직지회)

    8일차 일기

    따사로운 햇살과 함께 나른한 오후를 즐기고 있을 때쯤 이상한 기분이 든다. 지회임. 상집 카톡방에 ‘지회장 경찰이 잡아감’이라는 문자가 뜬다. 여기저기 수소문을 해보았지만 아직 벌여진 상황에 대해 다들 어리둥절하다. 곧바로 지회장이 카톡이 뜬다. 연행 중이라면 어떻게 문자를 남기지 생각하고 다시 카톡방에 들어가서 ‘이런 장난 치지 마세요’라고 문자를 남기니 조직부장이 ‘장난이 아닙니다’라고 다시 문자가 온다.

    순간 머리가 삐쭉섰다. 눈앞이 캄캄해지고 순간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앞으로 이 상황을 어떻게 돌파해야하지! 어제 지회장 2차 포위의 날 호소문 문구 중에 이런 말이 순간 떠오른다. ‘제가 있는 조합 사무실에서 철탑까지는 걸어서 20분입니다. 제가 가서 두 동지 안전을 확인해야하지만 저는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수천수만의 저의 눈이 되어 두 동지 안전을 확인해주십시요’.

    지회장이 연행되어 동부경찰서 있어도 지회장이 연행된 동부서까지는 차로 20분인데 나 역시 지회장한테 가지 못한다. 참 눈물난다. 처음 임원으로 결의할때 박현제 지회장은 결혼 10년이 지나서야 어렵게 가진 딸이 있었다. 그 딸 10개월 핏덩이를 두고 노동조합 정상화를 위해 가족을 버리고 지회장으로 결의했다.

    순간 고여있던 눈물이 주체를 못하고 흘러내린다. 흘러내리는 눈물을 머금음 잠깐 나약해진 나의 마음을 다시 잡아본다. 내가 여기서 나약해지면 안된다. 회사와 정부의 오판이다. 수장만 잡아가면 이 싸움 못할거란 오만한 생각, 전체조합이 지회장이 되고 전체 조합원이 임원이 되서 다시 들풀처럼 일어서리라. 정뭉구 반드시 복수할테다. 기다려라. 이 분노로 반드시 거대공룡그룹 현대자본에 심장에 비수를 꽂으리라.

    밑에 조합원들도 어려운 분위기 이것만 나보고 먼져 힘내라 한다. 이때 마침 시골 어머니께서 전화를 하셨따. 아들아 미안하다. 너는 그 높은데 바깥에서 자는데 따뜻한 방에 누워있는 이 엄마를 용서해다오!

    가슴에 북받친 설움이 다시 한번 밀려온다. 다같이 잘살자고 여기서 고생하는거니깐 조금만 참아 달라고 어머니를 달래본다. 저를 키우는 과정에 어머니가 무진장 고생하셨는데 어머니 연세가 65이다. 저를 키우는 과정에 몸도 흔한데도 없다. 이제 내가 어머니 호강시켜드려야 하는데 조금만 기다려주세요. 당당히 정규직 쟁취해서 이제부터는 편히 살게해드릴께요.

    암튼 오늘 기분은 엉망이다. 오늘부터 한국시리즈 야구가 있다. 내 나이 31살 아직까지 꿈 많고 놀러다니고 싶은 나이다. 야구장가서 쌓인 스트레스나 풀면 좋겠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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