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신의 추억⑨ "왜 불러~"
        2012년 09월 08일 12:39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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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불러 왜 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왜 불러

    토라질 때 무정하더니 왜 왜 왜~~~

    자꾸자꾸 불러 설레게 해

    아니 안되지 들어서는 안되지

    아니 안되지 돌아보면 안되지

    그냥한번 불러주는 그 목소리에

    다시 또 속아서는 안되지

     

    안들려 안들려

    마음없이 부르는 소리는 안들려 안들려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아아아~~~

    이제 다시는 나를 부르지도마

    가던 발걸음 멈춰선 안되지

    애절하게 부르는 소리에

    자꾸만 약해지는 나의 마음을

    이대로 돌이켜선 안되지

     

    왜불러 왜불러

    돌아서서 가는 사람을 왜 불러 왜 불러

    토라질 땐 무정하더니 왜 왜 왜~~~

    이제 다시는 나를 부르지도 마.

    사진 = 하람 하린이네 음악실 블로그

    사람들은 70년대의 금지곡에 대해 이야기하면 우선 김민기의 ‘아침이슬’을 떠올리지만, 나는 송창식의 ‘왜불러’를 가장 먼저 떠올린다. ‘왜 불러’는 내가 초딩 4학년 때인 75년도 최고의 히트곡이었다. 75년 당시 송창식은 MBC 10대가수로 선정되었을 뿐만 아니라 최고 인기가수상을 수상하였으며, 그가 부른 ‘왜불러’는 그 해 최고 인기가요로 선정되었다.

    나는 사실 미술뿐 만이 아니라 음악에도 젬병이어서 요즘도 노래방에 가는 게 큰 고통 중의 하나다. 그럼에도 75년 당시에는 멋도 모르고 이 ‘왜 불러’를 신나게 불러 제꼈던 기억이 난다. 일단 스트레스를 푸는데 이 노래만큼 효과적인 노래는 없었다.

    ‘왜 불러’의 인기는 당연히 나에게 국한된 것은 아니었다. 당시를 회상해보면 나와 나의 친구들은 수시로 ‘왜 불러’를 외쳐댔다. 한번은 선생님이 한 친구를 불렀는데, 그 친구가 돌아서면서 ‘왜 불러!’를 외쳐대 한바탕 웃음 뒤에 그 친구는 선생님께 혼났던 적도 있다.

    이렇듯 폭발적 인기를 끌던 ‘왜 불러’가 어느날 갑자기 금지곡이 되었다고 했다. 선생님이 전한 금지 사유는 ‘반말을 남발해서 그렇다’는 것이다. 우리는 애석한 마음을 억누르면서 ‘왜 불러’라는 노래를 이제는 함부로 부를 수 없었다.

     유신시대는 참으로 코미디같은 시절이었다. 당시 기준으로 반말 가사를 문제 삼는다면 아마도 요즘 노래는 거의 대부분이 금지곡이 되고 말 것이다.

     당시 ‘왜 불러’가 금지곡이 된 이유에 대해 나중에 커서 들은 이야기도 약간 분분하다. ‘고래사냥’, ‘아침이슬’ 등과 함께 당시 반유신 데모 현장에서 자주 불려서 금지곡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75년도 최고의 영화 ‘바보들의 행진’에 장발단속을 피해 도망가는 장면에서 ‘왜 불러’가 배경음악으로 나오면서 장발단속에 대한 저항의 뜻을 담고 있다고 해서 금지곡이 되었다는 이야기도 들린다.

    심지어는 박정희가 TV를 보다가 송창식의 장발을 보고 역정을 내면서 금지곡이 되었다는 말도 들린다. 아마도 다 맞는 말이지 싶다.

    많이 알려져 있듯이 망우리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김민기는 망우리 공동묘지에서 뛰어놀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지은 노래인 ‘아침이슬’에 대해 중정에 끌려가서 ‘태양은 묘지 위에 붉게 타오르고’라는 대목에 대해 ‘태양이 김일성을 상징하는 것 아닌가’라고 추궁을 받았다고 한다.

    이금희의 ‘키다리 미스터 김’은 단신 대통령의 심기를 거스를 수 있다는 이유로 금지곡이 되었다고 한다. 아마도 여기에 키다리 미스터 김의 성씨가 김씨인데다 ‘멋쟁이’라고 했기 때문에 더 문제가 되었을 것이다.

    75년 7월 12일자 동아일보를 보면 “일반인이 즐겨부르는 (이장희의) ‘그건 너’와 ‘한잔의 추억’은 곡과 가사가 퇴폐 저속하고 (신중현의) ‘미인’은 가사나 곡 자체는 문제점이 없으나 사회적으로 파급되는 좋지 못한 점을 감안했고 (김성근의) ‘생일없는 소년’은 비정과 비탄조임을 들어 예륜은 금지곡으로 결정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금지곡이 된 이유도 갖가지인데, 그것도 참으로 이해하기 힘든 이유이다.

     유신시절은 이렇듯 예술가들의 표현의 자유는 무참히 침해당하고 있었으며, 일반 대중의 다양한 취향에 맞는 문화생활을 향유할 권리도 너무 쉽게 거부되던 시절이었다.

    필자소개
    민주노동당 의정지원단장, 진보신당 동작당협 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친구였던 고 박종철 열사의 기념사업회 사무국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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