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합의 힘, 통합파가 만들어야 한다
        2011년 06월 07일 12:4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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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영표 교수의 글은 반갑고 고맙다. 그리고 많은 부분에 공감한다. 그의 글을 읽으며 적어도 ‘독자파'(문득 상황에 따라 바뀌어야 할 이 명칭이 여전히 부여되고 있는 사실이 당황스럽기도 하다)라 불리는 나와의 차이란 그저 습자지 한 장도 채 못될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긴 동의의 표시로 글의 제목을 달았다. 하지만 습자지 한 장의 차이가(그 많은 공통점에도 불구하고!) 나를 불안하게 하고 의심하게 하고 선뜻 다가서지 못하게 한다. 이 글에선 그 부분에 초점을 맞추겠다.

    현재의 진보세력이 전반적으로 수세적이고, 어떤 면에서는 우경화를 면치 못한다는 것은 서영표 교수가 지적한 ‘복잡한 주체’의 형상과 닮았다. 따라서 복합적인 주체의 측면을 지적하는 것만으로는 별로 진전될 이야기는 없을 듯하다. 그리고 좀 더 직접적으로 복수의 민주노총, 복수의 진보정당에 대한 일반적인 물음에도 큰 차이는 없을 것 같다.

    이를테면, 단순히 구조의 힘을 확인하는 수준에서가 아니라, 복합적인 주체 내의 다양한 국면들에 주목하는 운동’들’에 대한 질문으로서 현실의 민주노총에 대한 가치판단이 아니라, 역사적 운동으로서 민주노조 운동의 전망과 관련된 논쟁으로 확장하는 것 말이다. 마찬가지로 진보정당 운동 역시 대문자로 쓰여진 진보정당의 운동이 아니라, 다양한 저항의 양태들에 초점을 맞춘 진보정당’들’의 운동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말이다.

    통합과정이 정말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 과정’인가

    이상의 말은 당연히 서영표 교수와 차이가 없으리라 본다. 문제는 시기이며 타이밍이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역시나, 2012년이라는 정세의 힘이 작용하는 ‘정치적 장’의 문제다. 나는 소비 문제로 국한 시 주체의 복잡한 문제가 사실은 2012년 권력구조 개편을 둔 ‘정치적 장’에 대한 비유라고 읽는다.

    그래서 서영표 교수의 글은, 2012년이라는 개편기에 소위 ‘진보진영’의 발언권을 극대화하기 위한 전술적 선택으로서 통합을 주장하는 것이라고 구체적인 맥락에 놓으려고 한다. 따라서 쟁점은 좀 더 구체적인 내용으로 말해져야 한다.

    서영표 교수는 작년 9월 합의 이후부터 독자파는 무엇을 했는지 묻는다. 그리고 어떤 실물적인 힘도 보여주지 못한 독자파는 무능하다고 말한다. 또한 서영표 교수는 ‘독자파가 통합파를 기회주의적이라고 비판할 수 있는 근거는 통합을 주장한다는 것 자체에 있다고 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독자파의 무능함에 기댄 통합파의 다수라고 불리는 이들의 ‘유능함’의 폭 역시 상대적이라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은 서영표 교수를 대상으로 할 쟁점이 아니니 논외로 하자.

    다만, 두 가지 사항만은 꼭 짚고 싶은데 하나는 ‘사소한 사건’으로서 2008년 분당 과정이라는 평가와 다음으로 현재 추진되는 통합 논의의 불모성에 대한 것이다.

    우선 서영표 교수는 2008년 분당 과정이 사소한 사건이었다고 말했다. 맞다. 나는 서영표 교수뿐만 아니라 당 바깥의 누군가라도 그렇게 말하면, 그렇다고 말하고 만다. 하지만 분당 과정에서 비대위니 하면서 결정 단위에 있던 이들이 ‘활동가들의 정신적 외상’ 등등 운위하면서 통합의 걸림돌 정도로 말하는 것에는 분노가 인다.

    구체적으로 분당 과정의 주요 쟁점을 언급할 필요는 없지만 적어도 통합을 주장하는 그 분들은 당시 그 때의 시점으로 가면 어떻게 행동할 건가. 당 내에서 건전한 비판세력으로 계속 남아 있을 텐가, 아니면 전당원 총투표를 해서 당권 내 다수파를 포위하는 방법을 고민할 텐가. 나에게 정신적 외상이 남았다면, 내가 추구하는 가치에 반하는 것이, 비상식이 내가 지지하는 정당의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당의 공식적인 입장으로 추인되는 과정 그 자체였다.

    그 사소함은 진보정당의 가치가 60%의 동의, 70%의 동의와 같이 집합론으로 평가되면 그만이라는 사람의 입장이다. 하지만 내가 믿는 진보정당의 가치는 피라미드 꼴에 가깝다. 하나의 가치는 두 세네가지의 가치군을 만들고, 그것들이 가치의 우선순위에 따라 배열된다.

    그래서 내게 그 사소함은 피라미드 꼴을 따라 올라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사소함’은 역설적으로, 현재까지의 진보신당이 그 가치의 우선순위를 제대로 실천해내지 못했음을 방증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서영표 교수가 그 분당의 과정에서 얻어진 교훈이 고작 ‘사소한 일에 역사적인 오판을 한 것’이라고 말하고픈 것이 아니라 지금의 주어진 진보정당 대통합이라는 과제에 비해 ‘사소’하다는 것으로 이해한다. 아무래도 그렇게 보는 것이 합리적이겠다. 그래서 질문은 두 번째로 나아간다.

    통합은 필연적으로 ‘~와 통합’이 될 수 밖에 없다. 우리가 합의한 것은 ‘통합과 건설’이 함께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이를 통합 먼저하고 건설 논의를 진행한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번 합의문은 ‘건설’ 과정도 매우 수세적으로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따라서 6월 1일 합의문 이후 통합파에게 신뢰를 갖기 힘든 것은 ‘통합’ 이후의 건설 과정에서 대한 공백 때문이다. 이것은 단순한 비전의 부재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그 두 가지의 과제가 모두 중요하다는 점을 충분히 알고 있을 통합파의 주요 인사들이 이를 언급하고 있지 않고 있을 뿐이다.

    따라서, 국회의원 비례명부의 작성원칙, 공동대표단 구성 및 사무국 구성과 같은 ‘그들만의 리그’ 말고 ‘사회당이 빠진,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이라는 모습이 어떻게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과제에 조응하는지 말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상황이 통합파가 추진해왔던 애초의 통합 구상과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이고, 그것은 어째서 중요하지 않게 다루어도 되는지 설명해야 할 것 아닌가.

    물론 이런 질문은 서영표 교수에게 던질 질문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상황의 변화와 상관없이, 대문자 ‘통합’만 주장하는 것은 새롭지 않다. 내가 서영표 교수가 말하는 ‘통합’에는 동의하지만, 지금 진행되는 ‘통합’에는 동의하지 않는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답을 할 수 있나.

    2012년의 시나리오는 ‘복수’로 존재한다

    물론 서영표 교수가 모든 부분에서 그런 추상성을 보인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은 예측의 부분에서는 상당히 구체적인 그림을 보여준다.

    “이 상태로 총선과 대선을 치른다면 민주노동당은 지금보다 훨씬 우경화되고 선거 만을 위한 정당으로 변할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진보신당은 정당으로서 의미를 상실하고 자기 소멸할 수도 있다. 이게 현실이다.”

    서영표 교수는 현재의 추세라면 나타날 비극적인 상황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로서 통합을 놓고 있다. 동의한다. 하지만 이런 그림은 어떤가.

    하지만, 현재의 상황에서 민주노동당과의 통합은 과거의 갈등이 ‘잠재된 형태’에서 하향식의 총선 출마 지역 배분이 이루어질 것이며, 그 과정에서 진보정당이 지켜왔던 당원 중심의 민주주의 원칙에 심각한 영향을 줄 것이다.

    그리고 총선의 결과와 상관없이 대선은 정권교체라는 최종 목적으로 달려 갈 것이며,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통합정당 출현은 힘들다 하더라도 사실상 자유주의 세력과의 연립정부로 수렴될 가능성이 크다. 이로 인해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 내에 내부에서의 불만이 커져 원내-정부내각 중심의 당권파와의 갈등이 극에 달할 것이고 이는 결국, 다수제 결정구조 하에서 정리되지 않은 과거의 정파 구도를 재연할 것이다.

    2012년을 미리 가본 사람은 아무도 없다. 정세는 현재의 추세에 기대어 추측할 수 있을 뿐이며, 이 과정에서는 필연적으로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 포함된다. 그래서 서영표 교수가 우려하는 예측은 다양한 가능성 중 하나라는 것을 부정하긴 어렵지만, 그것이 2012년 한 해로 끝나버린 것은 아쉽다.

    통합파라면, 정세에 개입하기 전의 상황을 보여주고 그래서 개입했을 때 어떻게 될 수 있다고 하는 것까지 보여주어야 하지 않나. 서영표 교수의 예측은 그저 독자파에게 가장 최악의 그림을 보여주기 위한 예측일 뿐이다.

    만약 2012년 총선 국면에서 반드시 얻을 것이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그 시계는 2012년에 머물겠지만, 2013년도 올 것이라고 믿는 사람이라면 그 시계는 좀 더 확장되어야 한다. 서영표 교수의 말대로 최악의 상황에 따라 민주노동당이 선거 중심 정당이 되고 진보신당이 지리멸렬해진다면, 그 반대의 전망은 통합파의 그것일텐데 그 내용이 궁금하다.

    서영표 교수가 두렵냐고 물었다. 당연히 두렵다. 나는 진보정당이 세상의 문제를 바꾸는 데보다는 당내의 갈등에 더욱 집중하는 꼴이 재연되는 것이 두렵고, 사람 중심으로, 세력 중심으로 재편되어 그것도 정파라고 위세를 떨며 합리적인 논쟁이 실종될까봐 두렵다. 통합 진보정당에서 바꾸면 되지 않느냐고 말하고 싶은가? 나는 그 보이는 갈등을 재연하느니 차라리 지금부터라도 백지에서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에 힘을 쏟는 것이 더 남는 장사라고 본다.

    솔직히 이렇게 제자리를 맴돌듯이 벌어지는 논쟁은 지친다. 결국은 오게 될 양자선택의 답안지 앞에서 어느 한쪽을 마킹하는 것으로 다수와 소수가 결정될 테고 결국 남을 것인가 말 것인가는 개개인이 가지고 있는 정치적 비전과 전망 속에 수렴되고 말 그 사태가 두려울 뿐이다.

    어설픈 답글을 마치며

    서영표 교수를 비롯한 여러 통합파 동지들은 계속 이야기를 해달라는 나의 ‘땡깡’이 어처구니없고 수준 낮아 보이고, 때로는 무능력을 보여주는 증거로 볼 수 도 있겠다. 하지만 나는 진보정당 출신의 국회의원 몇 명 만드는 것이 어떤 정치적 함의가 있으며, 적어도 우리가 가는 길에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 궁금할 뿐이다.

    그래서 서영표 교수에게는 무능으로 보이는 그 모습에, 즉 ‘세력 중심의 통합’을 전제로 하지 않는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과제에 집중하는 몰정세적 태도에 더욱 동의한다. 내가 녹색사회당을 언급한 것은 그 비전에 동의 여부를 밝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지금, 여기서’ 가능하고, 필요하다는 말이었다. 그것이 새로운 진보정당의 가치에 부합한다고 말한 것이었다. 세상에, 진보신당 당원들 중에 그저 비전으로서 녹색 사회당에 동의하지 않을 사람이 그리 많겠는가.

    따라서, 진보정당 통합을 통해서 관철되는 ‘진보의 모습’이 무엇이었으면 좋겠는지 말하는 통합파들이 보고 싶다. 단순히 정치는 원래 이런거야, 첫술에 배부를 수 있겠어, 더디지만 함께가는 것이 좋은 것이지라고 말하는 선문답이 아니라 ‘나에게 권력을 달라, 그러면 당을, 세상을 이렇게 바꿔보겠다’고 말하면 안되나.

    나는 그리 이념적으로 순결한 사람이 못 된다. 언제나 진흙에서 뒹굴고 잡탕밖에는 못 내놓지만 그럼에도 그 현실적인 프로그램 안에 어떤 지향이 있기를 희망한다. 그런 내가 ‘이념적 순결주의’로 불리는 현 상황이 달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좀 더 정치적이고, 현실적인 그 분들이 이후에 어떤 과정을 통해서, 어떤 정치적 판단을 내리는 지는 잘 지켜보도록 하겠다. 물론 나에게도 해당되는 말이다.

    * 그리고 독자들께는 함량미달의 글로, 게다가 ‘급’도 안되는 내가 계속 <레디앙>의 지면을 어지럽히고 있는 점 머리 숙여 사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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