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려움의 선택을 하는 건 통합파다"
        2011년 06월 06일 08:30 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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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통합파야말로 ‘공포’에 따른 선택을 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통합파 동지들의 고민과 선택을 이해하거니와, 남종석 동지와도 아는 사람으로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은 불편하다. 하지만 남종석 동지의 일련의 주장에 대해 ‘부디 자신들의 선택도 되돌아보라’는 의미에서 간략하나마 비판을 하지 않을 수 없다.

    남종석 동지는 독자파의 선택이 자주파에 대한 두려움에 따른 선택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미안하지만 통합파 동지들만큼이나 독자파 동지들도 진보정당운동을 포함한 한국사회의 운동 전체에 대해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다.

    단지 그 경로와 바라보는 시간의 기본 단위가 다를 뿐이다. 쉽게 말해 기본 문제의식이 다르다기보다는 이후 상황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상대방의 고민을 ‘유아적’ 어쩌고 하면서 감정적인 선택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것이 도대체 논쟁에 무슨 도움이 되는지 필자는 도무지 알 수 없다. 자주파와의 공존을 이야기하기 전에 같은 당 내의 동지들과 품격있는 토론을 하는 것이 우선이 아닐까?

    남종석 동지를 비롯한 통합파 동지들이 되돌아보아야 하는 것은, 자신들의 선택 또한 공포에 따른 선택이 아닌가라는 사실이다.

    통합파 동지들은 민주노동당 주류파의 우편향된 민주연립정부 노선이 관철될 경우 진보정당은 정치적으로 무의미한 존재로 전락할 것이므로, 민주노동당 내에 들어가서 ‘헤게모니 투쟁’을 통해 그와 같은 흐름을 저지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 묻노니 이것 또한 민주노동당 주류의 노선과 그것이 관철되었을 경우에 대한 ‘공포에 기반한 선택’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2. 세력연합에 의한 헤게모니 투쟁 승리라는 ‘환상’

    게다가 어떻게 ‘헤게모니 투쟁’을 할 것인가라는 구체적인 지점에 들어가면 더 황당하다. 열심히 하면 된다는 공자님 말씀은 하나마나한 이야기이다. 활동가들이 열심히 하기 위해서는, 진보정당운동과 노동운동을 비롯한 우리 운동을 어떻게 혁신할 것인지 그리고 비정규직이나 청년세대 등 새로운 주체들을 어떻게 형성할 것인지에 대한 비전이 제출되어야 한다.

    독자파는 (비록 허접해서 그것에 동의하지 못할 수는 있으나) 진보신당 창당 시의 창당 논리로부터 최근의 녹색사회당에 이르기까지 어쨌든 그런 혁신의 비전들을 제출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통합파 동지들은 우리 운동의 혁신에 대해 어떤 비전이나 계획을 제출해왔는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필자는 이에 대해 별로 보고 들은 바가 없다.

    필자가 주로 들은 것은, 현재 민주노동당 주류의 패권에 반대하는 민주노동당 비주류와의 연합을 통해 주류의 패권을 제어할 수 있다는 주장이었다. 이것이 ‘헤게모니 투쟁’의 실제 내용인 것이다! 한 마디로 과거의 자주파 대 범좌파 대립구도를 민주노동당 주류파 대 범반주류파의 대립구도로 바꾸겠다는 논리이다.

    혁신에 대한 비전과 계획이 아니라, 구도만 달라졌을 뿐 과거와 비슷하게 세력 간의 합종연횡을 통해 ‘헤게모니 투쟁’에서 승리하겠다는 발상이다. 자, 또 묻노니 이것 또한 또 하나의 분파주의가 아니라고 무엇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 세력연합의 대상인 현재의 민주노동당 비주류 상당수는 주류의 패권에 반대하고 있을 뿐 꼭 민주연립정부나 민주당과의 전략적 연대에 반대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 운동의 혁신을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그럼에도 그들과 연합하면 뭔가 잘 될 수 있으리란 주장의 실체는, 어떻게든 현재의 어려움에서 당장 벗어나기만을 바라면서 만들어진 일종의 ‘환상’ 아닐까?

    ‘공포’의 근거도 민주노동당 주류이고 ‘환상’의 근거도 반주류연합이다. 이쯤 되면 민주노동당 주류는 거의 2MB 수준이다. 이거야말로 반2MB의 운동권 버전이 아닌지 진지하게 되돌아보기를 권한다.

    3. 패권주의를 제어할 방안이 합의문 어디에 있나?

    좋다. 다 인정한다 치자. 현재 진보정당운동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고 민주노동당 주류의 패권이 극심한 것도 사실이니까. 그런데 그렇다면 그 패권을 제어할 방안이라도 연석회의 합의문에 제대로 들어갔어야 하지 않는가?

    합의문의 북한 관련 문구에만 주초점이 가면서 합의문의 또다른 중대한 결함은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패권주의를 극복할 구체적인 방안이 합의문에 전혀 포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당의 민주적 운영을 위한 제도적인 방안에 대해 주로 다루었던 부속합의서2는 연석회의 석상에서 전혀 논의되지 않은 채 각 당의 통합결정 이후에 논의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과거의 패권주의 등 비조적적 행위에 대한 공동의 평가와 반성을 위한 ‘(가칭)성찰과 화해를 위한 특별위원회’ 조항도 통째로 삭제되었다.

    각 당의 의결기구에서 통합 결정을 다 해놓고 뒤늦게 패권주의 극복을 위한 제도적 방안을 논의하자고 해본들 그것이 무슨 실효성이 있겠는가? 이미 통합 결정이 나있는 판에 자신들의 기득권을 양보할 바보가 누가 있는가? 게다가 대중들에겐 이건 결국 자리다툼이나 제 몫 챙기기로 비칠 가능성이 훨씬 큰데, 어떻게 패권주의를 제어하고 당을 민주적으로 운영하며 더 나아가서 ‘헤게모니 투쟁’ 씩이나 벌인단 말인가?

    솔직히 필자와 같이 민주노동당 탈당의 원인이 북한 문제나 패권 문제가 아닌 운동의 혁신 문제였던 사람에게는 이런 건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민주노동당 내의 우경화 경향을 제어하고 주류의 패권을 반대하며 헤게모니 투쟁을 벌이자고 하는 사람에게는 이건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 아닌가?

    이번 합의문은 통합파 스스로의 논리에 따라도 별로 설득력이 없는 합의문이다. 누구 말마따나 ‘통합파조차 대놓고 설득하기가 쉽지 않은 안’이 아닌지 돌이켜보길 바란다.

    필자 역시 진보신당 내 일부의 과도한 ‘반주사파’ 편향에 대해 결코 동의하지 않지만, (합의문 식으로 표현하자면) 그런 정서에 대해 ‘존중’해 줄 수는 있다. 그런데 그런 분들은 이번 합의문의 북한 관련 문구에 결코 동의하기 어려울 것이다.

    또한 필자처럼 북한이나 패권이 아닌 운동의 혁신을 주로 고민하는 사람들 역시 혁신에 대한 고민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이번 합의문에 동의해주기 어렵다. 게다가 북한이나 혁신이 아니라 패권 반대가 주된 문제의식인 동지들 또한 패권주의 극복을 위한 실질적 방안을 사실상 무력화시킨 이번 합의문에 동의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혁신도, 북한도, 패권도 그 어느 것 하나 제대로 담아내지 못한 이번 합의문이 나름대로 받아들일 만한 합의문이라고 과연 진정으로 생각하는가?

    4. 솔직하게 말하라. 대신 비전과 계획을 제출하라

    사실 나는 통합파 동지들 역시 이번 합의문이 나름대로 괜찮은 합의문이라고 진심으로 믿는다고는 별로 생각지 않는다. 그들이 볼 때도 이번 합의문은 대단히 미흡한 합의문일 것이다. 하지만 합의문 문구 따위에는 상관없이, 현실이 어려우니까 통합하자는 현실추수주의 및 위에서 언급한 ‘공포’와 ‘환상’에 따른 선택을 하고자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그냥 솔직하게 말하라. ‘우리도 마음에 안 들지만 어쩔 수 없다’고. 차라리 그러면 이해해줄 수 있다. 현실이 어렵고 단기적으로는 그 현실을 돌파하기가 쉽지 않다는 건 독자파들 또한 잘 알고 있으니까. 괜히 자신의 선택을 미화하지 말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면 그건 ‘존중’해줄 수 있다. 진심으로.

    대신 통합 이후에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비전과 계획을 제출해 달라. 지금 통합파 동지들의 근본적인 문제는 ‘현실이 어려우니까 통합하자’는 것 말고 통합 이후에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에 대한 대안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이미 말했듯이, 반주류연합이라는 세력연합 방식의 구운동권적인 사고는 퇴행일 따름이다.

       
      ▲필자.

    백보 양보해서 일시적으로 퇴행하더라도 다시 전진할 수 있다는 믿음이라도 주어야 할 것 아닌가? 이후의 전진에 대한 아무런 믿음도 없는 상태에서 같이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주장이 과연 독자파는커녕 통합파 상당수조차 설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정말이지, 제발 나를 설득해주기 바란다.

    필자는 차라리, 현재 민주노동당에 있지만 우리 운동의 혁신을 진지하게 고민하는 분들을 개인적으로 더 신뢰하며 그 분들과는 어떤 방식으로든 함께 할 수 있다고 믿는다.

    도리어 현재 진보신당에 있더라도 이후의 비전과 계획 없이 과거로 되돌아가자는 분들에겐 (그 고민은 이해하지만) 판단에 대해선 전혀 동의하기 어렵다.

    이런 나의 입장이 과연 ‘독자파의 유아성’에 지나지 않는 것인가? ‘유아’인 나의 어린 머리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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