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분당 후 왜 이 당에 입당한지 아나요?"
        2011년 06월 02일 07:14 오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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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시 주최였던가, 몇 년 전 시민축제에 실력 있는 록 뮤지션들이 출연한다는 소식을 듣고 친구들과 머리를 흔들러 나들이한 적이 있었다. 커다란 무대에서 펼쳐진 공연에는 오버그라운드에 데뷔한 뮤지션들이 차례로 출연했고, 사회자는 공연의 후반부에 흥겨운 록 공연이 이어질 것이라며 관중들을 붙잡았다. 우리처럼 록 음악을 듣고 싶어 찾아온 관중들이 많았던 탓인지, 사회자가 록 공연을 예고할 때마다 객석은 환호성으로 가득 찼다.

    후반부가 되자 기다렸던 록 뮤지션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근데 영 싱거웠다. 시에서 주최한 무대였기 때문일까, 아니면 오버그라운드에서 활동하는 밴드들과 구색을 맞춰야 한다는 의식 때문이었을까. 보컬은 노래보다 제스쳐에 더 예민했고, 과격하던 연주는 거슬릴 만큼 잰 스타일로 편곡되어 있었다.

    사회자의 소개를 의식한 듯, 보컬은 관객들을 향해 “록 스피릿”을 주문했지만, 우리는 도무지 어디서 록 스피릿을 발산해야 할지 갈팡질팡했다. 땀을 쏙 빼려고 찾아온 공연에서 어깨도 제대로 흔들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니 정말이지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참다 못한 우리는 “도대체 록은 언제 하나여?”라고 장난스럽게 외쳤다. 무대까지 들릴만한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주위에 있던 관객들도 웃으면서 맞장구를 쳐줬다. 하지만 다음 곡이 시작됐고, 록도 아니요 팝도 아닌 누더기 사운드는 큰 소리로 우리의 목소리를 먹어버렸다.

       
      ▲진보신당 당원 한마당 잔치 모습. 

    재봉합 합의문

    6월 1일 새벽, ‘재봉합’ 합의문이 나왔다. 진보신당 홈페이지에선 벌써부터 당원들의 탈당 움직임과 당 대회에서 두고 보자는 으름장이 속출하고 있다. 아마도 이로써 소위 통합파와 독자파의 갈등은 돌아오지 못할 다리를 건넌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 같다.

    참관인마저 거부하고, 실무자조차 언제 어디서 이루어지는지도 모르는 곳에서 회담이 펼쳐졌고, 그곳에서 무려 20시간이나 걸려 합의해야 했던 쟁점은 북에 대한 몇 가지 문구였다고 한다. 양측 모두 해당 문구에 대한 평가로 논의를 저마다의 주장을 재확인한다.

    그런가? 그게 ‘당 통합’이라는 사업이 시작되고 끝난 문제의 본질이었다는 건가? 그럼 만약에, 그 부분이 만족스러웠다고 한다면, 지난 밤 긴박하게 이루어졌던 일련의 과정은 용인될 수 있단 말인가?

    소위 통합파와 독자파의 뿌리 깊은 갈등을 선정성 짙은 대북 인식의 문제로 재단하려는 것은 합당 합의를 다시 한 번 덮어 막자는 주장에 다름 아니다. 또한, 이를 통해 서로를 향한 양측의 분노를 재확인하는 것으로 각각의 결집을 도모하는 것도 불편한 몸부림일 뿐이다.

    솔직히 재봉합 합의문을 보면서 갑자기 큰 충격을 받은 사람이 많았을 것 같지는 않다. 누구나 높은 확률로 예상하던 곳으로 통합 작업은 이루어지고 있었고, 그게 ‘이 바닥 정치’라고 못을 박은 날이 우연히 1일 새벽이었을 뿐이다. 원통해 하는 사람들의 심경이 이해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통합파와 독자파로 나뉘어 서로를 변호하던 어법을 상기해보면 그다지 뾰족한 퇴로도 없었던 게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가 뭐든 소위 통합파는 독자파를 보며, “님들이 좌파인 건 알겠는데 현장조직은 언제 하실 거임?”이라고 비아냥거려왔고, 반대로 독자파는 통합파에 대고 다음과 같은 "정치인 쩌는 건 알겠는데, 그렇게 조직한 사람들로 뭘 하실 꿍꿍이임?"이라고 비난해 온 것이 서로에 대한 태도였다. 어차피 시종 양측은 가치의 쟁점을 중심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누구도 가치를 쟁점으로 움직이지 않았다

    그러나 어차피 동거가 불가능한 상태로 치달은 마당이라면 우선 규모를 키우고 봐야 한다는 게 이번 합의문에 사인한 대표들의 결단이었던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다. 물론, 이러한 빤한 결말을 확정한 그 문제의식이라는 것도 완전히 이해 못할 것만은 아니다. 하나의 당으로서 존립을 위협하는 갖가지 문제가 산적해 있다는 사실이 진보신당 내에 공유되고 있지 않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어쨌든 진보정당의 미래도 힘의 크기로 결정된다는 것을 보여준 이번 결정은 다른 방식으로 당의 존립을 위협하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 사실이다. 나는 이 점 때문에 이번 결정을 도출한 과정과 결과가 패착이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한동안 패권주의는 이번 합의 결정을 비판하는 당원들이 가장 많이 내뱉는 단어로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에게는 익숙할 욕설인 이 단어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번 합의로 기억될 단어가 될 것이다. 바로 분당 이후 입당한 젊은 당원들이 그들이다. 십년 이상 진보정치운동에 몸담았던, 이번 합의를 종용했던 이들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가 있다. 바로 분당 이후에 진보신당에 입당한 당원들이 왜 하필 진보신당에 입당했느냐는 것이다.

    이들은 한 때 ‘다양성 1세대’라고 불리웠던 적이 있다. 신자유주의의 개인화 전략의 산물로 평가절하되기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이 말은 권위에 복종하는 것을 싫어하는 신체를 뜻하는 말이었다. 이러한 당원들이 굳이 지지율이 2%에 불과한 진보신당을 선택한 이유에는 패권주의를 박차고 나온 진보신당에 대한 어느 정도의 신뢰가 자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 이들이 정치활동에서 가장 분노하게 될 상황은 당연하게도 다양하게 제출되는 작은 의견을 힘으로 밀어붙여 무력화시키는 것을 목격했을 때이다.

    분당  후 입당한 젊은 당원들

    이런 특성은 ‘다양성 1세대’는 정치적으로 ‘패권주의 극복 1세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그렇지 않아도 통합-독자 갈등이라는 텅 빈 전선으로 진보신당이 오늘의 결과를 도출하는 동안 청년 부문에 대한 고려는 거의 완전히 배제되어 있었다. 이렇게 그림자 취급을 받는 것에 심기가 편할 리 없었던 젊은 당원들에게 이번 합의는 이들의 민감한 정치적 토대를 달달 볶은 셈이다. 여러 모로 젊은 당원들로서도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가 벌어진 것이다.

    재봉합 합의문은 문건 자체로도 바스라질 것 같은 누더기지만, 진보가 더 큰 외연을 형성하고자 할 때, 젊은 당원들이 어떤 정치를 펼쳐야 하는지 근본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타산지석이다. 조금만 기다리면 화끈한 록밴드가 나온다는 광고를 믿어주는 게 진보정치인가? 뽕짝 리듬이라도 중간 중간에 ‘록 스피릿!’만 외치면 충성하는 게 진보정치인가? 물론 뒤에서 들리지도 않는 소리로 “록은 언제 할거냐!”고 소리지르는 것도 진보정치는 아닐 것이다.

    이제 확실히 물어야 할 때이다. 더 큰 힘이 필요하다던 ‘진보정치인’들에게 젊은 당원들의 존재는 무엇이었는지, 또 그들이 조직하려고 했던 ‘새로운’ 정치적 지지는 대체 누구를 대상으로 한 것이었는지, 이번 합의를 도출한 정당의 대표자들과 연석회의에 참여한 청년단체, 그리고 “확장 우선”을 외치는 운동의 사이비 전부에게 물어야 할 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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